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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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시마이 합시다."

작업반장님의 말에 나는 간신히 굽혔던 허리를 필 수 있었다. 오늘따라 철거해야 하는 무게가 20kg이 훨씬 넘어가는 것들 뿐이라서 고생 꽤나 했다. 모터를 들고 운반하려면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은 족히 필요하다.

물론 작업반장님같은 괴물을 빼면.

"어, 최씨. 오늘 수고했어. 철거반에 신입들 많이 들어와서 귀찮을 법도 한데, 끝까지 잘 참았어."

작업반장은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어찌나 힘이 센지 단순히 어깨를 조금 두들겼을 뿐인데 내 몸의 내장이 다 뒤집히는 기분이다.

"다 반장님 덕분입니다."

내 말이 작업반장님은 크게 웃었다. 웃음 소리에 맞춰 가슴과 배가 꿀렁거렸다. 작업반장님은 엄청난 몸을 지녔지만, 보디빌더같은 조각같은 몸매는 아니다. 오히려 살에 덮힌 아저씨같은 체형에 가깝다. 가까히 가면 입냄새도 많이 난다.

"불금인데, 오늘 저녁에 뭐 하나? 여자는 안 만나나? 캬캬캬, 최씨한테 여자가 있을리가 없지. 나랑 맛집이나 가자고."

"예…"

정말 아저씨 스러운 질문이고, 제대로 대답 못하면 회식까지 끌려갈 걸 알지만, 딱 잘라 거절하기도 무서웠다. 반장님 목덜미에 있는 주먹 모양의 문신. 모르긴 몰라도 반장님은 예전에 험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이 분명하다.

"얼레? 태도가 왜 그래. 나랑 밥 먹기 싫어?"

"아닙니다."

"…좋아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일당보다 훨씬 비싼 맛집 구경 시켜주지. 삼겹살에 소주 말고 아주 귀한 걸로다가. 최고급 레스토랑이라고."

솔직히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매일 돼지국밥을 한끼에 몇인분씩 먹어 치우고 뭘 먹으면서 트름을 동시해 해대는 작업반장님이 최고급 레스토랑?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렸다.

"캬캬. 내가 그런 곳에 간다니까 안 믿기는 모양이군. 일단 따라오기나 해."

어차피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정말 이런 데 음식점이 있다고요?"

"그렇다니까, 정말 사람 말 못 믿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여긴 공단에서 얼마 나가지도 않은 곳이었다. 비싼 음식점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으슥한 골목. 난 점점 의심이 강해졌다.

"음…분명 한번 더 돌면…이게 맞나."

투덜대던 작업반장님은 웬 종이를 한참 들여다 보더니 문을 열었다.

"이런 미친."

나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들어서자 마자 화려한 인테리어의 고급 레스토랑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자 작업반장님이 나를 끌어당겼다.

"빨리 들어와."

"아, 네. 그런데 이런 곳은 보통 그…드레스 코드 같은 게 있지 않나요?"

우리의 차림새는 작업복에 추리닝, 그리고 안전화였다. 도저히 이런 최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작업반장님은 피식 웃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도 않아. 각계각층의 사람들 심지어 다른 시공간…어쨌든, 맛있는 음식만을 즐기려 온 사람들이야. 드레스 코드 따윈 없어."

우리는 연인들이나 앉을 법한 아늑한 분위기에 테이블에 착석했다. 꽤 넓은 방이었지만 테이블은 하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앉자 마자 한 여자가 우리 앞에 섰다.

"엠브로즈 서울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에 메뉴판 보시고 원하시는 메뉴를 말씀해 주세요."

"원하는 것은 아무거나 시키게."

"아, 감사합니다."

난 메뉴판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가격이 쓰여있지 않네요?"

"네, 저희는 후불제입니다. 고객님께서 만족하신 만큼의 가격이 결제될 것입니다."

"어차피 내가 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시켜. 캬캬."

나는 메뉴판을 자세히 보았다. 특이한 메뉴가 많았지만 시켜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필레 드 뵈프 로시니…로 주세요."

"저도 같은 걸로."

"네, 굽기는 어느 정도로 해 드릴까요."

"블루 레어로 주쇼."

"…저는 그냥 미디엄이요."

"아, 음료는 버번 밀크로 주시오."

여자는 작업반장님의 말에 살짝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떠났다.

난 작업반장님이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 굽기도 블루레어로 먹는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평소 삼겹살을 거의 탈 정도로 바싹 익혀먹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반장님을 쳐다보자 반장님은 발로 날 툭 건들였다. 더럽게 아팠다.

"캬캬, 최씨. 내가 이런데서 이렇게 잘 시키니까 웃겨?"

"아뇨, 그냥 의외라서요."

"예전 직업 특성상 이런델 들락날락 했거든. 손님으로 오는 건 처음이지만."

난 차마 그 직업을 물어보진 못했다. 직감적으로 셰프 같은 직업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공기가 어색해지려 할 때쯤,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플레이팅이 아주 예술이었다. 상당한 크기의 고기가 아름답게 잘려 있었고, 강력한 고기의 냄새에 은근히 스며드는 버섯 냄새가 환상적인 향을 내뿜었다. 먹기도 전에 침이 잔뜩 고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주체할 수 가 없었다. 빠르게 칼을 들어서 마구잡이로 썰었다. 분명 식사 예절 같은게 있겠지만, 이미 작업반장님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를 추접스럽게 먹고 있는 중이었다.

"쩝쩝. 너도 빨리 머겅."

나는 대충 고기를 썬 뒤 한 입에 물었다. 씹자마자 느꼈다.

이건 내가 먹은 모든 고기 중 가장 맛있었다.

내가 배움이 짧아 이 맛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너무 물렁하지도 질기지도 않은 정말 말 그대로 미디움의 굽기에, 씹을 때마다 입안 전체를 코팅하듯이 찰랑거리는 육즙이 나를 미치게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스테이크를 다 먹고 빈 접시를 핥고 있었다.

"하하, 정말 맛있었나 보네, 자네 꽤 입이 짧았었는데 말이지."

"네, 근데 이건 정말 대단하네요. 억만금이 아깝지 않아요."

그 말에 반장님은 당황한듯 머리를 긁었다.

"캬캬, 최씨. 오늘 밥은 내가 낸다고. 너무 만족하면 내가 손해야."

아, 그러고 보니 깜빡했었다. 이 정도로 맛있는 음식은 대체 얼마일까. 생각해보니 소름이 돋았다. 당연히 내 일당보다는 많을 터였다. 그러나 반장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 음식이 비싸봐야, 우리 최씨만큼 귀하겠어? 음료수도 먹어."

난 오늘따라 유난히 다정한 반장님이 건네는 유리잔을 받아들었다. 잔 안에는 하얀 액체가 들어있었다.

"이거…술인가요?"

"맞아, 위스키렁 우유랑 좀 섞은 거야."

"신기하네요."

고기의 맛에 취해있던 나는 단숨에 버번 밀크를 들이켰다. 분명 위스키인데도 우유가 들어서있지 아주 부드럽고 맛있었다. 정말 맛있는 술이었지만, 넌 마시자 마자 바로 후회했다.

바보같은 놈, 그걸 먹기 직전까지도 까먹고 있었다니.

"아, 그러고 보니…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내 말에도 반장님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내게 새 잔을 건넸다. 이것도 고기 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괜찮아. 더 먹어. 더 먹어."

"전 반장님처럼 술먹고 작업할 자신 없는데요."

"에이, 자네가 경력이 몇인데. 충분히 잘 할 수 있어. 아, 그리고 워낙 고생했으니 자네도 이제 승진해야지. 이제부터 일당 말고 월급으로 받게."

나는 갑작스러운 승진 소식에 걱정을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아, 이것 때문에 반장님이 여기에 온 것이구나. 매일 일당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일당보다 훨씬 많은 페이를 받는 월급 노동자가 부러웠었다.

그래, 어차피 힘든 일은 반장님께서 도와주시겠지. 언제 이런 멋진 레스토랑에 또 오겠어. 먹고 하루만 더 고생하자.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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