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슨 T. 윈체스터 3세의 일지의 발췌본

이하는 해리슨 T. 윈체스터 3세의 일지에서 1898년의 카터 원정대 및 SCP-2292와 관련 있는 내용을 가려내 발췌한 것이다.

1898년 10월 14일

마타디(Matadi)에서 접선해서 다크 씨가 찾아 달라 부탁한 신비한 곳을 찾아 콩고 강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지금 타고 있는 플레기아스(Phlegyas)는 인상 깊은 증기선인데, 다크 씨가 특별히 주문제작했다고 한다. 카터 씨라는 양반이 탐험대를 감독하고 있는데, 다크 씨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인물 카터 씨는 하인 하나를 데리고 있는데, 무뚝뚝하지만 당당해 보이는 터키 사람이며 이름은 부락(Burak)이라고 한다.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뉴사우스웨일스에 살던 난폭한 범법자로 어떻게 법망을 빠져나왔다는 잭 문(Moon)과 네드 문 형제. 미국 두피사냥꾼1부터 [콩고]자유국에서 집행관으로 일하던 사람까지 몇몇 용병들.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 하는 러시아 맹수 사냥꾼 페트로프(Petrov). 러시아 친구보다도 말이 더 안 통하는 웨일스 의사 블레딘(Bleddyn). 허구한 날 "오드의 힘"이라든가 죽은 신 이야기나 지껄이는 영국 신비학자(황금여명회2 소속이었나… 신지학자3였을지도) 루시우스 앰브로즈(Lucius Ambrose). 그리고 콩고인 몇 명, 노동자라든가 통역사, 가이드 같은 사람들.

1898년 10월 29일

폭력은 미개인들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인가 보다. 압력과 위협을 쓴 끝에 다크 씨가 부탁한 곳과 관련 있는 정보를 뜯어낼 수 있었다. "난시 야 은토틸라(nansi ya ntotila)" 또는 "지하 왕국"이라 이름 붙은 곳인데, 모든 것이 절대 죽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원시스럽고 야만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미신일 뿐이다. 카터 씨가 그네들이 지껄인 말에서 뭘 깨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륙해서 동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1898년 11월 2일

11월 1일 재앙이 닥쳤다. 수코끼리에게 공격당했다. 무슨 퇴행성 질환 때문에 미쳐버린 놈이었다. 몸은 썩어 들어갔고 뼈며 힘줄이며 맨눈으로 다 보이는 놈이었는데도 참도 잘 살아서 돌아다녔다. 흑인놈들은 두 명만 빼고 밟혀 죽었고, 그 괴물은 우리 측 사람들 세 명을 난폭하게 들이받아 버렸다. 나중에 문 형제가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그놈을 날려 버렸다.

신에게 맹세하고 말하는 건데, 자연의 법칙에 대들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 숯 다 돼서 흩어진 시체는 죽고 나서도 여전히, 오랫동안 움직였다.

1898년 11월 8일

피그미 부족 하나를 찾았다. 기독교 국가가 베푸는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부족이었다. 이네들을 예속시키기는 참 쉬웠고, 족장에게 본보기를 한 번 보여주니까 나머지는 손쉽게 우리가 하는 말을 따랐다.

마을 중앙에는 이교도들이 쓰는 제단이 있었는데, 카터 씨는 이에 특별하게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제단은 이상한 돌을 조각한 것인데 부드럽기는 현대 기계로 깎은 것과 같았고, 금으로 세공한 이상한 무늬를 둘러치고 있었다. 틀림없이 보물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증거일 테다.

1898년 11월 16일

이름 모를 문명의 폐허를 어쩌다 발견했다. 신비학자는 틀림없이 아틀란티스의 오래 전에 사라진 식민지라고 믿고 있다. 이 사람 주장을 내가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는 중요한 건 아니고, 적어도 이런 곳을 만든 사람들은 우월한 민족일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다.

문 형제 중에 네드는 교육을 전혀 못 받았다는데도 그림에 놀랍게 소질이 있다. 이 일지에 에칭 몇 개를 그릴 수 있도록 허락했다. 오늘 발견한 놀라운 것들의 증거로 삼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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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2292-3을 그린 에칭.

1898년 11월 19일

태양은 며칠째 코빼기도 안 보이고, 폐허는 우리를 땅 속 깊은 곳으로 이끈다. 땅이 늪이며 습지인 걸 보니 질문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이 도시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네덜란드처럼 운하나 댐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고대 민족의 기술 능력 안에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

피그미족은 사라졌다. 무서워서 도망간 모양이다. 겁쟁이 몇 명은 쏴죽일 수 있었다만, 결국 대개는 도망갔다. 속이 시원하다, 참. 어차피 이젠 필요도 없으니까.

몇몇 조각상이 얼굴이 세월 탓에 닳은 채 우뚝 서 있었다. 벽에는 기호가 새겨져 있는데, 피그미족 제단처럼 금으로 세공해 놓았다. 상형문자 각각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런던에 더 가져갈 수 있는 증거니까. 고고학 팀을 꾸려서 왕실 지원만 받아서 돌아오면… 이 땅이 다 내 거라고 선언만 하면… 엄청 부자가 될 수 있을 테다. 기사 작위 받을 수도 있을 테지.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다. 명성과 부가 나를 기다린다.

1898년 11월 20일

벽이 남자와 여자, 동물과 괴물을 그리고 있다. 괴물은 상상 속의 괴물로, 악어 머리에 코끼리의 상아, 하마의 몸을 한 모습이다.

벽에 그려진 남자들은 무기를 든 적 없다. 자기네들 규칙상에서 전쟁이라는 것 자체를 근절했는가 보다. 그림은 예술성이 뛰어나서 고대 그리스라든가 이집트에도 견줄 만하다.

벽에 있는 그림들은 어리둥절하게도 거무스름한 얼굴에 흑인종의 특징을 띠고 있다. 종놈들인 모양이지, 분명. 골상학 관점에서 봤을 때 저런 놈들이 이렇게 거대한 문명을 건축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이 제멋대로 퍼져 나가는 미로는 끝나는 티도 없이 계속된다. 카터 씨는 얼굴이 파리해져서는 몸가짐이 예민해졌다. 터키 하인은 속을 모르겠지만 다른 놈들은 불안한 기색이다. 그림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 보인다. 곁에 사람도 없는데 속삭이는 소리도 들린다.

아마도 햇빛을 오랫동안 못 봐서 머리가 돌았나 보다. 그래. 그래서 그런 거겠지.

이제야 안전해졌다. 지난번에 쓴 일지 뒤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에 우리는 고대 왕의 궁궐일 수밖에 없을 어떤 곳에 도착했었다. 왕좌만 해도 그 크기가 엄청났는데, 왕좌는 돌 고릴라 두 개가 높이 받치는 꼴이었다. 신화 속에서 아틀라스가 하늘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왕좌에는 미라가 된 시체가 앉아 있었는데, 시체는 금 장신구(지금까지 견줄 만한 것을 본 적 없을 만큼 아름다운 왕관까지 해서)와 비단만큼 부드러우며 하늘색으로 물들였지만 낡을 대로 낡은 천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손은 아직도 화려하게 장식된 지팡이를 붙잡고 있었는데, 카터 씨가 유물을 아래위로 쳐다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흘끗 보였다. 이걸 찾아왔던 건가? 그런 것 같다. 망설이는 것 없이 미라의 손에서 지팡이를 뜯어낸 걸 보면.

그때 우리는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카터 씨는 그 소리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런 시련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동물들이, 게다가 사람들이, 그림자 속에서 기어나왔다. 모두 그때 그 코끼리 같은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썩었다, 이런 세상에, 썩었었다. 분명 죽어 있어야 하는데. 산송장마냥 뼈가 살 사이로 비쳤다. 기어나오고 기어나오고, 정말 끈질기게 기어나왔다. 너무 심하게 상해서 무슨 놈이 무슨 놈인지 구별도 못할 정도였다. 다양한 괴물을 조립해서 만든 키메라나 같았다. 소총을 쏴서 원숭이놈의 해골을 날려 버렸다.

그랬는데도 움직였다. 아직 움직였다. 깨부술 수 있는 놈들은 다 깨부쉈다. 물러나고 기운 차리고, 다가오는 놈들을 막으려고 폐허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면서. 아직도 뼈와 발톱이 돌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 말도 안 되는 자식들이 만드는 소리는 오직 울부짖음 아니지. 그 으르렁거림은 침략자 쪽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는데. 가까우면서도 먼 소리가 높은 곳에 숨어서 보고 있는 마냥 들려왔었다.

전에 이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암흑 대륙4으로 전에 탐험을 떠났을 때. 실버백(silverback)5의 울음소리였다.

신비학자가 죽었다. 침략자 무리에게 갈가리 찢겨졌다. 천천히, 조심해서, 우리는 움직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실버백은 몇 번 우리 앞에 나타났는데, 우리 공격을 가볍게 떨쳐내고는 어둠 속으로 달아나곤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를 않는다. 괴물을 유혹하려는 건가? 카터 씨에게 답변을 요구했지만 그는 묵살했다.

상관없을지 모르겠지만, 터키인이 노려보는 눈빛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마지막 항목 뒤의 페이지는 없어졌다. 분명히 일지에서 일부러 뜯어낸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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