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으. 심호흡 한번 하자. 어…질문을 뭘 해야 했더라…면접에서는 라포 형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에, 또…"
백연서는 두근대는 심장을 잠시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재단에 들어오게 된 지 어느새 6개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는 되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말고, 서로 할당량에 맞춰서 일하자. 신입이 품기에는 조금 싸가지 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태도였지만, 백연서의 업무 능력은 이런 평가를 상회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게 사회생활이었고, 재단이었다.
면담은 부담되는 업무지만, 오늘의 면담 대상은 법의학과의 업무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재단에 입사한 이후, 기존의 법의학 지식이 맞지 않는 상황이 너무나 많았다. 예를 들어 시체의 부패 속도를 10배 빠르게 만드는 칼이라던지, 10분 안에 장기를 다 파먹어 버리는 변칙 구더기라던지.
백연서는 부검 전문 담당은 아니었지만, 변칙개체에 노출된 시체는 일반적인 케이스와는 너무도 다른 상황이 많았다.
그렇기에 이번 면담은 중요했다. 백연서는 면담자의 프로필을 보았다.
홍원기.
1969년생. 홍박사라고도 불리는 변칙의학의 귀재.
약력)
사슴대학 부자연과학부 초상생물학과 졸.
케임브릿지 의학전문대학원 졸.
비뇨기과/초상의학과 봉직의로 미국 근무 중 의료사고로 의사면허 박탈.
UIU 인계 후 초상과학수사팀 팀원으로 2년 근무 중 탈주.
중국에서 불법 비뇨기과 개업.
삼대천 입단. 이후 직접 시술이 아닌 변칙기술 제조에 주력.
해당 기간 SCP-157-KO 제작에 주요 관여.
…
백연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약력만 봐도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분명 재단에서도 탐낼 만한 인재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자신이 잘 설득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나이 차이도 서른살 이상 나는 데다가, 장막 안에서도 불법에 가까운 일을 해온 거친 사람이다 보니, 조금은 두려운 감정도 있었다.
물론 이곳은 재단이고, 결코 두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백연서는 잘 알고 있는 사이에게는 활달한 모습도 잘 보이지만, 처음 만난 상대에게는 아주 낯을 가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안녕하세요?"
백연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글동글한 인상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프로필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프로필의 사진은 날렵했고, 그 소름돋는 약력과 겹쳐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는데, 눈 앞의 홍박사는 생각보다는 착해 보여 백연서는 살짝 안심했다.
"절 아세요?"
홍박사의 목소리는 너무 얇아서 백연서는 순간 웃을 뻔 했다.
두번 연속으로 당황한 백연서는 웃음을 참느라 처음의 긴장은 어느새 풀어진 상태였다.
"홍박사님? 법의학과에 지원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겠어요?"
홍박사는 백연서의 그 물음에 올백으로 묶은 자신의 머리를 조금씩 쓰다듬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실례지만 연구원님은 재단 이전에 다른 초상 사회에서 일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요? 아뇨."
"정말 잘하신 겁니다. 정상성 수호기관 바깥의, 보호받지 못하는 장막 안팎의 생태는 정말로 지옥입니다."
"지옥…"
백연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재단 내부, 특히 법의학과에 있다 보면 정말 질리도록 많은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재단 바깥에서 변칙개체 혹은 요주의 인물, 단체에게 살해당한 케이스였다.
그만큼 재단의 보호가 없는 초상세계는 상상하기 힘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 터였다.
"특히 저희들끼린 투명 장막이나 반 장막이라고 부르는 초상과 비초상 그 어딘가에 끼어 있는 저같은 인물들에겐 특히 그렇죠."
"……"
홍박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 아버지는 전형적인 반장막 사람이었죠. 장막 세계 내에서 당당히 활동할 정도의 힘은 안되지만, 장막 안쪽의 힘을 절감하고 계시는 인물이었죠. 어머니도 초폭에게 돌아가셨으니…"
"초폭이요?"
"초상 조폭 말입니다. 잡범이었는데, 국가기관이 증거 하나 잡지 못했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그때부터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은 초상사회의 일원으로 키워야겠다 마음을 먹으셨죠."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보통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독종인 겁니다. 그때는 셀레스트도 없었을 땐데…어떻게든 초상사회와 일반사화의 경계선에 있는 인맥을 최대한 이용해서 절 유학 보냈으니까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세요?"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원래 아버지는 부동산업자셨는데, 한동안 사업을 아예 정리하고 전국 각지의 무당들만 찾아갔어요. 그렇게 몇년동안 있지도 않은 영력을 다 끌어모은답시고 액막이도 자청하고 온갖 일을 해서 어떻게 무당이 되었어요. 근데 그 정도 무당은 초상 사회의 끝에도 못들어가는 천민 중의 천민이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는 두 직업을 합치기로 했어요."
홍박사는 두 손을 마주쳤다.
"합친다고요? 부동산업자랑, 무당이요?"
"네.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꽤 어울리는 거였어요. 부동산이라는 건 사려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죠?"
"네. 아! 혹시 풍수지리로 명당을 건설사들에게 공급했나요?"
홍박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진짜 강력한 무당들은 그렇게 돈벌었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아버지는 삼류 무당이었어요. 그런 거창한 일은 못해요. 아버지가 택한 방법은 바로 경매였어요."
"경매…?"
백연서는 이것이 면접이라는 것도 잊고 홍박사의 입담에 빠져들었다.
"부동산 경매 말입니다. 부동산 경매에 나온 매물들은 보통 시세보다 훨씬 싸게 세상에 나오거든요. 그런데 한번 소문이 고약하게 난 매물은 잘 안 팔리기 마련입니다. 가령 집주인이 자살을 했다던가…"
"귀신이 나온다던가?"
백연서의 말에 홍박사는 손가락을 튀겼다.
"빙고! 아버지는 그렇게 가격이 크게 떨어진 매물을 헐값에 낙찰받아서 굿판을 벌인 뒤 정상가에 파는 걸로 돈을 벌었습니다."
"와…"
"그렇게 벌게 된 돈과 인맥으로 아버지는 저를 사슴대에 보내셨죠. 전 어머니의 억울함을 해소해보고자 법의학. 그중에서도 초상법의학을 전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제가 의학전문대학원을 간 이유고, 중간에 비뇨기과로 빠지긴 했지만, 법의학과에 다시 지원한 이유입니다."
백연서는 홍박사의 이야기에 감탄했다. 자신도 가족들이 초상세계 내에 있었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친밀감마저 생기고 있는 상태였다. 백연서는 조금 더 밝아진 목소리로 만들어놓은 질문을 시작했다.
"여러 요주의 단체를 전전하셨는데요, 정상성 수호기관에 충분히 입사하실 만한 스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대천과 같은 단체에 입사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그 물음에 홍박사는 예상했다는 듯 수심이 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대천은 절 보호해주었죠."
"보호요?"
"……한반도나 중국은 초상기관의 엄격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특히 삼합회 같은 초폭들이 점유하는 지역들은 더욱이요. 전 법의학을 통해 어머니를 살해한 진범을 섣부르게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협박과 암살시도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면허도 박탈당하고, 지식 이외의 초상능력 하나 없는 저를 보호해준 게 삼대천이었습니다."
"삼대천은 그 지식을 노리고 홍박사님을 도와주신 거잖아요."
그 말에 홍박사는 잠시 백연서를 바라보았다.
"그건 모든 단체가 그렇습니다. 재단도 제가 능력이 떨어졌다면 이렇게 면접을 했을까요? 그냥 다 불게 한 다음 기억소거제나 들이키게 했겠죠."
"…네. 삼대천에 대해 물어본 이유는, 이들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했느냐는 겁니다. 가령 홍박사님이 그들에게 남은 빚이 있거나 한 경우는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 부분은 문제 없습니다."
"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면접은 30분 정도 더 이어졌다. 백연서는 홍박사가 마음에 들었다. 예상과 달리 꽤나 젠틀했고, 법의학에 관한 소견도 상당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면접은 어땠어?"
"네, 괜찮은 사람 같았어요."
"그래?"
"네. 삼대천이랑 엮여있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뽑아도 될 것 같아요."
"…역시 대단한 사람이네 홍박사."
백연서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초상의학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 중에 홍박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 문제는 그 사람이 의사면허를 박탈 당한 이유지."
백연서는 침을 꼴깍 삼켰다.
"뭐 때문인데요?"
"홍박사는 비뇨기과 담당이었는데, 살아있는 환자의 ██를 ██████ 했어. 그 일로 면직된 후에는 중국에서 ████를 ████하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삼대천에서 완전히 손 뗐다는 거 그것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 삼대천 스포츠 소속이었던 홍박사의 오른쪽 허벅지엔 아직도 삼대천 문신이 있는데, 완전히 연을 끊으려면 그 문신을 뜯어내야 하거든."
그 말에 백연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네? 그, 그런 걸 왜 제겐 안 말해 주셨어요?"
"너 빼고 다른 법의학과 인원들은 모두 다 아니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잖아. 모두 색안경을 끼고 보겠지. 너도 방금 전까지는 괜찮은 사람 같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때?"
백연서는 한참 고민했다. 면접 때의 좋은 느낌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게 옳은 걸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과거의 행적 하나로 재단 입사를 막는 것도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제 생각에는 홍박사님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