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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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삑! 문제가 생겼음.

유리 요원이 전송한 메세지가 고든 소령의 단말에 표시되었다.

 "작전계획 B로 전환한다. 알파 분대, 브라보 분대, 전원 돌입 준비. 호텔과 양키는 예정대로 접견 장소에서 대기."

고든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촬영 장비도 제대로 점검해 둬. 양키팀한테 불평 듣고 싶진 않으니."
 "알겠습니다."
 "벨벳, 바이슨BISON 정찰 작업은 어느 정도 됐나?"
 "1층과 지하 1층까지는 완료됐습니다. 단말 화면에 띄우겠습니다."
 "일단 그정도면 충분하군. 부관, 브리핑하게."
 "예."

브라보 분대장을 겸하고 있는 부관 웨이가 소총 측면에 부착한 단말 장치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시설이 별장으로 위장 중이라 다행히 이 구역의 경비 병력은 별 것 아닙니다. 지하와 계단실 정도만 잘 처치하면 진입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문제 상황 메세지가 먼저 온 걸 보면 노벰버 팀의 공작이 유효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적도 특무부대의 개입 정도는 충분히 상정하고 있겠죠. 기밀성보단 신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므로, 지금은 건물 전체를 조심스레 제압하기보단 바로 교섭장소를 공격해야 합니다."
 "좋은 판단이다. 그렇게 하지. 알파는 동쪽 출입구로, 브라보는 서쪽 출입구로 침투해 각자 가장 가까운 계단을 통해 지하로 간다. 각각 선두는 갤리온과 녹스, 후미는 휴렛과 이치가 맡는다. 벨벳은 여기 남아서, 다른 층의 바이슨 정찰 작업을 계속해라. 병력이나 도주로 파악에 집중하도록."
 "적 병력은 사살합니까?"
 "전부 사살해도 상관 없다. 어차피 법적으론 이미 다 죽은 사람들이니."

고든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이라고 덧붙이려다 그만두었다.

 "폭발물을 맡은 마오, 제이콥은 각 분대 선두 바로 뒤에서 대기한다. 신호가 오는 즉시 돌입한다. 다른 방들은 무시하고 최중심 방으로 직행해서 타겟들을 확보해라. 우선 순위는 작전 계획서에 적힌 대로다. 알았나?"
 "네!"

브리핑을 마친 X-17 대원들은 조용히 응답한 후 전투 준비를 서둘렀다. 고든 소령은 침착하게 숨을 고른 뒤 소총 측면 레일에 장착해둔 단말 화면에 뜬 건물 평면도를 살피며 침투 경로를 검토했다. 그는 목표인 중앙실이 지상과 지하에 걸쳐있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대원들이 건물 서쪽의 그림자에 숨은 채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여 수신호로 준비 완료의 신호를 보내자, 고든은 손으로 OK 신호를 보낸 뒤 자신도 K2C를 갖춰들고 알파 분대에 합류했다.

단말 액정에 나타날 메세지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고든은 짓눌릴 것만 같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수 년이 넘도록 재단의 특수전 장교로 활약해 온 고든이지만 동료의 목숨이 달린 임무가 갖는 이 압박감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고든은 허리춤에 찬 M1911의 권총집을 어루만지며, 지금까지 해온 수많은 임무들이 그랬듯이 제3연대에서 치르는 이 마지막 임무도 무사히 해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작은 전자음이 긴장된 침묵을 깨트렸다.

 삑! 교섭 실패!
 "돌입한다. 전진! 전진!"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두 분대가 동서로 갈라져나와 건물 입구를 향해 내달았다. 각각의 출입구에 서 있던 보초병을 총탄으로 거꾸러트리고 건물에 진입하자, 로비에 있던 사무원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도망치는 놈들은 신경쓰지 마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고든이 헤드셋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알파 분대의 선두에 선 갤리온은 계단실 문에 총을 몇 번 쏜 뒤 문을 열었다. 건너편에서 기습을 준비하던 반란 전투원은 총알이 박힌 배를 움켜쥐고 힘겹게 권총을 겨눠 보았지만 곧 머리에 소총탄 몇 발이 더 박힌 채 계단을 나뒹굴었다. 알파 분대원들의 군홧발이 그의 시체 옆을 바쁘게 뛰어 내려갔다.

중앙실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반란 경비병들은 복도에서 침입자를 요격하기 위해 계단과 입구를 잇는 복도의 두 모퉁이를 조준했다. 달려오는 적들을 5.45mm 탄으로 벌집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브라보 분대의 녹스는 먼저 섬광수류탄을 던져 그들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그것은 좁은 실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반란의 베타 계급 전투원들은 갑작스런 외부 자극에 대비한 신경 시술을 받았기 때문에 그정도 공격은 버텨낼 수 있었다.

 "맙소사, 저 쪽도 만만찮구만. 섬광탄 효과 없음. 사격하겠습니다."

총신 위에 장착한 악세사리의 다이얼을 왼쪽으로 돌려 어드밴스드 코너샷을 활성화시킨 웨이가 스코프의 꺾여진 시야를 잠망경 삼아 상황을 확인한 뒤 보고했다.

경비병들은 다시 모퉁이에 총구를 겨눈 채 난입해올 적을 기다렸다. 그러나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것은 적 병사이 아니라, 도중에 90도 꺾인 채 빗발처럼 날아오는 탄환이었다. 불가해한 광경에 놀랄 틈도 없이 경비병들의 머리에 총알 구멍이 뚫렸다. 분대지원화기병인 판과 하이드가 코너샷을 작동시킨 채 양 모퉁이에서 M249를 쏴제꼈다는 사실을 그 경비병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뒤이어 입구 앞으로 진출한 대원들은 기관총탄 세례에 엉망진창이 되어 쓰러져 있는 경비병을 확인 사살한 뒤 고든에게 보고했다.

 "제압 완료했습니다. 목적지입니다."

고든은 바이슨의 지도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선 폭발물 담당조에게 명령했다.

 "폭파 준비. 바로 돌입한다."

선두를 뒤따라 문 앞에 도달한 폭파 담당 대원 마오와 제이콥이 C4를 조금 떼어내어 주무르곤 철문의 잠금장치 근처에 부착했다. 대원들이 충분히 안전거리를 확보한 것을 확인한 그들은 자신들도 문에서 거리를 둔 뒤 조작기의 버튼을 눌렀다.

위력적인 폭발에 자물쇠가 사방에 파편을 흩뿌리며 부서졌다. 문을 걷어차 열고 소총을 겨누며 방에 들어선 대원들은 붙잡혀 있는 노벰버 팀과, 권총을 쥐고 교전에 대비하고 있는 경호원들, 그리고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리볼버를 겨누고 있는 리슐리외를 볼 수 있었다. 리슐리외는 입구를 장악한 X-17 대원들을 보더니, 유리를 향해 짤막하게 말했다.

 "확실히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유리 요원. 지금으로썬 말이야."
 


 
 "재단 기동특무부대다. 당장 총 내려놔!"
 "거부한다. 나는 거래를 제안하고 싶다."

갤리온이 리슐리외를 조준하며 소리치자 리슐리외가 말했다. 고든은 대원들에게 수신호로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고 총을 그대로 겨눈 채 대화를 시작했다.

 "부대 책임자 고든 소령이다. 그쪽의 신원을 밝혀라."
 "리슐리외. 본 기지의 관리자다."

역시 권총을 내리지 않은 채 리슐리외가 답했다. 고든은 마뜩찮은 감상을 받았지만, 인질을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거래의 조건을 들어보겠다. 말해라."
 "인질로 잡은 요원 두 명을 해방할테니, 그 대가로 우리 측 인원의 탈출을 보장하길 바란다."
 "그것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SCP-2395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우리에게 넘겨라."
 "2395? 이걸 말하는 건가?"

열려있는 상자 속에서 빛나고 있는 '잠자는 별'을 턱으로 가리키며 리슐리외가 묻자 고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리슐리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질 외의 대가는 제공할 수 없다. 나에겐 대등하지 않은 변칙 개체 거래를 받아들일 권한이 없다."
 "그거 유감이군."

고든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대화의 여지는 없다는 의사를 확실히 전하기 위해 리슐리외의 미간을 정조준했다. 레이저 사이트의 붉은 점이 리슐리외의 이마에 떠올랐다. 하지만 리슐리외는 침착하게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나는 귀관의 행동에 따라 약간의 규정 위반을 감수하고 전면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다. 인질과 변칙 개체를 무사히 돌려받고 싶다면 협조해주길 바란다."
 "…알겠다. 요구 조건이 뭐지?"
 "이 기지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항구적으로 중지할 것. 그리고 거래가 완료되는 즉시 철수할 것."

리슐리외의 대답은 고든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고든은 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게 동등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길 바란다. 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방금 스캔해 보존한 재단 기밀 정보를 모두 파기하겠다. 나쁘지 않은 조건 아닌가?"
 "받아들일 수 없다. 어차피 이 기지의 안전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무리한 부탁인 것은 알지만, 그쪽의 무리한 부탁에 부응하려면 어쩔 수 없다. 나도 상부를 설득할 만한 성과는 거두어야 하지 않겠나."

리슐리외는 필사적으로 고든을 설득했다. 그러나 고든은 그의 제안에서 불길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성과를 원한다면 얻어낸 기밀 문서를 가져가는 것이 기지 안전 확보보다 더 크게 작용할 텐데, 리슐리외의 제안은 그런 실질적인 부분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처음의 제안은 분명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현장에서 결정하기엔 지나치게 큰 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상대로선 인질을 잡고 있다는 이점을 살려 즉석에서 작은 규모로 협상을 타결하고 서둘러 도주하는 것이 최선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굳이 거래를 키운다는 건, 분명 시간을 끌어보려는 수작이로군.'

그것이 고든의 판단이었다. X-17은 신속하게 최중심부까지 돌파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제압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렇게 지나친 구역에 반란 병력이 멀쩡히 남아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리슐리외가 거래를 핑계로 고든의 작전 행동을 잡아두고 있는 동안 위 층의 병력이 내려와 이 방의 경호원들과 연계해 포위한다면 고작 두 개 분대 정도의 병력으로는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었다.

 [시설 4층에서 일군의 인파가 서쪽 계단실로 이동중. 무장 여부는 불명입니다. 오버.]

때맞춰 분석을 마친 벨벳이 고든에게 무전으로 보고했다. 고든은 그것을 반란 병력으로 단정하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정보의 우위를 바탕으로 허세를 부려서 적의 대응을 멈춰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연기력이 그리 출중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는 쪽을 선택했다. 고든이 장전손잡이를 거칠게 한번 잡아당기면서 입을 뗐다.

 "당신 커리어에는 안 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질을 잡은 경호원들의 머리에 이미 조준을 끝내고 있던 대원들의 돌격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최후의 순간, 분한 듯이 일그러지는 리슐리외의 표정을 지켜보며 고든이 마저 말했다.

 "이 거래는 여기서 끝이다."

계속 한 점 만을 노리고 있던 고든의 소총이, 마치 그의 말에 마침표를 찍듯이 총알을 날렸다.
 


 
 "작전 목표는 달성했다. 4층의 병력 움직임은 어떻지? 오버."
 [대략 30명이 1층까지 내려왔습니다. 곧 그쪽에 도착합니다. 위에는 20여 명이 남아있습니다. 스캔을 완료했으니 지금부턴 실시간으로 영상을 단말에 전송하겠습니다. 오버.]
 "알았다. 곧 탈출할테니, 호텔에게 연락해서 회수를 요청해두게. 오버."
 [알겠습니다. 교신 종료.]

바닥에 널브러진 십여구의 시체들을 확인하며 고든은 지상에 남은 벨벳과 통신을 나눈 뒤 서둘러서 부대에 지시를 내렸다.

 "마오, 제이콥, 로비 방향 벽면의 윗부분에 폭탄 설치해. 휴렛은 둘을 도와 줄사다리를 설치하고. 끝낸 뒤엔 입구에 폭탄을 설치한다. 갤리온은 저 스캐너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파괴해라. 마틴, 서류들과 2395를 챙겨. 나머지 알파와 브라보 전원은 문을 닫고 바리케이트를 쌓는다. 지휘는 웨이가 맡는다. 실시."
 "라저."

전 대원이 고든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작업에 착수했다. 이제야 한 숨을 돌린 고든은 노벰버 팀의 안부를 살피려 주위를 둘러봤다.

유리는 리슐리외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복잡한 감상이었다. 이 사람이 조금만 감이 안 좋았거나, 혹은 더 좋았다면, 적어도 이런 결말로 생을 마칠 인물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리볼버의 방아쇠에 건 손가락이 굽혀진 채 경직되어가는 것을 보며, 유리는 사살이 옳은 판단이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다.

 "유리 요원, 송 요원, 무사해보여서 다행이군."
 "네, 덕분에요."

리슐리외의 손에서 리볼버를 주워들며 유리가 대답했다. 송 요원은 벽에 기대어 선 채 어깨를 풀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계속 억세게 두 팔을 붙들려서 아픈 모양이었다. 그는 부대원들이 쇠고리를 벽에 박고 줄사다리를 거는 것을 보며 고든에게 질문했다.

 "소령님, 이제 어떻게 탈출할 계획입니까?"
 "지금 병력으로 적의 포위망을 정면 돌파하긴 어렵네. 적들이 입구에 매달려 있는 동안 저기에 구멍을 내서 밖으로 나가, 헬기를 타고 탈출할 작정이네."

고든이 손을 뻗어, 마오가 벽에 기폭장치를 설치하고 있는 위치를 가리켜보였다. 그 순간 누군가 문을 거칠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고든은 그 순간 소총으로 문을 겨누었다가, 바리케이트가 충분히 갖춰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총구를 내렸다. 그는 줄사다리 위에서 폭약을 쑤셔넣을 구멍을 뚫고 있던 폭발물조와 작업을 마치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대원들을 번갈아 보고는 작업을 재촉했다.

 "5분 내로 탈출한다. 서둘러! 바리케이트 구축 끝났으면 줄사다리 설치를 돕도록!"
 


 
 "적이 바리케이트를 쌓았습니다. 입구를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폭탄으로 입구를 파괴할 순 없겠나?"
 "죄송합니다. 폭발물은 비축해두질 않아서…"
 "흠… 어차피 갇힌 신세다. 적이 웬만큼 겁쟁이가 아닌 이상 결국 뛰쳐나올 수 밖에 없어. 총원 전투준비 태세로 입구를 경비할 것."
 "알겠습니다."

뒤늦게 대응에 나선 반란의 기지 수비대는 유일한 탈출로인 지하 복도에 병력을 전개했다. 투항 권고에도 반응이 없고 내부에서 연락도 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적은 인질극을 벌이거나 흥정을 할 생각조차 없는 듯 했다.

 "섬광탄을 터트린 흔적이 있습니다."
 "경비병들은 외부자극 내성 시술을 받았을텐데. 어떻게 제압하고 들어간걸까요?"

입구 근처를 조사하던 수비대원들은 바닥의 그을음과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경비병의 시체를 보며 의아해했다. 수비대장은 재단이 변칙적인 살상 물질을 살포했을 가능성을 검토해보며 위험 환경 방호복을 입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그러던 중에 핸드드릴이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내는 소리가 방 안쪽에서 여럿 들려오는 것을 알아챘다.

 "구멍을 뚫고 있군. 무슨 속셈이지?"
 "입구의 방비를 피하기 위해 벽을 부수어 탈출하려는 것은 아닐런지."
 "골치 아프군. 입구 외의 위치에 있는 병력은 벽을 주시하라. 구멍이 나면 그 즉시 발포해도 좋다."

수비대장의 명령에 따라 반란 전투원들은 긴장된 손으로 러시아제 소총을 잡고 벽을 노려보았다. 실상 이 전투원들은 상당수가 실전을 거의 겪어보지 못한 신참 병력이었는데, 수많은 변칙 개체들이 모래에 파묻혀 있어 온갖 단체들이 각축장을 벌이고 있는 이란이나 이집트 등지에 비하면 리비아는 후방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수 년 간 반란이 교전을 벌이는 일 자체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이란 지부에서 재단이나 유물발굴청을 상대로 전투를 몇 번 치른 경험이 있는 수비대장은 이번에 침투한 적 병력이 상당한 베테랑 부대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로비에서 적과 마주쳤다가 위층으로 도망친 사무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재단 전투원들은 이동 경로에 있던 무장 병력만 빠르게 사살하면서 지하로 돌입했다. 그는 보고를 받고 최대한 빨리 부대를 이끌고 내려왔지만 리슐리외 관리관은 그대로 적 수중에 떨어져 생사도 모르는 형국이 된 것이다.

생각이 복잡해진 수비대장이 머리를 벅벅 긁고 있던 순간, 폭발의 진동과 굉음이 건물을 울렸다. 수비대장이 소리쳤다.

 "어디냐! 당장 발포하고 제압하지 않고 뭣들 하고 있어?"
 "이쪽 벽은 변화 없습니다, 대장님!"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그럴리가 없다. 계단실 입구를 막아서고 방 주위를 샅샅이 살펴라!"

반란 전투원들은 필사적으로 적의 탈출로를 찾았지만, 지하층의 벽에선 어떤 구멍도 찾을 수 없었다. 수비대장은 적들이 땅굴이라도 파고 있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 입구에서 격렬한 화염을 내뿜으며 두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로 벽에서 뜯겨나간 철문이 요란하게 복도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대장은 얼얼한 귀를 문지르며 적들이 방금 폭발로 자신들의 관심을 돌리곤 입구로 정면 돌파하려 한다고 순간적으로 확신했다.

 "쏴라! 쏘고 확인해!"

대장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반란 병사들은 한참동안 입구를 향해 총알을 쏟아부었지만, 곧 그들이 소파만 맞추고 있을 뿐 적이 튀어나올 기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비대원 몇 명이 바리케이트를 치우자 그들은 뻥 뚫려있는 반대쪽 벽으로 줄사다리가 매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대원 한 명의 발치에 와이어가 걸렸다.

X-17이 방 전체의 벽이란 벽마다 구멍을 뚫어 잔뜩 쑤셔박아둔 플라스틱 폭탄과 소이탄에 연결된 부비트랩의 트리거가.
 


 
토브루크의 저잣거리는 리슐리외의 별장에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는 속보로 소란스러웠다. 갑작스런 총성과 폭발 소리에 다들 놀라있던 참이라 시민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되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유언비어가 무성하게 나돌았다. 다에시가 저지른 테러가 분명하다는 이야기, 검은 헬리콥터를 봤다는 이야기, 벵가지 정부를 지원하는 리슐리외를 노린 트리폴리 정부의 사보타주라는 이야기 등, 사람들의 호기심은 추측이 되고 또 소문이 되어 도시 곳곳을 쏘다녔다. 그런 와중에 마침 일이 있어 그 근처를 지나왔다는 사람이 입을 열자 정보에 목말라하던 모든 시민들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리슐리외씨가 돌아가셨습니다.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폐허만 남았어요.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 사람은 마침내 힘겹게 입술을 떼어 비보를 알렸고, 온 거리의 시민들이 비통에 잠겼다.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러리스트를 거세게 비난했다. 자우는 그 떠들썩함에서 한 걸음 물러난 채 상황을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다. 분명 사람들의 분노는 리슐리외라는 개인에 대한 친밀감에서 비롯하고 있었다. 왼쪽 귀에 꽂아둔 소형 통신기가 음성을 뱉었다.

 [고든일세. 자우 요원, 작전 계획 B에 따라 기억 소거 절차를 시행하게. 여건은 어떤가? 오버.]
 "충분합니다. 온 거리에서 다들 그 이야기 뿐이에요. 오버."
 [알겠네. 조작 시나리오는 3번일세. 언론 쪽은 내가 조치할테니 현장 조치에 주력하게. 교신 종료.]

자우는 확인했다는 의미로 통신기의 버튼을 누르곤 귀에서 빼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거리를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 한마디를 보태고 있었다. 리슐리외를 향한 그들의 그리움과 존경, 그리고 안타까움은 말이라는 형상을 갖추어 거리 가득 넘실거렸다. 자우는 그 기억들을 가만히 주워 모으며, 그들의 대화 주제가 서서히 날씨나 물가 따위로 바뀌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내일이면, 이 도시 사람들은 그 별장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헬리콥터를 보았다는 기억도, 슬퍼하고 분노했던 감정도 잊어버릴 것이다. 정보국은 이번 사건을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로 선전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재단이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한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역시 조금 쓸쓸한 일이라고 잠시 생각하며, 임무를 마친 자우는 해가 저물어가는 토브루크의 거리를 조용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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