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한 조각 불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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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소, 도달하는 건 8분 19초 후이지만」
 육분의 렌즈 너머로 저물어가는 태양에게 추파윙크를 날리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공위성이 새하얀 꽃들과 함께 투신자살해 버린 세계에서, 현재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그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단위까지 다른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천체에 대한 질투심 같은 것은 없다. 진지한 얼굴로 계측기를 들여다보는 모습에 장난을 치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가 이쪽을 돌아본다. 얼어붙은 미소가 녹아 흘러내린다.

「너한테는 3억 분의 1초면 도달하겠지」
「하여튼 눈치 빠르다니까」

 꽤나 솔직한 말에, 또 꽤나 박정한 대답. 그의 속눈썹에 뭍은 얼음이 드러눕다 수중의 디바이스에 쏟아진다. 손가락의 익숙한 움직임 뒤에 나타난 두 종류 여섯 자리 숫자경  위  도가 낭독되었다.

「응, 내일은 좀 더 남쪽으로 걷자」

 서기력 2203년 7월 14일. 하와이제도 동북쪽 약 300 킬로미터 근해── 것. 완전히 얼어붙은 대양 위의 여행은, 대략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뭔가, 들린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갇혀 있던 공기가 해방되는 소리. 기계를 냉각하는 팬이 회전하는 소리……. 인간의 목소리.

「어ー이, 목소리 들려? 이제 일어났어? 모닝키스라도 할까?」

 체감상 한 시간 만의 그의 목소리. 먼저 일어나서 느끼한 대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몸에 힘이 들어간다. 손발이 저릴 때 느껴지는, 혈류가 사지 말단을 순환하는 감촉. 그의 입술이 닿기 전에 천천히 눈을 뜨고, 인공조명의 불빛에 눈을 순응시킨다.

「좋은 아침. 만약 두 번 잠들면 나쁜 마녀의 저주를 풀어주려고 했는데」

 관짝 같은 냉동수면콜드슬립장치에서 몸을 일으킨다. 마법에 걸린 공주님이라기보다는 흡혈귀다.
「그 대사, 언제부터 생각해둔 거?」
 
「그거야 뭐, 지난 200년간 쭉. 또는 좀 전에 일어나서 3시간」

「200년. 우라시마 타로도 놀라겠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에?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갔어?」
 잠들기 전 관짝 유리 너머로 보였던, 인터페이스를 만지던 사람의 얼굴도, 우리를 이 기지까지 데려온 사람도, 어린 젖먹이 고양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그렇게 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기는 바다 밑바닥이니까. 도미도 넙치도 절멸했는데. ,

 어디까지나 가벼운 어조를 유지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러나 막연한 전제를, 둘이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전제를 한 순간에 녹여내 버렸다. 인류는 지상의 낙원에서 재흥하지 못했다──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눈을 떴을까? 역시 다시 잠들어야 하는가──

「어째서?」
 흘러나온 한 마디.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뒤늦은 혼란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그가 아까의 그 어조 그대로 말한다.

「이제 세상에 인간은 우리 뿐, 적어도 그렇게 믿는 쪽이 로맨틱하다──문자 그대로 세상에 단 둘 뿐이다, 라는 거지. 지구 표면은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어서, 안주할 땅이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눈을 뜬 이유는 분명하지」

「이유, 씨앗이──최후의 씨앗이 끊어지려 하는데」
「물론! 최후의 인간에게 맡겨지는 사명은 예로부터 정해져 있지」

 눈을 감고, 한 박자 늦게, 그가 다시 말을 꺼낸다.

「신을 죽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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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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