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bleCon 2018

일련번호: SCP-993

등급: 안전 비격리

"그러면…" 시체 등때기를 곡괭이로 푹 찍으며 로지(Rodge)가 물었다. "최애편은 몇 화야?"

"78화지." 눈이 벌써 노스탤지어로 함뿍 찬 린지(Lindsay)가 대답했다. "매일 학교 가기 전에 아침마다 봤어."

"보블의 수렵별장. 좋은 에피소드지."

보블콘(BobbleCon) 2018은 조직부터 어려웠다. 팬덤이 웬만하면 감옥을 갔거나 등등 저마다 사정들이 안 됐으니까. 하지만 조직위는 기어코 장소를, 그리고 상당한 참가자들을 찾아냈다. 문제는… 시체에서 곡괭이를 빼내며 로지는 기억을 되살렸다. 주민들은 털끝만큼도 보블을 좋게 생각 안 해줬다. 로지의 경험으론 보블까 자식들은 1절만 할 줄을 몰랐다. 보블을 계속 감금해 놓으려는 조직들이 허다했고, 설마 정말 그럴 린 없겠지만, 죽이겠다는 놈도 있었다.

"흠." 1분쯤 뒤 로지가 다시 입을 열며, 배낭에다 곡괭이를 다시 집어넣었다. "여기 부보안관 덩어리 이제 설득 끝. 진행하면서 훼방꾼은 더 없을 거야."

그리고 로지는 다시 마을 교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참가자들이 손수 만든 보블 현수막이며 그 밖에 멋진 기념품들로 온통 뒤덮인 교회. 저 경찰놈이 참가자들 보고 나가라 한 그 말은 너무 부당했다. 이 동네에서 컨벤션 열 만한 다른 자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교회에서까지 못 모이면 어디 가서 모이라고?

"부보안관 덩어리래." 앞서가는 로지를 따라잡던 린지가 웃었다. "그거 9004화 제목 아냐?"

"정답." 로지가 씩 웃으며 린지를 가리켰다. "프레스턴(Preston) 말이 맞네. 너 진짜 보블 천재네."

"매일 아침마다 봤다니까. 보블 같은 프로를 어떻게 잊어버려."

"인정, 잊어버릴 리가." 로지가 말하며, 교회 문을 열어젖혔다. 신도석에서 부보안관 어찌 됐나 소식을 고대하던 보블콘 참가자들이 모두 로지를 돌아봤다. 참가자들 얼굴은 하얀 칠, 머리는 주황색 염색. 보블 모습처럼! 맨 처음들 모일 때 린지가 생각해낸 재밌는 아이디어였다. 로지도 린지도 지금 똑같은 모습이고. 로지는 코스프레가 이번이 처음이지만도, 되게 즐거운 경험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됐어?" 유일하게 보블 풀셋을 다 챙겨입은 프레스턴이, 제단 앞에서 물었다. 기대하는 동그란 눈 뜨고.

로지는 가방에 손을 넣고 곡괭이를 꺼냈다. 날에서 피가 아직도 뚝뚝 떨어졌다.

"쇼는 계속된다!" 로지가 환호하자, 보블콘 모두가 같이 환호했다.

-

로지가 보블을 처음 만난 것은… 여섯 살이었나? 확실히 적어도 6살 때였다.

로지가 부엌에 앉아서 시리얼을 떠먹을 때, 와당탕 하는 소리가 거실에서 났다. 뭔 일인지 거실로 달려가 보니 거기 엄마가, 바닥에 쓰러져서 무의식 상태인? 아니 누가 봐도 다림질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자는 모습이었다.

걱정된 로지가 전화기로 쪼르르 달려가 911을 누르려던 그때 -

"안녕, 우리 친구! 내가 누굴까?"

고개를 들어보니 TV에 보이는 한 얼굴. 피부 창백하고 주황 머리 곱슬한, 명랑하게 생긴 광대 캐릭터였다. 눈에서 다정함이 묻어났다. 로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한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사람이란 걸.

아무…래도 911을 안 부르는 게 좋을지도. 엄마는 그냥 살짝 기절만 했고, 로지는 처음 보는 이 프로가 궁금해졌으니까. 이런 프로를 전에 봤단 기억은 없었다.

로지는 소파에 앉아, 열중해서 TV를 시청했다. 화면 속 광대가 싱긋 웃었다. 로지의 거실이 훤히 보인다는 듯.

"맞아맞아! 여러분의 오랜 친구, 광대 보블이라구!"

그리고, 로지가 한 번도 못 봤던 세상의 향연이 펼쳐졌다. 잘 시간에 몰래 아래층 가서 폭력영화 몇 번 보긴 했지만 고작 몇 장면뿐이지. 선혈과 내장, 비명과 울음… 이것들이 얼마나 재밌는 건지 로지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물론 전부 보블 덕분에. 보블은 그냥 이 프로의 전부였다. 그 사실을 로지는 그때 벌써 알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이 휭하니 지났을 때, 로지는 새로 만난 친구가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화면 속의 보블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눈에다 손 올리고 과장된 손짓으로 우는 거 보니까.

"잉잉, 훌쩍! 훌쩍훌쩍! 슬프지만 우리 친구, 오늘은 여기까지! 제발… 제발 착한 어린이라면…"

갑자기, 보블은 손을 뗐다. 다정한, 다정다감한 눈망울이 다시 보였다. 다정한 회색빛, 칼날 같은 눈. 그 눈이 로지를 보며 웃었다.

"꼭 다시 만나! 빵빵! 빵빵!"

그리고 TV는 확 잡음 화면이 됐다가, 머지않아 다시 아침 뉴스로 돌아왔다. 바닥에 쓰러진 엄마가,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로지?" 엄마가 덜 깨어난 발음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니?"

로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신나서 보블처럼 얼굴이 웃음으로 꽉 차려고 했으니까. 내일은 새 친구를 TV에서 다시 볼 수 있겠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

"아홉 살 때 저는 처음 보블을 만났습니다." 제단에 붙여둔 마이크에 대고 프레스턴이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신도석에서 경건한 자세로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이 막 이혼하던 때라 저한테는 말도 못하게 힘든 시절이었어요. 매일 아침을 기다릴 계기를 준 보블에게 - 그리고 우리 팬덤, 이 팬덤 덕분에 제가 살아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 정말 사랑합니다."

정중하게 박수와 환호가 신도석에서 퍼져나왔다. 프레스턴 뒤에 섰던 린지가, 그 어깨에 격려하는 손을 얹어줬다.

"보블헤드(Bobblehead)끼리 뭉치자." 따뜻하게 웃어주며 린지가 말했다.

"399화였지." 인용문을 알아본 프레스턴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맞아. 3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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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격리 절차: 현재 SCP-993이 비격리 상태이므로, SCP-993 방송을 추적하고 중지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송신되는 방송은 절차 입실론-베타 3의 최신판을 따라 차단하며, 해당 작업은 학습컴퓨터 타우-4 ("아몬AMON") 및 엡실론-9 ("조시아JOSIAH")가 담당한다.

기동특무부대 제타-2 ("나무꾼Lumberjacks"), 에타-10 ("비례물시"), 뮤-9 ("장난감 파괴자")가 방송 장소의 물리적 수색을 담당한다. '보블콘'이라는 무리에 가담한 인물, 또는 10세를 초과했으면서 SCP-993의 효과에 면역인 인물을 발견하는 경우, 적대적 인물로 간주하고 적절한 무력을 행사하여 취급한다. SCP-993의 인식재해 효과를 받았다고 추정되는 인물에게는 모두 C등급 기억소거제를 투여한다. 관련 MTF 대원은 SCRAMBLE형 고글을 착용하여 SCP-993를 보고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방지한다.

이전 SCP-993 방송에서 언급된 SCP 개체들은 모두 보안을 대폭 강화한다.

-

어느 날, 광대 보블이 TV에 나오지 않았다. 예고도 없었고, 시청자들에게 보블이 암시해준 말도 없었다. 그냥, 어제 있던 보블이 오늘은 없었다.

몇 주를 로지는 울었다. 주체 못할 슬픔이 덮쳐왔다. 보블하고 얼마나 많은 걸 나눴는데 (동네에서 실종된 숱한 고양이들이 그 증거였다) 이렇게 떠나 버리다니. 안녕이란 말도 한 마디 안 하고.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야 겨우, 곰곰이 이 상황을 생각해본 로지는, 보블이 자진해서 팬들을 떠났을 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보블이 이 세상에서 팬들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떠나지 않았어. 누가 데려간 거야. 아니 훔쳐간 거야.

오래지 않아 로지는 집을 뛰쳐나왔다. 보블이 사라졌다면, 찾아낼 사람은 팬뿐이었다. 몇 년 동안, 오만 인터넷 카페며 오프 모임을 뒤져가며, 로지는 똑같이 보블을 찾아나선 다른 보블헤드들을 만났다. 그렇게 이들은 보블하고 털끝만이라도 연관 있는 정보라면 모조리 뒤졌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묶어버린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나 온 구석을 돌아다녀 봐도 얻어낸 단서는 거의 없었다. 총칼을 동원해서 윽박질러 봐도 꼭 필요한 정보는 나올 줄을 몰랐다. 이 지랄 저 지랄 다 해서 보블헤드들이 알아낸 것은 세 글자뿐이었다. S, C, P. 로지는 이 자식들이 보블을 훔쳐갔으리라고 추측해 봤지만, 자기조차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희망을 잃어갈 때, 린지가 나타났다. 자기가 소중한 보물을 하나 가지고 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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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빠지겠다, 린지." 로지가 웃었다. 겉으로는 태평스레. 그러나 속으로는 가슴을 몇 번은 철렁이며. 이 짓이 아무 쓸모 없으면 어떡하지? 린지 말이 틀렸으면?

"기다려 봐, 로지." 린지가 씩 웃었다. 로지가 보는 린지의 얼굴에는 흥분이 땀처럼, 아님 고름처럼, 아주 철철 흘러넘쳤다. 뒤에서 문이 끽 열리자, 둘은 뒤를 돌아봤다.

프레스턴과 다른 보블헤드 하나가 교회 놀이방에서 낡은 TV 한 대와 VCR 플레이어를 실어서 가지고 온 참이었다. TV 주위로 참가자들이 웅성이며 모이는 가운데, 린지가 TV 앞으로 갔다.

"모두 침착하세요." 린지가 픽 웃음을 터뜨리며, 배낭 속으로 손을 뻗었다. "짠 하고 사라지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그러고 린지는 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BobClown Ep21, 이라는 사인펜 글씨가 쓰인.

"테이프다!" 참가자들 모두가 한소리로 외쳤다. 카랑카랑해서 비명 같을 만큼. "테이프야! 진짜 테이프!"

"웨스트헤드(Westhead) 뉴스 덕이죠! 보블 만세, '나무'the Tree 만세!" 린지가 웃으며 플레이어에다 테이프를 꽂았다. '나무'가 뭐 하는 건지 로지는 전혀 몰랐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하냐.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이 돌아온다는데!

화면이 켜졌다. 코끼리 만화가 TV에 나왔다. 벙찐 로지가 실망하려는 찰나, 몇 초 안 돼서 화면이 바뀌었다.

텅 빈 방이 화면에 나타났다. 하얗고 삭막하고, 중앙의 의자 하나밖에 방 안에 없었다. 감옥 방인 모양이지. 그리고 그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모두가 그 남자를 알아봤다. 모두가 다 기억했다. 그 얼굴을 어떻게 까먹는단 말이야?

화면이 줌인했다. 이윽고 광대 보블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웠다. 몹시 찡그린 얼굴이. 그러다, 다정한 회색빛 눈이 좌우를 힐끗 훑으며, 교회 안의 모두들을 살펴봤다. 찡그린 눈이 푸근하게, 이어서 입이 쩍 환하게 바뀌었다. 보블이 웃었다. 기쁘고 날카롭게, 그 웃음소리에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들이 모조리 덜컹덜컹 흔들릴 정도로. 그리고 보블은 의자에서 뛰쳐나와, 카메라에다 입을 쭈욱, 질펀하게 맞췄다.

"안녕, 친구들!" 보블이 말했다. "내가 누굴까?"

2018년 2월 12일 21시 07분, SCP-993 녹화본 테이프들의 내용이 모두 돌연 새로운 에피소드 하나로 바뀌었다.

에피소드 제목 내용
보블은 팬들을 사랑해! 에피소드의 배경은 큰 강당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보블은 '예술 및 교육, 인간 본성의 지속'에 기여한 공로로 트로피를 수여받는다. 보블은 50분 동안 수락 연설 (전체 내용은 보충문서 XXX-1 참조) 을 펼친 다음, 수상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프로그램의 방영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다. 연설을 마치면서 보블은 관중들 (유명인사, 정체불명의 어린이들, 재단 인원들 등을 만화화한 캐릭터들) 에게 집단 자살을 명령하며, 관중들은 이를 기쁘게 따른다. 그리고 보블은 무대 뒤쪽의 나무문을 열고 강당을 나간다.

해당 사건 이후 재단은 SCP-993이 약 ███개 지역에서 방송을 재개했다는 보고를 접수하였다. 프로토콜 입실론-베타 3에 따라 방송 차단이 진행 중이나, 차단하는 만큼 방송이 새로 송출되는 지역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현재 SCP-993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완전히 격리에서 풀려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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