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브라이트.

자, 내가 죽음에 관해서 생각을 오랫동안 해봤어.

항상 내 마음속에 이러구러 굴러다니던 주제야. 아니 왜, 살아 있는 건 모두 죽을 운명이잖아. 나도 언젠가 죽겠지. 뭐 조만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가 정신과 의사도 아니니까, 갑자기 무슨 개같은 소리 하고 앉았냐 싶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들어줬으면 해. 죽는 건 기분이 좋같아.

그 지랄을 427번은 겪어본 사람으로서 내가 잘 알아. 육체에서 영혼이 뜯겨나가는 그 경험은 진짜 개거지같고 그 이유들도 마찬가지야. 치명상, 독 먹고 부글대는 위장, 멈춰버린 심장 기타 등등등등 하고 많은 자살 방법 모든 게 다 곱창나, 절대 좋지 않은 쪽으로.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애초에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록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마음 한켠에서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무슨 프로젝트를 작업했든 무슨 목표를 이루려고 했든 더는 살아가는 데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뜻이라는 점이지. 사실은 그 자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이유일지도 몰라.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었을 테니까, 자신이 짊어진 일이나 책임이나 짐, 기대의 눈빛, 야망… 목록을 길게 뽑을 수도 있고 내가 겪은 개인적 경험을 줄줄 풀어놓을 수도 있지만, 우리 아직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듯하군. 너무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지, 잠시 내 인생 이야기를 하는 걸.

하지만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난 항상 죽고 싶어했고, 여러 번 죽어봤고, 이 세상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도 떼그랑창 더 많이 죽어봤지만 왜인지 아직 살아 있다는 거야. 하 이 저주받을 운명, 게다가 내가 살아봤던 몸 하나하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그 몸들이 갖고 있던 기억은 물론 없지만, 대개 난 그 몸들이 살아가던 삶을 잠시나마 대신 살아야 해. 그리고 말야, 운명이 사람한테 내던질 수 있는 오만 개지랄은 다 겪어봤지. 제일 가까운 사례를 들면, 내가 재단 직원 몸을 얻을 때면 가끔 대체 인력이 내려올 때까지 그 몸의 원래 일을 짤막하게 내가 맡아줘야 할 때가 있어. 그럴 때 섬뜩한 게 뭐냐면, 다른 놈들이 나를 그 사람이 원래 취급받던 대로, 마치 오늘도 샌드백 때리러 온 양 그대로 대접해주면 아주 정신 나가. 그러다가 목에 걸려서 달랑거리는 요거 요놈을 보여주면 바로 깨갱하지, 마치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 인간으로 보인다는 듯이. 토 나오고 싫었지, 잭 브라이트 이사관님 앞에서는 바로 강아지처럼 앙앙대는 놈들이 제프리 카터 연구원 앞에선 안 그러니, 사무실에 종일 죽치고 처박힌 어둠침침한 놈보다는 훨씬 더 잘 아는 사람이었을 텐데 말야. 그래서 그 사람 기록을 뒤져봤어. 출근 잘 해, 일 괜찮아, 아주 대기업 직원의 모범답안이었어. 불쌍한 자식, 절대로 흔치 않게… 이런 짓을… 자원했더라고.

또 언젠가는 D계급 몸을 얻어서 주황색 점프수트를 막 벗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마이크 굿윈 박사가 내 어깨를 팍 잡더니 내 몸을 빙글 돌려 자기를 보게 시키면서 막 크게 소리쳤지, 너 때문에 몇 년이나 걱정한지 아느냐, 나보고 악마 제빌이라 부르면서, 절망과 안도가 섞인 목소리로 네가 너무 그리웠다고 하고, 나도 몰랐는데 내 팔에 새겨져 있던 조잡한 문신 보고 이거 기억나냐고 물어보고, 뭘 어쩌다가 이렇게 사형수가 되었냐고 그러고… 그때 내가 이 부적을 치켜들었어. 사람 기가 그렇게 빨리 죽은 건 처음 봤는데.

또 한번은 선임(진)급 직원이 하나 있었어. 이 여자는 30년을 근무했고 그중에 8년은 현장에서 굴렀지. 이름이 시타라였는데- 우와 미안하네 갑자기 감정 올라오고- 아무튼 시타라였어. 아시아 기지를 숱하게 거치면서 일했는데, 혹시 모른다면은, 물론 모르겠냐만은, 아시아는 겁나게 큰 대륙이잖아, 다 합쳐서 기지가 한 700개는 넘을걸. 그 시절에 내가 만났던 가장 떠오르는 별이었는데, 그래서 신이 나서 결국 자리를 크게 마련했어. 빛나는 검은색 키카드를 증정하는 자리를 40기지 세미나실에서 마련했는데, 참석자로 직원들 한 300명이 시타라만 올려다보고들 있었지. 그날 사고는 참 멍청하게 일어났어. 아마도 시타라의 살면서 유일한 멍청한 짓 아니었을까. 깔쌈한 하이힐을 평소에 별로 안 신는 걸로 가져왔는데, 당연히 그거 신고 걷는 데 익숙하지 않았지. 타일 사이 틈 하나 밟고 넘어져서 내 몸 위로 엎어졌어. 다시 눈 뜨고 그 몸을 얻은 걸 보고는 난 비명이 나왔지. 그 이후로 시타라가 옛날에 근무하던 기지는 자진해선 안 가. 아무렴 탑급 과학자를 죽여버린 놈을 잘도 환영해줄라구.

이런 예 말고도, 아니 이런 예처럼 사람은 모두들 자기가 자기이게 만들어주는 고유의 가치가 있어. 이 몸 하나하나? 사람이야. 그 몸과 부대끼고 살았던 사람들? 사람이지. 친구? 지인? 나아가서 매일 아침 로비에서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해주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슬프다까진 아닌데 기분 이상하게 만드는 아저씨? 모두 다 사람이야. 사람의 영혼을 누가 대체할 순 없고, 그걸 만들어내줄 놈도 여기엔 없어. 모두 다 맞춤제작이고 오직 자신 한정판이야. 음 그렇긴 해, 요즘 있어보이면서 철학적 개소리 좋아하는 놈들이랑 비슷한 소리긴 하지, 그치만 수많은 사람을 돌아보면서 인생이란 뭔지 지켜본 입장에서 난 정말 맹세할 수 있어. 그치만 자네야 그만한 시간은 없으니까,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 말고 대신 종교를 가져서 기도라도 해봐. 그리고 그때가 최선일 거야, 우리가 맨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답을 찾으려고 해봤자. 왜냐면 나도 이 세상 살고 죽는 원리가 뭐 어떻게 돌아가는지 좋도 모르거든.

유일하게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이거야. 육신의 우리가 부서지고 영혼이 빠져나오는 그 순간에, 신인지 뭔지 몰라도 무언가가 내 눈앞에 내가 자신의 삶에다 저지른 행동과 자신이 이 지상에 어떤 지옥을 불러왔는지를 똑똑히 펼쳐놓게 돼. 나도 카터랑 제빌이랑 시타라랑 마찬가지야, 한 가지 인격이란 점에서는. 죽을 때마다 나는, 뭐 느낌은 안 오지만 내가 했던 행동이랑 그 결과를 모두 기억해. 언제나 항상 그렇고, 나야 죽음 쪽으로는 지랄같이 특수한 경우다만은 숨이 꼴까닥 넘어갈 때 주마등이 좌라락 펼쳐진다는 말이 아주 합당하다 생각해. 대개 기억나는 건 무슨 나쁜 일이 생겨서 이 지경까지 되고 인생이란 곡을 슬픈 음표로 끝마쳤나 하는 거야. 공허 속에 갇혀서 슬픔의 응어리를 영원한 플레이리스트로 무한재생하고 싶진 않겠지, 진짜로. 나도 부적 속에서 한 3일 매달려 있다가 거의 미치는 줄 알았어, 아니 와 씨, 왜 그딴 실수를 했을까 그러면서.

으흠… 뭐랄까. 갑자기 넋두리 왕창 해서 미안하네. 자기 생각 장광설교 좌라락 늘어놓고 지랄 떨고 똑같은 메시지 반복하면서 쌩쑈 펼치고 그랬지만은,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정말 들어줬으면 좋겠어. 내 처지 덕분에 나는 지난 100여 년을 수많은 삶을 들여다보면서 살았어. 그러니 이것만은 믿어줘, 목숨을 끊는 건 안 괜찮아. 죽음은 개 같은 새끼야. 자네한테도, 자네를 걱정하는 사람한테도. 너무 아픈 일이라고. 자네가 무슨 씬코어 팬… 뭐라요즘그러는지잘모르는뭐그런거 되어서 어쨌든 뭐, 아 쓰발, 난 중요한 사람 아냐, 아무도 날 걱정 안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 틀렸어, 븅딱아. 설령 사람 천여 명 죽여서 어딘지도 모를 곳 한복판에 이름 없는 묘 덩그러니 놓여 있더라도 누군가 인정 품은 사람이 지나가다 자네를 위해서 기도해주거나 진짜 못해도 대체 어떤 사람이 여기 묻혀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걱정해주는 사람이야. 내가 걱정해. 누군가는 반드시 걱정해.

흠, 나 한 시간 있으면 다른 기지 가야 하는데, 마무리하는 셈 치고 진짜로 정직한 이야기 하나 해야겠군. 솔직히 말할게, 세상은 힘든 거 맞아. 이 일터는 지옥이 맞아. 혹시 몰라, 일하다가 어쩌다 진짜 지옥 갔다올지, 내가 아나. 뭐 내가 하는 말이야 물론 기지 이사관이라는 젖과 꿀 흐르는 자리에 앉은 사람한테 나오는 배부른 소리지만, 이 자리로 도착하려면 그만한 요금이 따라오기 마련이야.

꼭 기억해, 인생은 자네가 취급하는 범위보다 훨씬 더 넓어. 생산성이 좀 치고 올라올 때 느낌상 덜 거지같다 싶더라도, 번아웃이나 이대로는 불충분하다는 불안은 나를 항상 물고 늘어지며 놓아주지 않기 마련이야. 주위를 둘러보고 하루이틀 쉬어, 동료들하고 일이랑 아무 상관없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눠, 취미를 찾아. 뭔가 기여해야 된다는 압력하고 전혀 하나도 관계없는 무언가를 찾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동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면, 지금 우리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왜 자네가 항상 가치 있는 사람이고 왜 죽는 게 거지같은 일인지 기억해. 내 연락처는 직원 목록에 있으니까 또 나한테 실존주의적 횡설수설 듣고 싶으면 연락해, 알았지? 난 항상 여기 있을 테니까.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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