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찾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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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심야클럽의 회원들은 지극한 민간인들이었다.

어느 날 불행한 사고로, 혹은 명이 다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죽어버린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그 말인즉슨 이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감정에 휘둘리기 쉽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 도우려고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을 듣던 중년이 울먹거리나 싶더니, 이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소년 또한 착잡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저, 근데… 아이돌이 무용수 말하는 거지?

분위기는 급변했고, 답변은 썩 달갑잖다는 어투로 돌아왔다.

—부장님, 왜 티브이 보면 춤추고 노래하는 뭐, 그룹! 그룹 같은 애들 있잖아요.

—그게 무용수 아닙니까?

…앞으론 책만 읽지 마시고 밖에 나와서 티브이도 좀 보고 하세요.

소년은 머쓱하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다시금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저기, 이름이 뭐지?

그녀는 작게나마 기대감에 차 대답했다.

—지혜요, 황지혜.

—그래, 지혜야.

소년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 꿈, 우리가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듣자마자 소녀는 의심과 공포심도 잊어버리고, 그게 정말이에요, 하고 벅찬 감정을 터트리려 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기대하지 않은 답안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지금 무슨 꿈을 이루어줘요?

여자 하나가 복도 저편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쇼파에 주저앉듯 몸을 기대었다. 남색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껌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모습은 심히 불량해 보였다.

—어, 유 부장 왔는감?

그러나 그녀는 이래봬도 심야클럽의 외교부장이다.

심야클럽의 외교부장이란, 귀신 수백을 대표하여 외부 단체에 의견을 전달하고 교섭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지금 외교부장의 직책을 맡은 것이 그녀였다.

—난 반대.

그리고 그녀는 반대표를 던졌다.

—…왜죠?

—정신 나갔습니까? 무슨… 아이돌이요? 장난하십니까?

유서진의 얼굴은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재단이니 연합이니, 짭새들까지 난리에요! 그런데 무슨 우리 여기 있다고 동네방네 떠들 계획을 세우고 있네.

외교부장은 잠시 말을 마치고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이돌이 말이 됩니까? 귀신 아이돌이? 분명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춤추고 노래하는 꼴을, 가뜩이나 날뛰는 비밀기관이 잘도 보고 있겠습니다? 인사부장씩이나 되어서 이렇게 꿈만 꾸고 있을 겁니까?

어투가 갈수록 거칠어지자, 소년도 유쾌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기는 힘들었다.

—유 부장님. 말이 또 심해지시네요.

그리고 공기가 변했다.

—제가 말을 좀 곱게 하시라 말씀드렸는데.

소년을 중심으로 귀살스러운 힘이 퍼져나갔다. 일순간 유서진은 차가우리만치 생기 없는 기운을 느꼈다. 지금부터는 네 의견 따위는 허락받지 못한다는 듯, 윤성재의 표정이 굳어감에 따라 그 기운도 강해졌다.

—인사부장님은 퍽이나 곱게 말하십니다?

유서진은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온갖 단체와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악수를 청하는 자존심 강한 외교부장에게, 이런 다툼에서 굴복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였다. 비록 살아있는 육신이지만 유서진은 클럽에서 가장 강한 귀신만큼이나 독살스런 인물이었으니.

—인사부장님! 유 부장! 아, 또 이러네!

창백한 알력을 막아선 것은 중년의 회원이였다. 그는 몸짓까지 크게 해 가며 둘의 갈등을 막아내려 발버둥쳤다. 그러나 둘은 계속해서 서로를 노려보았고, 금방이라도 어떠한 폭발을 일으킬 듯 했다.

그리고 싸움은 그 사람의 등장으로 끝났다.

—저… 안녕하세요. 황지혜입니다.

중년 회원 뒤에 숨어 있던 그녀는, 빼꼼 고개를 내밀고 목례를 해 보였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차디찬 분위기를 녹이고, 두 부장들은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어, 지혜 양.

—네가 그 아이돌 한다는 걔구나?

유서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이야, 꼭 나 닮았네.

황지혜는 그 말에, 외교부장과 자신이 대체 어디가 닮았는지 애를 써서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여성인 것, 머리가 검은빛인 것, 그리고 기본적으로 눈이 두 개나 코가 하나, 그런 것을 빼고는 도통 닮은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유 부장님. 그럼 지혜 양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아, 그렇네. 내 지금 몸 말고, 원래 몸.

기이한 만담을 들은 황지혜는 더 이상 자신의 상식을 믿지 않기로 했다.

—가끔 이렇게 좀 삐걱거렸다 돌아오고 그래. 그래도 평소에는 친하니까 괜찮아.

중년이 황지혜에게 속삭였다.

그럼에도, 유서진에게는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신입의 인사에도 아직도 그녀는 영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였다.

—거기 윤성재 인사부장님.

자신의 이름에 강하게 힘을 준 호출이 들려오자, 소년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이돌 시켜줄 방법은 있고요?

—그 뭣이냐. 아이돌도 면접 같은 거 보지 않나?

—…오디션.

유서진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황지혜의 경우, 자기 또래—어쩌면 자기보다 어려뵈는 남자애가 세상 물정이라고는 모르고 있으니,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미친 소속사가 죽은 사람 오디션을 봐 준다고요?

—…그건 그렇네. 소속사들은…

윤성재는 뭔가 비장의 수가 있다는 듯이, 여즉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지. 하나 있잖아요? 소속사가. 유 부장님도 아시는 곳인데.

—그런 게 있어요? 뭐 재단 감옥 안에 있습니까? 전 그런 거 모르는데…

유서진은 무언가를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돌과 뮤지션의 '소속사'와 그나마 흡사한 조직.
귀신을 받아줄 정도로 기이한 것에 익숙한 조직.
유서진 본인이 아는 곳.

—잠깐만요, 설마.

윤성재는 네 말이 맞다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어느새 소녀는 자신의 멈춘 심장이 잔잔히 뛰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설령 착각일지언정.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김남조, 정념의 기 中




유서진 외교부장은 의자에 앉았다.

비즈니스 정장은 몸에 맞지 않았다. 등떠밀려 외교부장이 된 그녀에게, 정중한 외교는 몹시 낯선 일이였다. 대부분의 외교는 '따스한 쌍방외교의 손길' 보다는 심령 억압자들에게 행사하는 쓴맛과 폭력에 가깝게 진행되었으니.

그나마 상대가 한 번이나마 뵌 적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위안이였다.

—또 보는군요. 유서진 심야클럽 외교부장님.

그녀의 상대편에 앉은 이는 중년 여성이였다. 검은 코트를 걸치고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품이 흐르는 듯 했다.

—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응오티한 부단장님.

상대는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다른 단체와의 접촉을 원한다'는 회원들 등쌀에 한 번 교류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난 것은 처음이였다.

—저희 쪽과 나눌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극단의 부단장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아, 예. 그… 저희가 극단에 단원을 입단시키려고 합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클럽의 외교부장은 속으로 '이게 아닌데'를 반복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것뿐인가요.

—…예?

예상하지 못한 간단한 답안에, 유서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라면 굳이 계약이나 회의 같은 건 필요 없답니다.

—정말입니까?

—그야 저희 극단은 자유를 추구하니까요.

부단장은 여전히 기품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뻘쭘해진 유서진은 속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욕을 퍼부어 보였다. 어떤 새끼가 무슨 프로듀싱이니 오디션이니 한 거냐며.

—아. 한 분만 입단하시는 거죠?

—예. 그리고… 그 회원이 죽었거든요. 그러니까 귀신.

—귀신이라… 그럼 적합한 '잎' 밴드, 그러니까 하부 팀을 찾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겠네요. 혹시 그분께서 데스메탈에 관심 있다고 하시나요? 아니면 다른 밴드?

그녀는 결국, 음악 단체의 부단장 면전에서, 입에서 맴돌던 그 단어를 꺼내었다.

—…아이돌이 하고 싶답니다.




—나 왔습니다.

유서진은 모텔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건물은 조용했다.

—거기 누구 없어요?

잠시 침묵.

—다녀오셨습니까?

갑자기 어둠 속에서 인사부장이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문자 그대로 귀신을 본 듯한 얼굴이 되었다.

—놀랐다면 죄송합니다. 아직도 엊그제 일로 기분이 덜 풀리셨나 하고.

—풀렸는데 지금 다시 꼬였고요. 아무튼 악단이랑 교섭은 성공했습니다. 다행히 그쪽 부단장이 한국에 있더라고요.

유서진은 피로를 강조하려는 마냥, 괜스레 하품을 하고는 기지개를 켜 보였다.

—굳이 부단장과 만날 필요까진 없었습니다. 거의 헛걸음했죠. 뭐, 그쪽 밴드 중에 아이돌스러운 걸 찾아준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잘 됐군요. 그나저나, 엊그제는 미안했습니다. 황지혜 회원 외관을 조정해주느라 피곤해서 좀 예민했습니다.

윤성재가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저도요. 요즘 너무 바빠서 예민해졌나 봐요.

유서진의 사과 속에는 교묘한 가시가 있었다. 소년 유령은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그건 무슨 말입니까? 엊그제, 비밀기관이 더 날뛴다니.

—모르셨군요.

유서진의 눈빛이 가볍게 떨렸다.

—재단이 클럽 전담 특무부대를 조직했답니다. 귀신 잡는 특무부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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