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캐풍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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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캐풍 식사

"그러면 정확하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백금발 머리에, 사람보다는 물개와 닮은 얼굴을 띤 형상을 한 아나이지가 자기 룸메이트에게 정색하며 물어봤다.

작은 마을 시흘펠스 암 라인에서 같이 살고 있던 클루스가 장을 보고 돌아와 부엌에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자 작은 TV 앞에 앉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방송을 보던 아나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클루스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보러 왔다.

"건강한 요리 이야기지." 클루스가 답했다. 아나이지에 비해서 클루스는 꽤 소박한 사람이었다. 등에 난 짧은 촉수 네 쌍만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십 대 소년으로 보였을 만도 했다.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싶어. 이런 종양이랑 궤양을 먹는 게 정말로 몸에 좋은지 잘 모르겠거든. 음식이 너무 편중된 데다 생각해 보면 궤양이란 건 건강하지 않은 조직이잖아."

아나이지는 물개 얼굴의 주둥이를 삐죽 내밀었고, 조금 짜증이 난 듯 꼬리를 공중에 휘둘렀다.

"쓸데없이 복잡한 것 같고… 그냥 쓸데없어 보여. 내 생각엔 위대한 카르시스트 이온 님도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을 안 썼을 것 같아. 카르시스트 모쿠-히르님이 네 실험에 대해서 뭐라 말하든?"

그 말을 들은 클루스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한 번 먹어는 봐. 먹고 나서 뭐라 해도 되잖아."

아나이지가 콧잔등을 문지르자 콧수염이 움찔거렸다. "그래, 먹어 보긴 할게. 그래도 고기 한 점이라도 주면 안 돼? 내가 먹을 음식에?"

클루스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번졌다. 그는 둘이 같이 쓰는 주방을 통통 뛰어다니며 식기와 냄비를 빼 들었다. 클루스는 이상하리만치 부드럽게 냉장고에서 붉은 덩어리를 꺼내 비닐 랩을 벗겨낸 다음, 네 조각으로 잘라 기름이 지글거리는 팬 위에 올렸다. 등에 난 촉수 하나는 도마에 박힌 커다란 칼을 집어 인간 손에 쥐여 줬고, 그 손은 칼로 야채를 잘랐다.

요리를 끝마친 오늘의 일일 요리사는 자랑스럽게 꾸민 음식이 담긴 접시 두 개를 부엌 식탁에 올려뒀다. "오늘의 요리는 삶은 바실리스크 알을 곁들인 버섯 소스를 얹은 불곰 스테이크입니다. 디저트로는 라즈베리 밀웜 타르트를 준비했습니다."

아나이지는 접시를 흘겨보고선 일부러 짐짓 심각하게 말했다. "바실리스크 알에는 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둘은 웃었고, 아나이지는 음식을 찔러 한입 크기로 잘랐다. 음식을 반쯤 먹은 아나이지는 중얼댔다. "음식이 전부 좀 매운 거 같아. 끝에 피 맛이 좀 났으면 좋겠지만, 그거 빼면 먹을 만은 하네."

"그치? 못 먹을 정도는 아니잖아." 자기도 모르게 기쁨에 겨워 흔들리는 룸메이트의 털도 없고 비늘도 없는 꼬리를 보며 클루스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이건 뭐야?" 아나이지는 노리끼리한 주황색 동그라미 모양의 뭔가를 집어 들더니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훑어봤다.

"당근 자른 거야. 저건 양배추 이파리고."

아나이지는 야채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

이십 분 뒤, 클루스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나이지는 막 TV 앞에 편히 눕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얼굴이 흙빛이 된 채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없었다.

클루스는 스티커, 포스터가 붙어 있고 문양과 상징물이 새겨진 룸메이트의 방문을 짧은 손톱으로 두드렸다. "아나이지, 괜찮아?"

귀기울여 들었더니 신음이 났다. 이것만으로는 낼캐 신도로서는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명상이나 의식 중에 나는 소리 같지도 않았고, 다가오는 축일은 몇 주나 남아 있었다. 그보다는 아파서 내는 소리 같았다.

클루스는 예의상 문을 한 번 더 두드리고, 촉수로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나이지의 방은 언제나처럼 시작하고 만 프로젝트, 보기에는 예쁜 잡동사니와 종교 서적이 온통 어질러져 있었다. 하지만 클루스의 시선은 곧바로 난장판 가운데 있는 침대로 향했다. "괜찮아?" 클루스는 침대 위에 있는 아나이지를 보자마자 말했다.

아나이지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몸은 덜덜 떨고 있었고, 피부에는 소름이 잔뜩 돋아 있었다.

"아나이지? 왜 그래?"

"로바아타르님이 내 속을 다 뒤집어 놓고 계셔…" 아나이지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음식 때문에 그래? 정말… 정말 미안해." 클루스는 당황하며 말하곤, 침대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그… 도와줄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좀 도움이… 괜찮다면…" 클루스는 망설이며 이나이지의 배에 손을 얹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문질렀다. 아나이지는 또다시 신음했지만, 멈추라고 하지는 않았다. 일 분쯤 지나자 이나이지는 좀 진정된 듯 보이더니, 몸을 풀고 등을 대고 누웠다.

"멈춰." 이나이지가 갑자기 말했다. 목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기에 놀란 클루스는 손을 뗐다. 아나이지는 아까처럼 몸을 말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부끄러워진, 그리고 아주 당황한 클루스는 뒷걸음질을 쳐서 문을 닫고 나갔다.

클루스는 심호흡을 하고는 계단을 쓰는 대신 아래층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래층에 내려가자, 위층에서 아나이지가 분노에 가득 찬 함성을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

"어서 불어. 음식에 도대체 뭘 넣은 거야, 이 색정마야?!" 아나이지는 클루스의 촉수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그의 몸 곳곳에 꼬리 끝의 독침으로 신경독까지 주입해 둔 뒤였다.

마취시키려거나 촉수를 깨끗이 뜯어버릴 생각은 없었다. 사실은 화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넣었어! 진짜야! 그냥 야채랑 고기였다고. 버섯도 아무 슈퍼에서나 파는 흔해빠진 버섯이라고."

아나이지는 한숨을 쉬더니 석연찮게 촉수 하나를 당기고 일어났다. "그럼 나는 왜 흥분한 건데?"

"나도 몰라… 최음제 같은 건 진짜 맹세코 안 넣었어. 난 그냥-"

아나이지가 말을 끊고 말했다. "그냥 ?"

"중요한 건 아냐… 그게, 요리하면서 발푸르기스나흐트킨더 노래를 불렀는데-"

"네가 낼캐 고전음악을 들었다고? 무슨 노래? 야! 대답해!"

클루스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그때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이나이지는 촉수 하나를 낚아채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헤르츠라센은 아니었겠지! 클라비가르 로바타아르에 대한 노래인 건 알잖아!"

"아야! '사랑을 담은 요리'란 게 말뿐일 줄로만 알았지! 그걸 먹고 오르가즘을 느낄 지 어떻게 알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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