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찮게 짧지 않은 여담, 그리고 해설입니다.
SCP-2337, "스팽코 박사"(Dr. Spanko)는 햇수로 덕질 4년 되어서 으쓱으쓱하던 저한테 가장 당혹스러운 번역이었습니다. 얘는 대체 뭐라는 거니? 그런데 분위기상 말은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말은 됩니다. 말 하나하나마다 의미는 독해하기 어려울 뿐이지 한 문단을 제외하면 의미 자체는 분명히, 그것도 확연하게 존재합니다. 사실 "영어와 국소적 측면에서만 접점을 가진다(tangentially)"라는 말은 "절라 이상하게 꼬아놨지만 사실은 영어다"라는 뜻이 될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도, 2337의 발화들은 지식과 의식의 흐름이 뒤섞인 조현증의 산물인지라 어떤 식으로 그 조현증을 재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적지않게 되었습니다. 비평받기 시작할 때 피네간의 경야를 제가 언급했죠. 첫 페이지부터 되게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는데… 그만큼 당황할 만한 문장들을 제가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2337의 번역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치고 저는 번역을 사실 쉽게 했습니다. 되게 집중해야 했지만 실제로 키보드를 잡았던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ver 2에서 ver 2.1로 넘어가는 데 두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다만 이건 제가 2337을 읽으면서 잡았던 원칙적 방향이 별다르게 바뀌지 않았던 덕이 큽니다.
말이 안 되면서도 되는 언어를 구상하면서 생각났던 안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케장, 하나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제 머릿속 언어입니다. 김케장의 언어 트위스트(?)는 워낙 유명한데다 체계적이기까지 하고, 저는 한국어 문법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언어체계로 가끔 생각을 해 보고는 합니다. 사실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2337은 "격식 있는 나인티식 케장"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하면서요. 사실 비평을 받는 중에야 그게 뭔지 깨달았습니다. 조현병(調絃病)이더라고요. 말비빔, 음연상(개념이 아니라 운율에 기반하여 말을 하는 현상), 신어조작증, 지리멸렬화 등 2337의 행동 중에서 조현병 환자의 사고 형태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 불가능한 언어체계 역시 조현병이었습니다. 병원 가서 진단 받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만, 저한테 있던 이 "의도적 조현병"이 굉장히 중요한 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적 조현병의 틀에서 제가 채택한 도구들은 대강 이렇습니다.
- 신어조작. 개인적으로만 뜻이 있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피네간의 경야가 떠오른 가장 큰 이유가 이쪽에 있습니다. stranglefruit(목 조르다 + 열매), namesplap, mouthstuff, slaveykin 등이 예입니다.
- 음연상. "막연한 빈정거림, 은유, 운율"의 그 운율입니다. 의미를 포기하고 운율만 맞추는 뜻 없는 단어가 여기 해당합니다. 밑에 해설에서 여러 예가 있습니다.
- 지리멸렬화.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뜻합니다. 어떤 수준까지 미치는지 의학 쪽으로는 사실 잘 모르지만, 어휘 수준과 문법 수준의 두 가지를 적용하려 했습니다. ver 1에서는 문법이 특히 우세해서, 조사를 싸그리 뒤섞어놔 아예 외계어…가 되어버렸다고 기억합니다. "칭송을 복잡하지" 정도가 현재 남은 흔적인데,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휘 수준은 상대적으로 생각 없이(??) 찌그러트리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2337 말투 따라하는 부분도 대개는 이 방법에 따릅니다.
- 하오체. ver 1은 아예 케장처럼이었는데, 경박하면서도 약간 격식 있는 체[시늉]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daveyoufool은 그런 생각 안 하고 그냥 지 쪼대로(…) 하지 않았을까가 사실 제 의견입니다. 피네간의 경야는 단어 하나에 세 가지 뜻이 동시에 있고 그런데, 설마 그 정도로 어렵게 생각했으려구요. 제 해석이 뇌피셜에서 벗어날 만한 근거를 사실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부분이 아직 많을 뿐 아니라 아주 쏟아나오는 결과물이겠죠. 그렇지만 부족한 근거나마 밝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aveyoufool의 머릿속은 사실 본사조차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2337의 발화가 데이브가 글 쓸 때랑 다른 사람이 글 쓸 때랑이 본사에서조차 다릅니다. 제가 제 연구(?)를 공개하는 것은 최대한 통일성 있는 2337을 한국어 위키가 구성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피네간의 경야 번역한 김종건 교수님도 한자 쏟아부은 번역을 제시하면서 저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고 감히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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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k! Am christened Herr Doktor Spankoflex. Am colloquially namesplapped with Essy-Pee toothreethree and Steven, am complicate across the state.
깨액! 나그가 존함붙기로 독토어 스팽코플렉스(Spankoflex) 각하라. 본인두고 이름컬을 입말이 애써싶이 두삼삼에 발곱이온데, 나그가 온 나라에 칭송을 복잡하지.
- Cack은 "깨액"으로 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찾아 들은 메추라기뜸부기 소리에 가장 걸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2337은 모든 be동사를 am으로 처리합니다.
- "내가"에 해당하는 번역이 이 문장에서만 두 개네요. "나그가"는 케장한테 따 왔습니다.
- christen은 "세례명을 받다"에서 발전하여 "이름이 붙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 "이름컫다"는 "이름 + 일컫다"입니다. 분명히 저거 근거 있었는데 뭐였는지 까먹었습니다(…)
- Essy-Pee toothreethree and Steven은 당연히 SCP-2337을 꼬아 읽는 말입니다. 발음에 가능한 한 맞추기는 했는데…
- complicate는 compliment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역글은 "칭송이 자자하다"를 꼬아 쓴 말입니다.
And how!
당근치!
2337이 Cack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는 유행어입니다. "당근치!"는 ver 2.1에 와서야 적용한 번역인데, 이게 생각보다 어원이 깊습니다. 1865년에 맨 처음 기록된…이라고 구글에서 검색이 되는데 사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1930년대에 "The Little Rascals"라는 TV영화 시리즈에서 유행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라고 합니다. 이때 같이 유행한 말이 okie-dokie, you said it(내 말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로 유명한 말하고 동창(?)이면 되게 유행했지만 지금은 어른 대접받는 유행어에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당근이지!"가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다만, 한 번 꼬아서 "당근치!"로.
It me! Cack!
게 나지! 깨액!
"게"는 "거기"에 해당하는 3인칭 지시대명사입니다.
It done be shallforth! Ablesauce am tricky mayonnaise forsooth, aunt Ruth. Come packin' with storebrand hostility cakes for mouthstuff. Slaveykins grew boarded and bearded from Chesapeake Bay to Unknown Kadath, my good flibbert. The three ringed hobo stack, over and over, alakazam. Cack!
게 바라잔대로 아뢰자하면! 아벨소스란 참말로 까탈소스런 참기름 곧 루스 아지매지. 오는길 입넣을것하기라고 자체브랜드 적대적 케이크나 챙겨뛰기오. 건데 꼬마하녀들일랑 커가지고는 체사피크 만에부터 미지에 카다스까지 그 이몸으 작은조금것 들어살고 불어썰고 하드라네. 세고리단 떠돌이무데기, 게 오는데 또 오다간, 빠라바밤빠밤. 깨액!
이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사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daveyoufool한테 들은 해설로는 Ablesauce부터 alakazam이 [무슨 말인지 해석하기 애매한 유래 이야기]래요. 그래서 그냥, 무슨 일인지 대강 그림은 그려지는데 시험 당일 더 구체적으로 외울걸 하고 후회될 정도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했습니다.
- shall은 "할지어다", forth는 "~쪽으로"이니 shallforth는 "바라는 쪽으로"가 됩니다.
- forsooth aunt Ruth는 라임입니다. 운율을 그대로 옮기는 건 말도 안 될 일이고, "운율이 들어간 말"을 내용에서 어떻게 재구성할지를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ver 2까지는 "까다롭대드랄" 같은 말을 썼는데, 여기서는 "~소스란 ~소스런"으로 적용했습니다.
- mouthstuff는 입에 관련 있는 것이니 "입넣을것"이 됩니다.
- -kin은 "작은 ~"라는 뜻의 접미사고, slavey는 하녀입니다. slaveykin은 작은 하녀가 되겠죠. ver 2까지는 "엄지하녀"라고 했습니다.
- boarded and bearded는 누가 봐도 라임이죠. board만 "들어살고"로 뜻으로 옮기고, beard의 자리에는 라임 맞는 단어를 배치했습니다.
- flibbert는 a small piece or bit라는 네이버 사전 풀이를 적당히 의역했습니다.
- alakazam은 지금 반영은 아닌데 여담이 하나 있습니다. ver 2까지는 이게 "수수리사바하"였습니다. abracadabra가 "수리수리마수리"인 건 아시죠. 그런데 포켓몬스터에서 캐이시가 영어로 "Abra", 윤겔라가 "Cadabra", 후딘이 "Alakazam"이래요. 저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사바하도, 원래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는 일종의 주문입니다. 그럼 똑같이 맨 마지막 거 써 볼까? 그래서 "수수리사바하"가 결론이었죠. ver 2.1은 그냥 적당한 마무리 멘트(?)를 갖다붙였습니다만.
Ten-four, ex-lax!
이엣씀다, 대장균님!
ten-four는 그냥 okay입니다. 별로 안 어렵게 꼬았고요. ex-lax는…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UrbanDictionary에서는 laxative(설사약)와 같은 뜻이라고 나오는데, 그래서 흔한 아재개그를 덧붙였다 싶습니다.
Am cack more sense?
이예하니 좋이 만족케 깨액하오?
가장 많이 등장하는 cack의 용법은 부정사입니다. 아무 단어나 2337 마음대로 cack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영화 황산벌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뭐시기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 할 때 그 거시기와 같은 용법입니다. 여기서는 make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Mitochondria the molasses? Am what the spanglefreezer said, for shame, this! Askulate the right query-cue molasses!
웬 당밀에다 미토콘드리아 떠다밀어다? 스팽글플레밍 이르기라, 자기망칙 알아시라, 곧 이몸이! 당밀로다 궁금깜이나 바로섞고셔서 물음주기오!
- 당밀(糖蜜)이 본질적으로 찌끼에 속하기 때문에 거기서 에너지를 공연히 생산하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긴 했는데 문장 자체는 두운(頭韻)을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당밀에다 떠다밀어다"로 다른 꼴 운율로 옮겼습니다.
- This is what the spanglefreezer said가 this가 맨 뒤로 가고 is가 am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spanglefreezer는 Spankoflex를 꼰 말이 확실해서, 두운에 맞게만 재현했습니다. for shame은 좀 꼬았습니다.
- askulate는 ask에 -ate라는 동사 만드는 접미사가 붙은 꼴입니다. query-cue는 query를 "의문", cue를 "신호"로 해석하고 합쳤습니다. "바로섞고셔서"는 "섞으셔서"를 티 안 나려고 노력할 만큼만…
Only with the Nebraska cack-flip, amigo salad. Cack!
네브래스카 공중깨액이 돌고나고야 게 아나 요 성가시기 성기사야. 깨액!
daveyoufool의 해설은 "Of course I can hear you, I'm not stupid"였습니다. 이걸 영어 문형에 맞춰서 "뭐가 더 있어야 이해를 할 거냐, 이 멍청아"로 바꾸는 걸 기본으로 했습니다. cack-flip은 backflip(공중돌기)을 꼬아둔 게 거의 확실하죠. amigo salad는 salado가 스페인어로 "성가시다"라는 뜻이라는 데서 "성가신 사람"으로 마지막에 결론지었습니다. 대신 제가 2337 대신 음연상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What ho, eastward bound?! Profound disappointment!
뭐매, 자친에 어인 미친?! 낙심 들끓오!
해설이 "What did you say about my mother?!"였습니다. what ho는 ver 1에서 밀던 사투리의 흔적(뭐 + 워매)입니다. eastward bound는… 번역글은 좀 고차원 음연상입니다. 자친(慈親)이 어머니라는 뜻이죠. 그런데 왜 eastward bound가 어머니냐… ver 1쯤에 제례상에서 어머니 위패를 두어야 하면 동쪽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서 연관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번역글 안 나갔으면서 그땐 왜 그걸로 감동을 했었지…?
"Snackutations Doctor Spanko, cack! You am authoritater? Explainerate."
"잘먹밥한가 스팽코 박사, 깨액! 너몸이 딴이들한테라 잘나갈놈이나? 게 말씀주기오."
여기는 그냥 지리멸렬화입니다. 누가 봐도 조현병 흉내내는 장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