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르발 2 - 이번엔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정말 재밌었다.

듀르발은 자기가 들어 있는 상자를 가지고 해줄 말이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모든 말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상자는 듀르발 같은 섹시한 짐승을 격리하기에 부적합하다."

"상자는 너무 어두워서 듀르발이 상자를 보고 비평을 더 깊이 못하게 한다."

"상자는 방음 패딩이 되어 있어서 불편하고 또 내 비평을 못 들리게 하려고 한다."

"방음 패딩은 듀르발의 비평은 어떤 힘으로도 막지 못한다는 점을 모른다."

듀르발의 말은 항상 옳았지만, 맨 마지막 말만은 틀렸다. 듀르발의 비평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단 하나가 있었다.

보관함 속에서 듀르발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어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작은 상자가 못났다고 말할 때 오늘이 일주일 중에 무슨 요일인지 알 필요는 없으니까. 듀르발은 비평을 며칠, 몇 주, 몇 달, 몇 년, 아니 몇 세기라도 계속할 줄 알았다.

시간이 얼마를 흘러도 말 하나하나가 매번 새로웠다. 항상 새로 말이 옮겨갈 방향이 있었고 새로 만들어 말할 욕지거리가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듀르발은 생각을 멈추었다. 자기가 뭘 하는지를. 그럴 때면 듀르발은 상자를 둘러봤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말이 더는 상자랑 상관없음을 깨달았다.

토론 주제는 자꾸 옮겨갔다. 상자에서 패딩으로, 또 패딩이 막는 것인 소리로, 또 그러다 보니 공기로, 또 화학으로, 또 불로, 또 동굴 속 혈거인으로, 호모 사피엔스, 두발 동물, 원숭이, 바나나…

그러다가 듀르발은 멈춰버렸다.

내가 대체 뭘 하는 거지?

내가 대체 뭐 때문에 이러고 있지?

처음으로 듀르발은 아무 말 없어졌다. 비판이 멈춰버렸다.

듀르발은 생각했다.

"듀르발은 왜 이 짓을 할까?"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길게 침묵하다가, 결국 휩쓸려버렸다.

그 침묵에.

침묵, 소리가 없음, 아무 것도 없음. 그것이 듀르발을 엄습했다. 그것을 멀리하는 게 듀르발의 방식이었는데. 무에서 아무거라도 창조하는 게.

하는 일에서 즐거움이 바래졌다. 더 이상은 하는 말이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창조의 열정을 띠는 말이 아닌, 공허를 애써 외면하는 말이었다.

열정이 사라지면서 비판 또한 사라졌다. 듀르발은 계속, 또 계속 침묵했다. 내가 뭘 하는가, 내가 왜 하는가, 라는 생각이 자꾸 돌아오며 듀르발의 다른 생각들을 멈추었다.

침묵은 더 길어졌다. 얼마나 길어졌는지는 몰랐지만, 더욱더 길어졌다는 느낌만은 있었다.

뭔가를 얻고 싶어서 말했지만, 이내 자신이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쪽을 좋아함을 깨달아버렸다.

말하는 것도, 어떤 말을 꺼낼지 생각하는 것도 너무 어려워졌다. 할 말은 이미 다 해버렸다.

비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길게 멈춰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될 줄 몰랐다.

시간이 흘렀다.

듀르발은 상자 안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없는 채로 있었다. 도대체 얼마 동안이었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때, 대담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듀르발은 왼쪽을 바라봤다.

자기가 있는 영역이 듀르발에게 보였다. 포스트잇의 영역. 노랑 띤 무한히 드넓은 구역.

문이 보였다. 펜 잉크로 그려진 간단한 문. 전에 듀르발이 본 적 없었지만, 늘 그곳에 있었던 듯 느껴졌다. 나아갈 새로운 곳.

듀르발은 다시 어두운 방을 돌아봤다.

정든 곳이었지만, 나가야 할 때였다.

듀르발은 잉크로 된 가는 다리를 앞으로 뻗어, 자신의 사상 최초의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에다 막대기 손가락 세 개를 얹고 손잡이를 돌렸다.

어디로 가는 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곳이겠지.

듀르발은 그곳을 기대했다.

사건 3556-20D

관련 SCP: SCP-3556

날짜: 2███년 12월 20일

장소: 제77기지 격리 금고

설명: SCP-3556은 그 어떤 말도 꺼내기를 멈추었으며, 아무런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SCP-3556에 그려진 생물은 사라졌으며, 대신 "찾지 마요Gone fishing"라는 말만 남아 있었다. SCP-3556은 추후 공지 시까지 무효 등급으로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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