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평가: +3+x

환영합니다 O5-6. 아니, 나의 계승자여.

아마 많이 놀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눈을 뜨니 웬 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 같은 곳에 와있고 머리맡에는 또 웬 편지 한 장이 놓여있으니 말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적대 조직에게 납치됐다거나 하는 위험한 상황은 아닙니다.

당신은 승진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SCP 재단의 관리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갑작스럽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업무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니, 훨씬 줄어들었다고 봐야겠죠. 재단 설립 초창기나 재단의 3분의 1이 나가 떨어진 내전 직후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관리자는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일은 O5 평의회 밑에서 해결되니까요. 사실 이 자리는 반쯤 상징적인 자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관리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가 차근차근 알려주겠습니다.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으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SCP-001-KO에 관한 업무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바로 아폴리온 규약입니다.

SCP-001-KO와 관련있고 이름도 굉장히 거창하며 관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 아주아주 비밀스럽고 웅장한 규약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 실체는 아주 간단합니다.

방관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방관! 간단하다 못해 아주 무책임한 말입니다. 여기에는 이 규약 만큼이나 간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한참의 반복 이전에 (얼마나 많은 반복이 있어왔는지는 모릅니다. 그때는 그저 환각이라 생각했거든요.) '마지막'은 보다 전통적이고 또한 상식적이었습니다. 전쟁, 전쟁, 전쟁. 전 지구적인 전염병도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기록을 시작하기 전 기억이라 잘 모르겠군요.

전 수백, 어쩌면 수만 번의 반복을 겪고 나서야 이것이 단순 정신병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환각에 굴복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아무튼, 전 제 연줄과 자산을 총동원하여 '마지막'을 막아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사람이 죽었지만 '마지막'에서의 전쟁에 비하자면 꽤나 양호한 수준이었죠. 전 아주 기뻤습니다. 세상을 구했으니까요.

하지만 환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떠오르는 기억들은 변했고 '마지막'도 변했습니다. 전쟁이란 단어를 넘어섰죠.

반복에 반복을 거쳐 SCP 재단이, 온갖 변수들을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하는 조직이 설립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자들, SCP-001-KO-1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재단을 설립한 이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뭐 '마지막'을 본 자는 저뿐이었지만요. 그야말로 운명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자 도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마지막'을 막아냈습니다. 해당 '마지막'은 현재 GH-0 '죽은 온실' 시나리오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환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더, 더 끔찍해져서 돌아왔습니다. 마치 우주 자체가 불합리와 부조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승리를 바탕으로 우린 다시 한 번 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해당 '마지막'은 현재 NK급 세계 종말 시나리오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11번의 승리 이후 전 절망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승리해 놓고 절망을 하다니.

우리가 한 발짝 내딛자 '마지막'은 두 발짝 내딛었습니다. 우리가 두 발짝 내딛자 '마지막'은 네 발짝 내딛었습니다. 우리가 반칙까지 써가며 수백 발짝 내딛자 '마지막'은 우릴 비웃으며 몇 곱절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전 아폴리온 규약을 제정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아폴리온 규약에 대해 이해했다 생각하겠습니다. 물론 이 규약을 반드시 준수하라는 건 아닙니다. 이제 관리자는 바로 당신이니까요. 전 은퇴와 기억소거를 앞둔 늙은이일 뿐입니다.

아무튼, 끝나지 않는 찬송가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기를 빕니다.

— 前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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