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상은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웬만한 아파트보다 훨씬 크니 어디를 가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경현은 이 거상을 볼 때마다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거칠게 다듬은 콘크리트로 대충 사람 모양을 만들고 얼굴에는 페인트를 대충 칠해놓은 모습이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이 거상이 나타났을 때 군인이며 과학자며 예술가며 온갖 사람들이 나와 떠들어댔지만 결국 처음에 있던 빌딩 숲 속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도저히 옮길 수도 없고 부숴버리자니 콘크리트 더미를 처리하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이 거상을 불편해했고, 일부러라도 보지 않으려 했다.
경현도 버스를 탈 때마다 거상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일부러 음악을 들으며 그 거상을 잊으려 애썼다. 사실 버스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덕분에 아무도 그 거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경현이 정신을 차릴 즈음엔 무너진 건물 사이에 있는 버스 밖에 튕겨 나온 채로 거상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거상의 팔에서 한 사람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목이 비틀린 채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현도 그러고 싶었지만, 다리가 짓뭉개져 일어설 수 없었다. 거상이 밟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경현이 고개를 돌려 난간이라도 붙잡고 올라서려는 순간 거상이 다시 움직였다. 거상은 경현 바로 옆에서 도망치던 여학생을 향했다.
저 높은 곳에서 나지막이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이 비틀린 시체가 떨어졌다.
이제 부서진 거리에는 몇 사람 남지 않았다. 경현과 벽에 팔이 끼인 남자와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여자만 남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뒤를 돌아보고 비틀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팔을 빼내기 위해 바닥을 보며 지렛대로 삼을 막대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경현도 다시 난간을 붙잡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우두둑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거상과 거리가 제일 가까웠던 여자가 어느새 목이 비틀린 채 떨어지고 있었다.
경현은 이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음은 남자의 차례였고 그다음이 경현의 차례였기 때문이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거상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눈에 피가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거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거상의 다리 사이를 통해 보였다.
누가 먼저 눈을 감았는지 경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높이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리자 경현은 거상과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상은 하얗게 칠해진 텅 빈 눈으로 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현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한순간 울음이 터져 나오면서 경현은 "살려주세요"라고 작은 소리를 냈다.
경현이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거상이 커다란 팔로 자신을 들어 올리는 모습과 우드득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