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아픔이었다. 그것은 지독하디 지독한 아픔이었다.
광명이 광 안을 훑고 지나갔다. 여인은 깨어나기 직전의 선잠에 취해 몸을 작게 뒤척이고 있었다. 이따금 눈을 감고 고개를 뒤트는 것을 제외하면 참으로 고요한 숙면이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그러한 예절을 교육받기라도 한 듯.
한참을 나아간다. 저 멀리, 어느 외딴 골짜기에 형체가 있다. 더 나아간다. 걸음을 내딛는다. 발목의 톱니바퀴가 신음할 정도로 거닌다. 그 형체에 다다라야 한다. 아니,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형체다. 눈앞에 거대한 형체가 앉아 있다. 눈을 감았다 떠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야, 이제서야 만난 것이다.
창 밖에서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 오기 시작하자, 여인은 이를 들은 것인지 아닌지 몇 마디를 웅얼거리다가 다시 깊은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때 꿈은 거대한 늪이다. 헤어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는 깊은 무저갱이다. 여인의 의식은 그 갱도에서 침전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본다. 거대한 용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며, 둘 모두를 닮지 않은 다른 무언가 같기도 한 그 형체는 움직임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다. 그저 있는 것이다. 생(生)도 사(死)도 무감(無感)한 상태로.
여인의 손이 조금씩 올라갔다. 허공을 향해 상승하는 그의 손은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행위 자체에 내재된 주저는 조금도 없었다. 그의 손은 무의식의 어떤 것을 붙잡으려는 듯, 혹은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허공을 자꾸만 붙잡았다. 고개를 뒤트는 행위가 빈번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여인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본디 영롱하게 빛났을 외피는 갈색으로 녹슬어 있다. 이유 없는 슬픔만이 차오른다. 너무나 늦은 애도의 울음이다. 자식 된 도리로 너무나 늦게 알아버린 부모의 망면(亡眠)에 대한 비애다.
얼굴이 부르르 떨리더니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몸부림은 그 세기를 더해갔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 말이 맞았다. 여인의 세상은 부서지고 있었다.
대부(大父)는 부서졌다.
여인은 몸부림치며 깨어났다. 세상은 어느덧 아침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땀에 흠뻑 젖은 이마를 훔쳐내며 몸을 일으켰다. 호흡이 너무 빨라져 있었다.
또 그 꿈이었다. 악몽. 잊고 싶은 꿈. 그러나 이는 동시에 기억이었다. 뇌리에 악착 같이 들러붙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던 그 기억은 꿈으로도 화(化)했고, 더 고통스러워졌다. 마치 신의 형벌을 받은 듯이.
어쩌면 정말로 신의 형벌을 받은 것일지도.
여인, 월영은 이를 악물었다가 손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ー 이제는 그 눈물을 단순히 고통의 표상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마음을 편히 먹으리라. 월영은 다 낡아빠진 이부자리에서 완전히 몸을 분리하고 직립했다.
하루아침에 두인이 될 자에서 천더기로 추락한 이 마당에, 신의 형벌을 받는다고 해서 그리 더 나쁠 것은 없었다.
d. "세계에 토대를 두지 아니한 사고는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이다.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아니한 사고는 비실용적이며 무의미하다." -슈피리어 섹터기어(Superior Sector Gear) 형제, 《발명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Inventio》
e. 규격화된 사고의 목적은 정체를 야기함이 아니라, 창조적 성장과 발명을 북돋워, 각 개인이 자신만의 사고와 자유의지로써 메카네의 사고에 더 가까워지도록 함에 있다.
10. 규격화된 정신은 곧 사려 깊은 좋은 정신이니, 이는 사고의 공정이 거짓 지식과 의심과 세상의 비효율d에 방해받지 않는 때문이니라.
11. 금속을 합금함1이 더 온전한 전체를 생산하듯 사고를 합금함은 더 나은 발명을 생산하나, 또한 그를 혼합하는 중에 불순물이 들지 않도록 주의할지어다.
12. 이단의 아이디어를 도입하여 사고를 합금함을 금하거나 간섭하는 자는 곧 발명e을 금하려거나 간섭하려는 자일지라.
13. 논쟁을 거부 말지니, 이는 곧 사고의 합금이 합성되는, 통제되며 감시되는 통이로다.
"죄인은 나오거라!"
햇빛이 조금 밖에 들어오지 않는 광 안에서, 월영은 한쪽 벽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곳에 갇힌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그 역시 누구도 찾지 않는 외로운 나날들이 연속하고 있었다.
진실을 폭로한 대가는 이렇듯 가혹할 줄 누가 알았으랴. 월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발바닥으로 찬 기운이 엄습했다. 이젠 솜이불을 둘러싸고 잠에 들던 나날이 퍽 그리워지기 시작할 정도였다.
차가운 바람이 뱀처럼 꽈리를 틀며 나가려 들지 않았다. 월영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직립한 채 몸을 감쌌다. 목이 말랐고 청하지 못한 잠으로 머리가 아팠다. 문에서 다시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슴에서 끼익 거리며 돌아가는 톱니바퀴 소리만이 공허를 메울 뿐이었다.
이제 와서 그를 다시 부르는 이유는 무얼까.
분명 마땅한 이유는 없었다. 송사는 오후에 진행될 것이었다. 지금은 진시(辰時)의 막바지. 시간도 아직 먼 상태였다. 월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벽을 짚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기 때문인지 몸이 굳어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강월영, 썩 나오지 못할까!"
이 마을에서는 이전에 누구였던 간에 한 번 죄인이 된 자는 쉬이 용서받지 못한다. 이를 입증하듯 방금 밖에서 들려온 말은 너무나 무섭도록 현실적이었다.
강월영.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월영을 더는 장씨로 지칭하지 않았다. 본성인 강씨를 회복시켰다는 것은, 정말 월영을 유향소(留鄕所)에서 쫓아내겠다는 무언의 결정과도 같았다. 월영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문밖에서는 동네 청년 둘과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청년들의 손에는 시퍼런 쇠밧줄이 들려 있었다. 죄인을 압송할 때 쓰는 줄이었다. 월영은 노인을 쏘아보면서 걸음을 내디뎠다.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장대명, 광양 유향소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서무. 그리고 월영을 기소한 자.
역겨운 버러지 같은 노인네.
"강월영, 두인께서 보자신다!"
노인은 하늘로부터의 전언을 전달하기라도 하듯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월영은 견딜 수 없는 짜증과 분노에 빠져 잠시 휘청거렸지만, 금세 자세를 잡고 한 음절 한 음절 내뱉기 시작했다.
"나를 어찌 보잡니까."
"두인의 큰 뜻을 네가 어찌 묻느냐."
"이해할 도리가 없어서 그러지요. 나는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월영의 목소리는 가냘팠지만 그 안에는 반항적인 힘이 들어 있었다. 그는 분노로 떨리는 노인의 자기질 턱을 바라보며 내심 즐거움을 느꼈다.
"네가 정녕 예비 두인 직위에서 내려왔다고 예의까지 잊어먹었느냐!"
월영은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달싹여 비웃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인은 성난 얼굴로 월영을 쏘아보았다. 그는 말없이 그 시선을 받아냈다. 월영은 부끄럽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이런 용우(庸愚)한 년을 보았나. 되었다. 죄인을 끌고 가라!"
청년들은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월영의 상체를 꽁꽁 묶고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월영은 멍한 얼굴로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냉기를 쪼여 굳어버린 허리와 무릎이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피로해 하는 것은 분명 정신일 테였다. 그는 머리의 무게를 느꼈다. 무게는 버거울 정도였고 쉬이 가누기 어려웠다. 정신이 갑자기 형체를 얻기라도 한 듯.
광이 있는 곳에서 두인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려면 생산소(生産所)가 있는 양주골 지하 4단에서 거주소(居住所)가 있는 지하 2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월영은 청년들에게 이끌려 탄 승강기가 지하 2단이 아닌 지하 1단까지 올라가는 것을 알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게요."
두 청년은 마주 보며 우물쭈물할 뿐, 답하지 않았다. 결국 서무가 대신 입을 열었다.
"게는 왜 묻는 것이냐?"
"두인에게 가는 것 아니오?"
"미련한 년. 지금 가고 있잖느냐."
쏘아붙이는 말에 발끈한 월영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곧추세워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서무의 눈을 교체할 때가 된 모양이구려. 예가 어찌 두인의 사택(私宅)으로 행하는 길이오? 아,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면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그냥 눈도 갈 겸 더 자기의 자리도 갈아보시겠다?"
노인의 이마에 푸른 실핏줄이 섰다. 마음 같아서는 단번에 월영의 뺨을 날리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두인의 영(令)이 있었는지 그저 홀로 분을 삭일 뿐이었다. 피를 볼 각오도 되어 있었던 월영은 내심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이게 웬 떡인가.
그리고 승강기가 목적지에 도달하자, 서서히 드러나는 한 건물이 월영의 시야에 박혀 왔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눈에 초점을 맞추었다. 언뜻 보기엔 한 돌산을 그대로 깎아 만든 조형물처럼 보였지만, 실상 자세히 바라보면 몇 층의 누각이 한데 모인 거대한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다시금 거대한 동상 아래 있었고, 동상은 천장 중앙에서 호를 그리며 뻗어나온 다섯 개의 기둥 중 한 기둥의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 유향소가 월영의 시야에 비춰지고 있었다.
"허어…"
월영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승강기가 덜컹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들은 완전히 정지한 승강기에서 내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준엄한 얼굴을 하고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네 명의 두인(頭人)들을 묘사한 동상이 점차로 크게 다가왔다. 월영은 고개를 들어 그들이 향하는 곳, 유향소를 지키고 있는 장영실의 동상을 응시했다. 이제 죄인의 신분으로 나아가는 동상에는 이전의 모든 죄인들과 죄 없는 백성들이 한 가지로 느꼈을 거대한 위압감이 깃들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공포와 좌절이 쇳물처럼 용솟음쳤다.
□ □ □ □
두인은 유향소의 3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본래 이 집무실은 임란 시절 양주골을 만들었을 때 함께 건립한 역사 깊은 공간으로, 두인 직분을 수행하는 모든 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정된 곳이었다. 이에 걸맞게 역사적으로 모든 두인들은 이 공간을 집처럼 여기고 생활해 왔다.
유독 월영의 스승인 현 두인만이 이를 무시할 따름이었다. 그는 직분 수행 초기부터 집무실 대신 생활소에 있는 자신의 사택에서 기거하겠다고 선언했다. 양주골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기 용이하게끔 하려고 의도한 일이었다. 이를 안 유향소는 이러한 그의 선택에 아무런 반대표도 행사하지 않았다. 월영이 마지막으로 스승을 보았을 때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마치 그 집과 자신이 한 가지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그가 지금 이 집무실에 있다니.
월영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에 몸을 떨었다.
두인의 서궤(書机) 앞에 월영을 꿇리고, 사내들은 좌우로 흩어졌다. 두인은 자리에 앉은 채로 월영을 내려다보았다. 두인은 소가죽을 씌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가 월영을 내려다볼 때, 월영도 그를 올려다보면서 둘의 시선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날 것의 살을 끊어내는 백정의 칼처럼 두인의 시선은 공허했다. 두인의 기안(器眼)에서 푸른 안광(眼光)이 번뜩였다. 그의 표정은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숨어 버린 듯했다. 오로지 알 수 있는 것은 월영이 그에게 사실을 고하던 날처럼 굳건한 살의(殺意)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월영은 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이고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절 어찌 부르신 겁니까?"
"…네가 일전에 했던 말, 기억하느냐?"
"무슨 말씀이시온지…"
"대부께서 훙거(薨去)하셨다는 말 말이다."
월영은 깊은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세상의 원리와 흐름, 이(理)와 기(氣)가 모두 대부께로부터 근원할진대, 어찌 이 세상을 두고 대부께서 죽고 사라졌다 말씀하십니까?"
"네 입으로 그분이 부서졌다고 하지 않았느냐!"
두인은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월영은 그제야 스승의 얼굴에 걸린 안개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는 육체를 버티기 힘들어하는 한 지성이 보였다. 변화와 시간의 물결을 버거워하는 한 늙은 몸이 보였다. 그 늙은 몸의 모든 파편이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지나감에 대한 피로였다.
"부서졌지요. 대부께서는 부서진 것이 옳습니다."
"그게 무슨 망발이더냐!"
"들어보십시오! 그렇다고 대부께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두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꿇어앉은 월영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월영은 고개를 들었다. 멍한 눈길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두인의 표정은 혼란(昏亂)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분은 파쇄(破碎)되었습니다. 어떠한 연유로 그리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것이 대부의 현황(現況)입니다. 이를 부인할 수도 없으며 시야에서 내몰 수도 없습니다."
월영은 침을 삼키어 갈라진 목을 축였다.
"그러나 그분은 존재하십니다. 그 형체는 반파되었을망정 정신만은 여직도 형형히 살아계시단 말입니다."
마지막 말을 거의 속삭임처럼 흘려내고, 월영은 다시금 두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두인의 얼굴은 전에 없이 창백해 보였다.
"네 말이 만에 하나 맞다 한들, 어찌 이러한 사실을 고하지 않은 게냐."
"즉시 고했습니다." 월영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헌데 스승님께선 듣지 않으셨습니다."
두인은 잠시 말없이 월영에게서 등을 돌려 서궤 쪽으로 거닐었다. 이따금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그 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오로지 침묵만이 흘렀다.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 침묵의 경계는 이따금 모호하다. 지금 둘 사이의 언어가 그러하듯.
두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창(窓)을 열고, 다시 월영 쪽으로 돌아섰다.
"월영아…"
두인이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 이 성질머리는 뉘를 닮은 건지… 젊은 네게 두인 직분을 넘기고 나는 대부 곁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굳이 상황을 이리도 크게 벌이는구나."
"제가 본 것이 이치에 합당하고 천지의 도리가 이에 맞다면 언젠가는 밝혀졌을 일이었겠지요."
"네가 함부로 계승 의식만 개량하지 않았어도 몰랐을 게다."
두인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그때까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물러가자, 두인은 손수 월영의 오랏줄을 끊어내고 방 한 켠에 놓여 있던 의자를 끌고 와 앉혔다. 월영은 간신히 목을 가누어 그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두인을 바라보았다. 창을 등지고 서 있는 그의 얼굴은 인공 햇빛의 역광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가린 입이 움직였다.
"네 말을 입증할 기회가 온 것 같구나."
월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선에 타국의 선교사들이 왔다."
"근래엔 그런 자들이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두인은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선교사들이 아닌 까닭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 천주(天主), 즉 야소(耶蘇)라는 존재와는 다르다."
두인의 입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월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인의 얼굴에서 보이는 수많은 생각과 걱정이 피난민처럼 입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신은…"
월영은 침을 삼켰다.
"역시 부서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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