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많이 반복되는 것은 정형화되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꾸준하게 죽기 때문에 장례식과 제사에 정해진 틀이 생기고, 제일 유리했기 때문에 소환사의 협곡은 EU 스타일이 점령했습니다. 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개 다 정해져 있고, 그래서 비평 내용은 크게 볼 때 서로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표준형 비평 양식에서 원하는 것만 체크해서 옛다 툭 던져주는 식으로 비평을 구성할 수도 있겠죠. 자체의 내용에 따라서 오리지널한 내용이 들어가긴 하겠지만.
하지만 정형화된 것이 있다면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재단 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규칙과 도덕의 문제는 당연하니까 생략하고) 재미있냐는 것과 재단에 어울리냐는 것,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글 대부분이 이 경향을 따르고 글이 읽기 좋아지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더라도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특수 격리 절차를 검열하면 안된다? 검열하면 안되나요? 인간형은 유클리드다? 엄청 안전한데요? 측정값을 구체적으로 넣어야 한다? 굳이요? 서사가 있어야 한다? 서사가 뭔데요? 독자에게 어떤 감상을 주고 싶은지 생각하세요? 그건 독자가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요?
조금 반항심 섞어서 쓰긴 했지만, 한위키가 비평받는 사람을 설득하기 쉬운 구조가 아니었다면 의외로 리스트 복붙해서 쓰는 식으로 주장할 수 없는 비평의 필수요소들이 많습니다. 그 비평들이 대개는 맞지만 절대적으로 맞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그 비평이 "절대적으로 맞지" 않을까요? 비평 클리셰 경연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경연입니다.
예상되는 경연의 진행 방식은 이렇습니다. 우선 경연에서는 "예시 목록"이 주어집니다. 각 예시는 주최측이 직접 작성하는데, 모양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특수 격리 절차: SCP-6789는 개인주의야 [편집됨] SCP-6789는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아
특수 격리 절차에서는 검열을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가로줄 위는 적당하게 생긴 예시입니다(그냥 장식용 / 생략해도 너무 상관은 없음). 아래가 본체인데, 흔하게 등장하는 비평의 예시입니다. 이런 예시들이 여러 개 주어집니다. 참가자가 예시를 고르면, 그 비평에 어울리지 않는 SCP를 써야 합니다. 즉, SCP를 읽었을 때 그런 비평이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추천 수는 물론이고, 심사위원의 말문을 얼마나 잘 막았는지를 보조 기준으로 삼아 순위를 결정합니다.
정형화를 깨뜨리는 이야기를 자꾸 하긴 한데, 이게 꼭 포맷 스크류를 뜻하지는 않아요. "전문적 문체를 써라" 같은 비평이면 포맷 스크류가 나오겠지만, 위에서 제가 든 예시들은 꼭 그걸 함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향들에 그렇게 도전하는 것 자체가 내재적/외재적 형식을 건드리는 데 해당하기 때문에,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연이랑은 아주 색다른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