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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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었다. 덩굴이 휘이 감겨 있는, 겉으로 드러난 거대한 나무뿌리에 앉아 질척이는 바닥을 찰박이며 두 아이가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동양 쪽 사람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녹색 머릿결을 가진 작고 차분한 남자아이. 그리고 부모가 꽤나 골치를 썩였을 것 같은, 잔상처 가득한 말괄량이 여자아이. 둘은 그렇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를 가졌음에도 꽤나 자주 어울려 다녔다. 주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쪽이었지만 말이다. 소년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 소녀, 지희는 자신 할 말만 하기에 바빴기에 그의 이름을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친구랑 싸웠어, 근데, 내가 주먹을 걔 얼굴에 때렸는데, 어, 그리고 선생님이 싸우지 말라고 혼냈어. 어린이 특유의 두서없는 말투로 재잘대는 소녀의 말을 소년은 참으로 잘 들어줬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희는 그것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풀결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제일 좋아하는 꽃이 뭐야?"

어느 날에 이끼 냄새가 나는 소년이 물었다. 소년에게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던 지희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해바라기'라고 답했다. 사실 어린이가 알고 있는 꽃이래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해바라기, 튤립, 아카시아… 지희는 그냥 생각나는 꽃들 중 아무거나 대답했지만, 소년은 그 대답을 듣고 다음 날 해바라기를 한아름 들고 지희를 찾아갔다.

"뭐야?"

지희가 그리 묻자,

"선물…!"

답으로 그리 말하며 몸을 꼼지락거리는 아이. 지희는 선물에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년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그저 시골에 놀러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었던 아이였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꽃은 샛노랬고, 이상한 향이 났다.

부모님이 '꽃이 어디서 났어?', '남자친구라도 생겼니?', '우리한테 소개시켜줄 수 있어?' 라고 말해도 지희는 히히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부모님께 비밀로 하는 소중한 존재가 하나 생겼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은 처음 준 선물만큼 많은 양은 아니지만, 지희를 만날 때마다 꼭 샛노란 해바라기를 조금씩 가져다 주었다. 어디서 났는지도 물어봤으나, 소년은 비밀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으레 그 나잇대 아이가 그렇듯, 지희가 그러했듯, 소년 또한 비밀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게 아닐까.

"숲은 매일 오는 거야?"

둘이 쪼그려 앉아 풀벌레를 구경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물었다.

"아아니."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너 올 때만 와."
"나 올 때는 어떻게 알고?"
"비밀이야!"

소년은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다. 비밀이 뭐 그리 많냐며 지희가 투덜거렸지만, 소년은 마냥 방실거렸다. 지희도 머지않아 다시 풀벌레에 관심을 돌렸고, 그렇게 소년의 비밀은 하나 둘 쌓여갔다.

소년은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맑은 날씨에 소년이 우산을 들고 오면,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반창고를 가지고 오는 날이면, 지희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날이었다. 소년은 아마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었을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같았다. 날씨는 일기예보로 예측할 수 있다지만, 누군가 넘어지는 것은 그렇게 매번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주일에 5일은 넘어지는 지희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반창고를 몸 어딘가에 늘 지니고 다니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여름은 그렇게 지냈다. 가을이 되면 흙바닥 위에 살포시 쌓인 낙엽을 모아 하늘에 던지며 흩날리는 이파리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고, 겨울이 되면 지희가 소년에게 눈덩이를 던지다가 반응이 없는 소년을 보고서는 그냥 눈사람만 만드는 게 대부분이었다. 봄은 여러 꽃이 활짝 피더라. 봄이 올 때마다 소년은 아주 활기차게 여러 식물을 소개시켜줬다. '이건 애기똥풀이야.' '이건 벚꽃.' '그리고 이건 튤립이네? 원래 여기에선 잘 안 보이는데, 누군가 씨앗을 심었나봐!' 지희는 매 봄마다 활기차지는 소년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의 흔들리는 녹색 머릿결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땀으로 가득한 소년의 얼굴.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했는지 퀭한 눈. 어째선지 모르게 다급한 그의 모습. 지희는 불안해졌다.

"지… 지금 바로 집으로 돌아가!"
"뭐? 왜? 나 방금 왔는데? 같이 놀자!"

소년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보단, 둘이서 노는 게 더 중요했던 지희였다.

"태양이, 태양이 곧 우리를 저주할 거야!"
"저주라니 무슨 소리야!"
"일단, 빛을 피해서 숨어야 해! 빨리! 집으로 가자!"
"왜… 왜 그래! 무서워!"

지희가 울음을 터뜨릴 듯 한 표정을 짓자, 소년은 지희를 끌어안았다. 묘하게 따스하고 촉촉했다.

"다시 놀 수 있을 거야. 분명 백 밤이 지나기 전에는, 아마."

지희가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의 불확실한 말을 할 때, 소년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은 보지 못 한 듯 했다.

"햇님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해."

소년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희는 당황하면서도, 어머니가 자신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그 말투와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느껴 얌전히 귀를 기울였다.

"세상 사람 모두도 햇님을 좋아해. 그런데 어어엄청 나쁜 누군가가, 햇님을 질투한 거야.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햇님을 말야."

소년의 이야기는 어딘가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지희는 순식간에 소년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햇님에게 저주를 걸었어."
"누군가는 누군데? 저주는 뭐야?"
"누군가는… 그래, '나쁨'이라는 사람이야. 아마 그럴 거야. 저주는… 햇님도 사람을 싫어하게 하고, 사람도 햇님을 무서워하도록 만들게 되는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소년은 언제 조급했냐는 듯, 숨을 고르고 차분히 대답했다.

"그러게,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렇게 됐네…"
"아직 햇님은 쨍쨍한 걸? 무섭지도 않아!"
"이제 곧, 숨바꼭질을 스무 번 할 정도의 시간만 지나면 그렇게 될 거야."

지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어서 집으로 가. 그리고 햇님이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어. 부모님께도 전하고, 절대로 햇님과 달님을 볼 수 없도록."
"달님까지?"
"응, 달님까지. 달님은 햇님의 동생이야. 햇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걸. 그러니까, 이제 가."

소년이 지희의 등을 툭 떠밀었다. 그리고 소년은 어디론가 떠났다. 백날 밤이라니, 그렇게나 오랫동안 소년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난 지희는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바깥에 나갔다가 울며 돌아온 딸을 마주한 부모님은 지희를 달래면서도, 그녀가 말한 대로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밤에 키는 야간용 전등만이 미미하게 빛을 발하는 방 안, 울다 지쳐 잠든 딸을 가운데 두고 부모 또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녹아내렸다.

산소를 내뿜는 것은 식물이 아니라, 식물이었던 녹색 젤리가 되었다. 마치 여러 색이 뒤섞인 듯 한 검붉은 색의 무언가가 세상 곳곳에서 몸을 구불대고 있었으며, 그 모든 것이 한 데 뒤섞여 음성과 괴성과 교성을 내뱉고 있었다.

지희는 어두컴컴한 방 속에서 해바라기를 찌르고 있었다. 분명 찬란한 햇빛을 받아 샛노랗게 빛을 내던 꽃잎이 너무나도 칙칙해 보였다. 거실 중앙에서 흔들리는 촛불이 은은하게 해바라기를 비춰 그 색을 옅게나마 드러내 주었지만, 빛을 쬐지 못하는 해바라기는 쓸쓸하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지희가 멍하니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동안, 부모는 심각하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빛이 들지 않는 날이면 나가자. 지희의 아버지는 지희가 체험학습으로 만들었던 태양광 발전기와 핸드폰을 연결하여, 영상통화를 걸어 바깥에 놓았다. 간이 CCTV 완성이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숨긴 날이면 바깥에 나가는 부모님. 지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외출하는 부모님에게 배꼽인사를 한다. 어둠 속으로 나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 없었다. 바깥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해바라기는 햇님을 보면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까? 햇님은 정말로 무서운 걸까?

지희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희는 어느 날 아침, 그렇게 생각했다. '햇님 몰래 바깥으로 나간다면 괜찮지 않을까? 햇님이 모르게! 비밀스럽게 나갔다 오면, 아주 잠깐만 나갔다 오면 괜찮지 않을까? 노오란 해바라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지희는 부모님 몰래 현관의 자물쇠를 열고자 했다.

-달칵

돌려서 여는 자물쇠. 그리고 전자 잠금 장치가 남아 있다. 지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컴컴한 집 안, 부모님은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지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전자 잠금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띠리링

일반 자물쇠와는 다르게 큰 소리.

"…거기서 뭐 하니?"

지희의 뒤에서 들리는 싸늘한 목소리.

-짝

그리고 울려퍼지는 박수를 친 듯한 소리. 뺨에서 느껴지는 굉장히 뜨거운 느낌. 지희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얼떨떨하게 고개를 원래대로 돌린 소녀의 시야에선 손을 방금 휘두른 지희의 어머니가 지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잖니!"
"…그치, 그치만! 해바라기가!"
"그깟 해바라기보다 네가 더 중요한 걸 모르겠니?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누누히 말했잖아!"

소리치는 어머니의 얼굴은 굉장히 슬프고도 허탈하며, 어딘가 절망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눈빛에 후회가 감돈다. 자신의 자식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자기멸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함께 가정폭력을 한 사람에 대한 뉴스를 보며 욕을 했던 그 때를 떠올리며,

"흐…흐으으…"

눈물을 흘렸다.

지희는 아픈 것보다, 해바라기를 햇님에게 쐬지 못한다는 것에 더욱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졌다. 지희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엄하고, 다정하며, 누구보다 튼튼해 보였던 엄마. 당황한 지희가 어머니를 따라 울기 시작하자, 큰 소리를 듣고 따라 나온 아버지가 둘을 끌어안았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지희는 울면서도 덥다고 칭얼댔다. 그리고, 서로를 꼬옥 끌어안은 가족은 어두운 안방에서 잠에 들었다. 아직은 평화로운 밤이었다.

하루와 이틀, 사흘과 나흘. 몇 밤이 지났는지 양 손을 세어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지희는 부모님께 '며칠 지났어?'하고 묻고, 부모님은 '아직 11일. 열흘 하고도 하루 더 지났어.'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며칠이 지났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여전히 햇님이 완전히 가리워진 날이면 부모님 중 한 명이 바깥에 나가, 뭔가를 들고 돌아온다. 대부분은 음식이었고, 양초일 때도 있었으며, 가끔은 그냥 나무토막을 들고 올 때도 있었다.

하루는 지희의 아버지가 나갔다. 비가 거세게 내리길래 빠르게 외출하고 오겠다고 하며.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지희의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다 괜찮을 거라 했잖아…

그리고 어머니는 햇볕이 쨍쨍한 낮에 나갔다.

지희는 집에 혼자 남겨져, 양초를 켰다. 샛노란 해바라기가 추욱 늘어져 있었다. 빛을 받을 수 없는 해바라기. 점점 시들어가는 해바라기. 자신이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해바라기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꽃이 맞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아빠는 언제 오실까? 몇 밤이 지나면 오실까? 열흘하고도 하루는 지났을 텐데 말야. 엄마는 언제 오실까? 몇 밤이 또 지나면 오실까? 열흘하고도 이틀은 지났을 텐데 말야. 백 밤은 어떻게 기다리는 걸까? 지희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제는 양초도 다 떨어져 완전히 어두운 집에서, 그저 해바라기 꽃잎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열흘하고도 사흘은 지났을까?

옅은 빛을 내뿜던 양초마저 빛을 거두었다. 플래시는커녕 양초조차 전부 떨어졌다. 완전히 어두워진 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희는 손을 더듬어 해바라기를 만진다.

만지작, 보드라웠던 꽃잎은 햇빛을 받지 못해 점점 시들어 문드러져간다. 만지작, 물도 부족한 듯 이파리는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색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루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지희는 소년을 떠올렸다. 또한 제일 좋아하는 꽃이 뭔지 물었던 그 날을 떠올렸다. 다시 한 번 물어본다면 답을 달리하겠다.

나는 조화가 제일 좋아.

향은 없어도, 언제까지나 계속 내 곁에 있을 테니까.

지희는 벽을 더듬어, 현관 입구에 섰다.

바깥에 나갔다.

그곳에는 모두가 있었다.

식물을 닮은 소년,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들이 있었다.

태양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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