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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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7기지가 파괴된 시각으로부터, 19시간 뒤.

강주명은 정체된 시내 한복판에서 자신의 차 핸들을 두들기고 있었다. 라디오는 한물 간 노래를 꾸준히 틀어대고 있었고, 날은 이른 더위로 푹푹 찌고 있었다. 회의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고, 지금은 4시 15분이었으며, 길은 20분 가량 차를 몰아야 갈 수 있는 정도로 남아 있었다.

정체는 풀리지 않았다.

주명은 한숨을 쉬며 에어컨의 강도를 높였다. 차는 벌써 10분 전부터 앞으로 가질 않았다.

도대체 왜 한강대교 한복판에서 고속도로 수준의 정체가 생겼는지.

그저 앞에서 사고가 많이 생겼나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저 앞에서 어떤 차 둘이 서로에게 빵빵대고 있었다. 도로를 뎁히는 짜증의 열기는 점점 올라갔다. 주명은 다시금 핸들을 두들겼다. 정체의 원인을 그렇게까지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금은 회의가 더 중요했다.

때마침 라디오가 끊기고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는 “대빵”이라는 문자가 박혀 있었다. 본능적인 공포가 그의 뇌리에 용솟음쳤다.

"에이 씨벌 거."

주명은 통화 버튼을 스와이프했다. 곧 사나운 권력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퍼졌다.

"너 어디야!"

주명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래마인 이사관은 사람을 달달 볶는데 선수였다.

"이사관님… 저 가는 중입니다, 예? 도로가 더럽게 막힌다구요. 게다가 방금 무진에서 올라온 몸입니다."

"너 지금 어딘데."

"한강대교 위요. 지금 드넓은 한강물 영접하고 있습니다."

"사고라도 났냐?"

이사관의 목소리는 주명만큼이나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섣불리 뻗댔다가는 배로 얻어맞을 수 있는 경우였다. 주명은 입을 움츠렸다.

"아뇨. 잘 모르겠는데…"

"근데 이 자식아 뭘 막히긴 막혀 그럼 니가 빨리 집에서 텨나오던가 왜"

"알겠, 알겠습니다! 저도 답답하다구요…"

"하여간 빠져가지곤. 에휴, 어차피 너 늦을 것 같으니까 네가 보고할 거 통화상으로 말해라. 내가 대신 브리핑할테니."

"사랑합니다 이사관님."

"꺼지시고."

"네. 일단 한 달 전쯤 옐로스톤 국립공원 부근에서 SCP-008 감염자가 다수 출몰했다는 소문, 제01기지에서 공식 문건화한 거 먼저 알려드릴게요."

"정말로 좀비 아포칼립스냐?"

"그런 셈이죠."

앞 차가 갑자기 주행하기 시작했다. 주명도 재빨리 시동을 걸고 조금씩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미 쪽 기지 여러 군데서 ‘기지 불능 프로토콜’이 시행되었다는 기록은 입수했어요. 재단 도서관 업데이트는 안 되었으니까 제가 나중에 가서 입력해 놓을 건데, 관련 서류는 받아 왔습니다. 제64K기지 통신 요원은 아무래도 낌새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라고요."

주명은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며 휴대폰의 블루투스 기능을 키고는 내비게이션에다 대고 말했다. 이제 도로는 점점 정체가 풀리고 있었다. 그는 곧 대교를 빠져나왔다.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무진 쪽도 요새 심상치 않아요. 좀비를 보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근 한달 간 능구렁이 손 관련 인물들 목격담이나 첩보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적어도 몇 개, 아니면 하나 정도는 나올 법도 한데. 모든 기지에서 관련 정보는 모두 무진에 복사본 갖다 주는 거 알잖아요. 무슨 일이 있는지… 게다가 날개교 교회도 예배를 중지한다고 현수막에 대문짝만하게 써놨던데요."

"수상한데. 그 새끼들 뭐 알고 무진에서 날른 거 아냐? 혹시 한국 내부에 008 감염자 들어왔다는 소식 없어? 우리가 이미 공항하고 항구에다가 축산 검역한답시고 사람 짝 뿌리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인천하고 김포는 하나도 없다는 소식은 들으셨죠? 항구 소식도 몇 시간 전에 따끈따끈하게 들어왔다덥니다."

"근데?"

"완전 제로." 주명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거면 그냥 관악에다가 정보 수신하라 그러지 왜 무진에서 수집하라고 하셔서 저를 왔다갔다하게 만드십니까."

"우린 우리대로 할 일 많으니까."

"하긴 핑계 없는 무덤 없더라니." 주명이 툴툴댔다. "기밀이랍시고 이메일도 안 쓰고 인력만 쓰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할까보다."

"우리 주명이 휴가 함 갈까? 평생권으로다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사랑합니다 이사관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꺼지시고. 그럼 2주 전에 인천 미추홀구에서 사살된 하나하고 대전 동구에서 사살된 둘, 제주도 애월 소길리에서 사살된 다섯밖에는 없단 말이지."

"들어온 흔적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온 걸까요?"

"난들 아니. 그걸 찾는게 우리 목표인데." 노래마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낌새가 안 좋아. 낌새가 안 좋다구."

빠르게 직진하던 주명의 차는 전방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주명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 남자가 입고 있는 형광 조끼를 보았다. 남자가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정체가 시작됐나 보구만.

남자는 손짓으로 직진하지 말고 왼편으로 꺾으라고 지시했다.

"난 직진해야 되는데."

"뭐?"

"아, 아닙니다. 관악구청 거의 다 왔거든요. 지금 요 앞에 공사하는 것 같은데, 직진하지 말고 왼편으로 꺾으라고…"

"그 근방에 공사하는 거 없을텐데. 빨리 — 잠깐, 뭐? 왜? 그럴리가 없는데. 너무 가깝잖아… 분명히 주명이 아니라고… 야, 강주명. 지금 관악구청 부근에서 008 감염자로 보이는 놈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대! 이게 무슨… 빨리 와서 이야기해. 큰일 났어."

"그게 무슨 소립니까! 거기에 그것들이 왜 늘어나요!"

주명이 놀라 소리쳤다.

뒤에서 차들이 빵빵거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앞의 그 남자가 주명을 보고 짜증난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평소 같다면 곧이곧이 시키는대로 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뭔가 이상했다. 주명은 조심스럽게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는 차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뒤에서는 차들이 빵빵거리고, 남자는 아직도 고개를 젓고 있었지만 주명은 거침 없었다. 그의 이마에는 힘줄이 솟아 있었다.

남자가 주명을 바라보았다. 온 표정에는 더위로 인한 짜증이 가득해 있었고, '내가 너 정도는 이길 수 있지'로 추정되는 메세지가 담겨 있었다.

"이봐요. 시비 걸려는 거면 번지수 잘못 찾았수. 정부에 따져요, 정부에. 시청 증축 공사한다는 것도 못 들었나."

주명은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가리키는 팻말을 보았다. 도로교통공사 마크가 그려진 팻말에는 전문적인 어조로 관악구청의 공사를 공지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명은 피식 웃고는 남자의 턱에다 주먹을 날렸다.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앞으로 쓰러지려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주명은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재빨리 자기 무릎을 붙잡은 남자의 배에다 어퍼컷을 날리고는 무릎으로 남자의 얼굴을 찍었다.

남자가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명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뒤에서 몇 명이 차에서 나와 사진을 찍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몇 분 뒤면 지워질 기록들이다. 주명은 바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를 몇 통 보내고는 다시 쑤셔 넣었다.

"왜… 이러시느 검미카." 이빨이 나간건지, 아니면 코가 부러져서 그런지 남자는 불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엔트로피를, 넘어서." 주명은 일부러 길게 끊어 발음했다. 남자의 찡그려진 눈망울이 커졌다.

"씨바 너 그거 어떠케—"

"야 정명철이." 주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찡그렸다. "너네 엔트로피들이 예전에 수원에 있던 기지 하나를 공격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날지 모르겠다?"

이름이 불리자 남자는 눈을 크게 떴고, 수원에 있던 기지라는 말을 듣자 그는 숨을 들이켰다. 남자의 시야에서, 갑자기 눈 앞에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날 그 기지에서 살아남은 인원이 딱 두 명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였지." 주명은 손가락의 마디를 꺾었다. "나는 그리고 절대 내 부모와도 같은 사람의 대가리를 쏴버린 새끼를 잊지 않아."

남자가 피를 뱉고는 일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주명은 그러는 남자의 어깨를 밀어버렸다. 남자는 바닥에 부딪히자 쥐가 밟힐 때 내는 소리를 내고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기어가려고 했다.

주명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남자에게로 겨누었다. 주위에서 헉 하는 소리가 일더니 카메라 찍는 소리가 거세졌다.
씨발 기특대는 또 왜 안—

그리고 주명은 왼쪽 도로에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마치 서울 시민들이 모두 집 밖으로 뛰쳐나와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감염자들이었다. 벌집을 건드린 것마냥 수많은 감염자들이 이를 벌리고 그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정명철은 부러진 입으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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