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Delicato(섬세하게)

카에스틴은 회색빛 복도를 걷고 있었다. 광역 정보국 제1국. 외무부와 함께 은폐나 각종 작전들을 실행하고, 주로 요주의 단체를 감시하는 데 주력하는 곳. 그는 문 하나를 두드렸고, “들어오시오.” 하는 짧은 소리가 들렸다. 땅딸막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남색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책상의 명패에는 은빛으로 ‘요주의 단체 전문가, 루퍼트 셰일’이라고 박혀 있었다. 카에스틴에게는 고개도 들지 않고, 루퍼트가 말했다.

“뭔가?”

“요주의 단체로 생각되는 인물 하나에 대해 물어보러 왔습니다만.”

루퍼트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제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시간은 금이라는 소리도 안 들어봤나보지?”

“음..AWCY입니다. 이니셜로 Miss O.J. 1985년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고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루퍼트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었다. 그는 하얗게 질려서 똑바로 카에스틴을 쳐다보았고, 이어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냈다.

“난 아무 것도 몰라. 안다 해도 너 정도 선에서 신경쓸 일도 아니고. 당장 나가. 난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는 책상에서 돌아 나와 카에스틴을 떠밀었다. “난 아무 것도 몰라. 그게 공식적인 답변이고, 정보국 내에서 그걸 답변해 줄 작자도 아무도 없을 거다. 그러니까 파헤칠 생각은 집어치우고 배정받을 임무나 제대로 하라고.”

그는 문 밖으로 내쫓기다시피 했다. 문을 닫으려는 루퍼트를 저지하며, 그가 말했다. “진실을 알아야겠어요. 내 기억에서 지워진 것, 내 개인적인 삶.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야겠다고요!”

루퍼트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대꾸했다. “너 자신부터 똑바로 쳐다봐.”

“그게 무슨 소리죠?”

“난 그 여자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루트로 말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충고 하나만 해두자면, 이거나 생각해 보라고. 그냥 평범한 2등급 정보요원을, 도대체 왜 오리엔테이션부터 관리까지 광역 정보국의 국장이 직접 담당할까? 지금 뭘 쫓고 있든, 확실한 건 정보국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 정보국에서 찾는 게 가장 빠르겠지. 그리고 공식적인 루트는 굳게 닫혀 있고 말이야.”

문이 쾅 닫혔다. 카에스틴은 언뜻 루퍼트가 눈을 찡긋 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는 닫힌 문 앞에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3악장. Allegro.

지휘자는 쏟아지는 불빛 아래 부드럽게 지휘봉을 움직였고, 깊고 씁쓸한 곡이 퍼져 나왔다. 노래는 귀에 고요히 파고들었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초록색 눈. 그 눈빛에 어울리는 붉은빛 섞인 갈색 머리카락. 그의 손이 천천히 머리카락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인다.
“도망쳐요.”
거대한 폭발음. 아니,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여자는 늙은, 주름살 낀 노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드니 부인.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브람스의 교향곡이 그의 들리지 않는 비명을 덮어 버리며, 우울하게 연주회장을 울렸다. 그 때, 음악은 갑작스레 긴 비프음으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카에스틴은 눈을 번쩍 떴다. 비프음이 울리고 있었다. 이미 이야기해 놓은 대로, 자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 15분.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삑삑거리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자인의 목소리가 명랑하게 들려왔다.

“잘 쉬었어요? 모든 일은 다 준비해 놨어요. 지금 숙소 앞에 있어요”

“그럼 시작하죠. 기억해요, 나나 당신이나 전투에 특화된 인원은 아니라는 거. 전면전이 아니라 치고 빠져야 해요.”

“뭐, 그 정도야.”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숙소 앞으로 나갔다.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자인은 까만 우산을 받쳐들고 있었고,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1국 건물 앞 주차장에 미리 세워 놓은 차로 다가갔다. 차에 올라타자, 카에스틴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자인은 조수석에 놓여있는 쌍안경을 눈에 갖다댔다. 계획은 간단했다. 자인은 새벽 1시 10분에 제3기록보관소에서 기록이 누락되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정보국 1국의 루퍼트 셰일의 사무실을 호출한다. 당연히 새벽 1시에 누가 있을 리 없으니, 그 호출은 바로 루퍼트의 개인 단말기로 재발신된다. 그리고 ‘전화’라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호출’이니 무언가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그러면 루퍼트는 사무실로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카에스틴이 루퍼트를 제압하고 정보를 알아낸다.

꽤나 괜찮은 계획이기는 해, 다만 작전을 수행하는 인원이 별로여서 그렇지. 전투 훈련에서 권총 사격술을 제외하고는 낙제를 간신히 면했던 정보 요원에, 작전 수행 분야 자체에서 민간인에 가까운 사서가 이 계획을 해낸다면 그것도 꽤나 신기한 일인데.

그들은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자인은 계속해서 루퍼트의 사무실인 6층에 쌍안경을 맞추고 있었다. 카에스틴은 건물 앞 차량 차단기 앞에 차를 세웠다. 그 때, 자인이 흥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 불이 켜졌어요! 빨리!”

카에스틴은 무전기와 뒷좌석에 놓인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는 빠르게 입구로 향했다. 계단으로 한번에 6층까지 뛰어올라가서, 그는 6층의 통로문을 살짝 열었다. 루퍼트는 사무실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몸을 웅크리고 기다리자, 루퍼트가 툴툴거리며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에게 등을 돌린 채로. 빙고. 카에스틴은 가방에 있는 최루 분말 분사기를 집어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루퍼트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카에스틴은 그 때 분사기를 루퍼트에게 쏘고 있었다.

순식간에, 하얀 분말이 확 퍼져나와 루퍼트의 얼굴을 뒤덮었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와 함께, 루퍼트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쓰러졌고, 카에스틴은 루퍼트에게 몸을 내던졌다.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남자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루퍼트가 팔을 휘둘렀고, 카에스틴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콜록거리며, 그는 일어섰고, 사무실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책상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건물 전체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망할! 카에스틴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자인은 일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건물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차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좋아, 좋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쌍안경을 내던졌다. 무전기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카에스틴의 말에 따르면, 정보국 내 보안 경보가 울렸을 때는 1층에서 상주하는 경비원 둘이 이동하고, 1분 내로 ‘경보 해제’라는 응답이 없으면 정보국의 경비대가 즉시 출동한다. 그녀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30초는 지난 것 같았다. “제발.” 그녀는 운전석에서 유리 너머로 불 켜진 창문을 내다보았다.


루퍼트는 눈물을 흘려대며 카에스틴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둘은 부딪혔지만, 카에스틴은 이번에는 루퍼트를 밀쳐내고 최루 분말을 한 번 더 쏘았다. 이번에 루퍼트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카에스틴은 주머니에서 밧줄을 꺼냈고, 손과 발을 묶었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루퍼트를 사무실 안으로 몰아넣고 문을 잠갔다. 곧이어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쿵쾅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자, 이제.” 카에스틴이 루퍼트의 귀에 대고 말했다.

“당신은 아는 정보를 다 털어놓아야 할 거야. 오늘 당신에게 어느 정보 요원이 찾아와서는 같은 정보를 물었던 걸로 아는데. 1985년, Miss.O.J, AWCY.”

루퍼트가 쿡쿡거렸다. “꽤나 연기나 말하는 솜씨는 그럴 듯 하지만, 어떤 적대적인 단체도 단신으로 정보국에 들어올 리는 없지. 거기다가 무기라고는 기껏해야 최루 분말이라니. 자기 얘기를 3인칭으로 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인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낮에 했던 말은 나보고 이런 ‘비공식적인’ 루트로 접근하라는 의미가 맞았나 보군요.”

“당연히 그렇고 말고. 하지만 묶은 걸 풀 필요는 없네. 그랬다가는 의심을 살 테니. 그래…O.J라. 말해주기는 해야겠지. 자네의 보안 등급이 높은 건 아니지만, 국장의 총애를 받는 유망주니 말이야.”

“그건 또 뭔 소리에요?”

“신경쓰지 말게. Miss O.J는 AWCY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로 추정되는 인물이네. 항상 혼자 활동했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상당히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공연을 하려 했네. 그러나 그녀와 같이 활동하는 사람은 이외에도 있다고 생각되고. 왜냐하면 SCP-169-KO, ‘의지의 승리’는 분명하게 이미 격리되고 있었음에도, 또 다른 ‘의지의 승리’가 그 날 공연에서 등장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지. 그녀가 5월 17일, 그 운명의 날에 공연하기 전부터 우리는 그녀가 연줄로 이름을 올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네.”

“그럼 지금은 어디 있는 거죠? 재단에 잡혔나요?” 그는 살짝 절망을 느꼈다. 결국 이렇게 탐색이 끝나는 건지.

“아니네. GOC가 우리보다 빨랐지. GOC의 공격에 AWCY가 대응했고 그것 때문에 폭발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그녀에게 동료가 있다고 보는 거고. 그 이후로 목격된 바는 없네. 죽었다고 보이고.”

“결국… 그런 건가요.”


자인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무전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때, 차 소리와 함께 무장 차량 두 대가 그녀의 차 앞에 멈춰섰다. 소총을 들고 검은색 방탄복으로 무장한 남자 둘이 차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이 운전석 창문을 두들겼다.

“당장 차 치우시오. 안 그러면 연행하겠소이다.”

그녀는 재단 신분증을 들이댔다. “죄송해요. 지금 차가 고장났어요. 움직일 수가 없는데…”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차 뒤로 가 차를 밀기 시작했다. 자인은 잽싸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운전석 창문을 들여다보더니, 창문을 톡톡 총구로 두들겼다.

“사이드 브레이크 풀어요.”

“사이드 브레이크요? 그게 뭐죠? 죄송해요, 운전면허를 딴 지 몇 일밖에 안 되서-“

그들이 눈짓했다. “차에서 내리시오.”

이런.


카에스틴은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를 무시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루퍼트의 말소리가 들렸다. “비상벨이 울렸는데, 탈출 계획은 그럴듯한 걸로 세웠나? 총 맞아 죽는 건 보기 싫은데.”

“글쎄… 원래 계획은 당신을 깔끔히 제압하고 비상벨 따위는 울리지 않게 하는 거였는데…”

루퍼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총을 들고 협박을 했어야지. 최루 분말을 뿌려대며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예상했었고. 그래서 뭘 어쩔 건가?”

카에스틴은 창문 밖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플랜 2죠.”


총을 철컥 하고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리시오. 안 그러면 쏘겠소.”

“에…그러니까…”

그 때 무전기에서 직직대는 소리가 났다. “플랜 2. 플랜 2에요.” 자인은 잽싸게 조수석의 가방을 집어들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헐떡거리며 뛰었고, 입구에 곧 다다랐다. 뒤를 돌아보니, 그들은 차를 들이받아 버리고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가방 안에 든 것을 꺼냈다.


카에스틴은 초조하게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 무전기로 직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준비 끝!”

카에스틴은 그 소리에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압력과 함께 순식간에 바닥이 가까워졌다. 점점 바람이 빨라지며 속도가 붙었고, 그는 바닥에 부딪혔다. 정확히 말하면 구명 매트에. 플랜 2 성공. 주 플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 플랜의 실패에 대비한 보조 플랜이 중요하다. 올라시 국장이 최고의 격언으로 삼는 말이지. 플랜 2는 간단하게 자인이 구명 매트를 1층에 깔아 놓고, 카에스틴이 거기에 정확하게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기술적인 부분이야 재단의 ‘표준형 인명 구조 키트 2’를 이용하면 그만이었고.

자인이 그를 끌어당겼다. “빨리! 가야 해요!”

루퍼트 셰일의 사무실 문이 부서져 나가고, 소총을 든 남자들이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루퍼트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킥킥댔다. “역시, 마음에 드는구만. 국장의 유망주답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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