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디저트

와 하느님, 이 케이크 진짜 말도 못하게 맛있다. 얼마나 좋은 케이크인지, 정말 어떻게 설명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해봐야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나는 그저 정글 속에 내던져진 불쌍한 꼬마였다. 우리 동네는 렐리도르프(Lelydorp)에서 20분 거리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랑 누나 둘, 남동생 하나랑 살았다. 집은 좁은 편이었다.

무슨 눈물 짜는 감동실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불쌍한 나를 봐, 슬럼가에서 자라났지. 그래도 이 수상쩍은 회사에서 갇혀서 일만 해 마땅한 사람은 아냐, 같은. 동정은 별로 관심없다. 전후사정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지금 내가 먹는 이 케이크는 이름이 "브루클린 블랙아웃 케이크"라고 그런다. 초콜릿 푸딩이 푸짐하다. 케이크 자체도 정말 부드러워서 씹을 때마다 입속에서 그대로 녹아버리는 느낌이다. 케이크가 놀라우리만치 달콤하면서도, 또 너무 달아서 뱃속이 뒤틀리는 느낌도 없다. 정말 유일무이한 맛이다. 퇴폐적이다. 초콜릿 맛 그 자체다. 촉촉하다. 그저 완벽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내가 먹어본 케이크 중에 최고다.

나는 매일 케이크를 먹는다. 어제만 해도 네 개를 먹었다. 아침에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점심은 월병, 저녁은 블루베리 소스 든 엔젤 푸드 케이크, 공동숙소 돌아가기 직전에는 레드벨벳 케이크. 지난 14년 동안 그렇게 매끼를 온갖 케이크로 먹었다. 말도 못하게 맛있는 케이크도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닌 케이크도 있었다.

5년 전쯤인가 스미스 아일랜드 케이크라는 걸 먹었다. 여기서 일하는 연구원 중에 한 명, 이걸 보면서 굉장히 신이 났다. 이런 케이크를 처음 만든 곳 출신이랜다. 그녀는 한 조각을 잘라놓은 다음에 나머지를 나한테 건네줬다. 황당하리만치 단순한 케이크다. 노란색 가는 케이크 띠들이 층층이 쌓이고 그 사이로 퍼지가 들었다. 퍼지 아이싱이 윗면을 푸욱 덮고 스프링클이 솔솔 올라 있다. 아이싱은 무르게 되어서 흘러내리고, 결국 케이크 전체가 그 환상의 맛에 푹 빠져 버린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점점 더 맛있고.

그 케이크가 쭉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었다. 몇 년 동안 어떤 케이크도 그 케이크하고 나란히 서지 못했다. 그게 오늘 아침에 바뀌었다.


아무래도 35년 전에, 우리나라 국경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정부에서는 반체제 인사부터 숙청했다. 무장 저항군이 이에 보복하는 차원에서 전초부대를 공격하고는 했다.

우리 마을이 그런 군사들을 숨겨준다는 소문이 퍼지게 됐다. 사실이 아니었다. 상관은 없었지만.

어느날 나는 엄마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때 난 어리고 순진했다. 아직 청소년이었다. 빨리 달려가서 내가 해결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뭔지는 몰라도 내가 해결해주면 되지. 내가 우리 집 최고의 남자니까. 아무것도 날 막지 못해.

소리가 난 방으로 들어갔을 때 보인 것은, 엄마의 얼굴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는 군인이었다. 엄마의 이빨이 나가떨어졌다. 멍든 눈이 부어서 뜨이지도 못했다. 엄마는 피범벅이 된 가운데 비명을 지르면서 울었다.

군인이 고개를 들더니 날 바라봤다. 아주 짧은 순간 그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목줄 풀린 괴수 같은 깊은 분노가 그 안에 있었다. 정말 아주 잠깐밖에 안 됐지만, 그 얼굴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나겠지.

나는 뒷문으로 도망쳤다. 뒤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총성이 저 멀리 메아리가 되고 타오르는 연기가 해넘이 앞의 조그만 까만 구름이 될 때까지 그저 뛰었다. 엄마는 다시 보지 못했다. 누나들도 동생도 다시 찾아내지 못했다. 아리송하고 혼란스럽고 정신 어지러웠다. 그러다 길이 나왔다.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 가다 보면 도시가 나올 테니까. 도착해 보니 나 같은 사람들이 벌써 수천 명이 있었다. 집이 불탄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외롭고 절망하는 사람. 모두 피난처를 찾아서 왔다.

또 다른 군인들이 거기서 사람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엄마의 피범벅 얼굴을 음험하게 바라보던 그 군인과 옷차림이 똑같았다. 이 군인들은 나한테, 내가 어디서 왔는지, 동네 이름이 뭔지, 얼마나 거기서 살았는지 물었다.

대답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몇 분 안 지나서 나는 수갑을 찼다.

재판은 어이가 없었다. 끝나는 줄 미처 알기도 전에 다 끝나버렸다. 반군에 협조한 죄로 무기징역.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간청하고 애원하고 울어봤다. 운명이 바뀌지는 않았다.


감옥에서 첫 2년은 끔찍했다. 다음 10여 년인가는 일상이 됐다. 그런 상황이 아주 확실하게 바뀌었다. 어느 날 나한테, 과학자들이랑 같이 일할 생각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괜찮은 노동조건, 따뜻한 샤워, 좋은 음식을 약속받았다. 수락했다. 제일 크게는 음식 때문에.

처음 받은 식사는 몇 초만에 끝마쳤다. 너무 오래 지내다 보니 따뜻한 식사란 걸 잊어버렸던가 보다. 다 마칠 때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다. 식판에 남은 매시드 포테이토를 숟가락으로 긁어내던, 그 때였다.

실험복 입은 남자가 나를 가리켰다. 얼마 후 왠지 나는 다른 방으로 호송되고 있었다. 혹시 뭔가 문제라도 있는지 경비원한테 물어봤다. 내가 운이 좋다고 그랬다. 어떤 방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다 세지도 못할 만큼 케이크가 쌓여 있었다. 남자들 20여 명이 거기 앉아 나이프며 포크를 들고 있었다. 몇 명은 케이크를 자른 다음 한 조각씩 먹었다. 몇 명은 그냥 숟가락으로 퍼낸 다음 입안으로 쑤셔넣었다. 몇 명은 더구나 맨손으로 케이크를 막 떠서 열심히도 손가락을 빨아먹었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그 느낌.

오늘 아침 케이크는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 좋기는 했다. 나같은 초콜릿 빠돌이는 별 불평 없을 만한. 하지만 오늘 아침이 그렇게 맛있었던 건 케이크 때문만은 아니었다.


3주 전에 새로 수감자들이 들어왔다. 얼핏 경비원이 수리남 이야기를 꺼내는 게 들렸다. 신입들이 한창 숙소에 자리잡는 도중에… 그자를 봤다.

그 개자식. 우리 가족을 앗아간 괴물새끼. 어느덧 늙어 있었다. 머리가 새하얬다. 그나마도 빠지고 있었다. 몸은 주름지고 졸아들어갔다. 하지만 그 얼굴을 잊지는 못했다. 나를 알아보진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벌써 잊어버렸겠지. 오래 전에 도망쳐 버린 꼬마야 한둘이 아닐 테니까. 딱히 기억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화를 속으로 삭히며 앉아 있었다. 그자가 가까이 있었다. 이 끔찍한 짐승새끼… 20피트도 안 떨어진 데서 잔다. 며칠 밤을 그냥 걸어가서 베개로 질식시키면 얼마나 간단할지 생각했다. 어떤 밤에는 진짜로 일어서서, 지금 다가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진 않았다.

간밤 늦은 시각에 알람이 울렸다. 흔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경비원이 사라진 모습을 보니 두려움과 공황이 밀려왔다. 훈련받은 대로 비상 피난처로 부리나케 몸을 옮겼다. 저 더러운 늙은이는 이때를 탈출 기회로 삼았다. 건물을 빠져나갈 길을 알았으니까. 몇 분이면 세상을 자유롭게 다닐 만했겠지. 그자가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다섯 시간쯤 우리는 발이 묶여 있었다. 경비원 하나가 절뚝이며 다가오더니 문을 열어줬다. 몇 명이 청소를 맡아야 한다고 그런다. 20분도 안 돼서 나는 바닥을 닦고 있었다.

피웅덩이를 닦아내던 도중에, 그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다. 몸통은 갈가리 찢기고, 팔 하나는 없어지고… 부대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뭐 때문에 죽었든, 천천히 죽었길.

그리고 나는 여기 있다. 수면은 네 시간, 신발에는 피 냄새,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떠나지 않는 채로.

살면서 본 최고의 케이크를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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