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싫은 신님
평가: +7+x

“여보세요? 야, 이년아, 또 그놈의 다단계 얘기하려고 나한테 전화 걸었냐? 내가 직업이 없이 사는 거는 직업 가질 필요도 없고 직업 가질 생각도 없어서 그렇게 사는 거지, 세상에서 받아줄 사람들이라곤 너네 같이 사람 등쳐먹으면서 사는 놈들밖에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요, 문희 삼춘. 아뇨, 삼춘한테 그렇게 말했다는 게 아니라 그 여자한테 그렇게 말했다고요. 내가 생각 없다고 해도 어찌나 전화를 걸어대는지, 삼춘 번호 불러보라고요? 에이 설문희 삼춘, 그런 게 아니고 저 제 친구들 전화번호도 몰라요. 아니 그거는 내가 친구들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지. 어? ……어, 그렇지, 사실 애초에 친구가 없는 건 맞지. 맞는데, 그래도 이제 만약에 있다고 쳤을 때 친구들 전화번호를 몰라도 폰에 연락처가 다 저장되어 있으니까 그걸로 전화를 걸면 된다 이 말이지. 삼춘 연락처는 왜 저장이 안 되어있느냐 하면…… 어…… 으으으.”

“직업이요? 직업, 그, 뭐시기냐 저번에 말했던 거, 어 그거, 횟집에서 일해요. 그래요, 횟집. 직업이 없이 산다고? 누가 그래? 내가 그랬어? 언제? 아까? 아, 그거는 이제, 어, 그 여자한테 직업 같은 거 관심 없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전화 안 할까 봐서, 근데 또 전화를 하더라고? 에? 아, 그냥 횟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게 더 낫지 않았겠냐고? 맞지. 근데 굳이 직업도 없고 직업 가질 생각도 없다고 가짜로 말하는 게 더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맞지. 사실 횟집에서 일한다는 게 구라고 사실은 백수로 살고 있다는 게 진짜인 거 아니냐고? 어어어어어…… 맞지. 예. 예, 지금까지 계속 구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예, 맞습니다. 예. 아니, 아니, 삼춘, 문희 삼춘, 일단 내 말 좀 듣고 난 다음에 나를 걸레짝인지 모래사장 해파리인지로 만들어도 되잖어. 어차피 거기서, 거 어디랬더라. 13이랬나 14랬나? 13? 어, 거기서 오려면 비행기 타고 와야 하잖아, 그치? 아니라고? 전용 헬기가 있어? 야, 삼춘 재미있게 사네. 아니, 여하튼 내가 뭔 얘기 하려고 이러는 건지 알죠? 그렇지? 일단 들어봐봐.”

“우리는 원래 신이었잖아요. 삼춘이나 나나. 딴 데면 몰라도 제주에서 우리 이름 모르는 집이 없었지. 또 모두가 삼춘을 진짜 자기 할망인 것처럼 모셨고. 나는 어때? 매년 내가 섬에 찾아가는 날만 되면 사람들이 제 식구 온 것처럼 기뻐하면서 잔치를 열어 줬지. 나는 보답으로 바다에 생명을 퍼뜨려서, 섬사람들이 그 바다의 생명을 통해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줬고. 내가 머무르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배도 안 타고 빨래까지 안 했던 거, 기억나요?”

“그때는 그랬지. 그때는. 그런데 지금은? 문희 삼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야 있지만 옛날처럼 제 집 할망인 게 아니라 마치 옛날옛적 고 씨나 부 씨한테 할망이었던 사람인 양 먼 사람으로 생각하지. 그냥 남인 거야, 남. 이렇게 되니까 나도 큰일 났지. 전에는 섬사람들이 섬이랑 바다 말고 어디에서 벌어먹고 살 수가 없으니 나만 보고 살았지만 지금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 이제 나는 섬에서 VIP가 아닌 거야. 슬프더라고요. 근데 이해는 되니까 또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예. 예. 안 그래도 다른 신들이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나더러 화 좀 내라고. 나도 내 봤어. 내 봤는데, 삼춘도 알잖아, 나 그런 거 잘 못해. 옛날에 집 몇 군데에 저주랍시고 한 번 했더니 글쎄 그 집에 구더기가 들끓잖아. 내가 지금도 잠자리가 추우면 꿈에 구더기가 기어나와. 정작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다 죽어서 삼춘 품에 돌아간 지 천 년도 더 됐는데 나는 여전히 구더기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니까? 예, 아무것도 안 하는 신만큼 나쁜 신이 없지요. 삼춘이 이미 내 귀에 딱지 얹도록 한 얘기가 그건데 어떻게 잊어먹겠어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여기서 뭘 해야 돼, 섬사람들이 나한테 해달라고 부탁하기는커녕 시키는 것도 없는데? 예, 그, 예에……”

“……하지만 직업은 갖기 싫은걸.”

“그치만, 그치만…… 직업은 재미가 없잖아. 직업이라는 거는, 그러니까, 예전에 섬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배 타고 나가서 물고기 낚고, 바닷가에서 생선 비늘 막 벗기고 그런 거를
직업이라고 하는 거잖아요. 아니 삼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이거는, 좀 아니라고 봐.
바다를 막 쏘다니면서 생명을 퍼뜨리고 그러는 거는 재미있는데, 그런 거는, 직업 갖고 사는
거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없어도 너무 없을 것 같아.”

“아니,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되지, 어, 음, 봐봐, 예를 들어서 문희 삼춘이 지금 하고 있는 그거는 확실히 재미가 있어 보여, 음. 멋있는 건물에 높은 자리에 앉아서 이제 막 명령을 내리면 이제 사람들이 그 명령을 받고 막 움직이잖아. 그거는 이제 재미있죠? 예에, 문희 삼춘도 재미있다고 인정할 만큼 멋있는 거 하면서, 이제 삼춘은 그러면서 살고 있어. 근데 이제 나도 그런 걸 할 수 있느냐는 거지. 나도 재단인지 뭔지 하는 거기 들어가도 돼요? 삼춘이 추천서라던가 써줄 수 있어? 안 되지? 나도 그럴 것 같았어.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거야, 아 나는 뭘 해야겠다면 재미있는 거 하겠다! 재미있는 걸 못 해서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겠다! 이런 거지. 나는 죽어도 직업은 갖기 싫…… 어라?”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직업인가?”

“……문희 삼춘 지금 직업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럼 직업이 재미있는 거야???”

“아니 잠깐만,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삼춘, 나 직업 가질래! 어, 어떻게 하면 돼? 나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 다른 사람들 말하는 거 보니까 막 학력인지 뭔지 하는 거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거 혹시 재단에 있어요? 아니지, 대학교에서 따는 거라고 그랬었나? 근데 대학교는 어떻게 들어가는 거야? 나 뭐부터 해야 돼? 이걸, 어, 아, 에? 나 어떡해? 나 어쩌면 좋아요? 어, 어, 어어어어어어……”

“알았어요. 후우우우우. 일단 진정부터. 후우우우우. 예? 프리 뭐요? 프리랜서? 그건 무슨 직업인데? 직업이 아니면 왜 하라고 하는 건데? 아 직업 중에 프리랜서인 게 있다고? 아아, 어디 직장 같은 게 없이 혼자서 하는 게 프리랜서라고? 아아아아아. 근데 그거는 또 어떻게 해서 시작하는 거에요? 그냥 하면 돼? 막 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아요? 나는 신이라서 될 수도 있다고요? 어, 그런가? 그러면, 어, 삼춘, 그러면 이제, 예를 들면 내가 비행기 타는 거 엄청 좋아하잖아, 그럼 뭐 비행기랑 관련 있는 걸로 프리랜서 해도 되는 거야? 정말? 아, 조종사나 승무원 하려면 입사를 해야 된다고? 그럼 못 하겠네? 다른 거? 예를 들면? 바깥을 보라고?” “뭐? 어디? 아, 어, 보여, 하나 날아가는 거. 꼬리 빨간 거, 어어. 그 비행기에 뭐? 난동 부리는 사람이 타고 있다고? 자기 원하는 대로 안 해주면 비행기에 불을…… 야아, 그거, 그거 아냐, 하이재킹! 하이재킹이 뭔지는 어떻게 아냐고요? 아니, 뭐, 이거 알고 저거 모르고 그럴 수 있는 거죠, 뭐…… 그래서, 예? 지금 저기 올라타서 막으면 된다고요? 그러면 그게 직업이라고? 진짜? 너무 재미있는 거 아냐?”

“그러면 해 볼게요, 한 번. 예, 예, 고마워요, 삼춘!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예, 나중에 또 전화할게요, 네! 그때까지 몸 성히 지내시고요!”

“흐으으으음…… 그러니까 저기 올라타서 난동 부리는 놈을 막으면, 그게 내 직업이 된다 이거지? 그러려면……”

“……좋았어, 일하러 가보자!”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