부서진 톱니바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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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눈 앞에 펼쳐진 길들을 애써 무시해가면서

한없이 어두운 곳으로 걸어내려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떠오르는 저 창문의 밖에서는

새들이 날아가고 있겠지.


팃, 팃, 팃, 티리리…

손에서 놓친 톱니바퀴가 바닥에 튕겨 저 멀리로 굴러갔다. 조립하고 있던 제3형 발성기관 증폭태엽을 선반에 올려두고 톱니바퀴를 주우러 몸을 움직였다. 발걸음을 옮기는 김에 오랜 작업으로 뻐근해진 몸을 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다 자란 어른들까지 스스로의 선반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톱니바퀴들을 한데 모아 조립하거나, 다시 분해하고 정리하는 등의 일들을 맡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몇 시간을 내리 일하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악을 써가며 일을 끝마치려 했다. 신에게 선택받고 싶다는 일념 하에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기꺼이 삶을 바치고 있었다.

'한심해.'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을 용기는 없었지만, 난 이들에 대한 모멸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 대주교께서 사절단과 함께 전교하시던 중 데려온 이들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교리에 감화된 것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회에서 낙오된 것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아무래도 좋고, 다 잊어버리고 신에게 구원받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것들.

선반 위에 커다랗게 놓인 모조품을 보면서 선반의 부품들을 뒤적이는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다. 잘못된 위치에 억지로 축을 끼워 부품에 금이 가게 하는 것들은 물론이요, 이제 막 첫 톱니바퀴를 끼우기 시작한 것들도 눈에 띄었다. 왜 이런 것들이 나랑 같은 위치에 있는 걸까, 대체 왜. 나라면 성유물을 직접 분해하고 재조립하라고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재현해낼텐데. 고작 이런 모조품 실습이나 하고 있어야하다니.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바닥을 샅샅히 훑어보았다. 바닥에는 먼지나 녹슨 부품들이 가득했지만, 부품에 들어가는 모든 톱니바퀴의 이름과 특징을 달달히 외우고 있었으니 얼마 가지 않아 어렵지 않게 내가 떨어뜨린 톱니바퀴를 찾을 수 있었다.

떨어진 톱니바퀴를 주워 상한 곳이 있나 살펴보자, 아니나 다를까 톱날 부분에 엷은 금이 나있었다. 지금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걸 규격화 부품에 사용했다가는 버티지 못하고 부숴져버릴 것이다. 상관 없었다. 날이 상하지 않은 톱니바퀴는 수도 없이 많으니.

톱니바퀴를 다시 바닥에 던져두고 자리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눈이 부셨다. 천장에 달려있는 작은 창문에서 햇살이 내게로 내려쬐고 있었다. 피부에서 오후 햇살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나는 창문을 향해 오른팔을 뻗어보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에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문득 눈을 뜨고 다시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성당 잔업실에서 교대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뻔하지. 부모를 잃은 채 울고 있던 고아들, 고향을 잃고 떠돌던 부랑자들, 인정받지 못한 학자들…

이들이 몇 시간씩이나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이유도 뻔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울지 않는 것은, 반복되는 삶에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은 신을 믿기 때문이겠지. 그들 나름의 신앙에 응답해, 언젠가 선악을 구분하고 심판하며 구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겠지. 무너지고 부서진 삶에 유일한 빛이 되어준 신에게 보답하고 싶은 거겠지.

작디 작은 톱니바퀴들로 구성된 기계가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은, 톱니 하나하나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깎고 깎아내리며 이 곳에 맞추어야지만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터다.

더 이상 버려질 곳도 없다고 생각했을 가장 밑바닥에서 신의 말씀을 전해들었으니, 저렇게 삶을 바칠 수 있는 거겠지. 그래봤자 나보다 필사적일까. 가증스러운 것들… 누구나 겪는 어려움을 숭고한 희생이라 표현하며, 신의 구원을 바라는 꼴이 열등하다 못해 우스웠다.

글쎄, 저들은 그냥 인형이 필요할 뿐이다. 어린 아이가 밤에 끌어안고 자는 '상상 친구' 같은 것.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며,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다른 이들을 벌하는, 그런 존재. 저들은 그냥 무책임하게 과거를 잊고, 새로운 곳에서 이상적인 시작을 꿈꿀 뿐이다. 저런 무책임하면서도 불경한 생각에 메카네를 이용했을 뿐, 저들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다. 완전히 박살이 나서 으스러진 톱니바퀴들이었고, 이런 것들을 썼다가는 오히려 고장만 낼 것이었다.너희는 메카네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어. 총대주교께서도 이 사실을 빨리 아셨으면.

메카네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어. 그 분이 나를 보셨다면 가슴이 찢어지셨을 거야.
그 분이 다시 재조립되는 그 최후의 날에, 나를 향해 가장 먼저 내려오실거야.

오직 나만이 그 분의…

햇볕 아래에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에,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시 아까의 위치로 돌아가 바닥을 살펴보았다. 아까 버려둔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보였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다가, 한 손으로 집어서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서둘러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 생각은 작업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작업이 끝나고 금속제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그것은 나를 괴롭혔다.

전능한 신의 눈에는, 나와 저들이 같아보일까.
스스로의 부족함을 종교로 채우려는 머저리들과 내가 동급으로 느껴질까.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규격화를 받지 못하는 나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지는 않을까.

싫어.
당신이 준 이름만을 쓰고 당신이 내린 축복을 나 혼자 간직하고 싶어.
매일 아침과 밤 당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고 싶어.
긴 여명의 시간동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저들이 아니라 나야.

나를

나만을

바라봐줘


넓은 미사실에는 신도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경건한 마음으로 주교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성 카미누스caminus의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신도들은 내심 오늘 미사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고, 주교님께서 수려한 사제복을 휘날리며 단상에 오르기 시작하셨다. 어리버리한 견습 사제 몇몇이 금속 교구들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규격화를 거치지 못한 아이들은 메카네의 말씀을 더욱 잘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총대주교님의 가르침 덕에 가장 앞줄에 앉을 수 있던 나는 주교가 금속 교구를 어루만지는 소리까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저 분께서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이야기를 내뱉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흥분시켰다.

곧이어 기계음이 섞인 우렁찬 목소리가 넓은 미사실을 가득 채웠다.

"기억하십시오. 이 몸은 한낱 살덩이입니다. 온 인간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해 메카네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함이-"

단상에 오른 주교께서는 가장 뒤에 앉은 사람도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정확한 발성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덕분에 앞줄에 앉은 나는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오랫동안 느껴야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고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미사는 도식에 기록된 성자 중 한 명인 카미누스께서 살덩이들의 대학살을 막기 위하여 자신과 몇몇 신도들을 직접 규격화하여 고작 몇 백 남짓한 신도들과 함께 살덩이의 진군을 막았던 이야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몰래 손장난을 하던 어린 아이들도 그 흥미진진한 여정에 푹 빠지게 되었다.

주교께서는 성자께서 당시 쓰셨던 성유물들을 직접 보이시며, 규격화된 부위가 간악한 살덩이들의 살점을 찢었으며 성자의 흉부를 찌를 뻔한 일격을 스스로의 몸을 던져가며 막은 신도들의 참된 희생들에 대해 계속해서 장엄히 묘사하셨다.

주교께서 설교를 잠시 멈추고 신도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나를 비롯한 모두가 그 위대한 전투에서 활약한 부위들을 직접 조립해보고 싶어 안달이 나서는 부품상자에서 톱니바퀴들을 꺼내며 각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유물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손이 빠른 신도 몇몇이 하나 둘씩 조립을 끝마칠 무렵에, 갑자기 한 사제가 문을 박차 열고 뛰어들어왔다.

"스탠드 주교, 미사 중에 정말 죄송합니다. 급히 보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교께서는 미사를 방해받아 얼굴을 찡그렸지만, 들어온 사제의 긴박한 말에 빠르게 단상에서 내려와 철문으로 향했다. 곧이어 사제가 올라와 급한 일이 있으니 오늘 미사는 여기서 마무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신도들은 갑작스러운 일에 혼란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견습 사제 몇몇이 교단에 올라 교인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신도들은 상황설명도 하지 않은 채 안식일이 코앞인 때 성자의 용맹을 기리는 미사를 갑자기 중단시킨 것에 대해 화가 나있었다.

급기야 교인들은 교단을 향해 움직이려 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열을 이탈해 사제들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다.미사실은 웅성거리며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는 교인들 때문에 금방 혼란스러워졌고, 견습 사제들은 목청 높여 진정하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 말을 경청해주지 않았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사제가 서둘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자세를 숙이고 주위의 혼란스러움을 틈타 철문으로 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회색 복도가 있었다. 볕이 드는 창문 하나도 없어, 서늘하다 못해 추웠다. 생을 다한 시체가 놓여도 썩지 않을 정도로.

생기없는 복도의 모퉁이를 돌자 회색의 문들이 양옆에 여럿 있었다. 희미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물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반쯤 열린 회색 문이 보였다. 문에는 '수술실 27c'라는 글귀가 투박하게 새겨져 있었고, 안에서는 옅은 악취가 났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그 문 틈을 엿보니 주교께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아까의 사제가 흰 장갑을 낀 채 처음 보는 장치를 조립하고 있었다.

"주교님, 세례 준비를 마쳤습니다."

방 안의 다른 문이 열리고, 견습 사제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말했다.

'세례?'

"이 쪽도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작하지요."

주교께서 씻은 손에 흰 고무장갑을 끼고서 말했다. 사제와 주교는 장치를 들고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한 나는 할 수 있는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 곳에는 크기와 날의 형태가 조금씩 다른 칼들과 여러 금속기구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나는 그 기구들의 용도를 알아챘다. 수술, 규격화. 세례!

"…그 육신이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이 아이에게 메카네의 은총을 미리 내리지 않았음을 용서하시옵고.."

주교께서 읊으시는 기도문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가슴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세례라는 것은 보통 성장이 대부분 끝난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첫 규격화를 받는 것을 의미했다.

육신을 뜯어내고 기계로 대체하는 일이기에 다 자란 성인들만이 받을 수 있는 메카네의 은총이었다. 지금 코끝에서 맴도는 피비린내가 의미하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충실한 사람이길래 주교께서 미사를 보시던 도중에 세례를 받게 되는 걸까. 온몸의 피가 빠르게 도는 것이 느껴지고 가슴이 벅차올라 숨이 고르게 쉬어지지 않았다.

세례를 받음으로서 교인은 새로운 이름을 받고 그 분의 은총 아래 다시 태어났다. 메카네께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자, 그 분께 한 걸음 더 다가갈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몸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주교께서 전해들었을 때,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리벳rivet이 될 것이오, 메카네의 충실한 종이 될 것이니. 부디 이 아이를 보살피시옵고.."

주교께서 기도문을 급박하게 읊으셨다. 아무리 경사스러워도 저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나. 나는 끓어오르는 희열과 흥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금 문틈으로 그 규격화의 현장을 엿보았다.

그 곳에는 손을 한 데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서둘러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주교님과,
여러 정체모를 형태의 금속 기구들을 들고 뭐라 외치고 있는 사제분들과,
이런 곳에서도 어리버리함을 감추지 못하고 무언가를 급히 나르고 있는 견습사제들과,
침상에 놓여있는, 작업실에서 몇 번 눈을 마주쳤던 또래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이고 스스로의 신앙심에 대해 열변을 토해도 받지 못한 세례를 내 또래가 받고 있었다!
환희와 질투가 터져나오려던 찰나에, 내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대체 어떻게. 왜. 어째서.

검게 타있었다.
팔의 살점이 녹아 옷의 섬유와 뒤섞여 있었고
얼굴에는 생기 없는 안구가 데르르 돌아가 있었으며
배에서는 붉은 색 액체가 천에 잔뜩 배어나오고
피에 절여진 선홍색의 무언가들이 흘러나와있었다.

아. 아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끔찍한 구토감이 몰려왔다.
세례를, 받고 있는, 이유가, 설마…

나의 눈앞에서 '그것'은 세례를 받고 있었다.


금속제 침대에 누운 채,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끌어당겼다. 벌써 며칠이 지난 일임에도 그 광경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잊혀지지 않았다. 아직도 그 날의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공포에 질려 그 회색 복도를 무작정 달려 빠져나왔다. 온몸의 피가 식어서 숨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도망치면서 몇 번 넘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비명을 지른 것도 같다. 침대에 누워있는 지금도, 공포에 사로잡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치명적인 비규격성이 발견된 초형 고열발산 표적군 추적기와 연동된 제3형 살덩이용 설치형 화염방사기에…'

그 아이는 끝내 세례를 끝마치지 못했다.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으나, 그런 아이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아무리 이불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려도 몸을 짓누르는 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메카네께서 이 아이를 보살필 것입니다.'

싸늘한 주검은 대성당 뒤뜰에 묘비도 없이 묻혔다. 대성당 뒷편에는 몇 명의 유골들이 뒤섞여 있을까를 생각해보다가 소름이 끼쳐 그만두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떠는 것 밖에 없었다. 뒤척이다가 옷 속의 무언가가 살을 꼬집는다.

주머니를 뒤적여보니 작은 톱니바퀴가 나왔다. 이제는 그리 자세히 보지 않아도 흠이 보일 정도로 금이 갈라져있었다. 보통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규격화 부품들은 다시 용광로에 녹여 순도 높은 철로 다시 새로운 용도를 얻지만, 모조품을 만들기 위해 잡철로 주조된 톱니바퀴 따위가 그럴 영광을 누릴 새는 없었다.

밖에서는 아이들의 복에 겨운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오늘은 성자를 기리는 추모일이자 안식일로, 몇몇 장치들을 제외하고는 성당의 모든 생산을 멈추도록 했기에 아이들은 모처럼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를 질러대며 놀기에는, 며칠간 계속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답답했다. 며칠 전 보았던 그 소년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떨고 있는 것일까. 메카네께서 나를 보고 계실텐데..'

마음이 어지러워 그런 것일까, 신앙심이 부족해진 건가, 단순히 며칠 후면 괜찮아질 감정의 기복인가, 만약 전부 아니라면, 이 작은 손에 들린 톱니바퀴처럼 날이 상해버린 걸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었다.

"헉.. 허윽…"

입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에서 열이 났고, 왜인지 으슬으슬 추웠다. 눈을 떠보아도 그저 흐릿하고 어지러울 뿐,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악물어가며 참았다. 온 몸의 괴로운 감각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럴 때에 해야 하는 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부서져내리신, 우리의 유일한 아버지 메카네시어. 당신의 이름 없는 종이 다시금 죄를 고합니다."

나의 부모는 둘 다 정교의 가르침을 받던 도중에 눈이 맞아 서로 불경한 사랑을 속삭였다고 했다. 둘은 결국 금기를 깨고 살을 섞는 실수를 저질렀고 여자의 배 속에서 내가 자라기 시작했다. 여자 쪽이 배가 불러오는 것을 다른 신도들과 주교께서 눈치 채고 구금해 그 죄를 물으니, 스스로의 죄를 알아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정작 남자 쪽은 야밤에 몰래 도망쳤지만. 그 소식을 여자에게 전하고 도망친 자가 네 배 속 아이의 아비냐 물었더니, 그대로 미쳐버려서는 나를 낳은 직후 죽기 전까지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게 무책임한 남자와 제정신이 아닌 여자 사이의 죄악 속에, 나는 태어났다.

불경한 피를 타고 태어난 나는, 배가 고프다며 우는 법 대신 어떤 톱니바퀴가 어디에 쓰이는 지를 먼저 배웠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더 많이 일하고 더 오래 기도를 올렸다. 시간이 생긴다면 정교의 교리를 외우고 먼발치에서 사제들이 성유물을 다루는 것을 눈에 새겼다. 필사적으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메카네의 진리를 향해 달렸다.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따위 애초부터 없었다.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믿었으니까, 살면서 누구나 겪는 결핍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은 결국 빼앗기니까. 당연한 일에 울고 웃는 짓거리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었다. 그래, 모두 빼앗기고 짓밟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가 원한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온기.

"..함을 실현하지 못했음을 고하며, 후일 철의 축복으로 죄악을 씻음을 당신의 이름으로 약조드립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 켠이 욱신거린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선반에 앉아 톱니바퀴를 만져대는 모두가, 마음 속 어딘가에 깊은 흉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이들 모두는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아서, 지금보다는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삶에서 잃어버린 조각들을, 전부는 아닐지언정 조금이나마 되찾기 위해 이 곳에 있다. 가족이 아닌 자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신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나와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사실 나와 같음을 알고 있었다.

당신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랐으며, 당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음 한 켠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원초적인 물음들을 이를 악물어가며 무시하고 톱니바퀴들을 골라잡았다. 부모, 친구 따위와 나누는 쓸모없는 감정보다야, 밤을 새가며 누군가의 모조품을 만들어내는 성취감이 훨씬 중요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다독였다. 이름이 없는 것은 잠시일 뿐, 곧 당신의 축복 아래 평생을 신자로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를 지켜보시는, 당신의 시선을, 영혼 깊이 새겨, 기억하겠습니다."

목이 막혀오고 뱃 속 깊이서부터 구토감이 몰려온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어.

짐짓 겉으로는 괜찮다 못해 쾌활한 척을 하면서, 속은 누구보다 빠르게 녹슬어갔다. 마음 속 작게 남아있던 상처는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커지며 나를 좀먹어갔다. 그럼에도 감추고 덮어가면서 당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상처가 욱신거리다 못해 진물이 배어나오며 곪아갈 때도, 춥거나 더우며 낮이거나 밤이거나 굶주리거나 배부르거나 괴로울 때나 잠깐이나마 행복할 때나 언제나 당신에게 기도했다.

"부디, 죄를 사하시고.. 이, 이름없는 신자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이름으로 구원하소서.

목이 메어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나왔다. 수 천, 수 만, 어쩌면 수 억번을, 나는 기도했다. 나의 삶의 의미를 찾아달라고. 나의 얼굴을 봐달라고. 나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나타나지 않았잖아.

미움 받고 짓밟혀도 괜찮아. 내 마음이 어떻게 되어버려도 좋으니 나를 당신의 뜻대로 써줘.
제발, 메카네시여. 그 무엇이든 하겠나이다.

그대의 충실한 종이 되겠으며 성자의 가치를 알아보겠나이다.
어린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살덩이들을 베고 나아가는 자가 되겠나이다.
나의 모든 것들과, 나의 육체와 영혼까지도 당신의 것입니다.
제발, 제발,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단, 단 한 번만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의 얼굴을 바라보아주세요. 제발..
내가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서 살아온 삶을 부정하지 말아주세요.
당신께 올린 기도들이, 당신을 위한 행동들이, 나의 삶이 정녕 아무것도 아니었습니까?
메카네시여, 나의 유일한 신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바라보지 않으십니까…

나는 기도를 끝마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참아온 눈물을 터뜨렸다.



미사실의 문이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바글바글하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온 몸에 열이 가득하고 ,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금속으로만 이루어진 교단을 지나, 눈앞에 보이는 철문을 있는 힘껏 밀었다.

철문이 열리고, 며칠 전 걸었던 춥고 어두운 복도가 나왔다. 복도에 발을 들이자 한기가 들이쳐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암담해졌다. 이를 악물어가며 발을 바닥에서 떼어 앞으로 걸어갔다.

이 곳에 있다가는 싸늘하게 죽어버릴 것이라고 온 몸의 감각이 소리쳤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어디로 가야하는 지, 가서 무엇을 할 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복도가 있는대로 걸어갔다.

익숙한 모퉁이를 돌자, 회색 문들이 양 옆으로 가득했다. 슬슬 몸이 한계에 다다라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긴 복도를 걷다 보니,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발견했다. 문에 무어라고 붉게 칠해져 있었지만, 눈 앞이 흐리고 어지러워서 읽히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방 안에 들어섰다.

그 곳에는 아주 커다란 톱니바퀴들로 이루어진 기계가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천장에 달린 작은 유리창문에서 한줄기 월광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 빛줄기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달빛이 나를 감싸고, 바닥을 내려다보니 땅딸막한 내 그림자가 생겨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기계 내부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커다란 톱니바퀴 여럿이 보였다.

"하하.."

한숨이 섞인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게 빛을 보내오는 창문을 올려보았다. 눈부신 빛줄기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계에 다다른 몸뚱이를 감싸고 있는 달빛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을 뻗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닿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상관 없었다. 그는 내게 유일한 진리이자, 빛이다.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는 이 기약없는 삶을 계속해서 살다보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거라는 믿음만 있다면, 나는, 나는…

짧은 기도를 마친 나는, 후들거리는 오른팔을 들어올려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의 사이에 끼워넣었다.

아주 잠깐동안만, 성당에 비명이 울려퍼졌다.





"허억.. 허억."

비탈진 산을 두 남자가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어보이는 곳이었지만, 둘은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어떻게든 걸어오르고 있었다. 앞서는 쪽은 훤칠한 외모의 청년이었는데, 긴 소매옷 사이로 드문드문 비치는 무엇인가가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뒤처지는 남자 역시 비슷한 나이로 보였는데 뒤에 사람 키만한 짐들을 지고 있었다.

"잠깐만 쉬었다 가지요."

앞서 가던 청년이 뒤돌아보더니 말했다. 그 목소리는 엷은 기계음이 섞여있었으나 충분히 미성이라 할만큼 감미로웠다.

뒤따라 오던 남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짐을 내팽겨치더니 아무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청년은 그 모습을 보고 재미지다는 듯이 배시시 웃더니 흙길에 그대로 앉았다.

"에이씨, 그냥 며칠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이런 산길로 쳐돌아가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레이드Lathe 형제?"

바위에 앉은 남자가 앳된 목소리로 거칠게 말했다. 반말이 아닌 존댓말임은 출발한 직후부터 계속해서 레이드가 그의 얼굴에 철의 축복이랍시고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리라.

"메카네의 진리를 설법하러 가는데, 돌아가는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레이드가 얼굴에 웃음기를 잃지 않은 채 말했다.

바위에 앉은 남자가 짜증을 담아 항의했다. 아니, 항의하려 했다.

"출발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이런 산길로 들어서면, 나중에는 어떻게 하시려-"

쾅.

레이드의 옆에 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굉음을 내면서 부숴져 내렸다. 그 이상 말하면 돌멩이 조각들로 부숴지는 바위가 스스로의 신세가 되리라 직감한 남자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잠깐 동안 적막이 흘렀다.

"..참, 그러고보니 이름을 여쭙지 않았네요."

먼저 입을 연 쪽은 레이드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형제?"

"참 일찍도 물어보십니다."

남자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 직후 레이드의 반응이 어떤지 힐끗 살피더니, 머리를 박박 긁고는 다시 말했다.

"로코모Locomo, 티모시 로코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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