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네의 나무

평가: +2+x

kawai-zintarou 2022/1/30 (일) 10:45:19 #20124421


나는 이와테현에서 삼림 관련 직업을 가진 지 오래 되었는데, 최근에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여러가지로 생각들이 떠오르는 일이 있었거든. 잊어버리기 전에 파라워치에 방류해 둬야겠다 싶었다.

%E5%B1%85%E4%B9%85%E6%A0%B9%E3%81%AE%E6%9C%A8%E3%80%80%E7%94%BB%E5%83%8F

당시 사진

몇 년 전 이야기. 계절은 여름이었지. 공무점에서 일하는 아베라는 동창생 놈이, 나한테 건축에 방해가 되는 이구네() 나무를 베어줄 수 있냐고 상담을 해왔다.

「이구네」가 뭐냐면, 간단히 말해서 방풍 역할을 맡은 부지림(屋敷林)이다. 방풍 외에도 방설, 화재의 연소방지, 마를 쫓는 벽사 그런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던가.

다른 고장에서는 카이뇨(垣入かいにょ)시헤키(四壁しへき)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 것 같은데, 이와테에서는 이구네라고 한다. 수종은 삼나무든 느티나무든 별 상관 없다.

상담을 받은 나는, 조속히 현장을 보러 나갔다.

kawai-zintarou 2022/1/30 (일) 10:48:38 #20124421


아베와 합류해서 현장에 가 보니, 그 집에 살고 있다는 젊은 부부가 맞이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이 집은 원래 이 부부의 남편 쪽 부모가 살았던 집이었다던가. 양친은 노쇠한 끝에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극락왕생하셨고. 유언에는 아들에게 토지와 가옥을 상속하겠다고 강력하게 기록되어 있었다나.

양친의 마지막 소원이라 하여 남편은 상속을 받아서 살기 시작했는데, 이구네는 여러가지로 관리가 힘든데다 소학생 아들이 올라갔다가 다친 일도 있어서 베어내고 싶어졌다 그랬다. 유언에서는 절대 베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던데, 어차피 상속은 받았으니 아무렴 상관 없지 않겠느냐고 남편은 말했다.

집의 리모델링을 하는 김에 거슬리는 이구네 나무들도 베어 없애자고 아베에게 상담했고, 아베는 예산 문제로 곤란해하다가 어떻게든 싸게 해 줄 내게 찾아와 상담하게 되었다는 그런 곡절이었다.


귀찮아질 수도 있는 건이라고 내심 생각했지만, 아베에게는 빚도 있고 하니 일단 생각해 보기로 했다.

문제의 이구네는 생각보다 훌륭한 것이었다. 20 미터 넘게 자란 삼나무가 몇 그루 자라 있어서, 방풍림으로서 본분이 일단 상급이다. 토지경계 부근에는 조릿대나 동백이 눈을 가릴 정도로 자라서, 이구네 직하지점은 한여름에도 응달이라 쾌적하고 시원할 터였다. 개인적으로 베어내기가 아깝다고 느꼈을 정도로, 묘하게 안심이 되는 공간이었다.

kawai-zintarou 2022/1/30 (일) 10:51:47 #20124421


나는 삼림조합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상담을 받고, 중장비 수배와 관공서 신고 등으로 며칠간 여러가지로 열심이었다. 솔직히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해치우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드디어 작업 첫 날. 우선은 방해가 되는 조릿대와 동백을 깎아내는 벌채부터 시작했다. 벌채가 끝나자 「막혀 있다」는 느낌이 갑자기 사라지고, 바깥 모습이 시원스레 잘 보이는 개방감 있는 뜰이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벌초까지 마친 뒤 낯 휴식 때부터, 조금씩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구네 바로 밑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꼭 정확히 앞으로 나무를 쓰러뜨릴 방향인 무논 한복판에 소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애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집주인 부부의 아이였다.

「야야, 니 거서 뭐 하나ー?」

「보고 있어. 나무.」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이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 계속 서 있었다. 솔직히 어린애는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고, 더 이상 말을 걸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애새끼는 딱 질색이다.

점심 휴식이 끝나고, 언제까지 저기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펄럭펄럭 불어왔다. 으와앗…하는 사이에, 아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kawai-zintarou 2022/1/30 (일) 10:54:56 #20124421


다음날도 작업. 중장비도 투입되기 시작했다. 렌탈이었기 때문에 실질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2일. 상당히 촉박했다.

동료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작업을 진행했다. 왜인지 근거는 모르겠지만, 이구네의 나무가 넘어갈 때, 목덜미 옷깃에 조금씩 모래가 들어오는 것 같은, 말재한 느낌이 있었다.

점심 휴식. 모두들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동료 중 한 명이 쓰러뜨릴 예정인 이구네 너머 멀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가 보니 그것은 의뢰주인 남편이었다. 멀리도 떨어져 있었다. 눈에 겨울 보일 정도로 빠듯한 데 있는 논 한복판에서 이쪽에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뭐 하고 있드래요?」

「글쎄요…?」

유난히 거친 논 꼴을 봐서, 농작물을 기르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 분이나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 보기에 이상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작업 페이스만 걱정될 뿐이었기에,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은 어느샌가 사라졌고, 작업을 재개할 즈음에는 붕붕붕 소리나는 강풍에 나무들이 우는소리를 내고 있었다.

kawai-zintarou 2022/1/30 (일) 10:56:32 #20124421


해서, 마지막 날. 이 날도…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업은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완료했다.

베어낸 통나무는 내 쪽에서 가져가고, 산업폐기물 쪽은 아베 쪽에서 처리하고…. 그 이후 뒷처리는 거의 아베가 진행했기 때문에, 나는 더 터치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


…일 리가 없지. 아무렴 여기서 끊을 수가 있나. 역시 이대로 끝나면 재미 없잖아. 그래서 이 글을 올리기 전에 가벼운 취재를 했다. 아베라던지, 당시 일을 아는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지. 그랬더니, 아직도 그 부부는 변함없이 거기 살고 있다더군.

그래서, 현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구네 나무를 베었던 그 장소에.

kawai-zintarou 2022/1/30 (일) 10:58:45 #20124421


멀리서 보기에는, 뜰이 확 넓어진 것 이외에는 무엇 하나 변한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씩 접근해 보았다. 그 때처럼 멀리 무언가 보이지 않나 찾으면서.






「~씨 아닙니까!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그 때의 남편이었다.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튀어나왔을까. 느닷없이 나타나선, 묘하게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어쩐 일로 여길 다?」

「에~…일 관계로요. 어쩌다 보니 이 부근을 지나가게 되어갖고…」

「그러셨습니까! 괜찮다면 차라도 한 잔 들고 가시죠.」

럭키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번 건은 잘못 본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했으니까. 당사자에게 그 이후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권유에 응하기로 했다.

kawai-zintarou 2022/1/30 (일) 11:02:59 #20124421


손님방으로 안내받고 보니, 아내분과 고등학생?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들도 정좌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라던가, 집 안쪽에서 케이크를 내온다던가, 기묘하게 극진한 대접이었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회고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거의 잊고 있었던 가족의 유언의 경위 같은 것도 거의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었다던가.

벌채를 하던 그 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 보았는데, 무논에서 뭔가 했던 기억은 없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남편이나 아이처럼 보였던 그것을 떠올려서 「등만 보이는 사람」에 대해 물어 보았다. 돌아가신 양친이 조금 이야기해 준 것이 있다는 것 같다……만, 정작 본인은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난 적도 없고, 주거가 가지런히 정돈된 뒤로는 아무튼 「행복」한 모양이었다.

뭐, 그런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섬뜩한 느낌의 정체가 알고 보니 별 쓰잘데없는 착각이었다는 것은 자주 있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끝나서 돌아가려는데, 괜히 선물을 받았다. 야채라던가 과자라던가 맥주라던가 바리바리 싸 주더라. 그런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kawai-zintarou 2022/1/30 (일) 11:05:11 #20124421


…그런데 마지막 순간, 「잠깐만 기다려 보십쇼~!」라며 남편이 옆방 문을 열고 선물을 꺼내 올 때, 바로 그 한 순간, 보였다.


그 옆방에 불단이 있고, 불단 위에는 남편과 아내와 벌채 당시의 소학생 정도 나이의 아들의 사진이 근사한 액자에 넣어서 세워져 있는 것이.


……나는 미처 위화감을 느끼기도 전에 「아무쪼록~!」이라며 선물을 건네받았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함께 바래다 주는 그 가족에게 손을 흔들며 현관을 뒤로하고 나가 버렸다.


위화감을 알아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세 사람은 내게 등을 보이며, 꼿꼿이 우뚝 서 있었다.


아니, 이상할 일이 아니다. 이제 내가 간다고 생각해서 집에 다시 들어가려고 등을 돌렸던 그 순간에 우연히 내가 뒤돌아보았을 뿐이겠지.


……그래도, 나는 곧바로 「그것」을 보기를 그만두었다.

강풍이 불어와 등 뒤에서 우지직우저적 집이 무너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울려왔지만, 나는 두 번 다시 돌아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