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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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할당 카페인 수치를 넘었습니다, 박사님"

콜린은 불만스런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로드는 그저 손잡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레드불 70잔, 블랙커피 102잔, 핫식스 60잔, 몬스터 26잔, 5 아워 에너지 19컵, 카페인 농축액 20리터. 이걸 한 주 만에 다 들이킨다는 게 말이나 돼요?"

"업무상 어쩔 수 없어요, 콜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콜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살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지만, 이건 아닌데요? 사람 한 둘 죽어나가는 거야 일상이겠죠. 하지만 카페인 중독으로 죽은 박사님 사망 진단서 찍어야 하는 제 입장도 생각해 주시라고요."

'말 한 번 잘 한다.'

로드의 궁시렁을 꿰뚫어보듯, 콜린은 차가운 눈으로 물었다.

"본부에서 유행한다는 블랙 게임, 그건가요?"

뜨끔한 로드는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서로 죽어라고 카페인을 들이켜서 누가 먼저 의무실로 불려가나 내기하는 거, 모른다고는 안 하셔야 할텐데요? 옆 기지의 네모난 박사님도 그거 때문에 또 강제 출장 다녀오셨다는데."

"하하하, 콜린. 쓸데없는 상상은. 본부 분들이야 워낙 날아다니시니 그런 걸 하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런 걸 했다간 영혼까지도 남아나질 않을 걸요."

"참 그랬으면 좋겠네요."

말을 맺으며 콜린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받아 든 로드의 눈이 서서히 커져갔다.

"불만은 받지 않겠어요. 박사님이 좋아하는 원칙이니까."

"아니, 지금 카페인 중독으로 불려온 사람은 나 혼자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더더욱 해야죠. 원래 중독 치료 캠페인으로 개발된 거니까."

"그래서 나 혼자 이걸 하라고요? 정신병자 상대를 나 혼자서?"

콜린은 이제 상관 안 한다는 투로 시선을 책상 위의 다른 서류로 내렸다.

"정신병자가 아니죠. 그저 SCP 후보일 뿐입니다."


"사실 내가 언제부터 날 수 있게 된 줄은 몰라요. 언제부턴가 갑자기 날 수 있게 된 것뿐이죠."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로드는 답답하다는 눈으로 철창에 매달려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씩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털어댔다.

"카페인이 이렇게 절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난 열 두 살 때부터 커피를 마셔왔거든. 부모님이 커피 매니아인지라,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는 애였죠. 그 정도로 카페인에 내성이 있는 전데, 갑자기 에너지 드링크 한 잔에 날개가 생긴다는 게 믿어져요?"

"믿을 수야 없죠. 그래서요?"

"모두가 날 믿지를 않으니까, 난 내 자신을 바깥으로 날려서 날아오르려고요.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니까."

"젠장……"

철컹거리며 철창을 흔들어대는 남자를 보며 로드는 편두통이 심해져 가는 걸 느꼈다. 바로 이럴 때를 위해 블랙 커피를 휠체어 왼쪽 수납대에 집어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창 속의 남자는 이제 눈을 까뒤집고 푸드덕거리며 철창 안을 휘젓고 있었다. 지저분하게 휘날리는 먼지에 목 메인 기침을 내뱉은 로드는 눈을 내리깔았다.

"저 꼴이 나긴 싫다."

철창 속의 남자는, 진짜로 두 날개를 등에 달고 있었다.

펼치면 좌우로 오 미터는 족히 될 거대한 청동 빛깔의 두 날개를 단 남자를 넣기 위해 특수 제작된 철제 새장은 남자의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에 닿자마자 새카맣게 녹이 슬어 검게 변해버렸다. 지속적인 관찰을 위해 마취총을 겨눈 채 대기하는 두 요원을 대동한 끝에 로드는 철창에 다가갈 수 있었다.

"날개를 달아줘요! 날개를 달아줘요!"

물론 그가 원해서 다가간 건 아니다.

철창 밖으로 삐져 나온 깃털 하나가 로드의 휠체어 손잡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귀찮다는 듯이 휘휘 저은 로드의 손짓에 깃털은 바람에 다시 날아갔다.

"가넷 박사님. 이 스킵(Skip)이 정말로 고작 카페인 중독으로 이렇게 된 게 사실입니까?"

"카페인 중독이라기보단, 카페인 다량섭취죠. 그것도 특대 용량으로. 이 사람은 주식이 카페인인지라, 중독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몇 시간 전부터 관찰해온 가넷 박사는 하품을 하며 서류를 읽었다.

"일일 칼로리 섭취량과 동일한 양의 카페인을 매일 섭취해야 하며, 취급 시 깃털은 금속제 제품을 부식시키는 효과가 있으니 주의할 것. 뭐 딱히 어려울 것도 없어요. 격리 절차도 수월할거고. 그냥 에너지 드링크랑 커피만 주구장창 넣어주면 되죠, 뭐. 가끔 초콜릿도 넣어주고. 왜 박사님이 여기까지 와서 참관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네요."

"거 징그럽네요. 고작 카페인이라. 그것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날개가 돋고 새가 되고……"

"카페이이이이이이이이인! 사람이 새가 된다! 우린 날 수 있어!!!"

새된 목소리로 철창 속의 남자가 울부짖는 걸 잠시 쳐다본 로드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콜린 씨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잘 알았고요. 난 됐으니까, 가넷 박사님이 알아서 서류 끝마쳐주세요. 그럼.”

힘없이 임시 격리실 문 밖을 나서던 로드가 제일 먼저 한 건 수납대의 블랙 커피를 휴지통에 통째로 버리는 것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축 쳐진 로드를 멀뚱히 쳐다보던 가넷은 반대편에 난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효과가 있었을까요? 가넷 박사님.”

“그렇겠죠. 솔직히 저도 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니까요.”

콜린은 문을 조용히 닫고는 팔짱을 꼈다. 고개를 내미는 콜린에게 들고 있던 서류를 돌려 보여준 가넷이 말을 이었다.

“정신 테스트도 완료되었고요, 좀 있으면 실시될 심리 테스트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거에요. 앞으로 로드 박사님이 카페인을 먹는 일은 없을걸요.”

“그러길 바래야겠죠. 인재 한 명 한 명이 귀중한 마당에 무슨 낭비람.”

“끼야아호! 하늘은 푸르고 바다도 푸른데 나는 하늘에서 헤엄치고 싶노라! 에헤야!”

푸드덕거리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 콜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다 끝났잖아요, 찰스. 이제 그만해도 좋을걸요? 웬일로 연기에 혼신을 담는 건데요.”

그 말 한마디에 찰스의 펄떡거리던 날개와 사지는 조용히 내려앉았다. 온갖 표정을 지어대던 얼굴도 침착해졌다.

“한 번 잡을 생각을 했으면 확실히 잡아야죠. 저도 로드 박사님이 제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이니까요.”

“확실히 좀 크게 충격 받은 얼굴이었어요. 뭘 봐도 표정 하나 바꾸는 걸 보기 힘든 사람이었는데.”

가넷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찰스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뭐, 어찌 되었던 간에 로드 박사님이 어느 정도 마음을 바꿨다는 데 의의를 둬야겠죠. 그 친구 분이랑은 다르게 워낙 말 붙이기도 어려운 사람이니까.”

찰스가 들어있는 새장의 문을 열어주며 콜린은 눈을 뒤집고는 말했다.

“그 사람이 말을 붙이기 어렵다뇨? 사람을 피해 다니고 입을 좀체 열려고 하질 않아서 그렇지, 한 번 말문이 트였다 하면 술술 나온다니까요. 스트링 박사님이랑 다니는 거 봐요. 둘이서 끊임없이 조잘거리지.”

“스트링 박사님이 워낙 목소리가 커서 묻히는가 보군요, 하하하…… 윽.”

찰스는 어깨를 주무르며 한 바퀴 크게 팔을 휘두르려다 날개에 손을 부딪혔다. 빨갛게 달아오른 손을 문지르는 찰스를 보며 콜린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찰스, 연극은 끝났잖아요. 왜 아까부터 그 날개를 계속 매달고 있는 거에요? 안 무거워요?”

그러자 찰스는 콜린을 쳐다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콜린. 이건……

내 날갠데요.”

펄럭.

“……?”

“……”

“……”

“……진짜 날개를 달아준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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