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변칙식물은 진통제 및 수면제를 생산하며, 재단은 그것을 얻기 위해 D계급 인원을 희생한다" 라는게 이 SCP 설정의 골자인데, 진통제나 수면제는 비변칙적인 의약품이고 재단 기준에서 생각하면 민간의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것을 들여오는 것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D계급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거기서 뭘 얻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보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방자님이 언급하신 SCP-3000의 경우, 일단 기억소거제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작중 서사를 통해 인원을 희생시키는 것을 어느정도 정당화합니다. SCP-3000에서 얻어낸 기억소거제는 그전까지 재단이 사용하던 그 어떤 물질보다도 뛰어났다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D계급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뛰어난 물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 개연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지요.
SCP 재단에는 '카논이 없다' 즉 어떤 글이 다른 글의 창작에 구애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지받는 설정이 "재단은 고통을 즐기는 기관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SCP-723-D라는 글이 예전에 삭제되었는데, 뭔 짓을 해도 안 죽는 D계급이라는 설정이었죠. 재단이 얘를 죽이려고 별의별 짓을 했는데 안 죽더라는 겁니다. 이 글이 삭제된 이유가 바로 "재단은 고통을 즐기는 기관이 아니다" 였습니다. 그냥 안 죽는 인간일 뿐이고 무해하다면 적당히 어디 격리해 두고 삼시세끼 밥이나 주면 되지, 왜 얘를 죽이려고 별의별 짓을 다 다 하냐는 겁니다. 저는 이 점에서 "왜 재단은 D계급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진통제와 수면제를 얻어내려 하는가? 그냥 민간 제약회사에서 사오면 안 됨?" 에 대한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가립니다.
SCP-4514를 예시로 들도록 합니다. SCP-4514는 단검입니다. 찌르면 사람이 죽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칼로 찔러서 사람이 죽는게 왜 변칙성인가? 당연한 질문이죠. 이 글의 내용은 그저 칼로 사람을 찔렀더니 죽었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다만 이 글은 '죽음의 끝'이라는 연작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게 된 세상이 된 거죠.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충분히 변칙으로 취급받으며, 사람을 찔렀더니 죽었다라는 내용이 충분히 SCP로서 정당화가 되지요.
여기서 '진통제, 수면제를 추출하는 이유'를 정당화 하라는게 꼭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하며 조리있는 설명일 필요가 될 필욘 없습니다. 다만 "아, 이런 이유에서 D계급을 희생시키는구나" 라고 "SCP 재단이라는 세계의 현실"에서 일어난 법 하다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도 어느정도는 "일어날 법 하고 말이 된다" 라고 볼 수 있겠죠.
예를 들어, 현실의 진통제나 수면제는 흔히 마약 취급받으며 원래의 목적이 아닌, 마약 투여 목적으로 불법 사용되는 경우가 많듯이 그 식물의 추출물 또한 '변칙 마약' 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표면적인 SCP 문서는 위장용이고, 이를 담당하는 기지 직원들이 실은 변칙마약을 추출하여 몰래 유한회사 마셜, 카터&다크 등에 팔아먹는 겁니다. 이 요주의단체는 돈이 되면 어떤 변칙성이든 장사를 하는 곳이니까요. 적절한 내용만 뒷받침되면 이 요주의단체는 변칙마약을 사고 파는 것을 정당화할 적당한 장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