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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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생!"

사무실로 한 남자가 뛰어들었다. 장 선생이라고 불린 남자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그날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김쌤, 무슨 일이야?" 남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이번 원생 모집 건 때문에 그래?"

"그게 문제가 아니라, 구피 담당 멘토, 장 선생이었지? 지금 큰일 났어!"

장 선생이 여전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움직이지 않자, 김은 더욱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구피 때문에 부작용 호소하는 원생들이 이번에만 벌써 열 명이 넘어! 장 선생, 이거 어떡할 거야, 어? 상부에서 그렇게 만류했는데…!"

"자기네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리된 걸 어째.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걸 신경 썼어? 내버려 둬."

장의 무덤덤한 말투에 김은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이러다 실적 떨어지면 장 선생이 책임 질 거야?!"

그제야 장은 고개를 들었다. 장은 건조한 얼굴로 김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이 도끼날처럼 번뜩였다.

"책임?"

"그, 그래. 책임! 장 선생이 책임지고 추진한 프로젝트였잖아! 게다가 이거 말고도 벌써 원생들 일 벌어지게 한 건수도 많고. 장 선생 이러다가 큰일 나!"

"자꾸 큰일, 큰일거리는데…"

장이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금테 안경에 빛이 반사되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장의 피곤한 듯 무미건조한 눈길이 김에게 날아가 박혔다. 그의 시선은 어딘가 상대를 밀어내는 힘이 있었다.

"이 정도 큰일은 일도 아니야. 걱정 마."

"장 선생, 너무 걱정을 안 하는 거 아냐? 일부러 그런 것처럼…"

"일부러 그랬어."

김의 눈이 커졌다.

"…뭐?"

"물론 그런… 식으로 사용한 건 나도 상정 외였지만."

"아니, 지금…"

"구피의 움직임이 아주 살짝 요란하다는 건 개발 보고서에서 보고된 바 있어. 소상히도 적어뒀더군." 장이 피식 웃었다. "난 기껏해야 방광 파열이나 기대했는데."

"당신 미쳤어?!"

김의 외침에, 장은 다시 안경을 쓰고 창가로 거닐었다. 정적 가운데 구두소리 만이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나 제정신이야. 걱정하지 마."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니고서야…"

장은 잠시 침묵했다가, 한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 같았다.

"이봐… 김쌤, 그, 우리 주 고객층이 누군지 아나?"

김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알겠지만 소위 '정보력이 있는' 학부모들이거든. 쉽게 말해서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 집안. 그렇지?"

"그, 그런데?"

"그런 부모들은 항상 극성이란 말야. 자기네 인생에서 자기 자식의 성공이 마치 모든 치장의 완성이라는 듯이 굴어. 그러니까 요컨대 자식을 자신의… 뭐라고 할까, 액세서리? 응, 액세서리로 여기는 거지. 아주 값비싸고 귀중한."

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우리는 돈을 많이 벌지. 러셀? 이투스? 대성? 종로? 그네들은 우리 경쟁 상대가 아니야. 신경 쓸 이유가 없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요점은 이거야. 그 극성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새끼들 대가리가 어떻겠냐고. 생각해 봐. 대치목동. 대치동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목동은 그런 대치동을 따라잡고 싶어서 아득바득 기를 쓰고 덤벼. 돈과 돈이 날아들고 정보와 정보가 범람하지. 뭐가 진짜인지도 몰라서 그냥 시류에 휩쓸리고 마는 가족들도 많아."

장은 손가락 하나를 폈다.

"그 정보 전쟁에서, 대입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인간들이 바로 우리 고객들이라는 거지."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김쌤, 이런 생각 안 해봤어?" 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 집안의 자제분들이 자기 부모 없었으면 그 정도로 잘, 했을지."

"뭐… 기득권 대물림이라 이거야?"

"응." 장이 조용히 대꾸했다. "한 번 봐. 되게 웃긴 상황이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어. 자기 부모의 돈으로 공부하고 학원만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처박은 지식으로 성적을 받아내지. 그러면서 그 지식으로 서로 계급을 나눠. 학교가 그걸 부추기기도 해! 독서실을 열어놓고는, 나는 어느 좌석, 너는 어느 좌석. 아, 너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 대학을 못 가는 아이. 야, 어느 좌석 놈들. 우리 좌석 애들이 공부 못하잖아, 닥쳐."

"장 선생 말대로라면 서연고에는 기득권층 자제들로만 가득해야지."

"물론 나도 비기득권층에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게 아니야. 그런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아! 교육은 그런 일을 위해 있는 거지." 장이 대꾸했다. "그런데 그런 신화에 우리는 너무 매몰되어 있잖아."

"신화?"

"경쟁은 공정하다는 신화."

장은 창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점심의 도로 소리가 멀찍이 들려왔다.

"학벌주의는 대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도 적용되는 거야. 중학교 때 내신을 우수하게 챙겨서 특목고에 입학한 학생을 가정해보자고. 학교가 너무나 좋겠지. 자랑하고 다닐 거야. 별것도 아닌 걸 자랑하겠지. 와 우리 선배가. 와 우리 급식이. 와 우리 독서실이. 나중에는 자기 힘든 것까지 자랑하게 될 거야. 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다수 학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을 거야. 학교가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게 아니란 걸. 학교가 명성이 높은 거지 내가 잘하는 게 아니란 걸. 그런데 슬프게도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네. 그런 친구들은 어떻게 되는 줄 아나?"

김은 꺼림칙한 얼굴로 그의 답을 기다렸다.

"알고 있지 않아? '저기,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저기,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학생증 탁."

장은 피식 웃었고, 김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이었다.

"결국 자기 스스로 모든 걸 이뤄냈고 나는 선택받았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 이런 생각에 젖어드는 순서지 않나."

장은 김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조금 오글거리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똥을 뿌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자기만 아는 멋진 자제분들이 자기네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자기 성적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 장의 입가에는 대기업 팸플릿에 실린 사장이 지을 법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그래서 그게 자네 이유야? 기득권에 대한 질투?"

"질투? 맞아, 비슷해." 장이 아침 인사를 듣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복수란 단어를 더 좋아해."

"복수라고?"

"정확히 말하면 이 병신 같은 체계에 대한 복수지. 내 동생을 위한 복수고."

장의 얼굴이 다시 무미건조하게 돌아갔다. 포마드를 바른 그의 머리칼이 잠시 흔들렸다.

"아까 비기득권이 명문대에 가는 이야기를 했었지, 아마? 쑥스럽지만 그게 내 이야기거든."

장이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특정한 직업이 없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그 집안의 장남이었다네. 아주 재밌는 생활이었어. 아버지한테 계속 맞지만 않았어도 더 재밌었을 텐데, 어쨌든—"

장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명석한 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내 동생은 좋게 말하면 둔재였고 나쁘게 말하면 결국 공부에 뜻이 없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공부에 매달리더군. 아주 기특했고, 나는 학교를 휴학하면서까지 녀석 학비를 대려고 했네. 힘들었지만 그래도, 우리 형제가 잘살아나가겠다는 믿음이 있었거든. 근데…"

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하나를 피웠다. 다른 하나를 김에게 권했지만, 김은 피우지 않았다.

"어느 날 돌아와 보니 녀석이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어."

장은 잠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연기를 뿜어냈다. 그의 눈은 방금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처럼 크게, 고통스럽게 뜨여 있었다. 장의 눈꺼풀이 경련했다.

"그게… 김쌤, 사람이 목매달아 죽은 거 본 적 있어? 푸르스름한 붉은 혀가 입에서 빠져 나와 있었는데, 되게… 김쌤, 뱀…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하하, 김쌤, 동생이 죽었는데 뱀 같다는 생각을 한 거야, 형이라는 새끼가. 그놈의 뱀, 뱀, 뱀."

장은 자신이 웃고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몇 번은 소리 내어 웃었다. 김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상황이었어. 어두운 방 아래에 녀석 혼자 그러고 있다는 게… 안 그래도 더러웠던 방바닥이 오물로 젖어있었고 바닥은 너무나 차갑더라고. 며칠 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는 그날 늦게까지 술에 취해서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동생의 시체 앞에서 한참을 울었어. 울면서도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걸 몰랐지.

녀석의 시신을 화장해서 강가에 뿌리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어. 그놈 가방에 유서가 있었는데… 녀석이 자기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적어놨더군."

장은 다시 말을 멈추고 어떤 머나먼 곳을 응시했다. 아주 먼 곳을.

"따돌림이었더라고. 어떤 놈이 떼로 녀석을 몰아가면서 그랬다더군. 니가 뭔데 공부를 하냐고. 없는 집 자식이 뭘 하겠다고 공부를 하냐고. 엄청나게 때렸대. 집에 와서는 아버지한테 이유 없이 맞고. 서울에서 벽돌 나르고 있던 나도 옆에 없었으니… 누구한테 상담할 곳도 없었겠지. 괴롭힘은 심해져 가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지는데…

걔가 이렇게 썼어. '형, 나 너무 무섭다. 너무 무서운데 앞으로 살아가는 게 더 무서워. 형, 걔네는 내가 학교에 일찍 오는 게 싫대. 늦게까지 남아서 하는 것도 고깝대. 형, 어떡하지. 어떡하지…'"

담배 연기가 천장으로 치솟았다. 장송곡 같은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고 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운명이 참 요상도 하지. 아버지하고 연 끊고 나 홀로 살아가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과외 자리를 구했거든. 그런데 누가 걸렸게."

김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생을 죽음으로 몬… 그 새끼야?"

"빙고."

장은 살짝 눈썹을 움츠리며 중요한 부분을 판서할 때처럼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놈도 그걸 몰랐고 나도 그걸 몰랐어. 나중엔 모르고 싶어졌지. 정말… 정말, 그럴 것 같지 않은 녀석이었으니까. 지금 내가 인성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냐, 김쌤. 평범한 녀석이었거든. 악의 평범성 같은 시시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도 아냐. 그냥… 놈은 놈이었어. 이해해? 소위 돈 많고 공부 잘하고 친구 많은… 그냥… 그런 친구였다고. 가진 것이 많았고 적당히 나약해서 누군가 고까우면 바로 물어뜯는 그런 녀석. 내가 정말 절망했던 게 뭔지 아나? 그때까지 내가 맡은 학생들의 태반이 놈과 같았다는 거야!"

장이 안경을 벗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단지 정도의 차이였다고. 단지. 단지… 감사할 줄 모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그런!"

장이 김을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은 허공에서 충돌해 사라졌다.

"질투? 김쌤, 질투는 남의 것이 더 커 보일 때 부러워하는 사람보고 쓰는 말이야."

장의 눈이 귀신처럼 황량하게 번들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 못 쓰지."

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뱃재를 털었다. 재가 불태운 유골처럼 허공에 떠다니다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김쌤, 내가 왜 셀레스트에 들어왔는지 아나?"

김은 장을 바라보았다. 장의 얼굴은 어느새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어려, 마치 이미 죽은 사람처럼 오싹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어차피 여기도 진정한 선생은 없거든." 장이 숨을 들이켰다. "아니, 이미 어디에도 참 선생, 참된 스승은 없어. 그런 사람들을 찾으려면 화석 더미 사이나 뒤져야지."

장이 김에게로 얼굴을 기울였다.

"그리고 셀레스트는 그런 추악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다니거든… 꼴에 있는 척하며 속으론 돈에 미친 교육'업자'들과는 달리… 그게 마음에 들었어."

김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격하게 대꾸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몰라도 당신 말은 지금 장광설이나 다름없어. 결국 당신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이 모든 일을 벌였다는 거잖아!"

"셀레스트는 내 원한을 풀기에 아주 좋은 직장이고."

장이 사무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김쌤, 잘 들어. 이 사회에선 셀레스트가 진실된, 유일한 참된 교육이야."

장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리고 우리가, 정당하게, 그들의 논리대로,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논리대로!"

장은 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김의 긴장된 시선이 장의 시선과 맞부딪혔다. 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지만, 장의 광기 어린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참된 교육자야. 네가, 그리고 내가!"

김은 장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장은 웃고 있지도, 울고 있지도 않았다. 평소대로의 그였다. 단지 눈만이 기이한 안광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거세고 아주 이질적인 안광이었다. 그 순간, 김은 장이 어떤 모습으로 동생의 빈소를 지켰을지, 어떤 모습으로 셀레스트에 입사했을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아들었으면."

"김쌤."

장이 옅게, 그러나 분명하게 김을 호명했다.

"이제 그만 나가 줘. 다음 수업 준비해야 하니까."

장은 손을 떼어내곤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김이 잠시 서 있다가 서서히 사무실을 나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정적이 찾아왔다.

담배 연기가 향처럼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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