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라이언 윈프리는 옆의 요원을 무시하고 조용히 공원 산책로를 올랐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을 지나 조각상들 앞에 이를 때까지 윈프리의 얼굴은 심각한 고민에 일그러져 있었다. 평범하게 세워져있는 청동제 기둥은 앞에 놓인 팻말로 예술작품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간신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도 고요한 이 공원이 오히려 더 두려웠다. 지금껏 보아왔던 혼돈의 도가니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장소였고, 그것이 지금 윈프리 중위의 직감을 날카롭게 찔러대고 있었다.
젠장할, 이놈들이 이럴리가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 윈프리 중위에게 있어서 그놈들은 혼돈의 반란만큼이나 위험분자이고, 엔트로피 놈들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으며, 오컬트 녀석들만큼이나 머릴 곯게 만드는 테러리스트였으므로 이 평화로운 공간을 그들과 전혀 연관지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당장 처음에 확보한 쪽지가 아니었다면 이 공원은 평범한 SCP 대상으로 여겨졌겠지만 이렇게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이상 여기에도 살벌한 음모가 꿈틀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했다.
문제는 그것이다. 대체 이 쓸데없는 조각들이 생겼다 부서지고 다시 생길 뿐인 이 공간을 가지고 놈들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만약 음모가 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본성을 숨기는 것이 더 께름칙한 것이다. 윈프리 중위는 재단 기록상 92번째로 나타난 조각상 앞에 다다랐을 때쯤 이것을 생각해내고 몸을 떨었다.
개중 괴악하게 생긴 곡선 투성이의 금속 덩어리 조각을 보며 중위는 계속 생각했다. 혹시 이 조각상들 자체가 어떤 밈적 효과를 갖는 것인가? 장기적으로 인간의 정서를 피폐하게 하는 것도 있을 법 하다. 아니면 돌연 173의 카피가 나타나 우리를 학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 맙소사, 생각하면 할수록 그에겐 더욱 안좋은 가능성만 떠올랐다. 이 평화로운 조각공원에 대한 중위의 막연한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순간 오싹한 기운이 그를 덮쳤다. 그런 위험지대에 혼자 서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오브라이언은 권총을 뽑아들었다. 망할, 나와라 이 새끼들아! 거기 있는거 다 알고 있어! 그는 아무도 없는 느티나무 뒤를 홱 겨누고는 방아쇠에 손을 걸쳤다.
갑자기 중위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무 뒤엔 명백히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 돌아섰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평정심을 철저하게 단련한 그에게 이런 비합리적 의심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 중요한 건 지금 여기가 평화롭다는 거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그곳에는 실존하는 위협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중위는 갑작스레 다시 그걸 깨달았다. 권총을 치켜들고 두려움에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각상들이 다가와있었다.
윈프리는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지만 조각상 말고는 그의 비명을 들을 사람이 없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조각상 하나가 중위의 등에 닿았다. 중위는 자신이 뒷걸음질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윈프리 중위, 아니 겁에 질린 가엾은 오브라이언은 패닉에 휩싸여 달려나갔다. 뒤를 향해, 무시무시한 조각 괴물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차오르는 공포에 익사할 것 같았지만 가빠오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다가오는 주위의 모든 것에 총탄을 갈겼다.
그러나 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 빽빽히 그를 둘러친 조각상 하나하나의 차가운 눈초리에 그는 점점 미쳐갔다. 그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브라이언은 조용히 권총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방아쇠를 당겼다.
인원 손실 보고서
사망자 오브라이언 윈프리 중위, 임시 2등급.
사인 우측두엽 부근의 총상, 중위 자신의 총기에 의한 자살.
목격 정보 당시 수행했던 1등급 요원 ████의 증언에 따르면 중위는 진입로에서 요원을 남겨두고 공원에 진입함. 이후 사고가 발생할 때 까지 공원에 들어간 인원은 없으며, 요원은 몇번의 총성을 듣고 중위를 추적함. 조각 92B 앞에서 그는 착란 상태에 빠져 있었으며 요원을 발견하지 못한 채 권총 자살함.그들을 얕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윈프리 중위는 전문적인 대적 훈련을 받은 우수한 인재였고, 그의 평소 정신감정 결과 역시 지극히 양호했습니다. 중위가 SCP-173-KO 내에서 갑자기 자살한 데에는 이 SCP 대상의 식별되지 않은 변칙 특성이 작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즉각 대상을 폐쇄하고 재조사할 것을 요청합니다. - 구역감독관 존 패트릭
재조사 결과 어떤 인식재해적 착란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윈프리 중위의 자살은 지극히 우발적인 사고였습니다. 현재의 격리 절차를 유지합니다. - O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