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이야기 - "메카네 기름칠하던 시절에"

옛날옛적에, 메카네 기름칠하던 시절에, 어느 부서진 신의 교단의 신자가 있었다.

"저는 메카네님이 무사히 조립되어 우리 앞에 현현하시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큰 창문 하나만이 빛을 머금고 가운데 여러 모양의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석상이 벽에 달려있는, 천장이 높은 어느 한 건물에서 신자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메카네님이 조립되는 모습을 볼 때까지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그 신도는 흔들림 없이 기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설령 바깥에서 나는 피 냄새가 기름 냄새를 완전히 덮어버릴지라도. 설령 이 건물이 서로 싸우기 바쁜 사람들의 눈먼 불에 산제물처럼 타오른다 해도. 신을 사랑하고 또 그에게 맹세하는 그를 막을 수 없으리라.

"얼마나 떠돌아다니든, 얼마나 고난을 겪든. 저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리어, 그 고난이 그에게까지 도달했을 때에도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창칼이 눈앞에 들이밀어지고, 피가 그의 얼굴에 튀어도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므로, 찰나의 삶보다 가치있는 것이므로.

그는 기도를 모두 끝내고서야 일어섰다. 밤이 막 어두워 오고 있었다. 장장 네 시간에 달하는 기도에도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웅웅거리는 소리가 그의 갈비뼈와 척추를 대체한 일련의 부품으로부터 터져나올 뿐이였다. 사막 위에 우뚝 선 성채에는 그 하나 뿐이였다.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천천히 바깥으로 움직였다. 강철로 된 맨발이 대리석 바닥과 맞부딪히면서 금속성의 소리를 냈다. 바깥은 쑥대밭이였다. 두 군대들의 싸움 끝에, 불이 사막을 불사르고 시체들 위로 자칼들이 누비며 망자를 뜯어먹고 있었다. 무너진 모독적인 병기들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자욱히 났다.

남자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한낱 살덩이, 제도될 여지 없는 더러운 것들. 주홍왕과 살덩이 신을 모시는 추한 인간군상들의 자멸일 뿐이였다. 메카네에게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 죽음들… 더러운 이교도…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의 신앙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 순간 남자는 묘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공 귀가 째깍거리며 맹렬히 감지한 그 소리는 바위틈 새에서 나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봐서는 뒤에 숨어있는 자는 인기척을 느끼고 움찔한 듯 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바위 바로 뒤. 개체의 높이는 약 50~70 cm, 폭은 약 40 cm. 딱딱한 질감은 아니었다. 예전의 귀라면 생김새까지 바로 분별해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대상이 웅크리고 있다는 점 외에는 잘 알아낼 수 없었다. 남자는 기름칠을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며 바위 뒤에 숨어 있는 자에게 외쳤다.

"게 누구느냐?"

그러자 바위에서 슬며시 기어나오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온 몸에 피를 칠갑한 채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게… 저는…"


…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돌아가고 싶다고 머리 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자기가 뭔 부신교 신도라도 되는 줄 아나? (선배님을 오랫동안 봐온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맞다고 해도 당당하게 얘기할 거리는 아니었다. 그것도 재단 내에서, 그것도 제21K기지 내에서? 맞다고 입을 뻥긋하는 순간 바로 격리행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듯이.


"저는 그저 핍박받던 시민이에요. 저어쪽 마을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버린 음식들을 주워먹던…"

그는 그 말을 듣고, 또 그 여성을 바라보고는 오물이라도 바라보는 듯 눈쌀을 찌푸렸다. 사실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개조된 부분 하나 없이 구시대의 살덩이로만 가득한 오물덩어리, 그게 그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여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 죄송하지만 혹시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길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있던 마을이 폐허가 되어버려서…"

뻗어온 손은 그의 완벽한 몸과는 다르게 더럽고, 추악하고, 살점이 가득한 끔찍함이었다. 그는 속으로 기도문을 외우며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남자는 언제든지 여자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사르킥교도들의 역귀와 싸우면서 아무리 약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사르킥교도라면 언제든 돌변하여, 역병을 뿌리고 거대한 살덩이 괴수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개조되지 아니한 자를 죽이는 것은 언제부턴가 그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 되었다. 그의 팔을 구성하는 태엽장치들이 신경질적으로 째깍이자 여자는 흠칫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그 여자를 지속적으로 주시했다.

"너는 사르킥교도인가?"

남자가 건조한 어투로 물었다. 여자는 눈을 크게 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마을이 불탈 때 이리로 끌려와서, 얄다바오트(Yaldabaoth)에게 제물로 바쳐지기로 되어 있었어요."

아무래도 여자의 말을 모두 믿을 수가 없었다. 악마는 거짓말에 능하다. 남자는 오른팔의 부품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날선 양철 칼날을 손목으로부터 빼 들었다. 구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가 칼을 빼 드니 여자는 몹시 당황한 기색이였다.


…"흐아암"

"얌마, 선배가 간만에 이야기 풀어주고 있는데 듣는 척이라도 좀 해라."

"선배 얘기가 재미가 없는 걸 어떡해요."

"여기서부터 재밌어지니까 집중해." 선배는 이렇게 말한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부정한 자여, 다시 묻는다. 너는 사르킥교도인가?"

남자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여자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답했다.

"하늘에 맹세코, 저는 절대로 사르킥교도가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리 확신할 수 없었지만, 거짓말쟁이의 심장 고동과는 달랐다. 진실을 말하고 있거나 거짓말에 극도로 능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저는 단지 마을을 잃어서 떠돌아다니는 것 뿐…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네 심장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군."

"…"

남자는 칼날을 한동안 떨고 있는 여자를 향한 채 가만히 있었다. 살덩이로, 그것도 지저분한 살덩이로 뒤덮힌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불결했고, 또 불길했다. 하지만 그 떨리는 눈과 심장 소리는 저 여자가 가련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저 사람을 그대로 죽인다면 무고하고 선한 자를 죽였다고 심판받을 것 같았다. 신이 재조립될 때 그가 굴러갈 자리는 없을 것만 같았다. 반대로 부품이 녹슨 채 떨고 있는 신도를, 정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신도를 누군가가 의심이 든다는 이유만으로 죽인다면? 그는 그 모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저 자가 훌륭한 거짓말쟁이라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또 메카네님의 축복이 언제나 함께 할테니까.

"…"

"…알겠네. 자네를 믿어보도록 하지. 메카네님의 이름으로."

결국 그는 칼날을 거두었다.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죽다 살아났다는 긴장이 풀렸는지 이내 그녀는 주저앉아버렸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선배는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니 들으래서 들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되냐구요."

선배는 나를 곁눈질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예?"

"모른다고"

나는 정말 얼이 빠진 상태로 선배를 처다봤다. 시간이 낭비된 기분이었다. 선배가 드디어 미쳤나? 변칙개체를 너무 많이 상대한건가? 기특대를 불러야하나?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어휴, 여기까지가 남아있는 기록이야. 그 뒷내용은 없어. 다만 다른 기록과 교차해 보았을 때, 그 여자는 사르킥교도도, 메카닉교도도 아닌데도 몇백년 넘게 그 남자와 같이 다녔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거지."

"몇백…. 년이요? 그럼 그 여자도 변칙적인 인물인 거잖아요."

"그렇겠지? 비변칙적 사람이라면 몇백 년을 살아갈 수 없을테니 말이야."

선배는 피식 웃었다.

"뭐, 신화나 역사란 게 다 그렇잖아? 왕들을 신격화시키고, 비변칙적인 것을 과장하고…"

선배의 눈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저, 근데 질문 있습니다"

"함 해봐"

"수백년 동안 같이 살아온 변칙적인 남녀의 이야기, 게다가 그 중 하나는 부신교 신자라니, 저도 한번쯤 들어봤을만한데 이상하게 이번에 선배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접해본 적이없습니다. 선배는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거죠?"

"유튜브"

나는 또다시 정말 얼이 빠진 상태로 선배를 처다봤다. 진짜로 시간이 낭비된 기분이었다. 정말, 선배가 드디어 미쳤나? 변칙개체를 너무 많이 상대한건가? 이번에야 말로 기특대를 불러야하나?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유튜브요?"

"엉 유튜브"

"선배…"

"왜?"

"… 그… 죄송한데… 돌았어요?"

"뭐?"

"유튜브에 그딴게 왜 올라가있어요 씨발…"

"아니…" 선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냅다 선배한테 돌았다고 하는 너도 참 그렇지 않냐…?"

"돌은거 같으니까 돌았다 그러죠. 정신감정 불러드려요?"

"에휴, 됐다. 말을 말지. 유튜브에 진짜 올라왔댄다. 그거때문에 삭제랑 역정보랑도 엄청 이뤄졌고."

"…에?"

선배가 품안에서 담배를 꺼내 불도 붙이지 않은채 입에 물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근데 이게 다른 자료랑 사료를 비교해봐도, 그냥 지어낸 얘기가 아닌거 같다는거지.."

선배의 목소리는 그런 것 치고는 차분하면서도 침착했다. 나는 선배의 눈치를 살피고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가뜩이나 고대 종교 이야기로 시간을 한참 보냈는데, 더 이상 선배와 어울려서 좋을 것이 없었다.

"야, 가냐?"

등 뒤에서 선배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가라, 가."


그는 웃었다.

마침 후배 녀석도 떠난 뒤라 사무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날선 미소에 물린 담배가 갑작스럽게 불타 재로 화해 떨어졌다.

"왜… 누가 그 이야기를 퍼트리는 걸까."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냉정했다. 그 얼굴이 재단 요원에서, 서서히 변했다. 뼈가 다시 자리잡고, 피부 색이 창백해지며 얼굴 형태를 다시 갖추었다.

"그 연놈들의 전설을 말이지."

그는 탁자 밑에서 여즉 피를 흘리고 있던 시체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재단 연구원, 그 선배의 시체였다.

"우리 낼캐를 수없이 죽이고….. 감히 아직까지도 살아 있을 줄이야. 때마침 멕스웰파 놈들이 유튜브에서 날뛰지 않았으면 찾지 못할 뻔 했어."

그의 손이 늑대의 입처럼 변화해 시체를 집어삼켜버렸다. 그는 웃으며 천천히, 조용히 사무실을 나섰다. 어느 순간부터 그 얼굴은 다시 선배 인원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하이힐 소리가 요란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걸어가던 그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영상에 따르면, 그 빌어먹을 여자는 살아있다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남자 쪽은. 그 영상의 끝부분에 따르면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유튜브에 올렸겠지.

그리 오래 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연놈들을 마지막으로 만나서 교전했었을 때가. 그 때 남자 쪽이 거진 박살났었지. 원래는 여자 쪽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 남자가 보호해서였다. 덕분에 자기도 죽다 살아났지만. 그 때 마지막 태엽까지 산산조각내주려고 했는데 몇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나중에 알아보니 부신교 놈들은 아니었지만, 그것 외에는 소득이 없었다. 그러니 그 남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자신도, 그 기계 놈들도 모르는 것이었다.

다만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그냥 죽일 걸 그랬나.'

그 후배 놈, 아무리 생각해도 목소리라던가가 그 놈을 떠오르게 했다. 몸의 일부는 살덩어리지만 분명 재단제 의체에 관심이 많았지.

아니다. 그것 외에 근거는 없었다. 오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지루해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그게 연기가 아니라면 생판 남이거나, 설령 동일인물이라 해도 그 놈의 인격은 무의식 아주 깊은 곳에 갇혀 있을 것이다. 어째서 자신이 띨띨한 살덩어리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인지 괴로워하면서.

그러니 지금 당장 죽일 이유는 없었다. 후배를 뒤통수 째로 완전히 박살내는 건 확실하게 동일인물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고 나서 해도 충분했다. 그리고 괜히 성급하게 날뛰어서 특히 재단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민 만큼 잘못 걸리면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는 당분간 연기를 해야했다. 그 능글맞은 선배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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