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카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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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은 꿈을 꾸었다.

눈 앞은 암흑의 바다였다. 저 어둠 속에서는 태초부터 도사리고 있었던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생물들이 희미한 빛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그놈을 닮은 거대한 오징어도 있었다.

유란은 저편을 향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어디 하나 멀쩡히 움직이는 곳이 없었다. 마치 가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그 짐승은 천천히 다가왔다. 그것이 물살을 가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놈의 피부 주름이 하나하나 보일 정도까지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촉수에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크림빛의 작은 새였다.


"으아악!"

유란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몇 번이고 숨을 고르던 유란은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음을 발견했다. 하얀 침대가 달빛을 받아 은은한 흰빛으로 빛났다. 곁에서는 누군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마 기동특무부대 중 하나이리라.

"…저기요."

유란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곧 그 사람은 눈을 뜨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유란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꿈속에서부터 궁금해했던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됐죠? 카나리아 요원은? SCP-2662는? 다시 재격리되었나요?"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둘 다… 모두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예?"

"기원이 불분명한 청색광의 분출 이후 사라졌습니다. 추적 시도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란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무언가 결단한 사람처럼, 신발끈을 묶었다. 그리고는 걸려 있던 코트를 걸쳤다.

무엇이든 해야 했는데, 그녀는 미어지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삼켰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수없는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붙잡고 날렸다.

그리고 남자가 그를 가로막았다.

"죄송하지만, 상부로부터 나갈 수 없다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목소리는 침착하고 예의 바른 것처럼 들렸으나, 자세는 불복종한다면 금방이라도 제압할 듯 각이 서 있었다. 유란은 그 자리에 서서 이를 악물었다. 수없는 종류의 분노가 한순간 턱끝까지 올라왔다. 서늘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대체, 어느 누가 내린 명령이지?"

기지 이사관? 연구 책임자? 유란에게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란의 눈이 경멸로 가늘게 떨렸다.

대답이 들려왔다.

"…O5 직속 명령입니다."




그것은 눈을 떴다.

카나리아는 짐승의 육체에서 발버둥쳤다. 무색의 촉수들은 제어를 벗어나 발작적으로 물결쳤다. 알 수 없는 기억들이 인지 속을 파고들어왔다.

역겨웠군

역겨움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속에 든 모든 것을 집어 뱉어버리고 싶은 구역감이 몸을 지배했고, 카나리아의 기억이 멋대로 변하고 하나의 앨범을 이루었다.

앨범 속에는 수없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있었다. 지금껏 베어왔던 광신도들. 한번쯤 마주쳤던 재단의 동료들과 선임들의 얼굴. 유란의 얼굴. 그리고 카나리아의 부모님의 얼굴…

그들은 모두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머리를 부여잡는 회색 육체에게 누군가 속삭였다.

[재단의 아이야.]

그 목소리. 축축한 균열과도 같이 공중에 퍼져나가는 음성.
그는 소리쳤으나 어떠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무의식 속에서 소용돌이 칠 뿐이였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그의 촉수가 꺾이더니 소방 도끼의 형상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달려나가, 소리가 나는 허공을 닥치는 대로 찢고, 베고, 또 갈랐다.

아무것도 베이는 것은 없었다.

[얌전히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겠군.]

흘러드는 기억 속의 주인공. 그것이 말했다. 증오로 씩씩거리던 잿빛 육신은 굳어버렸고, 실에 묶인 인형처럼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따라나오너라.]

대체 누구를 따라가는지도 모른 채, 그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앞으로 나아갔고,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디뎠다.

밖은 밤이였다. 바닥에는 푸른 풀들이 이슬을 머금고 흔들리고 있었고, 바람 소리가 맑게 울렸다. 카나리아는 출발 지점을 보려고 눈을 돌렸다. 그들이 있던 곳은 허름한 오두막이였다.

검푸른 하늘에는 수천 개의 별들이 떠 있었다.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느냐?]

목소리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 궁금한 것이 많겠지.]

카나리아는 자신의 옆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이전에 보았던 파란 빛 같았다. 그는 발버둥쳤으나, 그곳에 닿을 수는 없었다.

[먼저 그것은… 내 아이다. 다른 수없는 신들처럼, 내가 가르쳤지. 저 수없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 존재에 대해 가르쳤다.]

위엄차고 거대했던 목소리는 갈수록 침울해지고 또 떨리는 듯 보였다. 마치 말로를 앞두고 울먹이는 노인처럼. 혹은 모든 잎을 떠나보낸 겨울 나무처럼 쓸쓸한 음성.

[모든 신들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 그 아이도 그러했다. 바다 속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재화와 포상을 내려다주는 신이였다.]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그새 푸른 빛이 형상을 갖추었다. 불꽃이나 반딧불처럼 꺼질 듯 아른거리는 빛의 기둥. 그것은 어떠한 사람의 형상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신이 사라졌다.]

카나리아는 그 형상을 기억해냈다. 어지러운 기억 속에서 그 형상을 닮은 이들이 보였다. 기억의 앨범은 다시 접혔다 펼쳐졌다.

[신을 잃은 바다의 도시들은 죽었다. 아틀란티스는 망했다. 사미오말리에는 도륙당했다.]

그 불꽃은 어머니의 형상. 아버지의 형상. 동료들의 형상— 그 중에서도 유란의 형상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증오 저편으로부터 안락한 온기가 깨어났다.

[나는 그를 찾아 헤메었지…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 있었어. 죽은 것만도 못한 모습이었다. 위엄찬 해저의 신은 죽었고 빛나는 심장은 꺼졌더구나. 그저 재단의 수없는 죄수 중 하나의 모습이였다.]

기원을 알 수 없는 감정의 침입에 카나리아는 더욱 거세게 발버둥쳤다. 이런 감정은 없다.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광신도들. 신자들. 그리고 그 위의 신들. 몇십 번을 살덩어리와 기계 신의 종복들과 별들의 신자들과 싸우면서, 그는 어느새 신과 그 신도 전체에게 칼을 겨누는 존재가 되었다. 카나리아는 접근 가능한 모든 파일에서 그러한 정보를 찾으며 몇 차례나 소리 없는 증오를 곱씹었다.

[부모 된 입장으로써 자식을 그런 꼴로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를 흔들어 깨웠으나… 도리어 구세계의 증오만이 그에게 가득찼다. 이대로라면 재단은 모든 사람들을 죽여서라도 신들을 뿌리뽑고 말 것이다.]

그것이 카나리아가 원하는 것이였는데.

왜 카나리아는 신들의 아비에게 따스함이라는 불온한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래서 너희를 불렀다. 신의 증오와 인간의 증오를.]

푸른 불꽃이 앞으로 더 빠르게 나아갔다. 그리고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꾸나. 네 육신과 내 자식을 구하러.]

팡글로스가,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서 웃었다.





그것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선 그것은, 다른 존재의 육신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의미없는 짓이였다.

"위대한 분이시여! 제물의 피를…"

와작.

소녀의 손이 멋대로 움직여, 도끼를 쥐고 달려오는 사내의 머리를 깨부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괴물은 낯선 감각에 몸서리쳤다. 증오, 혐오, 공포가 무의식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저 모든 신의 아이들을 향한 거대한 적의.

새하얘진 카나리아의 정신에 붉은 점이 한두 개씩 찍혔다. 어떤 소리도 없이, 붉은 색과 흰 색만 남았다.

낯선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뜻 모를 소리를 외치는 광신자들을 상대하면서, 그 작은 심장은 미친 듯이 진동했다. 작은 새가 비상에 필요한 모든 공기를 짜내듯이.

"우리의 마음에 어두운 축복을!"

그러나 역부족이였다.

짐승처럼 미친 듯이 달려드는 신도들은 포기를 모르고 달려들었다. 인간의 한계였다. 인간은 정신도, 육신도 연약하다. 깨지기 쉽고, 깨버리기 쉬운 것이 인간이므로.

그것은 지친 숨을 억세게 내쉬었다. 속에서 신물이 느껴졌다. 더는 뛸 수 없으리라.

"—내려 주십시오!"

으르렁거리는 찬양을 내뱉으며, 한 남자가 각목을 높이 들었다. 각목은 순식간에 머리로 날아들었다.

콰직.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각목을 막았다. 끝없이 휘몰아치는 수 개의 촉수와 부속지들.

그들의 어린 신이, 다시 한번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신은 천천히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저마다 기쁨으로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꿇고 서로의 몸을 할퀴었다.

"신이시여!"

"아아, 신이시여, 우리의 속죄를 받으소서!"

그리고 신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




O5-2는 문 앞에 섰다.

두꺼운 문이 서서히 움직이자, 그는 발을 움직였다. 방 안은 고요했고 또 어두웠다. 너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어둠은 방 안에 하나의 거미줄을 만든 듯 보였다.

O5-2는 불을 켰다.

"잘 보관되어 있군."

좁은 격리실 안에 놓인 것은 1.8m 정도 높이의 금속 수트였다. 재단의 인장이 새겨진 그 수트는 이곳저곳이 흉하게 긁히고 상처가 나 있었다.

O5-2는 생각했다.

—재단 문건 어디에도, 재단이 저런 수트를 보유했다는 기록은 없다. 차단기지들은 어떠한 현실개변 사태도 찾지 못했고.

그는 손을 금속질 외골격에 가져다 대었다. 거친 겉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내며 풍파를 수없이 맞은 바위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 수트는,

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 안의 기록들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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