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드세요, 까르보나라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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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여기로 왔을까?

진심이다. 분명히 자질이 철철 넘쳐서는 아니다. 슬프지만 나한테 그런 건 외려 아예 없으니까. 여기 사람들 전부, 박사 적어도 하나씩은 땄거나, 완전 엘리트 그룹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연구 나는 반의 반도 못 따라간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이 인류 최고의 엘리트들과 부대끼며 산다. 그리고 파스타를 나눠준다.

"볼로냐 드세요, 까르보나라 드세요?"

인류 최고의 엘리트들한테 하는 말은 이 정도가 전부다. 아니면 "고기 드세요, 물고기 드세요?"거나.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괴상한 농담을, 아니면 괴상한 인싸 농담을 친다. 이따금 어제 생긴 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다. 이 사람들 다 정상은 아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지만, 파스타를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되게 좋아한다.

"아이씨, 이 파스타 뭐야! 적어도 망치지는 말았어야지!"

존중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르마니 옷 입으신 분, 니는 뭐가 그래 잘났냐? 도시 하나만한 기지에서 조리하는 게 쉬운 줄 안다. 거기다 행정부에서 온갖 지출을 샅샅히 훑어가면서 "식당 지출 절감" 같은 소리하는 상황에서. 지금 예산 같으면 파스타가 있는 자체를 감사할 상황이다. 나같은 요리사가 이 사람들 식사를 위해서 이런 최소한의 품위도 안 챙겼으면 맨날 순무나 뚱딴지, 레이션만 먹는 거다. 나도 똑같은 프랑스 사람이다. 이 정도의 음식은 포기 못 한다.

진짜 미친놈도 있다. 작업복 입은 이 사람은 보아하니 박사 하나는 딴 사람이겠지만, 말 걸어보면…

"볼로냐 드세요, 까르보나라 드세요?"
"까르보나라."
"알겠습니다."
"뭐야! 왜 이거 담아주는 거예요? 방금 제가 볼로냐라고 그랬잖아요!"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다. 가끔은 어떤 연구원들은 불쌍해지기까지 한다. 기지 바깥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부터 모르겠다. 완전 가관일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자기 영역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미친 실험을 하느라고 식당 예산을 깎아먹고 있다. 그리고 음식 투정한다. 요원들은, 나한테 겁을 주고 싶어하나 보다. 그래도 뭐, 존중받을 만한 일들 하겠지. 엄정한 군대 생활 하시니깐들.

그러니까 다시 이렇게 질문해본다.

어쩌다 내가 여기로 왔을까?

나는 군대만큼 엄정한 사람도 아니고, 과학은 그냥 싫어한다. 아니 뭐, 소스 3mg만 가지고 파스타 1kg 만든다든가 하는 임무라도 있으면 그건 잘 할 것 같다. 아님 뭐, 내 삶의 목적이 파스타 만들기일지도. 세상에서 제일 큰 비밀 조직에서, 나는 파스타를 만든다.

"미셸Michel, 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아나?"

아 그래. 그제라. 연구동 하나가 지붕이 날아갔다. 30분 동안 기지 전체에 경보가 발령됐다. 어느 개 같은 자식이 탈주했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런 짓거리 때문에 고생하는 건 사람을 안 가린다는 점이었다. 요원이든 연구원이든 요리사든. 한 놈 탈주하기만 하면 모두들 다 같은 배에 탔다.

"미셸?"
"아, 네, 죄송합니다. 무슨 실험 같은 게 하나 잘못됐던 모양이더구만요. 늘상 그렇죠."

늘상 그렇다, 그리고 그거 다 고치는 데만도 10만 유로쯤은 늘상 들었다. 만약에 요리사가 열댓 명밖에 없기만 했어도 이 헛똑똑이 자식들이 매달 "실수로" 건물을 뿌수는 작태에다가 내가 당장… 당장… 음 당장 대단한 건 안 떠오른다. 반면에 당장 안 원하는 건 있다. 짤리는 거, 그것보다 더한 거. 우리가 한갓 요리사라도 바보는 아니니까. 자, 아까 말 건 양복 멋진 4등급 인가 아저씨. 너는 고기 좀 덜 받아라. 그게 내 최선의 복수다.

이런, 볼로냐가 다 떨어졌다. 그리고 아직 밥 못 먹은 사람이 250명은 더 남았다. 이런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겠군. 가끔은 꿈에서 무한히 큰 접시가 나온다. 우리 천재 발명가들이 요래요래 만들 수는 없으려나…

어, 누가 "무사고일" 표시판 일수 갱신하러 왔다. 이런, 1에서 0으로 바뀌었다. 가끔은 이 자식들 가족이나 있을까 궁금하다. 만들 수나 있으면 말이다. "안녕 자기, 오늘은 나 혼자 건물 하나 깨부수고 왔는데, 어떻게 지냈어?" 웃기는 생각이다. "어이구 우리 새끼, 오늘은 아빠가 이름도 없는 혐오스런 괴물들 직장 동료 냠냠 안 하게 얼굴을 찢어발기고 왔단다, 학교는 잘 갔다왔니?" 재단에서 어린이집 정도는 굴릴 수 있을지도… 아니 내가 뭔 소리지? 그래도 너무 웃기지는 않다. 우리 모두는 작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류를 보호한다고 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 일부에 속하는진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녕 자기, 오늘은 프랑스에서 제일 똑똑한 브레인들한테 파스타를 나눠주고 왔어." 으흠.

그런데… 우리 가족은 어디 있지? 여기서 나는 너무 정상이지만 동시에 외롭다. 곁에는 파스타뿐이다. 우리는 그대가 양지에서 살아가도록 음지에서 죽어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대가 그저 살아가도록 홀로 죽어갈 뿐이다.

그래도 그런 점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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