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릉, 그르릉.
천하태평 만만세! 따사롭고 공기 맑은 아침은 총각들의 뜀걸음 소리로 바쁘도다. 한국지역사령부 산하 이렇게나 복지 좋고 열정 좋은 기지가 있을쏘냐! 혀를 내두르며 자화자찬하는 나르시시시시스트 강윤상 이사관 옆에는 간드러지는 운율로 우짖는 짬타이거1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 자는 강윤상 이사관의 옆자리 황금 방석에 엎져 쉴 때마다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코골이를 연주한다. 그야말로 개팔자가 상팔자인 꼴이로다!
- 화륵, 화르륵.
응? 과장보태 지하 여든 층 아래 숨겨진 이사관실에 들리려야 들릴 수가 없는 모닥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쾌한 연소음에 맞춰 비명소리와 층간 소음까지 강윤상의 고막을 공명으로 두들겨 패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윤상은 느리고 무거운 보안 단말기 대신 똑똑전화를 꺼내 카카오 민간 메신저로 다음 문장을 타이핑하였다!
"SCP 재단 산하 고성군에 위치한 제04K기지 소속 시설이사관보 주성환(49)! 이게 대체 무슨 소음인가?!"
격노 상태의 강윤상이 스크린을 어찌나 강하게 눌러대는지 겔럭시 제트 플립이 반으로 서른한 번 접혀 달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쥐던 폰에 초전도 현상이 일어날 만큼 차가운 피를 가진 냉혈 인간이, 지금은 폐포 한 알 한 알에 더운 바람이 차오른다. 아아, 04K는 권장 냉방 온도 17°C로 상시 가동 중인 기지이기 때문에 애시당초 따사로움을 느낄 수 없는 기지가 아니었던가! 이사관이 무쇠 같은 손바닥으로 고급 목제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자 단단한 책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띠링, 띠리링.
두 쪽으로 작살이 난 책상 너머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얼탱이 없는 상황을 대변2하듯 반으로 갈라져 열리며 거대한 불길과 훌륭한 재단 중식3을 함께 선사하였다. 육식의 향. 이 기지에서 사람새끼 고기를 제하고도 맡을 수가 있었던 향이었나! 하지만 잘 보게나, 이 기묘한 재단 동파육의 정체는 강윤상만이 꿰뚫어 볼 수 있었으니!
강윤상 이사관의 포크가 동파육의 좌측상단 엉덩이를 꿰뚫자, 체호프의 총과는 무관한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발현되었다. 아! 강윤상의 앙탈 카톡에 못 이겨 황급히 내려오던 주성환†이 B-81층이나 되는 기지 최하층까지 밀폐된 엘레베이터로 내려오느라 따끈따끈하고 먹음직스러운 수비드 요리가 된 상황이었던 것인가! 짬타이거4가 이 사실에 통탄해하며 배를 채운다. 강윤상도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자신이 이토록 도덕적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고 이사관실 내부 감찰을 자진 반려하게 된다! 엉엉ㅠ
- 따릉, 따르릉
"격리 이사관보!" 강윤상이 라노벨 풍으로 말했다. "지금 시설 내에 있는 모든 불길을 격리할 수 있겠나?"
격리 이사관보가 답한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되기 전에 폰을 반으로 두 번 접어 미션 클리어! 이사관님 나이스 샷!! 격리 이사관보 강현희는 역은퇴로 인해 쫓겨난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5
파칭코! 납덩이가 강윤상의 손에서 벗어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나는 소리다!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 빵이 없다면 케이크로, 이 개버러지 같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강윤상이 손 걷고 나선다.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 성큼성큼 기어 올라가는 강윤상 이사관이었다!
6
- 아싸 또 왔다 나! ♪ 기분 좋아서 나! ♪ 노래 한 곡 하고! ♪ 하나 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온 기지가 불구덩이가 되어 모든 구역에서 석박사들이 아찔야릇한 탭댄스를 추고 있는 와중에도 아리따움과는 거리가 먼 노랫가락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코인노래방에서나 구현할 법한 에코 소리의 한가운데에는 불에 바싹 튀겨진 관람객들과 연소하 한마리가 있었다.
"멈춰라!"
강윤상이 강하게 끊었다! 복도 불길 속에서 열창하던 연락관 연소하는 강윤상 이사관을 쳐다보았다.7 연소(燃燒)하는 연소하는 저작권 논쟁을 피하기 위해 귀에 꽂은 콩나물을 뽑고 강윤상놈의 새끼 발 앞에 다가간다.
"(스크류 파일 드라이버를 꽂으며) 연소하 이 새끼야! 내 기지를 홀랑 태워 먹은 게 네 짓이냐?"
강하게 꾸짖는 강윤상! 과연 그의 기선 제압은 성공할 것인가?!
아무쪼록 불길 속에 어림잡아 823시간이나 머물러있던 탓에 안구건조증이 온 강윤상은 시간이 촉박해졌음을 느꼈다. 이마를 짚고 골똘히 브레인스토밍하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으니!
"███ 병장님…? 저거 뭐 타는 연기 아닙니까?"
"커, 뭐… 신경 마라."
"저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 병장이 잠에 든다)
"시바 █ 병장님!"
"어오, 왜! 왜! 왜. 간부 왔어?"
"…"
(GOP 초소 근무 중 한국군 병사 간의 대화 내역 中, 이후 █ 일병은 작전 태도 불량으로 카프카식 린치를 받게 된다)
- 치직, 치지직.
힘겨운 길 찾기였다. 시신 수십구와 시신이 될 수십 마리를 뚫고 제1격리실에 도착하였다. 강윤상 이사관이 주먹만 한 마이크를 쥐고 기지의 모든 스피커에 다 울리도록 쩌렁쩌렁 외친다.
"기지 내 전 병력에게 알린다, 비열한 화마의 습격이다! 전원 역격리 실시!!"8
방송을 시바 오지고 조지게 때리고 4평짜리 역격리실로 무사히 들어간 강윤상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일 테니, 아니. 실제로 이 세상의 모든 걸 격리하였으니. 강윤상은 가슴 벅차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시 하나를 읊기 시작했다.
창백한 역격리실 (헤어 디자이너 칼 세이건이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의 재단 직원에게 격리실이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격리실에게는 다릅니다. 이 역격리실 안에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등장인물이 바로 저 너머 격리실 안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쾌락과 고문이 저 격리실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모든 지도자와 백성, 인류의… (이후 1730자 생략)— 제04K기지 이사관 강윤상
화재는 멎었고 연소 가능한 모든 산소는 불타 사라졌다. 오늘 일어난 화재는 연소하가 엘리베이터 사이로 버린 기름종이 83장과 강윤상의 담배꽁초가 만나 터지게 된 일이지만 아무튼 살아남은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기지 내 역격리 규약을 숙지해 둔 인원은 아마, 흠, 한, 대충, 약, 1명 정도쯤뿐인 탓에 아주 작고 사소한 희생이 생겼으나 크고 거창한 희생보단 실속 있는 알뜰살뜰 희생이 나은 법, 오늘도 기지는 무사하니 이것이야말로 태평성대로다! 얼씨구야, 지화자 좋다! 라이라이사사사!
엄마! 나는 04K가 좋아요!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만도 못한 강산 속에 멋진 고라니가 있는 04K가 너무 좋아요! 잘생긴 군인을 많이 볼 수 있는 04K가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이 나오는 04K가 좋아요. 노래방이 있는 04K가 좋아요. 화내는 사람 없는 04K가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04K가 좋아요! 휴가를 많이 주는 04K가 좋아요. 최저 시급을 잘 쳐주는 04K가 좋아요! 이 세상 어느 기지보다 04K가 제일 좋아요. 교육 복지가 잘 되어있는 04K가 좋아요. 책을 마음껏 가져가도 되는 04K가 좋아요! 인터넷이 잘 되는 04K가 좋아요. 배식이 맛있는 04K가 좋아요. 상급감시사령부에서 신경 써주는 04K가 좋아요. 물 맑은 04K가 좋아요! 눈물 글썽이다 마음 후벼파는 구름이 좋아요! 엄마!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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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가, 전우들이여?"
강윤상 이사관이 타자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과연 진심을 담은 편지란 각 기지 이사관들을 향한 것이었다. (01K 제외) 메시지의 호소력을 위해 인공 눈물을 인쇄지10에 흩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타자기 소리가 방을 가득 메운다.
"우리 기지는 한국군의 경계 아래에서 보호받으며 자라왔다네. 한국군이 가진 감시망과 여러 겹의 보호 시스템은 지난 수십 년간 재단을 위해 기여해 왔지. 그럼에도 04K는 정체불명의 공격에 터전을 잃었고 범인이 누구인지조차 알아낼 수 없었어. 우리 기지의 모든 인원은 이곳을 뜨는 수밖에 없었지. 당장은 급한 대로 인근 군부대에서 지내기로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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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상이 입가에 묻은 동파육 소스로 편지들을 봉한 후 각 기지로 향하는 텔레포트형 마음의 편지함에 넣었다.
"그런 고로, 04K의 새로운 컨텐츠, 병영 체험 코스에 초대하는 바이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