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과 김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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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번, 도망쳐. 넌 튼튼하니까 내 폭발에서 살 수 있을 거야."

"무슨 소리야. 같이 탈출하면 살 수 있어. 남한에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따로 있다고 했잖아."

"이상교화국은 우리를 한 명이라도 잃으면 안돼, 알면서."

"아니야! 아니라고!"

"잘가. 꼭 튼튼하게 내 몫까지 잘 살아."


나는 내 이름을 몰랐다.

타인이 나를 부르는 것이 이름이라면 109번 실험체. 그것이 내 이름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내가 김씨였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이상한 약을 먹은 뒤 그런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기억이 안 났다.

조교님들은 기억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중요한 건 지금이라고 했다. 지금 나는 이상교화국 실험실에 있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흐릿해지더라도 결코 지워지지는 않는다.

뛰어다니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팔이 부러지고 뼈가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의사의 진찰을 받지 않았다면, 부모님과 평범한 삶을 보냈을 것이었다.

"자네는 특별한 선택을 받은 인재다. 공화국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지.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된다. 네 육체는 공화국의 것이니."

그렇게 말하며 의사는 사탕을 건넸다. 그 사탕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

"109번 기상."

자다가도 109번이라는 말이 들리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반사적인 작용이었다.

다행이 그날은 구타가 없었다. 어제만 해도 89번, 107번, 112번이 추가로 죽었다. 약물과 훈련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죽어나갔다. 수가 줄어들을 수록, 이들의 폭력 행위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그것이 이곳에서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폭력에 익숙해지자, 그저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오늘부터 뼈를 직접 강화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뼈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러진 뼈를 붙이게 할 수 있고, 탈골되면 순식간에 원래대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뼈를 움직였다가는 주변의 인대와 근육이 순식간에 파열되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6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신체회복력만을 집중적으로 강화시켰다.

수많은 약물을 주사맞았고, 하루에 수백번씩 매를 맞았다.

골절되도 순식간에 낫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다 강한 매질을 하게 만드는 명분이 되어 주었다.

어쨌든 그것도 이날로써 끝이였다.

"뼈의 50%는 무기질이다. 30%는 유기질이고 20%는 수분인데, 네 몸의 유기질 성분은 회복력을 많이 늘린 데다가 초능력의 원천이라 건들 수 없고, 무기질과 수분이 있는 부분을 금속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멀뚱이 쳐다보자, 하얀 옷을 입은 아저씨는 나를 침대에 눕혔다.

"아주 많이 아플 거다."

아무도 해준 적 없는 말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아팠는가. 그런데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아프단 말인가.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반응하기도 전에 수술은 시작되었다.

"으아아아아!"

빌어먹을 회복 능력 때문에 난 수도 없이 기절했으면서도 다시 일어났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 몸의 뼈를 발라내고 거기에다가 강제로 금속을 쑤셔박는 일이었다.

"아니, 신경까지 교체하면 안된다. 그게 능력의 원천일지도 몰라. 그래, 무기질 부분만 대체하는 거다."

그날의 고통 속에서도 하얀 옷의 남자가 하는 말은 똑똑히 기억이 났다. 그만큼 그날의 충격은 내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런 날 구원해 준건 나보다 훨씬 작은 소녀였다.

실험체 1번. 나보다 먼저 이곳에 있었던 녀석이었다. 원래 남한 사람이었는데, 납북되었다고 한다.

녀석은 내게 남한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녀석은 불안정한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폭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상한 약도 거의 안먹고 맞지도 않았다.

다만 그 폭발을 제어할 수 있는 훈련만을 했다. 그리고 그 훈련이 끝나면 언제나 사지 중 하나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었다.

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남한 이야기를 더욱 길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번이 말했다.

"우리, 탈출하자."

"탈출? 무슨 수로?"

"우리 연구소 안에 땅굴이 있다고 해. 거기를 통해서 남한으로 갈 수가 있데."

"그걸 믿어? 게다가 그런 건 함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

"어차피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내가 들었는데, 여기는 이상교화국 중에서도 제일 관리가 허술한 곳이래. 약한 초능력자들만 모아놓은 곳이라서."

나는 엉겁결에 1번의 말을 따랐다. 그게 옳은 일이었을까.


땅굴에서의 폭발 이후, 나는 정신을 잃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내가 들은 소리는 나를 절망케 했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 여긴 연구소였다. 모르는 구조였지만 내가 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가 벌컥 들어오자 나는 숨어서 눈을 꼭 감았다.

"아니 그러니까요, 우리 피트니스랑도 어느정도 기술 공유를 해 줄 수 있는거 아니에요?"

"그걸 저한테 그러시면 어떡합니다. 마스터 사장님 앞에서는 엄청 멋있게 큰소리 치셔놓고 없을 때 와서 이러시깁니까?"

실눈을 뜨자 보이는 건 인간 같지 않은 덩치를 가진 남자의 등이었다.

"그러면 최소한 연구개발비라도 나눠 먹읍시다."

"아이고,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따지시냐고요."

"그야 당연히…응?"

"왜 그러십니까?"

"이 방에 우리들밖에 없어야 하지 않아요? 숨소리가 들려서."

그 말에 나는 급하게 숨을 참았다.

"에이, 그럴 리가요. 여기는 회의때 말고는 아무도 못 들어오는 곳인데…"

"뭐, 보면 알겠죠."

나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땅굴을 찾았다. 하지만 땅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얼레? 이런 꼬마가 왜 있지?"

나는 온 몸이 붕 들리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다. 저항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본 모든 사람들보다도 강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서, 설마…"

옆에 있던 남자는 안색이 파래져서는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예, 예. 폭발로 좌표가 꼬였다고요?"

"십장생 프로젝트와도 관련 없는 일입니다. 다시 송환하는게 좋을…"

남자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야, 돌아가고 싶어?"

"……"

"저기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내가 여기 돌아가는 꼴을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좋은 것 아닌거 같은데."

"이, 이건 월권입니다!"

"닥쳐. 북한과의 접촉은 십장생 프로젝트에 한한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지. 이 아이는 아무리 봐도 십장생이랑은 관련 없어 보이고…"

남자는 씩 웃었다.

"이거 모른 척 해 줄 테니까, 이 애 데려갈게."

그렇게 말한 남자는 나와 눈을 맞췄자.

"여기 나쁜 사람들 말고 형이랑 같이 가자. 나중에 시간 되면 거기서 있었던 일들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지? 그거 잘 말해주면 저 아저씨들이 형한테 좋은 걸 많이 줄 수도 있거든."

"자, 잠깐!"

그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고 싶어요."

"응?"

남자는 잠시 당황했는지 나를 떨어틀일 뻔 했다.

"같이 도망치기로 한 애가 살아있을지도 몰라요. 진짜 좋은 애였는데 절 위해서 희생했어요."

"여자애냐?"

그걸 왜 묻는지 몰랐지만 나는 대답했다.

"네."

그 말에 남자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야지."

남자가 떠나려 하자, 양복입은 남자가 오히려 당황했다.

"지금 뭘 하시려는 겁니까?"

"이제 와서 막으려고? 애 말대로 돌아가서 여자애 한명 찾겠다는데 뭐. 좌표나 다시 설정해 줘. 아, 그것도 마스터 아니면 못하는 거야?"

"…따라오시죠."

따라간 곳은 거대한 기계장치가 가득찬 곳이었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저기 붙어있는 그림…저희들이 맞았던 주사기에도 똑같이 있었어요. 역시 여기는 아직 북한인 거죠?"

그 말에 남자는 크게 웃었다.

"이야, 마스터 이 개…나쁜 녀석. 더더욱 갈 이유가 생겼네."

"좌표 설정 다 되었습니다."

"벌써? 역시 생활건강이야!"

장난스럽게 엄지 척을 한 남자는 기계장치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또한번 그 압력에 정신을 잃었다.


백태양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삼대천 생활건강이 북한과의 긴밀한 접촉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아이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화가 많이 났다. 이 꼬마애가 깨어 있지만 않았다면 당장에 깽판을 쳤을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드디어 생활건강의 약점을 잡아서 신나기도 했다.

"흐흥. 증거를 잡아서 뭘로 바꿔 먹을까요~차원이동 장치랑~최첨단기술이랑~"

그렇게 흥얼거리며 백태양은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정말 큰 폭발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숨소리 하나 안 들리네."

백태양은 잠시 생각했다. 땅굴이라고 굳이 표현한 걸 보니 위치는 지하임이 분명했다.

눈을 감고 바닥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오직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서.

백태양은 심장박동 소리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보통 땅에서는 듣기 힘든 이질적인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보통 동굴에서 듣는 소리었다. 땅 밑에 크게 뻥 뚫려있는 공간이 있을 때나 나는 소리.

이 밑에 거대한 시설이 있음에 분명했다.

백태양은 아이를 내려놓고 그 즉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땅을 파는데도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딴딴하게도 막아놨네."

백태양은 오랜만에 너클을 끼고서는 철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곧이어 철문이 박살이 났다.

철문 안에는 실험실이 있었다. 명백한 증거였다. 백태양은 휴대폰으로 하나 하나 촬영하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반격할 증거를 하나 잡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주 미세한 숨소리를 들었다.

"찾았다."

정말 조그마한 아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빠르게 신체를 수복하고 있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백태양이라는 남자의 넓은 등에 업혀 있었다. 내 옆에는 1번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일어났네. 꼬맹아, 몇살이냐?"

"열 다섯."

"뭐야, 생각보다도 나이가 많네. 그러면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이름이 뭐야?"

나는 109번이라고 대답하려다 말았다. 그건 내 이름이 아니다.

그때 생각난 건 1번이 해준 말이었다.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

"김튼튼입니다."

"뭐야 그게…짱 멋있잖아!"

그렇게 나는 김튼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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