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소리와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사무실, 굉장히 단촐한 검은 상의에 청바지,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 초월적 고대 독립체 전술적 대응 연구부장 리처드 닉스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류와 계획서를 정리하고 있다.
초월적 고대 독립체, 그 주에서도 신성 독립체라 불리는 통칭 ‘신’이란 무엇인가. 불가항력적이고 부조리한 존재, 신성하다 여겨지는 창조주부터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는 파괴신까지, 초월적 고대 독립체 전술적 대응 연구부는 그런 것들에 맞서는 곳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아는 이들에게는 꽤 공을 치하받는 부서였지만, 반대로 그저 신들을 상대하는 곳이라고 두루뭉술하게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관심받지 못하는 곳, 이 부서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기 부서의 진가를 보여줄, 어쩌면 더 나아가 이 세상의 큰 판도를 뒤바꿀지도 모르는 큰 열쇠를 쥔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주 위험한 것들에 맞서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곳의 최고 책임자인 그조차도 지금은 본인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꽤나 늦으시는구만.” 그는 탁자에 손을 까닥거렸다.
문이 열리면서 중년의 나이대로 보이는 여성과 수염을 기른 노인이 들어왔다.
O5-2와 O5-13, 재단 최고 수뇌부인 O5 평의회의 일원들이었다. 둘은 사무실의 손님맞이용 의자에 앉았다.
“어서 오십시오.” 닉스는 둘을 맞이했다.
“보고서는 받았네.” O5-13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재단의 지독한 골칫거리들을 모두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닉스는 O5 평의회에게 직접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것은 최근에 발견된 한 물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O5-2와 13은 직접 제150기지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대답하며 금고 쪽으로 발을 열었다. 그가 금고에서 꺼내와 탁자 위에 올려둔 것은 원기둥 형태의 보관 용기 두 개였다. 용기에 담긴 액체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으며, 내부로부터 빛을 은은하게 방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 대로라면 이게 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이란 거지?” O5-2가 용기를 들고 살펴보며 말했다.
닉스는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왔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트북 속 영상을 재생했다. “이 영상은 SCP-217을 이 물질과 접촉시키는 실험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영상에선 용기 안에 있던 것과 똑같은 붉은 물질과 SCP-217이 보관되어 있는 배양 용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후 생화학 보호복을 입은 연구원이 배양 접시 안에 소량의 SCP-217이 담긴 액체를 붓고, 같은 배양 접시 안에 소량의 붉은 물질을 부었다. 그러자 붉은 물질은 액체와 닿자마자 발산하는 빛의 세기가 더 밝아짐과 동시에 액체와 맞닿은 부분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액체와 붉은 물질은 완전히 섞였고, 빛은 사그라들었으며 불길도 잠잠해졌다.
“불길이 사그라든 이후 관찰해 본 결과, SCP-217은 완벽히 제거되었습니다.”
O5-13은 자신의 턱을 붙잡으며 말했다. “글세… 이것만으로는 확신이 잘 서지 않는데.”
닉스는 다른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러실 줄 알고 다른 자료도 준비했습니다.”
SCP-3740: 오오 부서지지 않는 자 울마르여, 오랜만이네.
배럿 박사: 안녕하신가, 오랜만일세.
SCP-3740: 그래, 아아 이럴 때가 아니지, 친구가 온 걸 맞이해 내 진수성찬을 준비하겠네.
배럿 박사: 오, 고맙네. 참, 아수르, 자네는 혹시 이게 뭔지 알고 있는가?
SCP-3740: 이게 무슨… 아악! (SCP-3740의 손 위로 붉은 물질이 엎어졌고, SCP-3740은 괴로워한다.)
배럿 박사: 자네 괜찮은가? 미안하네, 고의가 아니었어.
(SCP-3740은 황급히 주변의 벽과 탁자에 손에 묻은 붉은 물질을 닦아내려고 애썼다. 붉은 물질에 의한 불길이 사그라든 후, SCP-3740의 손은 물질이 타고 흐른 팔 부분까지 심각한 화상과 침식으로 보이는 깊은 상처가 퍼져 있었다.)
SCP-3740: 자네 정말 무서운 걸 가져왔군, 울마르! 그래, 고의가 아니라니 내 이해해주겠네, 금방 나을 거야.
(리즈 박사가 손에 의료용 약품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손을 치료해 준다.)
SCP-3740: 오오, 위대한 대마법사, 그대의 의술에 경의를 표하오.
평의원 둘은 유심히 영상 속 내용을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SCP-3740, 공기의 신이라 불리는 아수르는 그 무엇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물질은 그저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하죠.”
O5-13이 다시 붉은 물질이 담기 용기를 들여다보며 되물었다. “그럼, 혹시 우리나 다른 평범한 사람이 만져도 위험한가?”
말이 끝나자마자 닉스는 용기를 열어 물질을 손에 약간 흘려보았다. 손에는 온전히 붉은 물질이 담겨 있을 뿐, 어떠한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물질은 우리가 보통 신, 저희 부서에서 공식적으로는 신성 독립체들이라 부르는 이들이 방출하는 이코르 방사선이란 것에만 반응합니다. 이 붉은 물질이 방출하는 입자는 방사선을 일정량 흡수하는 순간 에너지를 한 번에 방출해 독립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죠. 물론 이코르 방사선 같은 게 없는 우리는 안전합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발견한 거지?” O5-2가 닉스가 손에 담고 있는 붉은 물질을 가리키며 물었다.
“최근 저희 부서는 그리스 관련 유적을 조사하던 도중 거대한 거인들의 시신들을 발견했습니다. 수척했지만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던 그들의 시신들을 조사하던 중, 저희는 머리에서 특이한 입자들이 미약하게 발산되고 있는 것을 포착했고, 머리를 부검해 본 결과 이 물질이 대량으로 들어있었습니다.”
“그럼 합성을 따로 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인가?” O5-13이 되물었다.
“물론 합성을 하려면 이론상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재단이 이해하고 있는 수준의 에리케샨 개념 공학과 기적학, 그리고 정제 기술만 있다면 충분히요. 다만…”
닉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나갔다. “생산하는데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겁니다. 일단 반신론자나 혐신론자들에게서 원액이 되는 뇌척수액 150ml 당 뽑아낼 수 있는 양이 최소 10에서 많아야 30ml, 사람 문제는 그렇다 쳐도 이 원액을 가공해서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듭니다.”
O5-2가 이마를 짚었다. “그럼 실질적으로는 기존에 있는 양만 쓸 수 있다는 뜻이네.” O5-13이 말을 이었다. “원래 있는 양은 충분하니 우릴 부른 거겠지?”
“네,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럼 새로운 그걸로 보다 안전하고 확실한 격리 절차를 수립할 생각인가?”
“아뇨, 저희 계획은 다릅니다.”
그는 각종 서류가 첨부된 파일을 내려놓았다. “제가 구상한 계획은 목표로 한 존재들 모두를 죽이는 겁니다.”
재단의 강령에 철저히 반대되는, 격리가 아닌 무력화. 닉스는 지금 그것을 행하려 하는 것이다.
“굳이 이들 전부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O5-2가 물었다.
“네, 아 그 전에, 물론 모든 신들을 죽이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신들, 흔히들 말하는 악신들을 죽이려는 것이죠.” 닉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끼리 부르는 시나리오 중에는 만신전 시나리오라 부르는, 신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확실히 지금까지 우리가 안전했던 이유는 신들이 자비로워서가 아닌, 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않아서죠. 우주 사슴? 주홍왕의 거인? 살덩어리 신? 지금은 모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고, 그들이 활동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붙잡는데 성공한다 해도 만신창이가 되어 버릴거고요.”
“그러니 먼저 선수를 치자 이 말이군.” O5-13이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닉스는 자신의 개인 노트를 가져왔다. “제가 노트에 기록한 간략한 이용 방안입니다.”
미스틸테인에 대한 간략 기록 및 사용 계획
현재 확보량: 약 600L (드럼통 3통 분량)
생산 가능 여부: 분석 및 실험 결과 에리케샨 개념 공학, 기적학 및 정제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이 가능하나, 그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며 대량 생산 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요 실험 결과 간략 기재
비변칙적인 인간에게 주입할 경우, 이코르 방사선을 기반에 둔 변칙적인 작용 전반에 대한 강한 저항성을 지닌다.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체내의 미스틸테인으로부터 방출되는 입자(루카-히스페라 입자로 명명됨)에 에너지가 축적되며, 미스틸테인이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으나 에너지가 축적된 입자에 의해 신체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힘이 일정량 이상 축적된 루카-히스페라 입자들의 체내 축적은 주입받은 인원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 충분한 에너지를 가졌으며, 이를 위해 힘이 축적된 입자를 방출할 배출구가 별도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티타늄과 철의 합금과 미스틸테인을 1:1 비율로 혼합할 경우 미스틸테인을 고체 금속의 형태로 다룰 수 있다. 초기에는 기본적으로 총알의 형태로 제작하려 계획했으나, 총알 자체가 심각한 소모품이기에 도검, 도끼, 창과 같은 냉병기의 형태로의 제작이 제안되었으며, 미스텔테인 총알의 생산량과 총기 운용 인원을 줄이고 냉병기의 형태로 제작하는 것에 주력하기로 하였다.
체내의 힘이 일정량 이상 축적되어 에너지를 역으로 방출하는 루카-히스페라 입자의 배출구를 만들어 일종의 화염 방사기로 이용하자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 리처드 닉스
“그러니까, 총알보다는 냉병기의 형태로 가공해서 쓰자는게 요지로구만.” O5-13이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신을 죽일 수 있는 물질로 만들었다지만 이걸로 상대가 될까?” O5-2는 여전히 의문을 품었다.
“이후에 각각의 계획에 대한 자세한 계획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못미더우시겠다면, 그걸 보고 판단해 주십시오.” 닉스는 자신있게 답했다.
“그래, 그럼 나머지 평의원들과의 상의도 거쳐야 하니, 계획서를 보내주게나. 그럼 우린 이만 가 보겠네.” O5-13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O5-2가 질문했다.
“저는 동의합니다. 이 계획만 제대로 먹힌다면, 재단 내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K급 시나리오 몇 개는 없앨 수 있겠는데요.” O5-3이 동의했다.
“글쎄요, 그건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 이야기 아닌가요? 저는 여전히 찝찝한데.” O5-5의 이의 제기가 들어왔다.
“저도 5의 말에 동의합니다. 도 아니면 모를 넘어서 뒷도 아니면 모 수준인걸요. 잘못하면 수습은커녕 우리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O5-8의 반대 의사가 이어졌다.
“음… 그래도 저는 이 계획을 보니 신뢰가 가네요. 그렇게 허무맹랑해 보이지도 않고, 기존 연구 결과에 기반해서 세세하게 계획되어 있으니까요.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O5-6이 말을 이었다.
“저희도 이게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문제는 상대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진짜든 빈말로든 신이라고 불릴 정도의 존재들이에요. 우리는 인류 수호를 목표로 하지만, 장막 정책 역시 중요하단건 다들 아실텐데요. 일이 틀어지면 장막 정책은 물 건너갈지도 모릅니다. 작전 자체에도 덮기 버거울 듯한 부분들이 있고요.” O5-11이 강하게 반대했다.
“뭐, 어차피 이 녀석들 중에서는 그냥 놔두기도 어려운 녀석들도 있는걸요. 밑져야 본전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부딪혀야 할 싸움, 저는 찬성합니다.” O5-9가 계획에 찬성을 표했다.
평의원들이 돌아가면서 계속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자, 그럼 한 번 투표를 해보죠. 이 거대한 계획을 실행할지 말지를 정해 봅시다.” O5-1이 회의의 중단을 알렸다.
미스틸테인을 이용한 신살 계획에 대한 O5 평의회 표결
찬성 | 반대 | 기권 |
O5-1 | O5-2 | O5-10 |
O5-3 | O5-5 | |
O5-4 | O5-8 | |
O5-6 | O5-11 | |
O5-7 | ||
O5-9 | ||
O5-12 | ||
O5-13 |
프로젝트 제안 승인됨
코드명: 프로젝트 타르타로스
타르타로스,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명계의 최하층이자 밤의 신 닉스가 기거하는 장소.
“프로젝트 타르타로스… 좋아.”
사슴 사냥
오전 10시, 제150기지 내부, 기동특무부대 알파-7 “불신자의 사도들”에게 작전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하겠다.” 기동특무부대 알파-7 “불신자의 사도들”이 집결해 있는 장소에서 기계 음성이 들린다. “현재 우리 목적지는 제100기지, 목표는 격리된 SCP-2845를 완벽히 제압, 무력화하는 것이다.”
기계 음성은 말을 이었다. “현재 파견되는 알파-7팀은 창을 다루는 제압조, 총을 다루는 사격조, 도끼를 다루는 근거리조로 구성된다.”
전면의 스크린에서 프레젠테이션이 재생되었다. “현재 대원들 전원은 재단에서 시행한 시술로 2845의 공격에 상당한 저항성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의해야 할 것은 2845의 직접적인 변칙성에 노출되는 것이 아닌, 물질 조작을 이용한 간접적인 공격이다.”
프레젠테이션이 넘어갔다. “2845는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물질을 조작한다. 따라서 사격조는 2845의 머리를 집중 사격해 시야를 방해한다. 대상이 가능한 한 시야에 많은 것을 담지 못하게 해라. 미리 대기 중이던 폭격기가 상황을 봐가며 지원해 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이 넘어가며 다음 순서가 언급되었다. “사격조가 시야를 방해하면, 제압조는 2845를 한 방향으로 몰아라. 시야가 방해되어 혼란해진 틈을 타 공격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라.”
마지막 순서가 언급되었다. “제압조가 사격조와 연계해 2845를 몰아붙이는데 성공하면, 근거리조는 놈을 한꺼번에 덮쳐라. 강하게 저항할 것이지만 끝까지 버텨 녀석의 목을 내리쳐서 무력화시켜라. 이상. 작전 브리핑을 마친다.”
알파-7은 작전에 수긍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문을 가졌다. 잡아야 할 상대의 위험성에 비해 작전은 간단했기 때문이다. 기계음이 말을 이어갔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2845의 힘은 우리도 가늠하기 어려우며, 사고방식 역시 예측불가하다. 그렇기에 작전도 작전이나 대원들의 임기응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은 거대한 계획의 시작이다. 우리는 대원들을 믿는다.”
브리핑이 끝난 뒤 대원들 전원은 수송기에 탑승했다. 모든 대원들이 탑승한 후, 재단의 병력 수송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수송기는 어느새 제100기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수송기는 제100기지 근처가 아닌 제100기지로부터 꽤나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알파-7 전원은 착륙 장소에서 내려 차량을 통해 제100기지의 근방으로 이동했다.
특무부대 전원은 모두 제100기지에서 떨어져 있으나 관찰이 가능한 곳에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 현재 2845를 격리하는 의식을 수행하고 있던 인력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기지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든 대원들은 엄폐물에 몸을 가린채, 사격조만이 기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곧 의식을 행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의식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기지에서 정체불명의 굉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묵직한 금속이 찌그러지는 듯한 소리, 뭔가가 벽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리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져 갔다.
“모두 긴장해라, 놈이 곧 기지를 깨고 나올 것 같다.” 알파7-1이 전 대원에게 알렸다.
곧이어 금속이 팽창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기지의 외벽 또한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기지의 외벽과 뼈대가 산산이 조각나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사슴의 모습을 한 외계의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격조 사격 개시!” 알파-7의 리더 알파7-1의 지시에 맞춰 은신해 있던 사격조가 사슴의 머리를 향해 사격을 시작한다. 미스틸테인 총알들은 닿기도 전에 터지지만, 거의 근접해서 터지기에 터질 때의 화염만으로 효과는 충분하다.
“상황은 어떤가?”
“이코르 방사선 수치가 너무 높아 총알이 닿기도 전에 터져버립니다. 하지만 유효타 정도는 됩니다.” 알파7-1 근처에 있던 관찰병이 보고한다.
거대한 초록빛의 수사슴은 괴로운 듯 몸을 비튼다. 근처에서 크고 작은 가시가 솟아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처에서일 뿐이었다. 알파7-1이 다시 명령을 내린다. “제압조 진입, 2845를 몰아붙인다.”
작전대로 창을 든 제압조가 빠르게 접근한다.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사슴은 이내 도망가기 시작한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지금부터 사격조는 번갈아 가며 빠르고 정확하게 최소한의 사격만 시행한다.”
사슴이 도망치고 있던 방향의 제압조 인원 두 명이 창으로 각각 사슴의 목과 몸통을 찌른다. 찌른 부위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솟아오른다. 기묘하다 못해 괴이할 정도로 변화가 없었던 그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게 괴로워하다 몸을 빠르게 비틀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둘은 버티려 시도했으나 그것의 힘은 상당했다. 사슴은 순식간에 그 둘을 뿌리쳐버렸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실랑이 사이에 제압조 전체는 이미 사슴에게 가까이 근접해 있었다. 사슴은 끝까지 저항했다. 사슴이 내뿜는 막대한 힘에 의해 그들의 신체는 이미 강하게 달궈져 있다시피 했다. 전체가 근접해 있어 사격조의 사격이 잠잠해질 때 쯤, 인원들 몇 명이 그들의 손등에 있는 노즐을 열어 화염을 방사해 사슴의 시야를 가렸다. 신의 힘을 흡수해 되받아치는 격인 이 불길은 사슴을 고통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가장 근접해 있던 제압조 열댓 명이 빠르게 사슴의 목에 창을 꽂아넣었다. 목에서는 강렬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신을 죽을 수 있는 창들이 목에 꽂혔음에도 사슴은 끝까지 몸을 비틀었다. 많은 대원들이 주기적으로 화염을 방사하며 시야를 가리며 제압을 돕기를 반복했지만, 신의 힘은 여전히 강대했고 열댓 명의 인원이 달라붙었음에도 제압하기가 버거웠다. 대여섯 명 정도가 더 달려들어 몸통에까지 창을 여러 개 꽂아 넣고 나서야 사슴과 제압조는 교착 상태에 다다랐다.
“제압조, 제압 완료했습니다.” 제압조 지휘관 알파7-2가 보고했다.
“근거리조, 무력화를 시작해라.” 알파7-1의 명령이 떨어졌다.
근거리조가 어느 정도 다가갔을 때 쯤이었다. 사슴은 마치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는 양 몸에서 흰 아우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슴으로부터 강력한 풍압이 발생하며 접근해 있던 대원들 모두가 나가 떨어져 버렸다. 가까이서 사슴을 제압하고 있던 인원들은 전신에 심각한 화상까지 입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알파7-1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코르 방사선 수치가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가까이 있던 대원들은 방사선이 너무 강해서 입자들이 체내에서 폭발한 것 같습니다.” 이코르 방사선 검출기가 시끄러운 경고음을 내며 최고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슴은 여전히 강력한 바람과 흰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사슴은 그와 함께 주변 물질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주변에는 지금껏 본 적도 없는 각종 식물과 광물들이 자라나며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슴은 광물질들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가시들을 미친 듯이 솟아나게 만들었다.
“전원 퇴각, 퇴각하라!”
사슴의 모습을 한 신의 맹렬한 공세에 전원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이미 사슴의 공격에 수많은 대원들이 희생되어 있었다. 지켜보던 사령부는 미리 대기 중이던 폭격기들의 협력을 요청했다.
“사령부, 목표물이 보인다. 사살 허가 요청 바람.”
“공격 허가한다. 다만 목표물은 일반적인 중화기로는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해안가로 유인해서 미리 지급한 폭발물을 이용하라.”
5대의 전투기 편대는 녹색의 사슴을 향해 폭격을 퍼부었다. 폭격에 의해 굉음이 일어난 반대편, 해안가를 향해 사슴은 달리고 있었다. 폭격을 피해 달아나는 와중에도 흰빛과 바람은 그칠 줄을 몰랐고 달아나는 사슴의 주변으로는 계속해서 이름 모를 기이한 식물들과 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알파-7, 남은 대원들은 전원 재정비 후 2845를 따라서 추적하라.” 사령부의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우리도 따라서 추격한다. 남은 대원들은 전원 차량에 탑승하도록.”
한편 전투기는 빠른 속도로 사슴을 추격했다. 사슴은 빠른 속도로 해안가를 향해 나아갔으며, 편대는 사슴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려 할 때마다 폭격을 날렸다.
“현재 순조롭게 해안으로 유도하는 중. 계속 이대로만 가ㅁ….!”
전투기 한 대의 무전이 두절 됨과 동시에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놈이 공격을 시작한다. 아무래도 우리를 눈치챈 것 같다. 피해라!”
사슴은 달려가는 경로를 유지함과 동시에 거대한 가시들을 솟구치게 해 전투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수사슴은 자신을 방해하는 성가신 것들을 빨리 떨쳐버릴 심산이었다. 남은 전투기들은 솟구치는 가시들 사이를 피하며 추격을 계속했다.
“점점 공격이 거세진다. 목표물과 거리를 벌려야겠다.” 편대 전원은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어느새 해안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가시들 때문에 목표물이 계속 가려집니다!”
“목표물을 몰아붙이기만 하면 된다. 지켜보다가 방향을 틀 것 같으면 폭격을 가해서 다시 방향을 되돌려라.”
사슴과 최대한 멀리까지 떨어졌지만 엄청난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가시들은 매섭게 공격했다. 직접적으로 날아오는 가시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거대한 가시들은 하나하나가 위협적이었다.
“여기는 알파-7, 2845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가는 중이다. 사령부, 현재 2845는 어떻게 되었는가?”
“비행 편대조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려 하면서 해안가로 이동하고 있다. 알파-7은 추격을 계속하도록. 이상.”
“그러게 이전에도 말했지만 저 신을 건드리는 건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을텐데…”
“네, 좋은 방법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소모전을 계속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여러분께 도움을 구하는 겁니다.” 사령부의 목소리였다.
사슴을 몰아넣기로 한 해안가에는 SCP-2845의 격리를 담당한 격리자문위원과 격리담당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 의식은 기존의 초기 격리 절차에 비해 간단하지만, 신의 힘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완벽히 포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저 폭주하는 힘을 이전만큼 정도로 돌려놓기만 할 수 있죠. 그것도 약 30분 정도만요.”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30분 안에 모든걸 끝낼 겁니다.”
이미 절차를 수행하는 구역에 오는 경로에서부터 발목을 묶어둘 의식적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였다. 산 너머에선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슴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시작하도록 하죠.”
격리자문위원들과 담당자들은 절차 장소에서 멀리 떨어졌고, D 계급 인원 6명이 정해진 자리에 서서 낭독문을 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슴은 절차를 행할 장소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번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한 이 신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의식적 조치가 취해진 영역에 들어오면서부터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지금입니다. 다들 낭독문을 외워주세요.”
무전으로 전달된 자문위원의 지시에 따라 D 계급 인원들은 낭독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낭독문을 외우는 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사슴은 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절차 장소의 중앙에 도달했을 무렵, 사슴은 이동을 완전히 멈추었다. 그것의 상태는 상당히 심각했다. 곳곳에 찔린 상처가 나 있었으며, 안면을 비롯한 신체의 앞부분은 전반적으로 화상이 심했고, 언제나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목은 반쯤 내려갔다. 기본적으로 물질을 변성시키던 범위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원래였다면 인간이 행사하는 힘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을 신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슴이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파-7의 차량들이 도착하였다.
“남은 제압조, 근거리조는 전원 대기하라.”
알파7-1의 지시에 따라 모든 대원들은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D 계급들도 이미 돌아간 상태였다. 이윽고 전투기가 날아와 검은색에 붉은 빛으로 빛나는 폭탄을 투하하였다. 너무나도 만신창이가 된 외계의 신은 폭발을 정면으로 뒤집어썼다.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붉은 액체와 화염이 솟구쳤다. 그리고 폭발이 가라앉은 뒤, 그 중앙에선 사슴이 나타났다. 화상을 입을 대로 입은 몸, 왼쪽은 절반쯤 부러져버린 뿔, 그리고 다친 오른쪽 눈. 뒤쪽에 있던 구체와 고리는 유지할 힘조차 없었는지 사라져버렸다.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느껴지게 하던 그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 표정에는 변화 하나 없었다.
“목표물 포착 이상 무, 제압조, 근거리조 접근하라.”
제압조와 근거리조는 사슴에게 다가갔다. 꽤나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슴은 전과는 달리 조금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걸 포기한 모습처럼. 그러나 표정의 변화가 없는 그것의 속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제압조는 조금이라도 움직일 경우 제압할 자세를 잡고, 근거리조의 행동 대장 알파7-3이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들고 다가갔다.
“이제는 그만 편히 쉬라고, 친구.”
그는 도끼를 목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사슴의 몸에 별빛이 둘러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알 수 없는 냉기 역시 그것을 감쌌다. 사슴의 몸 색은 녹색에서 서서히 남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알파7-3, 놈의 상태가 이상하다. 괜찮은 건가?”
“괜찮다. 빨리 처리하겠다. 오버.”
알파7-3은 있는 힘껏 사슴의 목을 내리쳤다. 그러자 사슴의 목이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다. 동시에 잘린 부분에서 피가 뿌려졌다. 허공에 흩뿌려진 그것의 반짝이는 남색과 하늘색이 섞인 듯한 반투명한 피는 마치 밤하늘의 별들을 보는 듯했다. 사슴의 머리는 그렇게 피를 뿌리며 날아가 바다에 떨어졌다. 남은 몸통은 마치 가죽밖에 남지 않은 것 마냥 흐물거리며 쓰러진 후 땅에 스며들어 작은 풀밭을 이루었다.
“이건 도대체가…”
“알파7-3, 무슨 일인가?”
“머리를 자르자마자 놈의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더니 바다에 빠져 버렸다. 몸은 풀밭이 되어 버렸고… 뭐야 이거?”
“그럼 2845는 무력화된 것인가?”
“아마 그런 것 같다. 여기 있는 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령부에서 조사팀을 보낼 테니 기다리라 전한다.”
이후 조사팀이 도착했다. 조사팀은 연구를 위해 사슴에 의해 생긴 모든 식물들을 채취해 갔다. 사슴이 이동한 경로에 생긴 각종 물질들 역시 모두 처리되었다.
“닉스 부장님.” 조사팀장 알렉산더가 보고를 위해 사무실에 들렀다.
“2845가 죽은 위치에서 나타난 식물의 분석 결과가 나왔는데…”
“그래, 뭐 다른 부분이라도 있나?”
“그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다른 점이 없다니?”
“2845가 보통의 상태일 때 변성시키서 만들어냈던 준금속 바탕의 식물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상 그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난감하구만. 혹시 목을 자를 때 나온 피 같은 건 남아 있었나?”
“그것도 너무 빨리 증발해 버려서 흔적이 없습니다.”
“후… 머리에 대한 소식은 아직인가?”
“머리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1시간 뒤 수색 종료 예정입니다.”
“정말 이상하군. 분명히 인근 바다는 물론이고 해류를 타고 흘러갈 법한 지역도 해저 샅샅이 뒤졌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랬죠.”
“그럼 답은 나온 것 같네. 도끼로 목을 쳤을 때 이상할 정도로 튕겨 나갔다고 했지?” 닉스는 파견했던 특무부대에게서 받은 당시의 녹화 영상을 다시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놈, 분명히 어디선가 살아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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