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쾅 소리와 함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다가 이내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는 심하게 덥수룩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있었다. 그는 곧장 연구소 외곽에 있는 직원 휴게실로 향한다. 그는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중얼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누군가를 욕하는 듯 했다. 이윽고 휴게실에 다다르자, 그는 곧장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뒤적거리던 찰나, 휴게실 안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넨다.
"여. 케빈. 오늘은 또 왜 표정이 그런가?"
"말도 말아. 내가 진짜 열 받아서…"
불만이 많아 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아마도 케빈인 듯하였다. 케빈은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남자에게 대충 대꾸한 뒤 계속해서 라이터를 찾아 헤맸다.
"또 그 일 때문인가?"
"시끄러워 에릭. 지금 내가.. 젠장! 혹시 라이터 가진 거 있나?"
"나는 담배 안 피는거 알잖나."
"쳇. 라이터 정도는 가지고 다니란 말이야."
케빈은 온갖 주머니를 뒤졌지만 라이터는 나오지 않았고, 그는 결국 담배를 도로 집어넣고 휴게실 벤치에 앉았다. 휴게실은 자판기 두 대와 벤치 하나, 그리고 미관상 가져다 둔 화분하나가 전부인 소박한 장소였다. 겨우 두 사람밖에 없었는데도 그들에겐 상당히 좁게 느껴졌을 것이다. 에릭이라는 사람은 케빈의 옆에 같이 앉았다. 그는 손에 자판기 커피를 쥐고 있었다.
"이보게 케빈. 자네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연구로 여기서 지원을 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케빈은 에릭을 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케빈은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래,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웬 정신 나간 녀석의 몽상처럼 느껴지겠지. 그게 당연한 거야.'
에릭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케빈에게 얘기했지만, 케빈은 이미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어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에릭이 말했던 연구는 케빈의 독자적인 연구이다. 과거 케빈의 담당 업무는 SCP-907-KO에 관한 것으로, 그는 그 책에 매료되고 말았다. 사실 케빈은 옛날부터 꿈이라는 현상에 관심이 많았고, 꿈을 꾸는 과정과 어떤 꿈을 꾸는 지에 대한 연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게 케빈을 결국 연구원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의 열의는 점점 희미해져갔었고,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보내던 중 그가 SCP-907-KO를 만난 것이다. 그 책은 그에게 그가 잊고 있었던 꿈에 대한 신비함을 다시 상기시켰고, 그는 모든 자신의 자유 시간을 자신의 연구에 쏟았다. 기나긴 연구 끝에 그는 꿈을 꿀 때 분비되는 특정한 뇌파를 발견하게 되었고, 꿈이라는 현상에 대한 새로운 논문을 집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불확정성 세계 이론'이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인 '불확정성의 세계'가 존재하며, 이 둘은 평소에 겹쳐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평상시에 현실 세계만을 인식하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꿈을 꿀 때 분비되는 뇌파(케빈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해단 뇌파의 이름을 피셔 뇌파라 지었다.)가 해당 인원의 의식을 변환시켜,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불확정성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고, 이게 우리가 말하는 '꿈'이라는 이론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이론은 당연히 주변 과학자들에게 사이비 과학 취급을 당했고, 케빈은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를 지지하는 유일한 사람은 입사 동기였던 에릭 윌리엄스 뿐이었는데, 그 역시 그와 친구인 것뿐이지 그의 연구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런 이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특별한 사건들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불길한 꿈을 자주 꿨는데, 그런 꿈을 꾸고 나면 항상 꿈에서 봤었던 안 좋은 일들이 그에게 실제로 일어나곤 했다. 그 때문에 그는 현실과 꿈 사이엔 반드시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해서 그의 말이 틀렸단 것은 아니었다. 가끔 현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작용하기도 한다. 케빈의 경우가 그러했다.
"난 먼저 연구소로 가봐야겠어. 에릭."
"아… 그래, 가보게."
케빈은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이 굉장히 밝은 표정이었다. 연구소로 뛰어가던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볼 때처럼 마냥 해맑았다. 그는 곧장 개인 연구실로 들어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무언가를 붙이는 소리, 둔탁한 망치소리, 그리고 타이핑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연구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주변에서는 드디어 그가 미쳤다며 손가락 질 했다. 그의 안부를 걱정한 것은 에릭뿐이었다. 하지만 에릭이 아무리 연구실 문을 두드려도 케빈은 그의 부름에 답해주지 않았고, 안에서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은 소리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에릭은 케빈이 나오기를 포기한 채로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복도 쪽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쾅하고 걷어찼다. 케빈이었다.
"에릭! 헉…허억…"
"케빈! 대체 거기 틀어박혀서 뭘 한 건가? 몸은 좀 괜찮나?"
"잠시.. 숨 좀… 돌리고… 후……"
"자네 일주일동안 한 번도 안 나오지 않았나! 아무것도 안 먹었을 텐데 이렇게 무리해서 뛰면…"
"안 나온다고 못 먹는 건 아니지. 대충 통조림 캔으로 때웠네.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말이야."
케빈은 이런저런 얘기를 한 뒤에 뿌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보다 에릭. 내가 해냈어."
"해내다니 뭘?"
"일단 와보면 알아. 따라오게."
케빈은 에릭을 자신이 일주일동안 틀어박혀 있었던 연구실로 데려갔다. 에릭의 눈에는 케빈의 연구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연구실 안에는 통조림 박스와 이미 비어있는 통조림 무더기, 그리고 컴퓨터 한 대만이 놓여있었고, 안은 그다지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보다도, 가장 주의를 끌었던 건 정중앙에 있는 정체불명의 기계였다. 그 기계는 마치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처럼 생긴 외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에릭은 방 안에 있는 기계를 본 뒤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대며 말했다.
"저..저게 대체 뭔가?"
"이상한 거 아니니 들어와. 내가 만든 거니까. 전기의자 아니야."
그제야 에릭은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케빈은 아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전에 말했던 꿈에 대한 연구 자세히 기억하나?"
"…솔직히 말하면 자세히 라고는 못하겠네."
"그래. 아무튼. 내가 예전에 돈 모아서 민간인들 상대로 개인적으로 진행했던 실험이 있어."
케빈은 컴퓨터 옆에 쌓여있는 종이더미 사이에서 몇 장을 꺼내 에릭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방금 내가 준건 사람의 유형별로 수면 중일 때 나타나는 피셔 뇌파를 분석한 그래프야.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자 여기. 여기를 봐."
"이건 자폐아 아닌가? 이게 뭐 어쨌단 건가?"
"이 사람이 그리는 뇌파의 그래프를 보면 다른 피험자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지. 사실 그 당시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는데, 어느 가능성에 생각이 미치더군."
"무슨?"
"어쩌면 자폐를 앓는 사람이 내가 바라는 꿈에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말이야. 사실은 그들은 꿈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
"말도 안 돼. 자네도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람들이 그리는 뇌파의 패턴과 꿈의 내용을 분석했어. 종합해보니, 뇌파가 그리는 파장이 클수록, 그들은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의 꿈을 꾸더군. 그리고 꿈의 내용이 현실로 나타나는 빈도수도 높았지.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일부는 실제로 일어났어."
"이봐 케빈… 자네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닥쳐 에릭!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 실험결과를 종합해봤지만, 나보다 뇌파의 파장 폭이 큰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나는 나에게 실험을 했지. 지금 자네 옆에 있는 저 기계로, 내 뇌파의 파장을 인공적으로 서서히 올려갔어. 그랬더니 꿈이 점점 더, 선명히 보였지."
케빈은 에릭과 대화하는 내내 불안한 듯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래… 점점 더 선명하게 꿈이 기억났었어. 내가 기억하는 꿈의 길이도 점점 길어졌지. 마지막 실험에선… 내 기억에 따르면 나는 한 달가량 꿈속의 세계 '불확정성의 세계'에 머물렀어. 나는 꿈을 꾸는 동안 주변을 돌아다녔지. 모든 게 내가 세웠던 이론대로였어. 불확정성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것의 결과가 불확실하지. 내가 앞으로 걷는 다고해서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돌을 던진다고 해서 날아가는 게 아니야. 모든 것의 결과는 정해져있지 않았어."
에릭은 케빈이 말을 하면 할수록 상태가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러던 도중, 내가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나는 내가 꿈에서 깰 것이라는 것을 느꼈지. 그때 나는 그쪽 세계의 물건을 손에 쥐고 있었어.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쥐고 있던 물건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 그게 저 돌덩이야."
케빈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 아래의 서랍을 가리켰다. 에릭이 서랍을 열자, 그곳에는 그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재질로 이루어진 주먹만 한 크기의 물체가 있었다. 에릭은 그가 미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그의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에릭,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뇌파의 파장이 커지면, 불확정성의 세계 쪽에서 이쪽 세계로의 이동이나 간섭이 가능해져. 뇌파는 두 세계 사이의 구분을 옅게 만드는 역할인거야. 이번에 내가 넘어가서 좀 더 확실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져온다면… 그 망할 높으신 간부들을 엿 먹일 수 있다고. 내 연구를 증명할 수 있어!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야. 에릭."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마 내가 깨어나더라도 시간은 얼마 지나있지 않을 거야. 내 연구의 최종결과를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자네는 내 친구니까 말이야."
케빈은 그렇게 말한 뒤 곧장 컴퓨터로 향해 몇 단어를 입력하고 난 뒤 방 안의 기계장치에 앉았다. 에릭이 말릴 새도 없이 케빈은 의자의 스위치로 보이는 것을 작동시켰다. 기분 나쁜 소음이 들리며 기계는 작동되기 시작했고, 에릭은 자신도 모르게 기계로부터 한 발짝 떨어졌다. 강렬한 진동이 의자로부터 전해졌다. 진동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잠시 뒤 에릭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만한 광경을 보았다. 케빈의 몸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이 점점 희뿌예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에릭은 곧바로 문을 박차고 밖으로 도망쳤다. 복도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갑자기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에릭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평소처럼 각자 할일을 하고 있었다. 에릭은 곧장 연구소 밖으로 뛰쳐나갔고, 건물 밖으로 나가서 숨을 돌렸다. 밖에는 연구실 비품을 구매해서 돌아오는 도중이었던 여직원만이 있었다.
"어머 에릭씨! 무슨 일…"
여자가 말을 한 직후, 에릭의 뒤는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에릭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직원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정체모를 빛에 놀라 들고 있던 봉투를 떨어뜨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하얀 빛이 가시고 보인 연구소의 풍경은 참혹했다. 모든 구조가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건물이 퍼즐을 흩어놓은 것 마냥 이리저리 꼬여있었던 것이었다. 여직원은 곧바로 다른 기지에 도움을 요청했고, 곧 구조대가 와 건물을 해체하며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팔다리가 여기저기에 흩어지고 몸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죽어있었고, 살아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 한사람, 케빈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었다. 케빈은 몸통의 절반이 마치 어류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입고 있는 옷과 그의 주머니에 있던 케빈의 신분증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에릭은 구조대 옆에 주저앉은 채 엉망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직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직원이 어찌 된 일인지를 묻자, 에릭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그렇게 그 참사의 유일한 생존자인 에릭과 흉측하게 변해버린 케빈은, 근처 기지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