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는 체내에 독을 함유합니다. 복어 독은 청산가리보다 5배 강합니다. 경험적으로 이 사실을 아는 동물들은 그래서 복어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복어를 먹는 동물은 아예 독이 듣지 않는 문어 같은 일부, 그리고 기어코 독 없는 부위만 골라내서 먹는 인간뿐입니다.
한위키 안내/에세이 페이지를 보면 복어가 떠오릅니다. 오랫동안 한위키에서는 각종 에세이 페이지가 과연 커뮤니티에 진실로 도움이 되는지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새로 오신 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에세이를 먹었다가 복어 독에 질려서 기껏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가 버립니다. 8년(제가 있었던 기간) 동안 항상 좁은 커뮤니티였던 한위키로서는 새로 오신 분을 잃을 때마다 가능성이 상실되는 폭이 큽니다. 이런 점에서 어떤 분이든 쉬이 정착시키고자 복어 독을 품은 에세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오랜 경험과 과학을 바탕으로 복어에서 독을 골라내 복 요리를 먹습니다. 에세이가 허브에서 떼어내질 때마다 저는 좀 의아합니다. 과연 그 에세이가 "배울 점이 없어서" 허브에서 탈락했을까요? 말투나 새로 오신 분을 향한 태도, 작성 당시와 현재의 상황의 차이 등을 덜어내고 보면 뭔가 "배울" 여지가 남지는 않을까요? 지금 허브에서 내려간 에세이 중에는 어찌 됐건 적어도 작성 당시에 영위키/한위키에 인정받았던 글도 있습니다(진짜 드문 사례지만 에세이로 인정을 못 받아서 폐기된 글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인정받음"을 독이 들었다는 이유로 통째로 폐기한다면 아까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복어를 그냥 바다로 버렸다면, 이제는 적어도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복어에서 독을 발라내 요리해서 내놓는다.
- 복어에 어떤 독이 들었나 설명하고 독자에게 경고한다.
첫째는 재작성입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리프레이징해서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안 하면 나쁜놈"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안 하면 글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라고 고쳐서 저장할 수 있겠죠. 마치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에서 일부 표현을 순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전소설 중에는 주인공이 여자와 동침하는 내용을 언급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소설을 초중학생 문고판 출간 금지작으로 선정하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순화하기 때문에 청소년 독자는 구운몽의 주제의식이나 상징에 빠르게 집중할 수 있겠죠.
둘째는 경고문 표시입니다. 스탭의 이름으로 글 첫머리에 "이 에세이는 ~라는 이유로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 읽을 때 주의하세요"라고 쓸 수 있습니다. 독자는 경고문을 바탕으로 복어 독을 주의해서 진짜 먹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나치즘을 경계하는 독일에서 비판적 주석을 붙인 채로 출간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방법은 E. H. 카 같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경고문이 부착되는 이유를 보고 미래의 회원은 과연 그 경고가 그 시점에서 유효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재 문제시될 내용이 미래에 문제가 없다고 밝혀진다면 에세이가 다시 올라갈 수 있겠죠.
에세이를 판단할 때 독자를 존중함과 더불어서 "에세이가 에세이임"을 감안해서 판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