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조상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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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호기롭게 벤치 프레스를 들었다. 빈봉으로 들면 조상신 소환이 되지 않았기에 상당한 무게를 꼽은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곧 이어 말 소리가 들렸다.

"……그런."

"…하지만 그렇다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갑자기 무게가 확 늘어났다. 조상신께서 갑작스럽게 보조를 놔버린 듯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중량 강화에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으악, 더 시간 필요해요?"

"아. 미안해. 그만 놔도 돼."

난 그말에 살살 벤치를 내려놓았다. 조상님을 도와주려다. 내가 죽을 뻔 했다. 1년에 한 두번 정도 일어난다고 들은 벤치에 깔려 죽는 사람이 될 뻔 하다니.

가쁜 숨을 내쉬는 나를 보며 윤성재가 킬킬 웃었다.

"아깝다. 심야클럽 새 멤버 될 수 도 있었는데."

내가 노려보자 윤성재는 살짝 뒷걸음질 쳤다.

"농담이야, 농담. 무섭게 보지 마. 쫄았잖아."

"제 조상신이랑 이야기한 거나 말해봐요. 정확히 무슨 일이에요?"

"이게 말하기 살짝 복잡한데 말이지, 내 생각이랑 약간 달랐어. 삼대천 그놈들이 악당인것 자체는 맞는데…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더라고."

"그게 뭔가요?"

"악령이 하나 있나봐. 그것도 아주 지독한 녀석이."


전말은 이랬다. 한 악령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승에 간 심령들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제사를 받기 위해 이승에 왔을 때 납치한 뒤 구금하고 끊임없이 고통을 주게 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장소와 자본을 제공한 것이 삼대천 피트니스이었고, 서로의 목적이 맞아떨어져 이런 황당한 부적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삼대천 피트니스?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

내 물음에 유서진이 대답했다.

"무서운 자들이야. 지금은 기업의 형태를 띄고 있고, 방재원…모르겠구나. 그러니까 정부의 가이드라인에도 맞춰서 합법적인 기업의 느낌을 내려고 하는 곳이지만, 실상은 달라. 나도 인사부장님한테 들은거지만, 음지에서 거의 절대적인 위치에 있던 조직폭력단이었다고 하던데. 빽도 어마어마하고."

"어…그런 무서운 곳에 그냥 쳐들어가도 되나요? 그리고 대체 어떻게 그런 곳의 위치를 알아요?"

유서진은 윤성재를 슬쩍 쳐다보았다.

"우리 인사부장님이랑 삼대천이랑은 좀 인연이 있거든."

윤성재는 별로 말이 없었다. 평소에는 유서진이 하는 모든 말에 말대답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얼굴도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야. 설령 위험하더라도,  셋 정도면 최소한 몸은 빠져나갈 수 있어."

몸이 없는 윤성재가 그런 말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농담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럼 가자."


우리는 삼대천 피트니스로 향했다. 무서운 소리를 들은 지라 잔뜩 긴장했지만 의외로 가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인기척이 없어 서늘하기까지 했다. 아, 서늘한건 귀신이랑 같이 있어서인가.

"도착했군. 그럼 들어가 보지. 외교부장, 모범을 보이게."

"이럴 때만 외교부장이죠?"

유서진은 앞장서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이상하네요. 물건은 많긴 한데,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느낌이 들어요."

사무실 내부는 허름하진 않았지만 온갖 잡동사니로 인해 난잡했다.

그때 굳건한 철문이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 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리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호리호리하지만 균형잡힌 몸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악수를 건넸다.

"김튼튼이라고 합니다."

"…김튼튼이요?"

"예. 부모님께서 튼튼하게 자라라고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불만 있으십니까?"

"아뇨. 멋진 이름이네요."

"오신 이유. 짐작은 갑니다. 그 부적 때문이겠죠? 조상님이 봉 들어주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 물음에 김튼튼은 윤성재의 가슴을 가르켰다.

"그 회원권. 80년대를 마지막으로 지급을 종료한 물건이죠. 그건 삼대천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그걸 지닌 회원님들의 위치를 확인하게 해 줄수 있는 물건이죠."

그 말에 유서진은 도끼눈이 되어 윤성재를 쳐다보았다.

"그럼 지금까지 거의 50년을…"

"아, 아니야. 내가 바보야? 평소엔 추적이 안되는 곳에 놔두고 있었지."

"맞습니다. 저도 갑자기 그 위치 추적이 켜져서 깜짝 놀랐어요. 이제 저 회원권을 쓰시는 분은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한데…저도 실제로 본 건 처음입니다."

윤성재는 헛기침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들에게 의뢰를 신청한 악령의 위치와 심령들을 가둔 곳의 소재지를 알려주게."

"……"

윤성재의 말에는 희미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흥. 물론 당신네들이 협조할 생각은 없겠지만. 자네의 실수는 오직 자네 한명만이 온 것이오. 그 괴물들이 있었다면 모를까, 자네 한명이라면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할 것이니 각오하시오!"

윤성재의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김튼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알려드릴게요. 어차피 저희도 버린 프로젝트니까."

그 말에 윤성재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뭐?"

김튼튼은 한숨을 쉬었다.

"그 간편 제사 세트, 저도 처음엔 혹했죠. 나름대로 그 귀신의 논리가 일리가 있었고…괜찮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경쟁에 조급해서만 아니었다면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봤을 텐데."

"경쟁?"

"네. 우리가 세트 수를 까먹고 계속하게 만드는 바보 덤벨 같은 거 만들 때 생활건강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요? 신을 죽여서 사람 몸에 신을 넣고 있어요. 신을. 믿겨져요? 심지어 삼대천 스포츠 그 망할 놈들도 신에 가까운 괴물을 부리고. 근데 우리는 뭐야. 웬 잡귀신 몇명이 붙어서."

그 말에 유서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봐."

"아, 죄송합니다. 당신네 님들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우리 사장님 보기 쫌 쪽팔리다 이거에요. 안 그래도 직원 수 적은 우리 피트니스인데, 태양이 형은 스포츠 윤리라는 걸 나름 챙기는 사람이라…"

김튼튼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그건 우리도 반려한 일이에요. 신체에 좋은 영향도 없이 기록만 향상시키는 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태양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부작용도 많고."

"…그 말은 신체에 좋은 영향이 있다면 가차없이 쓸 수도 있다는 말인가."

윤성재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김튼튼은 머리를 긁었다.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획기적인 효과가 있다면 고려해 볼 수도 있겠죠?"

"그걸 위해!"

윤성재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정적이 흘렀다.

"그걸 위해 많은 심령체가 고통받아도 된다는 이야기 인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고통받는 심령들은 그럼 무의미한 일에 붙잡혀 안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고문받아야 하는가?"

"에…그렇게까지는."

"부끄러운 줄 아시오. 자네들은 육신에 집착하지만, 육신이 없는 삶의 길이는 자네들의 생각보다 길 테니."

김튼튼은 대답 없이 잠시 우리를 응시했다.

"…새겨 듣죠. 하아, 사실 그 귀신의 정확한 위치는 저도 몰라요."

"괜찮아. 내가 알아."

"형!"

백발의 남자가 바닥 밑에서 기어 올라왔다. 그는 한 눈에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순수한 근육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덩치가 위압적이었다. 일반인들은 그저 크다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피트니스 업계에서 잠깐이나마 종사한 나로서는 눈 앞의 남자가 이 몸을 만들기 위해 했을 노력이 눈에 보였다.

"사랑하는 튼튼 대리님. 대리님은 입이 싼게 문제야. 그 설명충 기질 버리라고 몇번을 말했냐. 아주 회사 기밀까지 다 떠벌릴 기세던데. 나보다 말 많이 하는 놈은 이 세상에 너뿐일 거다."

"…죄송합니다."

그는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와 구십도로 허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백태양입니다."


"방금 좀 멋있었어요. 그 이름 이상한 아저씨가 암 말도 못하던데요."

"헤헤, 그래? 내가 좀 멋있긴 하지."

윤성재는 어느새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그 남자,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친절하던데요."

유서진의 말에 윤성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 집단에도 정상적인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

"뭐, 딱히 정상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악인은 아닌거 같네요."

윤성재의 표정은 묘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간신히 참고 있는 듯 했다.

방금 전에도 그렇고, 삼대천과 윤성재 사이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했다. 육체를 다루는 기업인 삼대천과, 육체가 없는 귀신들의 모임인 심야클럽과의 접접이 대체 뭐였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물을 때가 아니었다. 백태양이 알려준 귀신의 수용시설에서 내 조상신들과 같은 피해를 입은 심령들을 구출하고, 이 문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인 악령을 잡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아산으로 가자."

슬슬 끝이 보였다.


악령의 본거지는 아산이었다. 큰 장례식장이 있어 심령들을 많이 납치할 수 있기에 이 곳을 골랐던 듯 했다.

윤성재는 악령이 삼대천에게 자본금과 심령공학 장비를 얻은 뒤에는 내가 경험한 간편 제사가 아닌, 진짜 장례식장 근처에서 갓 심령이 된 귀신들을 바로 납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명 엄청난 힘을 가진 악령일 꺼야. 마음 단단히 먹어. 강력한 악령은…네 눈에 보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당신처럼 말이죠?"

"그래. 그걸 실체화라 하는데, 그런 존재는 물리력에 직접적인 간섭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 그 말은 곧 널 죽일 수도 있단 말이지."

"그렇다 하더라도 가야죠. 부적을 산 책임은 저한테 있는걸요. 그리고 거기 둘러쳐져 있을 결계를 부술 사람은 저뿐이잖아요."

"…고맙다. 모두가 너처럼 고결한 정신을 가졌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아산에 위치한 지하 벙커에 들어갔다. 둔감한 내가 느끼기에도 소름끼치는 음기가 느껴졌다.

이번엔 항상 엄살만 부리던 윤성재가 거침없이 벙커 안쪽으로 먼저 들어갔다.

벙커에 진입하자 소리가 들려왔다.

-나 만 조 상 님 없 어 . 기 억 해 주 는 사 람 도 .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픔에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었다. 남자 목소리인지 여자 목소리인지도 잘 구별되지 않았다.

"진정하시오! 본인은 심야클럽의 대표이자 인사부장을 맡고 있는 윤성재라고 한다!"

-나 만 가 족 이 없 어 .
왜 나 만?

악령은 윤성재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윤성재를 공격했다. 이미 실체화에 성공한 상태라 주변 사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어우…역시 파릇파릇한 심령이라 그런가 힘이 쎄네. 살살 합시다 좀. 나도 벌써 심령이 된지 몇십년이라 영혼의 삭신이 쑤시기 시작했다고."

윤성재는 전투 테세를 갖춘 뒤 소리쳤다.

"지하 2층으로 가! 지하에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수히 많은 심령들이 악령으로 변화되기 직전이야!"

"네!"

나는 전력으로 지하로 달려갔다. 그때, 뒤쪽에서 큰 충격이 덥쳐왔다. 나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으윽…"

"괜찮아?"

날 감싸주고 있는 건 유서진이었다. 위를 보니 천장에는 악령이 그은 상흔이 길게 남아 있었다.

유서진의 몸은 의외로 포근했다.

"고맙습니다."

"감사인사는 이따가."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지하 2층으로 향했다. 멀리서 윤성재와 유서진이 악령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저 밑엔 아마 수많은 심령들과, 내 조상님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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