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제목: 3. 영웅을 모으다
저자: Navla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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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name: N/A
Summary: 툴레회 로고
Author: NsMn
License: CC BY-SA 3.0
Source Link: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ule-Gesellschaft.svg
"융 박사님, 태양십자와 관련한 중요한 상징을 찾아내었습니다."
"오, 벌써 말인가? 무엇인가?"
"정치 집단입니다. 우리가 찾는 것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요. 이걸 보십쇼."
"툴레회로군. 독일의 신비주의 집단이지."
"오, 아시는군요. 그럼 이것도 잘 아실 겁니다. 이들의 상징을 흡수하여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정당이 바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그러니까…"
"나치로군."
"… 이들이 두 번째 세계대전을 일으킬까요?"
"그래, 그럴듯한 추론이야. 집단무의식이 커다란 사회적 집단과 연결된다면, 그것은 대중적 광기로 이어지곤 하지. 하지만… 역시 확답을 하기엔 이른 것 같네. 아직은 독일의 의석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지 않았나."
"그렇지만 아주 무시할 만큼은 아닙니다. 또, 몇 달 뒤에 총선이 있을 예정이니까요. 그때를 잘 봐야겠지요."
"… 그래. 하지만, 글쎄, 내 직관은 단지 이것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한 무언가일 지도."
"그저 시작이라니요?"
"나도 콕 집어 말하긴 힘드네. 하지만 뭔가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때가 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아무래도. 익시온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니 말이야."
익시온 프로젝트: 면담 기록 1
면담자: 칼 구스타프 융
면담 대상: 변칙개체 TP-955-AX
- 본명: 마야 톰슨 미첼
- 32세 여성
- 남아프리카 연방 출신
<녹음 시작>
칼 융: 반갑습니다. 변칙개체 TP-955-AX 맞나요?
마야 미첼: (등을 돌린 채) 네.
칼 융: (헛기침)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마야 미첼: 마야, 마야 T. 미첼이에요.
칼 융: 혹시 제 얼굴을 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야 미첼: 왜죠?
칼 융: 눈은 서로의 감정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죠. 그리고 그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요.
마야 미첼: 안 그래도 전 알 수 있습니다.
칼 융: 대신 저는 당신을 알 수 없죠.
마야 미첼: 왜 절 알아야 하는 건가요? 본래 상담가는 환자의 등 뒤에서 진료하지 않나요?
칼 융: 전 그건 잘못된 방식이라고 확신합니다.
마야 미첼: 지금까지 저를 진료한 모든 상담가는 그렇게 해왔어요.
칼 융: 흔히들 환자로부터의 전이를 두려워하며 그렇게 하곤 하죠. 하지만 전 항상 환자와 마주 보며 진료를합니다. 환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환자를 이해해야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죠.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냥 이 상태로 면담을 진행해도 괜찮습니다.
마야 미첼: (침묵) 좋아요. 당신의 방법을 따르죠. 대신 조건이 있어요.
칼 융: 뭔가요?
마야 미첼: 당신이 저를 보는 것 이상으로 제가 당신을 들여다보아도 되나요?
칼 융: 물론입니다. 아니, 오히려 환영입니다.
미첼이 천천히 몸을 튼다. 그녀의 얼굴에 난 커다란 흉터가 드러난다.
마야 미첼: (조금 당황한다) 충격받지 않으셨군요.
칼 융: 환자를 대할 땐 당연히 상담가는 서로의 신뢰를 쌓아야지요.
마야 미첼: 아니, 당신은 정말로 당황하지 않으셨어요.
칼 융: 어떤 의미이죠?
마야 미첼: 모든 상담가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모두들 내심 부정적인 감정이 자리 잡죠. 혐오의 감정이요.
칼 융: 흠, 흥미롭군요.
마야 미첼: 당신은 그렇지 않군요.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방금 한 그 말처럼, 그걸 숨기지 않고요.
칼 융: 당신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군요. 맞죠?
마야 미첼: 네 맞아요. 저는 제 능력이 신의 축복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보고서를 보셨다면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 겁니다.
칼 융: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가면 속이 보인다는 것은, 그러니까 몰랐으면 하는 것을 알아버린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죠.
마야 미첼: 그래서 왜 제게 오신 건가요?
칼 융: 1930년 6월 16일 꾸신 꿈에 대해서 여쭈어보고자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잘 기억나지는 않으시겠지만…
마야 미첼: 괜찮아요. 그저께도 꾸었거든요.
칼 융: 네?
마야 미첼: 그 꿈은 계속 반복돼요. 한 달에 한번은 꾸는 거 같아요.
칼 융: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마야 미첼: 네, 그 꿈은 매번 사소한 부분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줄기는 같아요. 제가 어딘가에 들어가고, 그 속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살펴봐요. 그리고 한 사람이 무언가를 먹고 어떤 감정을 나타내요, 그리고 하나둘씩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먹고 똑같은 감정을 가지게 돼요.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그걸 먹이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그 감정은 삽시간에 퍼져 모두를 집어삼켜요. 결국엔 저도 그걸 먹거나 억지로 먹혀서 그 감정이 북받쳐오르고 결국 미쳐버려요. 그리고 모두 다 같이 감정의 도가니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그 가운데에서…
말을 잠시 멈춘다.
칼 융: 붉게 타오르는…
마야 미첼: 네. 너무 밝아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커다란 태양이 떠올라요. 태양의 한가운데에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요.
그녀가 공중에 손으로 원과 그 속의 십자가를 그린다.
칼 융: 그럼, 그 꿈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마야 미첼: 처음 여쭤보신 30년 6월에 꾸었던 그 꿈에선 아마, 어린 시절 학교의 기억이었을 거에요. 학우들이 하나둘씩 비스킷을 먹고는 웃음을 터뜨렸죠. 지난달에는 영화관에 대한 꿈이었어요. 팝콘을 먹은 관객들이 하나둘씩 따라 울었죠. 영화 속의 인물들까지요. 지난주는 무덤 앞 장례식에서 주례를 선 신부가 올리브 열매를 먹고 분노에 차 성경을 휘둘렀고, 곧 거기 모두가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며 싸웠죠. 관 속의 시체까지 일어나 분노의 도가니에 합세했어요.
칼 융: 그 장례식은 누구의 장례식이었죠?
마야 미첼: 제 남편이요. 영화관도 제가 자주 갔던 영화관이었고, 학교도 제가 나온 학교였어요. 모두 제가 과거에 겪었던 일들에 기반한 꿈이에요.
칼 융: (노트에 무언갈 휘갈긴다) 흠… 혹시 이전에 이 꿈의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나요?
마야 미첼: 음, 아뇨.
침묵
마야 미첼: 아, 예전에 산부인과에서 잠시 근무했을 때 비슷한 일을 봤네요.
칼 융: 무슨 일인가요?
마야 미첼: 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아기들도 따라 울고는 해요. 마치 파도처럼 울음이 번지곤 하죠. 처음 봤을 땐 아기들이 저와 비슷한 능력들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전 다른 사람이 불쾌한지, 기분이 좋은지를 알 수는 있지만 화가 났는지, 슬픈지는 알 수 없거든요. 하지만, 아기들은, 마치 한 마음이 된 것처럼 따라서 울곤 했어요.
칼 융: (노트에 열심히 메모한다) 정말 흥미롭군요. 일단, 그 현상은 제가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서는 상호연결되어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다른 이의 슬픔은 곧 자신의 슬픔이 되고, 제 슬픔은 다른 이의 슬픔으로 퍼져나가죠. 이것을 심리학에선 '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사용되는 다른 말로는 '공감'이라고 하죠.
마야 미첼: 그럼 텔레파시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제가 다른 사람의 특정 감정을 읽어내는 것처럼요.
칼 융: 네, 텔레파시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감은 정서에 대한 전이이므로, 그건 서로의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적 텔레파시라고 볼 수 있겠죠.
마야 미첼: 그럼 그 꿈은 무엇인가요?
칼 융: 글쎄요. 개인적 경험을 제외하면 큰 얼개는 대부분 동일합니다. 이것은 미첼 씨가 과거에 겪은 산부인과의 경험이 꿈의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어떤 집단무의식의 메세지일 수도 있죠.
마야 미첼: 음… 당신, 제 꿈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군요.
칼 융: … 네, 그렇습니다.
마야 미첼: 정확히 어떤 감정인가요?
칼 융: … 글쎄요, 아무래도 두려움에 가깝겠죠.
마야 미첼: 무엇이 두려운가요?
칼 융: 그 꿈이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마야 미첼: 그것이 무엇인가요? 죽음? 전쟁?
칼 융: 광기입니다.
마야 미첼: 광기를 두려워하시는군요.
칼 융: 정확히는 광기가 억압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강렬한 정서는 강한 전염성을 가집니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퍼지는 전염병이죠. 그리고 널리 퍼질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우리를 고립시킵니다.
마야 미첼: 고립된 마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묘한 광기가 그 예시가 될 수 있나요?
칼 융: 정확합니다.
마야 미첼: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저도 감이 잡히는군요.
칼 융: 그 꿈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야 미첼: 네, 모두가 미쳐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계시는군요.
<기록 종료>
칼 융 박사의 주석:
- 대상의 변칙성은 상대방의 감정을 감각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있다. 그녀는 불쾌함, 호감, 역겨움과 같은 생리적 반응을 동반하지 않는 외부 요소에 대한 평가 기능을 읽어낼 수 있으나,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의 생리적 활동을 동반하는 기능1은 읽어내지 못한다. 이는 정신의 외적 기능인 '감정'과 내적 기능인 '정서'의 구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즉, 대상은 타인의 정신 외적 기능을 통로로 삼아 정신요소를 읽어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대상의 직관은 유의미하게 큰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에 꽤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빠르게 중요한 부분을 캐치해 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 평범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정말 특출나게 높은 직관을 가진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을 만났을 때의 그 놀라움은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그 물리학자는 초감각자가 아니었지만 훨씬 강렬한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익시온 프로젝트에 기여하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 대상이 꾼 꿈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대상의 꿈과 가장 얼개가 비슷한 신화 속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의 로투스 이야기일 것이다. 하나둘씩 선원들을 좀먹는 감정의 매개체인 로투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곧 인간의 삶을 나타낸다. 그가 맞닥뜨리는 모든 역경은 곧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은유한다. 로투스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달콤한 것을 은유한다. 모든 정서는 달콤한가? 슬픔과 분노조차도? 모든 인간은 홀린 듯 슬픈 이야기를 찾아간다. 모든 인간은 홀린 듯 증오할 것을 찾아낸다. 그렇다. 슬픔과 분노는 달콤하다. 그리고 중독적이다.
"면담은 어떠셨습니까?"
"좋네. 아주 말이야. 텔레파시 반응의 주요 통로를 찾은 것 같아. 아무래도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이 그 통로인 것 같아. 만일 직관을 이용하는 텔레파시 사용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익시온 프로젝트에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걸세."
"박사님이 기뻐하시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상급감시사령부는 뭐라고 하나?"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십니다. 최대한 빨리 완수하는 것을 위해서라면요. 감독관님께서는 전적으로 박사님을 신뢰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 그럼, 박사님의 면담 기록이 완성되면 제게 제출하십쇼. 대상에겐 미리 해당 꿈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라 지시해 놨습니다."
"제출? 그 자료를 내가 분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 하지만 우선적으로 상급감시사령부에 제출을 하여 보고를 해야 합니다. 박사님의 레드북과 마찬가지로요."
"으음, 여긴 정말이지 딱딱한 곳이로군."
"저희가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익시온 프로젝트: 면담 기록 2
면담자: 칼 구스타프 융
면담 대상: SCP-███
- 본명: 에두아르트 마이어 베게너
- 45세 남성
- 독일 출신
<기록 시작>
칼 융: 반갑습니다.
대상은 환자용 침대에 누워있다.
칼 융: SCP-███ 이신가요?
대상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칼 융: 이런, 아무래도…
에두아르트 베게너: (정신 연결을 통한 개념 입력으로) 반갑습니다. 칼 융 박사님 맞으시죠?
칼 융: 아하. 당신은 식물인간이군요. 그리고 의사소통을 구두가 아닌 텔레파시를 통해 하시는 거고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하하, 죄송합니다. 반응이 궁금해서 인사를 안 받아줬습니다.
칼 융: 괜찮습니다. 일단은, 눈을 마주치고 면담하기엔 힘들 것 같군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면담 방식에 대해서는 대충 들었습니다. 지금 제 상태로는… 네. 힘들 것 같군요.
칼 융: 뭐, 그럼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면담 방식대로 할 수밖에 없겠군요. 저도 이 방식은 오랜만이군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그래서 용건이 뭔가요?
칼 융: (잠시 메모를 함) 음, 최근에 꾸는 꿈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꿈이라니요?
칼 융: 가장 최근에 꾼 꿈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꿈이 있으신가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어… (산발적으로 다양한 추상적 관념이 차례로 밀려 들어온다) 아니요. 제가 원래 꿈을 잘 안 꾸는 편입니다. 거의 반년에 한 번씩? 사실 다행이죠. 제가 꿈을 꾸면 이 주변의 격리인원분들에게도 영향이 갈 수도 있어서요. 그러니까, 제 생각이 그 사람들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가는 그런 거요. 그래서 제 격리실은 이렇게 동떨어져 있죠.
칼 융: 생각이라면, 개념적인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의 정신적 요소가 환시 같은 형태로 전달되는 건가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지금과 똑같습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지만, 제가 언어를 통해 의도한 개념의 뜻이 전달되고 있잖아요? 격리요원도 예전에 제가 그… 이상한 태양에 관한 꿈을 꾸었을 때, 그것을 보고, 제가 생각한 그런 논리적인 생각들만이 전달되었다고 해요. 저것은 무엇일까, 왜 일어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뭐 그런 것들이요.
칼 융: 그 태양의 꿈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가능할까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어… 사실 꽤 많은 부분을 잊어버렸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거로는… 하늘이 열리고 거기서 포도주를 마시는 신, 혹은 왕이 나타났다는 것 정도? 그 왕은 오만하지만 똑똑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을 찬미하게 만들었어요. 아마 그 술을 먹고 그런 지식을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분노하고, 손을 휘저어 땅에서 커다란 붉은 태양을 솟아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그 태양 속으로 몸을 던졌어요.
칼 융: 혹시 그 태양에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지는 않았나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네?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요.
칼 융: 기억하실 수 있나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아마도…. 으음… (다양한 추상적인 모양이 산발적으로 밀려들어온다) 십자가였던 거 같습니다.
칼 융: (메모한다) 음. 예상한 대로군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그럼. 면담은 끝났나요?
칼 융: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습니다.
에두아르트 베게너: 네.
칼 융: 저는 지금 한 가지 숫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두아르트 베게너: 네.
칼 융: 어떤 숫자인지 읽으실 수 있나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저는 독심술을 하지는 못합니다.
칼 융: 흐음, 그렇군요. 이 사고의 흐름은 단방향적이군요. 협조 감사합니다.
에두아르트 베게너: 그럼 이제 진짜로 끝난 건가요?
칼 융: 네. 수고하셨습니다.
에두아르트 베게너: 그렇다면 잠시, 그… 죄송한데, 그렇다면 제 이야기도 좀 들어주실 수 있나요?
칼 융: 어떤 이야기 말인가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다름이 아니라, 저는 지금 이 상태로 15년째 살아왔습니다. 제가 지금 다른 모든 감각은 잃어버렸지만 청각만큼은 살아있거든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음악 듣기와 생각하기 밖에 없어요. 15년 동안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칼 융: (고개를 끄덕임)
에두아르트 베게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지금 어떻게 생겼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칼 융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의 몸을 살핀다.
칼 융: 팔다리는 앙상하고, 피부는 창백합니다.
에두아르트 베게너: … 그렇군요.
칼 융: 얼굴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볼은 패여 들어가 있고, 안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두아르트 베게너: 혹시… 혹시 제발, 제 뺨에 점이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하나가 크고, 다른 두 개는 작습니다.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요.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
칼 융: … 네. 그대로 있습니다. 오른쪽 뺨에요.
에두아르트 베게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귀와 뇌만 남고 나머지는 대체되거나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몸을 상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제 신체에 대한 기억도 점점 사라져 갔고요…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저에게 내린 오컴의 저주겠지요. 지금껏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게 배제해 왔으니까요.
문이 열리는 소리
격리 요원: 칼 융 박사님. 대상과 허가되지 않은 질문을 주고받는 것은 경고 사항입니다.
칼 융: 하지만 환자의 컴플렉스를 해소하는 것은 상담사에게 중대사항이지. 그리고 서로 믿음을 쌓는 것은 필수사항이고.
에두아르트 베게너: 감사합니다…
칼 융: 별말씀을요.
대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기록 종료>
칼 융 박사의 주석:
- 대상의 변칙성은 사고 기능을 통해 발현된다. 미첼 양과는 여러 부분에서 반대의 성향을 보이는데, 미첼 양은 감정 기능을 통로로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특성을 가진다. 반면에 대상은 감정이 아닌 사고 기능을 통로로, 그리고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게 아닌 상대에게 자신의 사고를 입력한다. 이것은 기존 초심리학부에서 '텔레파시'라는 용어하에서 모두 뭉뚱그리던 요소에 명확한 통로와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용하면 기존 텔레파시에 대한 더 세부적인 분류법이 가능해질 터이다.
- 그는 지극히 사고 및 감각형인 인간이다. 대상의 직관은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하이다.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기에 쉽게 잊어버린다. 그는 분명 여러 꿈을 꾸었을 테지만, 각성 즉시 대부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에게서 더 명확한 의미 있는 정보를 알아내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래도 과학자로 근무해 온 경험이 비합리적인 직관을 무시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추구하게 만든 것이 그 이유일 터이다. 아무래도 그는 익시온 프로젝트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 대상의 꿈에서 나타난 하늘의 왕은 필히 신들의 왕, 보탄을 뜻할 것이다. 그가 마시는 포도주는 크바지르의 피로 담근 꿀술을 의미할 터이다. 보탄은 그 꿀술을 먹고 지혜와 언변을 얻어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잘은 모르겠다. 어쩌면 태양십자는 보탄이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보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끌고 다니는 것일지도. 어쩌면 보탄이 사람들에게 광기를 선사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광기는 그의 언변과 시를 통해 발현된 것일 테다.
"학부장이 된 걸 축하드립니다. 융 박사님."
"모두 자네 덕분이지. 맥퀸."
"박사님의 텔레파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기지의 초심리학부 사람들도 박사님의 분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기존의 초심리학부가 이런 연구조차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네. 분석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이런 분류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네."
"아무래도 분석심리학을 제대로 이용하는 초심리학부는 저희밖에 없어서 그런 듯합니다. 다른 기지의 초심리학부는 대개…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하려 하거나 일부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하고 있거든요."
"음… 그럼 차라리 학부장이 된 김에 쐐기를 박아버려야겠군."
"무슨 의미인가요?"
"학부의 이름을 개편하는 게 어떤가? 우리는 대체 불가능하고 근원적인 접근을 가지는 사실상 유일한 초심리학부야. 다른 초심리학부와는 차별점이 있어야 해."
"그럼 이름은 뭐로 하실 건가요?"
"조금 재미없지만… 분석심리학부 어떤가?"
"하하, 재미없을지언정 직관적이니 좋군요."
"자네라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이 부서는 이제 온전히 박사님의 것이니까요. 익시온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분석심리학부의 입지는 더더욱 커질 겁니다. 박사님의 입지도 마찬가지고요."
"SCP 재단에서 내 입지는 그닥 관심이 없네. 중요한 건 내 이론의 증명이야."
"그 증명을 위해선 여전히 익시온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고요."
"그렇지. 물론이지."
익시온 프로젝트: 면담 기록 3
면담자: 칼 구스타프 융
면담 대상: 변칙개체 UDQ-0015-A
- 본명: 오마르 울웨
- 12세 남성
- 우간다 출신
<기록 시작>
칼 융: 만나서 반가워. 변칙개체 UDQ-0015-A.
대상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칼 융: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니?
오마르 울웨: 오마르. 오마르 울웨.
칼 융: 고마워. 오마르. 지금 무슨 책을 보고 있니?
오마르는 고개를 돌린 채로 책을 들어 보인다.
복잡한 수식이 빼곡히 쓰여 있다.
칼 융: 어려운 책을 보고 있구나.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내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오마르 울웨: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정리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수학적 증명을 보고 있었어요.
칼 융: 대단하게 들리네. 보고서에 변칙적인 계산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았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구나. 단순한 계산보단 더 큰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군. 나도 네게 관심이 생겨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해줄 수 있니?
오마르 울웨: 싫어요.
칼 융: 왜 그러니?
오마르 울웨: 그냥요.
칼 융: 음… 오마르, 이건 너를 취조하는 게 아니란다. 나는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굳이 네게 답변을 강요하거나 하지 않을 거야.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딱 하나만 지켜줬으면 해. 바로 내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해.
오마르 울웨: (눈을 바라보고) … 어린애 취급하지 마요.
칼 융: 난 어른들에게도 이렇게 한단다. 하지만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오마르 울웨: 그리고 이건 당신이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에요.
칼 융: 나도 양자역학에 대해선 조금 들어보아서 안단다. 이전에 아인슈타인을 만나본 적이 있었어. 같은 스위스의 학자였기에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는 양자역학을 맘에 들어 하지는 않아 하는 것 같더군.
오마르 울웨: 그는 하나도 볼 줄 아는 게 없는 멍청이예요. 이 책을 쓴 코펜하겐의 학자들은 하나는 볼 줄 알지만, 둘은 보지 못하는 멍청이고요.
칼 융: 왜 그렇게 생각하니?
오마르 울웨: 모든 확률은 예측 가능해요. 그리고 무수히 많은 확률이 모여 엮이면 결국 어떤 통계적 결과로 수렴해요.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처럼요. 그들은 양자역학이 신의 주사위 놀이인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그 주사위 놀이의 결과인 우연적 결과의 수렴점에 대해선 모르고 있어요.
칼 융: 필연이로군. 우리 주변엔 수많은 우연이 있고, 그 우연들의 합은 어떤 특정한 필연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너의 말이군. 그렇지?
오마르 울웨: 전 그 수렴점을 계산할 수 있어요. 대부분 거의 99%의 확률로 수렴하지만, 아주 가끔은 80%, 아니면 60%까지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도 있어요.
칼 융: 그 모든 우연도 다른 무언가의 결과일 테고, 그 무언가 역시, 또 다른 무언가의 결과이겠지. 카르마. 원인과 결과가 이렇게 사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어떠한 운명으로 이끈다는 불교의 사상이지. 그 모든 필연을 만드는 정해진 우연들은 또 다른 필연일 테고, 그렇다면 이것들은 모두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
오마르 울웨: 그런 시시콜콜한 옛날 철학엔 관심 없어요.
칼 융: 그래도 재미있단다. 넌 똑똑하니 조금 더 알아본다면 분명 관심을 가질 게야.
오마르 울웨: (지친 기색으로 한숨을 쉰다) 아저씨는 여기 왜 온 거죠? 이런 의미 없는 철학 이야기가 아니라, 그 꿈에 대해서 물어보러 온 거 아닌가요?
칼 융: 그래 맞아. 하지만 네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그때 이야기하면 된단다.
오마르 울웨: 그럼 대답 안 할래요.
칼 융: 그래, 상관 없어.
오마르 울웨: … 왜 상관없는 거죠?
칼 융: 이 면담에서 너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보다도, 너와 신뢰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오마르 울웨: 신뢰 관계를 만들어서 뭐 하나요? 결국 원하는 건 정보 아닌가요? 원하는 정보를 더 잘 얻기 위해서 서로 신뢰 관계를 만드는 거 아닌가요?
칼 융: 역시 똑똑하구나. 그렇지.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우리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식사를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해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고 음미하지.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역시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재미있는 주제에 대해 논하지.
오마르는 반응이 없다.
칼 융: 그렇다면 주제를 바꿔보자, 오마르, 네 꿈은 뭐니? 네가 꾼 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네가 되고 싶은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 말이야.
오마르 울웨: 무엇이 되고 싶냐면… (고민하다 답한다) 전 높은 곳에 가고 싶어요. 제가 아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거예요.
칼 융: 대통령?
오마르 울웨: 그것보다 더 높이요.
칼 융: 그럼 왜 높은 곳에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니?
오마르 울웨: 높은 곳은 모든 게 다 훤히 보이거든요.
칼 융: 더 많은 걸 알고자 하는구나.
오마르 울웨: 네.
칼 융: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넌 뭘 해보고 싶니?
오마르 울웨: … 전 그냥 높은 곳에 올라서 더 많은 걸 보고 싶어요.
칼 융: 그것뿐이니?
오마르 울웨: …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해온 모든 행동은 다 그것을 위한 것이었던지라.
칼 융: 음, 매번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넘어진단다. 때로는 잠시 쉬거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좋아.
오마르 울웨: 그럼 전 뭘 해야 하나요?
칼 융: 뭔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떠니? 그림이나 소설, 아니면 나만의 책을 써본다거나.
오마르 울웨: … 그럼… 논문을 써볼래요. 제가 깨달은 모든 것을 담은 논문이요.
칼 융: 그거 좋구나. 완성되면 나에게 꼭 보여주렴. 내가 잘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칼 융이 껄껄 웃는다.
오마르는 초조한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오마르 울웨: 그럼… 알려드릴게요. 그 꿈.
칼 융: 네가 꾼 꿈 말이니?
오마르 울웨: 네.
칼 융: 그래 어떤 꿈을 꾸었니?
오마르 울웨: 붉은 십자가, 그러니까 원 안에 십자가가 떠오르는 꿈을 꿨어요.
칼 융: 그리고?
오마르 울웨: 그게 끝이에요.
칼 융: 음… 그 꿈속에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니?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니?
오마르 울웨: … 네.
칼 융: 흠… 최근에는 꿈을 꾼 적이 있니?
침묵
오마르 울웨: 곧.
칼 융: 곧이라니?
오마르 울웨: 곧 '탁' 하는 소리가 들릴 거에요.
칼 융: … 뭐?
오마르 울웨: 곧 있으면 어딘가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거에요.
칼 융: 그…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니?
오마르 울웨: 그냥요.
칼 융: 혹시…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지니?
오마르 울웨: 아마도요.
칼 융 박사는 혼란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약 10초의 시간이 지난다.
칼 융: 이런 장난은 그만…
어디선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마르 울웨: 맞죠?
칼 융: 이게, 네가 말한 필연이구나. 그렇지?
오마르 울웨: 네.
칼 융: … 정말로 그 꿈에 대해 기억나는 게 그것뿐이니?
오마르 울웨: … 네.
칼 융: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기록 종료>
칼 융 박사의 주석:
-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가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 현상을 예측한 것인가? 그리고 전혀 직관적이지 않아 보였던 그가 어떻게 직관을 통해 물리 세계의 현상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인가? 단순한 그의 장난인가? 아니면 그의 직관을 일부러 숨기고 있는 것인가? 그는 면담 내내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매우 강력하게 형성된 페르소나로 인해 나와 유대를 형성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선 그의 인격 유형을 판단하기는 극히 힘들다. 사실상 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제대로 된 면담을 위해선 이 페르소나를 잠시 벗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 지금까지 봐온 텔레파시는 사고/감정/감각/직관이라는 통로를 통해 타인의 정신 반응을 읽거나 입력하는 것이었다. 미첼 양은 감정을 읽고, 베게너 씨는 사고를 입력했다. 그러나 오마르는 그 무엇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학적인 계산에 능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사고 유형과 관련한 텔레파시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 그의 꿈 역시 너무 빈약하다. 여기에서 어떤 상징이나 신화적 레퍼런스를 찾아내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맥락을 찾아내는 일반적인 꿈의 구조와도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는 것은 대상이 극도로 직관이 높고 다른 기능은 빈약하여 그 어떤 개념적, 감정적, 감각적 맥락 없이 직관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로 가능한 것인지는 나도 확실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변칙성일지도 모르겠다.
"후우, 면담하랴, 오리엔테이션 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군."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금학부 쪽 오티 하신 겁니까?"
"같이 진행했네. 분석심리학부와 연금학부가 말이야."
"박사님은 이전에 연금술도 많이 연구하신 분이시니, 연금학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군요."
"익시온 프로젝트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난 그곳에서 현자의 돌을 연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네. 하하."
"그럼, 프로젝트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습니까? 확답을 내릴 수 있는 수준까지 정보를 모으는 데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립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정신이란 오묘하고 상징적이어서 여러 가지의 뜻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해. 그렇기에 더더욱 신중해야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보 수집이 멈추었다는 건 아니네. 현재 제12기지에 격리된 수많은 초감각자들의 대부분을 면담했고, 주요 기능에 따라 분류중에 있네. 이들 중 직관이 뛰어난 자들을 모아서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로 갈 인원을 구하고 있지. 그들도 여전히 태양십자의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고."
"다음 단계라는 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명상을 통해 직관과 연결되는 절차가 필요해.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명확히 우리의 무의식과 연결될 수 있어."
"그래서 사람은 얼마나 모으셨나요?"
"아직은… 한 명뿐이네. 울웨 말이야."
"… 알겠습니다. 박사님을 믿습니다. 상급감시사령부에서도 박사님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정말 적격인 강한 직관의 소유자가 하나라도 나타나면 일은 순식간에 풀릴 거라네. 아직 면담을 하지 못한 초감각자들이 남아있다네. 그들 중에 조건에 맞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꼭 그러길 바랍니다."
익시온 프로젝트: 면담 기록 4
면담자: 칼 구스타프 융
면담 대상: SCP-███
- 본명: 로버트 로이 맥그리거.
- 51세 남성.
- 스코틀랜드 국적.
<기록 시작>
칼 융: SCP-███?
로이 맥그리거: (작게 웅얼거린다)
대상은 고개를 돌린 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꿈틀거린다.
칼 융: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로이 맥그리거: 읍… 으읍…
칼 융: (다가가며) 이름이 로이 맥그리거 맞나요? 혹시 얼굴을 봐도 괜찮을까요?
대상은 천천히 칼 융을 바라본다. 팔에 잠긴 자물쇠가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이 드러난다. 주름진 이마가 희미한 조명 아래서 기괴한 음영을 만들어 낸다.
칼 융: 오, 이런 구속복이군요.
보안 요원: 조심하십쇼. 이 자는 간헐적으로 극심한 흥분상태를 보입니다.
칼 융: 재갈을 제거해 주십시오. 면담을 해야 합니다.
보안 요원: … 구속복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재갈만 일시적으로 풀겠습니다.
보안요원이 조심스레 다가가 재갈을 제거하자. 대상은 기침한다.
칼 융: 안녕하세요. 로이 맥그리거 맞나요?
로이 맥그리거: … 네. 맞습니다. 로버트 로이 맥그리거 입니다.
칼 융: 격리 요원이 말하기를, 자주 별다른 이유 없이 흥분하신다고 하는데, 혹시 그 경험에 대해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로이 맥그리거: 그…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런 자극이 없어도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고 땀도 나고… 이러다간 다 죽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칼 융: 자신이 죽을 것 같다는 느낌 말인가요? 갑작스레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건가요?
로이 맥그리거: 그것도 있지만, 거기에 더해 우리 모두가 죽을 거라는 그런 공포가 들어요. 그리고 저는 정신을 잃어요.
칼 융: 우리 모두라면, 그 범위가 어떻게 되죠? 주변 사람들? 이곳 12기지의 사람들? 아니면…
로이 맥그리거: 인류 전체요.
칼 융: 흠… 흥미롭군요. 일단 말씀 주신 증상은 공황장애와 유사합니다. 보통의 공황장애는 자신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방향으로 나타나지만요. 혹시 자신의 이런 상태에 대해서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로이 맥그리거: 네. 어렸을 때부터 공황장애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자주 실신했던지라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많았죠.
칼 융: 실신했을 때 발작 증세도 있나요?
로이 맥그리거: 네. 시골에서 살면서 자주 그러곤 했어요. 거품을 물고 온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주먹이나 둔기를 휘두르기도 해서… 성인이 되던 해에 그냥 시골에서 홀로 살게 되었습니다.
칼 융: 뇌전증 증세도 있으시군요. 그렇다면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로이 맥그리거: 뭐…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죠. 이곳에서 감시받으며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당시엔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렇게 했습니다. 단순히 주변인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한 증세가 나타났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 제가 발작을 일으킬 때… 제 옆의 사람들도 저와 동시에 발작 증상이 나타나더라고요. 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멀쩡했고요. 그래서 시골에 내려갔는데, 그곳에 도착한 지 5년 정도 지난 뒤에 제가 크게 한번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고, 그때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을 잃었다고 해요. 그리고 이곳의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절 찾아왔죠.
칼 융: 음… 그렇군요. 혹시 발작 중에 기억은 남아 있습니까?
로이 맥그리거: … 네. 의식은 잃지만, 수많은 환각이 밀려 들어옵니다.
칼 융: 어떤 환각을 보죠?
로이 맥그리거: 음… 마치 오래된 신화서에서 볼 법한 그런 것들을 봅니다. 바다의 용과 싸우는 번개를 다루는 남자, 동굴 속에서 똬리를 튼 뱀이 저에게 작은 석판을 내미는 경험도 했고…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기묘하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천지예요.
칼 융: (빠르게 노트에 무언갈 필기한다) 이건… 이건 정말 흥미롭군요. 혹시 홍수에 대한 꿈을 꾸신 적이 있나요?
로이 맥그리거: 홍수라면… 예전에 노란 홍수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칼 융: 노란 홍수가 무엇을 덮쳤죠?
로이 맥그리거: 유럽 대륙을 넘어 저의 고향, 스코틀랜드를 덮쳤습니다.
칼 융: … 그리고 그때 다른 무언가를 보신적은 있나요?
로이 맥그리거: … 맞아요… 아니 그 꿈뿐만이 아니에요. 꿈에 정말 자주 나오는 무언가가 있어요.
칼 융: 그게 뭔가요?
로이 맥그리거: 일주일에 한 번은 그것에 대한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그것이 떠오르면 모든 사람들은 열광하고 또 절규해요… 그건… 그건…
칼 융: 혹시…
로이 맥그리거: 붉은 태양… 그런데… 그런데 그 가운데에…
칼 융: 가운데에 십자가가 그려진 붉게 타오르는…
로이 맥그리거: … 맞아요… 그런데… 잠깐… 아니…
대상이 크게 동요하며 두리번거린다.
로이 맥그리거: 아니야… 아니야… 그건…
대상이 몸을 부르르 떤다.
칼 융: 맥그리거 씨?
보안요원: 융 박사님? 대상이 발작증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피하십쇼!
로이 맥그리거: 그래! 태양! 저는 절벽의 한쪽 끝에 선 채로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았어요!
칼 융: 그 절벽은 어디에 있는 절벽이죠?
보안요원: 대상에게서 떨어지십쇼!
칼 융: 아니야! 지금 제일 중요한 순간인데…!
로이 맥그리거: 모… 모르겠어요. 미국인가? 러시아인가? 일본인가? 사막인가? 바다인가? 하늘이기도 하고, 저 위의 별들이 가득한 우주이기도 해요. 그 태양은 하늘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강력하게 타올라서… 모두가 그 빛을 바라보다 눈이 멀어요..!
보안요원: 박사님!
칼 융: 언제! 언제 그 태양이 떠오르지?
보안요원: (칼 융의 팔을 뭍잡는다) 대피하라는 말 못 들었어요?
로이 맥그리거: 아직 기회가 있어. 아직.. 아직 기회가 있어! 거짓된 예언자가 그 태양을 석판에 담아 모두의 눈을 멀게 할 거야!
칼 융: (요원의 팔을 뿌리침) 거짓된 예언자는 누구지?! 보탄인가? 지크프리트인가? 헤르메스? 길가메시?
로이 맥그리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격리실이 활짝 열어젖히고 눈을 멀게 하는 섬광이 사방에서 비쳐온다.
나는 눈 부신 빛에 눈을 감고자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태아처럼 웅크린 맥그리거가 공중에 떠 있다. 그의 정수리에서 탯줄이 튀어나와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태양과 연결된다.
그의 주변으로 악마들과 난쟁이, 뱀과 나그네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불명]: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불명]: 이것은 너희에게 내어 줄.
나: 내 피의 잔이니.
[불명]: 아니. 이것은 너희에게 내어 줄.
보탄: 너희 자신의 모습이니라.
나는 비명을 지른다.
사방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물이 차오르며 벌레떼가 들이닥친다.
웃는 광인들과 분노에 찬 민중들이 사방에서 나를 물어뜯는다.
내 사지는 십자에 매달린 태아의 형상을 한 맥그리거 앞에서 뜯겨나간다.
맥그리거: 나는 보았어.
나: 어떻게? 무엇을?
맥그리거의 그림자: 당신이 찾는 것을.
나의 그림자: 그걸 이리 내!
맥그리거의 자아: 난 이것이 두려워.
나의 페르소나(상담가): 그러고 싶다면 그러하도록 해.
맥그리거의 늙은 현자: 그대가 얻고자 한다면 얻을 수 있다.
나의 신성한 아이: 나는 얻고자 한다.
우리 모두의 내면 깊은 곳의 정신: 그렇다면 그것을 잡아라!
칼 융: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로이 맥그리거: 난… 난…
칼 융: … 방금… 뭐였지?
로이 맥그리거: … 전… 저는…
칼 융: … 보안요원? 보안요원?
보안요원이 입에 거품을 문 채로 그의 옆에서 발작하고 있다.
로이 맥그리거: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전…
칼 융: 의무관! 의무관!
로이 맥그리거: 제가 가진 저주를 남들에게 나누고 싶지 않아요… 제발…
의무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기록 종료>
칼 융 박사의 주석:
- 그는 내가 찾던 사람이다. 이토록 강렬하게 무의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험은 처음이다. 그는 이곳에 격리된 모든 초감각자들 중 유일하게 직관을 통로로 하는 텔레파시를 사용한다. 즉,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집단무의식과 강렬히 연결될 수 있고, 더욱이 그것을 나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익시온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그의 직관을 통해 집단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 그러나 이런 직관의 영향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영향인지, 그는 심각한 공황장애와 뇌전증 증세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그것이 유발하는 정신적인 공격은 분명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와 내 직관이 정말 잘 연결될 수만 있다면, 그의 직관이 집단무의식의 상징을 온전히 잘 받아내고, 내가 그것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익시온 프로젝트뿐 아니라 인류의 정신 해석에 엄청난 진전이 있을 것이다.
- 대상은 본래 화가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그는 현재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몸이 구속된 채로 어떠한 창작적 에너지를 발산한 적이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고여있는 정신에너지는 다양한 정신 구조의 팽창을 불러오고 현재의 상황을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가 마음껏 자신의 정신에너지를 발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쩌면 텔레파시를 방출하는 것도 좋을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진정으로 명상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방법을 스스로 깨우칠 수만 있다면, SCP 재단은 전례가 없이 강력한 예언자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 그러기 위해선 단 한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가 마음껏 정신에너지와 텔레파시를 방출하고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와 마주할 수 있으면서도 편히 명상을 할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사막으로 가세나."
"네? 뭐라고요?"
"오마르는 강력한 페르소나 때문에, 맥그리거는 오랜 구속 생활 때문에 정신에너지가 내부에서 분출하지 못하는 상태네. 우리는 현재 이들의 억압된 정신을 풀어주어야 하네."
"그러니까 잠시 휴가를 보내주자고요? 변칙개체들에게요?"
"휴가가 아니네. 최적의 장소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지."
"익시온 프로젝트와 관련한 일인가요?"
"물론. 명상을 통해서 우리와 무의식이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맥그리거가 집단무의식을 바라보아야 해. 지금 이곳에선 그가 제대로 해낼 수 없고."
"후우… 하지만…"
"익시온 프로젝트의 사활이 걸린 문제야."
"상급감시사령부에 제안서를 보내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반대표가 클 것입니다. 그건 알아두십쇼."
"그들이 내 붉은 책을 제대로 읽어보았다면 분명히 이것의 중요성을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