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연 출품작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몇개 있었는데 조금 이따가 적겠습니다.
설명에서 마지막 문장이
다음은 재단이 SCP-XXX-KO의 변칙성을 인지하는 방식이 발견 이래로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관한 세부 사항이다.
인데 이거 실수로 못바꾸신것 같습니다!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나머지 내용은 좋으므로 +1 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쓰려고 한 건 아니였습니다. 원래는 이상한 기계 물고기 만들어서 부산에 박아버리고 삼천리 경연작이라고 우길 생각이였는데, 좀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3일까지 쓰다보니 반절도 못썼고, 구성도 이상해 보이고, 답이 잘 안나오더라고요. 아무래도 답이 안 나와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겠지 하고 글을 던지고 난 뒤에. 삼천리도 그럼 뭐 쓸거 없겠다 싶었습니다.
14일에 경연 기한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16일에 사진첩을 뒤지다가 보니 옛날에 부산 갔을때 사진들이 나오더래요. 마침 경연 생각이 나서 사진 둘러보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찍은 사진 몇개를 찾았습니다. 거기서 산 기술서, 골목이랑 책더미(이 SCP에 쓰인 사진) 풍경 사진이랑들, 헌책방에서 찾은 족보공명첩등등.. 사진들 보다보니 추억도 새록새록 살아나고 기간도 연장됬겠다 한번 책방골목으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정보 탐색 겸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영 슬픈 소식뿐이더라고요. 작년에만 9곳이 망했고 웹사이트는 방치중. 지자체도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일주일 전쯤에 책방골목 담당 공무원을 한명 뽑는다고 한다는 뉴스가 났습니다. 기껏해야 한두번 가본 곳인데 가슴 한구석이 아린게 어딘가 슬프더군요. 사실 기사들 보기 전까지만 해도 할까말까 긴가민가 했었는데 기사 보고 나니 뭔가 의욕이 생겼습니다. 마감 당일 18일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작해 내내 써서 마감 1분전에 업로드했습니다.
사실 이번 경연은 좀 길게길게 잡고 전처럼 벼락치기 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결국 이리 되어버렸네요. 뭔 마라도 낀 모양이겠거니 하고 다음 경연을 노려야겠습니다.
이 글의 모티브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을 지키는 사람들 인터뷰 중에 있던 말입니다.
“책은 다 주인이 있어. 언젠가는 다 제자리를 찾아가.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헌책방 주인이지. 어떻게 보면 헌책 장사는 신선놀음이야.”
책방골목을 마지막으로 가본 진 오래됬지만 기억은 생생합니다. 헌책방 골목들이 전국에 많다지만, 역시 책방골목만큼 만한데가 없죠. 책들이 건물에 지하실에 꽉꽉 들어차 있고 골목 어딜가던 책 책 책뿐이던 그 광경은 참 재밌었습니다. 그 광경에 취해서 그 거리에 몇시간이고 붙들려 있었는지요.
인터뷰에선 책은 결국 제 자리를 찾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책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헌책방에 들어온 책이 10권이라면, 그중 3권만 팔리고 나머지 7권은 결국 버려진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책들은 결국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신선놀음이란 파멸로 향해가는 결국 유한한 객체들을 관망하는 행위일까요? 그렇다면 그 신선놀음조차 쇠락해가는 상황에서 남은 책들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같은 생각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썼습니다.
급하게 쓴게 자랑도 아니고 글이 엉성한걸 변호해 줄 수 있는 사유도 아니지만, 작가로서의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주제의 가능성이 더 있었다고 생각하는지라 더 그렇네요. 나중에 부록이라도 붙여봐야 할련지 참. 모자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반 푸념 잡소리도 읽어주셔서 두배로 감사드립니다.
작품으로서
설정으로 봐서는 여기만 이상하게 변칙도서가 몰려 있다기보다는 헌책방이라면 다 이런 성향을 띠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웬만한 서점은 다 전산화가 되지만 헌책방은 박물관 수장고처럼 뜻밖의 책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책방골목이 보수동에서만 자생하는 것도 아니고… 52년에 기적학 책이 보였다는 것만으로 보수동은 52년부터 그랬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사실 제일 현실적인 SCP 보고서라고 생각합니다. SCP는 포맷 스크류가 아니더라도 이미, 결론은 다 나왔는데 결론을 못 찾는 척한다든가 보고서를 쓴다면서 이야기를 써놨다든가 하는 식으로 포맷을 뭉개는 게 거의 기본값이잖아요? 재단에서 진짜 쓰면 이런 식으로 쓴다는 데는 지금 구성이 제일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래서 소위 "서사"의 뼈대만이 남았다 보니 변칙성의 설득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다소 부족한 부분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경연작으로서
책방골목의 추억? 글쓰다 보니 이게 경연작 감상이야 추억썰이야 할 정도로, 점바치 때보다 훨씬 더 길어질 삘입니다. 세줄 요약합니다.
- 부산 웬만한 서점은 다 찾아갑니다. 책방골목도 예외가 아니고, 거기서 책 많이 샀습니다.
- 요즘은 책방골목 찾아갈 이유가 잘 안 생깁니다. 무엇보다 제가 책이 너무 많고(…)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전자책이 활발하니까요.
- 하지만 일단 찾아가면 저는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든 책 한 권을 삽니다. 어떤 서점이 화룡서점일지, 제가 스스로 헤드카논을 만들어버리고 싶네요. 헌책 한 권이랑 인연 만들고 오겠습니다.
추억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법은 촉촉한 방법과 건조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글은 굉장히 건조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걸 장점이랄지 단점이랄지 찝어 말하기 어렵네요. 재단스럽게 부산이 재현됐다는 점은 장점이고, 거꾸로 설정 소개에서 다소 어수선하느라 단순 배경의 느낌이 살짝 엿보이는 점은 단점인 것 같습니다.
평가는 보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