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오늘부로 새해였기 때문에, 그리고 당연한 시간의 섭리에 따라 2022년은 돌아갈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제145K기지의 김경일 이사관보는 그 경계의 밤에 후련함만을 느꼈다. 섭섭하다거나 미련이 남지 않았다. 2022년이라는 삼백 육십 오 일짜리 기간은 어차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없는 것이었고 설령 돌아갈 수 있어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다. 김경일은 한숨을 쉬었다. 훨씬 오래 전 김경일이 하급 연구원이였던 그 시절, 그 시절이 더욱 나았다. 2022년은 확실히 좋은 해가 아니었다. 이 기지 역사를 다 읊어봐도 이번 해만큼 끔찍한 해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있겠지만 한 번 흘러가버리면 끝이었다. 그는 2022년도 흘러가버리기를 빌었다.

1월. 새해 시작부터 코로나가 기지에 돌았다. 김경일을 비롯한 이사관이나 대다수의 이사관보들이야 애초에 면 대 면으로 남을 만날 필요가 크게 없어서 멀쩡했지만 어디서 코로나를 묻혀 온 현장 요원 하나가 방역망을 뚫어서 기지 내에서만 13명에 달하는 감염자가 나왔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사태도 순식간에 끝났지만 김경일은 길길이 날뛰었다. 어떤 단체가 고의적으로 변칙적 생물재해를 뿌렸다 해도 이렇게 뚫렸을 것이라며 기지이사관에게 몹시 따젔고, 이는 기지 이사관이 허허 웃으며 방역정책을 거대 기지의 것처럼 바꾸기로 한 것으로 끝났다. 그 달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4월, 곤충학과가 격리 중이던 거미가 탈출해서 기지 복도가 난리가 났다. 단 두 시간만에 재격리되었고 사망자도 없었지만 문제는 그 거미가 인식재해 거미라는 점이었다. 기지 인원 세 명이 심한 거미공포증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다. 제145K기지에 애초 격리 파기 자체가 흔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희한하고 불쾌한 일이였다. 그 달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8월, 선임 직원 하나가 업무 도중 실종되었다. 그냥 이 일은 이 일 자체로 끔찍했다. 실종된 박사가 제145K기지 변칙 개체 다수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무 혼선이 생기면서 제21K기지에서 급하게 인력을 충당해야 했는데 왔다는 놈이 하필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 기지 인원들과 대판 싸움질을 했고, 결국에는 그 인력까지 충당하기 위해 김경일 본인과 안영애 인사이사관보까지 연구 업무를 관리해야 했다. 김경일은 실종된 선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이 없고 유능해서 개인적으로 총애하던 사람이였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그 달이 돌아오기를 바라는지 아닌지를 잘 몰랐다. 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10월, 요주의 단체 심야클럽이 부안 도심지에서 심령능력자와 대판 싸움질을 했다. 도심지에서. 약아빠진 심야클럽이야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어찌어찌 되었지만, 심령능력자와 미친 듯이 싸우며 유리창 몇 장이 깨지고 쓰레기통이 뒤엎어지고 인근 전력망이 맛이 가면서 민간인 12명이 상황이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것까지는 그나마 나았다. 출동한 기특대 람다-7, 청소부의 요원들이 전자기 재해로 인해 보고를 잘못 받아서 양쪽 모두가 길을 열고 도망치게 둬버린 것도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요원 두 명이, 인간형 개체의 변칙능력에 당해서 심령독립체에 빙의되어 버린 것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 달은 확실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11월, 법의학과가 냉동실에 보관하던 여성 시신 한 구가 그냥 간 곳 없이 사라지는 사고가 있었다. 기지 전체에 화이트 경보가 발현되고 난리가 났는데 밈학 연구원이 사실 원래부터 시신 같은 건 없었고 시신이라는 정보가 변칙적 밈이라는 걸 밝히고서야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12월, 법의학과가 냉동실에 보관하던 여성 시신 한 구가 또 나타났다. 밈적 재해로 판단해서 난리를 친 후에야 일단락되었다. 그 달은 확실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나았다.

김경일은 서류를 덮고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등받이가 미동 없는 성벽처럼 그의 등을 받쳤다. 지겨운 해였고 고달픈 해였다. 아마 정상세계의 변칙이라곤 모르는 민간인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집중호우와 강설을 견뎌내면서 이 해의 가치는 부서져버렸다. 그래서 김경일은 새해를 기다렸다. 모든 일이 한 순간에 정돈되어 버리면 좋겠다는 희망적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기지에서 사망자는 없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했다. 김경일은 무엇에게 기도한 것이 십 년도 넘어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달이 하늘에 못 박힌 듯 걸려 있었다. 그는 외면했다. 기도만 하려 하면 몇 년 전까지 싸움을 이어왔던 주홍왕 숭배자 놈들이 웃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확보, 격리, 보호하라. 이성에 따라.

활용, 연구, 은닉하라. 인류를 위해.

김경일은 몇십 분간 고뇌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이미 2023년이 되어 있었고 그는 끝끝내 2022년에 있었던 기쁜 일은 찾아낼 수 없었다.




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폐쇄. 아무도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곳이 된 작년을 안영애 인사이사관보는 생각했다. 작년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유의미하게 많았다. 상담과 면담에 특화된 안영애는 그 모든 일들을 피부로 체감했다. 인원들은 메말랐고 지쳐 있었고 격리실의 지적인 변칙 개체들도 그 공기를 체감해 평소보다도 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재단에 들어온 이상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순간 더 큰 일을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 안영애의 좌우명이였다.

안영애는 침대에 눕지 않았다. 대부분의 날들을 탁자와 등받이 의자와 컴퓨터와 함께 보냈다. 어떤 전입 전출, 그리고 사망을 알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는 안경과 함께 2022년과 23년의 경계에서 졸았다. 졸다가 슬픈 생각을 하기를 반복했다.

22년 초 기지에 코로나가 터졌을 때 필수 인원이 아닌 인원들은 자가 격리를 거쳐야 했다. 대부분 이런 인원들은 1등급, 2등급 정도 되는 인원들이다. 이들은 자가 격리 상태로 업무를 수행하자 너무나도 빠르고 깊이 지쳤다. 일반 상황에서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료와 마주치고 적당히 수다도 떨고 여가도 즐길 수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불가능했다. 일하는 기계가 된 것 같아요.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기름칠도 해 주지 않네요, 하는 연구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안영애는 서러웠다. 제145K기지는 인원들이라도 자유로운 편인 기지인데 그것도 가능하지가 않았다는 점이 서러웠다.

22년 여름에 민수민이 사라졌다. 자기 전문 분야였던 심령 독립체를 연구하다가, 서서히 죄여오는 위기를 마주했고 사라졌다. 민수민 박사는 자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무미건조한 어투로 보고서에 첨부해서 제출했다. 그리고 끝내 이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니, 독립체에게 납치당했다. 한동안 을호-2를 비롯한 기동특무부대들은 민수민 박사를 찾아다녔다. 혹시 심야클럽 측이 알고 있을지 몰라 교섭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안영애는 민수민이 무미건조하게 눌러 쓴 글씨 사이에서 어떠한 감정도 찾아낼 수 없어서 서러웠다. 사람은 평생을 바쳐도 사람 하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적어도 수천 번째로 체감했다.

안영애는 사고로 빙의당해 자의식을 대체당할 뻔 했던 이들을 기억했다. 다행히 무속학부 측의 빠른 처치로 회복되었지만 알고 지내던 이들이 고통스러운 귀신의 소음을 내는 것은 확실히 익숙해질만한 것은 아니였다.

안영애는 끔찍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22년에도 어떠한 좋은 일은 있었을 것이다. 낙관주의자가 비관주의자보다 더 나은 것은 거짓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가끔 생각했다. 그리고 재단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순간 더 큰 일을 직면하게 되는 곳에서 낙관주의자들은 거짓 행복의 설계도를 보고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지금 생각했다. 안영애는 묶은 머리를 대강 풀었다. 두꺼운 옷 위로 쓸리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잠시나마 느껴졌다. 어디 보자.

1월 9일은 그의 생일이였다. 글쎄. 그렇게 기쁜 일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파일을 검토하고 면담을 진행하고 다른 이사관보들과 회의를 진행하느라 바빴다. 생일 선물이나 잔치는 농담에서나 나오는 그런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즐거웠던 것이 있다면 동료들이 개인 메세지로 생일을 챙겨준 것. 본인이 작년부터 계속 이러한 자잘한 이벤트를 챙겨준 것이 의미가 있구나 싶어서 생일만큼이나 기뻤다.

3월 13일, 열 살 짜리 인간형 개체 하나가 갑자기 변칙성이 사라졌다. 아마도 다른 변칙 개체와 접촉해서 내부 흄 준위가 재정상화된 것이 원인일 듯 싶었는데, 몇 주를 꼬박 감시 및 연구한 끝에 다시 가족에게 돌려보낼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이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인간형 개체는 담당 연구원에게 감사합니다 아저씨, 하고 인사했다. 안영애는 이를 보며 참 기뻤다. 없는 게 낫다. 어린애는 기지에 없는 게 나아. 안영애는 미소를 지으며 하룰 살았다.

7월 5일, 인원 둘이 결혼을 했다. 둘 다 안영애와 면식이 있었는데 발표를 할 때 까지 그는 눈치조차도 채지 못했다. 발표를 듣고는 그냥 웃었다. 예상치 못하게 즐거웠다. 결혼식은 가까운 재단 소유 빌딩에서 소박하게 치루어졌다. 당사자들은 즐거워했고, 만족했고, 그냥 웃었다. 안영애는 남편 쪽이 석 달 전에 인식재해 거미가 격리를 파기한 것을 재격리해내고는 자신만만히 웃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아내 쪽이 두어 달 전에 지속가능격리개발과에서 실험 논문을 다 마치고 웃던 소리를 기억했다. 안영애는 즐거웠다.

확보, 격리, 보호하라. 이성에 따라.

활용, 연구, 은닉하라. 인류를 위해.

안영애는 그날 잠을 세 시간 잤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기지 인원들에게 새해 축하 인사를 발송했다.




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솔직히 그는 오늘 밤이 무슨 밤인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언제나 밤은 무척이나 바빴고, 누군가에겐 생사를 다투는 시공이 밤이였다. 그는 목적지로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가 되어서야 이를 깨달았다. 올해가 끝났다고, 그는 미묘한 표정밖에 지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올해. 정상과 초상의 세계 양측에서 온갖 불운한 사건이 일어난 그 해를 윤성재는 기억했다. 비단 심야클럽이라는 조직이 성장했다고 좋아할 수 없었다. 솔직히 유령들의 조직이니만큼 정상세계의 피를 먹고 성장하는 거야, 누군가 했던 조롱이 떠올랐다.

윤성재는 사고가 막 수습된 도로변 가까이 섰다. 아직도 죽음의 기운이 너무나도 선연하게 느껴졌다. 그 기운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윤성재는 새삼스럽게 불쾌했다. 죽음의 감각은 윤성재 본인이 열일곱의 나이로 죽어버리고 그 후 그가 소년에서 부장으로 성장하며 비교적 흐릿해졌지만 남의 죽음은 팔십 년간 너무나 자주 보았다. 윤성재는 천천히 걸어가,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없는 사망자의 망령을 찾아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목을 쥐고 들어올렸다. 가만 두었다간 지박령이 되어 애먼 대에 해코지를 하고 재단에게 붙잡혀버릴테니 신속한 작업이 필요했다. 마치 뒤틀린 왈츠처럼 손을 잡고 일어난 망자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였다. 윤성재는 차차, 상황을 설명하며 은연중에 발걸음을 옮긴다.

밤은 미친 듯이 차갑고 달은 하늘 어데 못박혔으며 바람은 거세다. 윤성재가 앞서서 천천히 걸었고 가로등에는 그 그림자가 전무하다. 윤성재는 죽은 채로 맞는 또 다른 한번의 새해를 기다린다. 내년에는 비밀 조직들 마주치는 일 없이, 클럽 회원들 모두 무탈하기를 빌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다가 잠시 고개를 숙인다. 내년에는 그가 사랑하는 아무도 세상을 뜨지 않기를 바랬다. 모두가 무탈하기를, 그리고 건강하기를, 아무도 바람에 날려 떠나지 않기를.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소서. 모든 떠난 이들이여. 윤성재는 묵념하고는 거리를 떠나갔다.




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이게 끝이야? 세을가교도 강은수는 별 감정이 없었다. 세을가 교리는 지나친 모든 것과 집착을 경계시했다. 그러므로 그리 커다란 의미가 그에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고향을 떠나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외롭기도 한 일이였지만 이 또한 홀로 된 고난이겠지. 강은수는 낙천적이였다. 올해는 이제 폐쇄되고 내년이 올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보이겠다고 그는 독백했다. 저 밤, 도시의 사이로 어두운 존재들이 지나갔다. 강은수의 손이 꿈틀거리더니 반쯤이 송곳으로 변했다. 그는 바람처럼 저 밤 너머로 달려나갔다.




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신보라 현장 요원은 변화에 민감했다. 그 또한 느끼고 있었다. 변화. 2021년과 22년의 변화, 그리고 그 다음의 변화. 이런 변화를 느끼면 신보라 요원은 종종 그 누구도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악몽을 꾸었다. 낮은 좋지만 밤에는 무엇을 마주할 지 몰라 괜스레 일 중독 코스프레를 하거나 하며 버티기도 했지만 그는 이제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인 것을 알고 천천히 숨을 쉬며 누웠다. 그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밤은 깊어간다. 신보라는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듯 잠에 빠진다.

꿈에서 2023년으로 추방된 신보라는 밤을 본다. 그 밤은 길게 늘어져서 바닥에 끌리고 자신이 아는 기지마다 탐조등이 켜진다. 새로운 시대의 모든 것들. 그리고 새로운 모든 것들을 신보라는 본다. 푸르게 부유하는 미래의 신시대. 신보라는 거기서 희망과 불길함을 동시에 느끼고 기지의 숙소 너머로 유령처럼 날아간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본다.

무한한 우연이 힘과 독의 말들을 짜내고 그곳에서 떨어지는 푸른 잉크 사이로 새로운 말들과 함께 우주를 그린다. 우주에는 인간성을 담은 방주가 유영하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무게와 비틀림을 찢어내는 별들이 빛난다. 이빨을 닮은 거대한 별. 새로이 시작하고 보완하며 나아가려는 별들에게 젖먹이는 불가사리의 별자리. 그 모든 것들은 신보라 요원의 미친 듯한 기억과 창의력의 이름으로 쫘맞추어진 모든 것들이다.

신보라는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밤하늘을 번뜩이는 붉은 세 각의 증오가 맴을 돌고 자신의 인가로는 모르는 기지에서 어린애가 조용히 잠을 잔다. 그리고 모든 시신으로부터 죽은 자의 영혼처럼 기어나오는 벌레들, 억압된 자들이 멀이는 숭고한 꽃과 풀의 고대 전쟁, 면면히 보이는 웃음이 기원된 어느 비존재하는 나라의 이름.

신보라는 거기서 무엇도 알 수 없다.

무한한 우주가 보는 죽음, 칼이 맞부딪히며 나는 날선 소리와 칼날의 빛, 미칠 듯이 날뛰는 폭풍 아래서 교미하는 벌레떼가 보이고 형용할 수 없는 공허가 우리 우주에서 우리를 지워버리려 하는 권위적 태도가 피부로 느껴지는 동안 신보라는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꾼다.

지리멸렬한 요소의 꿈일 뿐 아무 것도 아니야.

거대한 빛구름이 하늘 위에 뜨면 다시금 밤은 오고 텔레비젼 쇼가 은유하는 역사 속에서 낮이 또 온다. 새천년에서 울고 웃는 모든 이들 면면히, 거대한 성에서 과거를 그리며 날을 세우는 이들 면면히, 그릇되고 비윤리적인 재단의 의지로 만든 기묘한 기계들과 그 사이에서 대체되어 죽어가는 이들 틈틈히 변화가 느껴진다.

알 수 없으나 느낄 수가 있었다.

신보라가 모르는 어느 사람은 재단에서 죽어가면서 최후의 어떤 것을 남긴다. 언제나 그랬듯. 신보라가 그것들을 주워주기 위해 방 안에 다가서면 바깥에선 미친 듯이 흐즈러진 생명 없는 꽃들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신보라는 재단의 빛나는 로고가 자기 가슴팍에 달린 것을 본다.

다음 해도 변화합니다. 하지만 재단과 한 번만 더 함께해주십시오.

그는 대답할 수 없다. 작년은 폐쇄되었다. 그러나 미래가 열린 것을 알고 신보라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망설였다.


작년은 폐쇄되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식으로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닫힌 문 안의 것들을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열려 있습니다. 결심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죠.

윤도하 이사관보는 인공지능징집병의 재롱에 피식 웃엇다. MiAE.aic, 너는 과거를 기억하니. 혹은 너는 왜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니.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냥 웃는 게 다였다.

웃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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