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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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원래 그 나무들을 기르던 집안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분명하고요. 지금처럼 무기나 만들고 나무나 가꿔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 아닙니까!"

나는 어느 새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도대체가 말이 통해야 말이지.

"그러니까 결국은 SCP-143은 그쪽에서 다 챙겨가겠다, 그 말씀 아닙니까? 저희 구역의 인원 한명 한명은 모두 뛰어난 학자들이며,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데도 가끔 사고가 납니다. 그런데, 겨우 당신네 농부를 믿으란 겁니까?"

내 앞에는 제12구역 이사관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은근히 나를 견제하곤 했다. 가능성이 보이는 변칙성 식물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권한을 어느 정도 나눌 것을 요청했고, 매번 '한낱 농부에게 고위험군의 변칙성 식물을 맡길 순 없다, 이들을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며, 권한을 넘겨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 놓고 발언한 적은 없었는데. 눈앞에서 나의 직원들을 무시하는 말을 직접 듣게 되자 나는 그나마 잡고 있던 이성마저 놓게 되었고, 내 뒤에 서 있던 신입은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끼어들고는 이어서 말했다.

"일본 측의 설명도 그렇고, 재단의 자체적인 실험에서도 분명 143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결론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열매를 쓴 적도 있나 보더군요. 저희도 농부가 아닌 식물학자로서, 그저 더 알고 싶을 뿐입니다. 143을 완전히 넘겨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표본만 조금 얻으면 충분합니다. 한 번만 믿어주시죠, 이사관님."

"이봐, 아가씨. 카일리라고 했었나? 내가 그저 농부를 탐탁잖게 여기기 때문에 자네들에게 이런 저런 식물들을 넘겨주지 않는 것인 줄로만 아는가? 저 자식이 정확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알아야할 건 충분히 알고 있어. 내가 믿지 못하는 건 내 앞에 앉아있는 저 괴물의…"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해봐. 자네가 나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세떡잎 식물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나는 나지막하고 덤덤한 어투로 제12구역 이사관의 말을 가로막았고, 그는 눈이 약간 흔들렸다.

"지금 협박하는…"

나는 찻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그의 말을 끊고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고, 이내 사무실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신입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관님, 그럼 그냥 격리구역을 한번 둘러보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여러분의 눈을 피해 저희 기지에서 접목할 가지를 꺾어가는 것도 불가능할 테고요."

"…좋으실 대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갈 만한 행동을 한다면 바로 쫓겨날 줄 알아."


"뭐야."

신입과 나는 SCP-143 격리 구역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 곳의 나무들은 일본에서 본 것과는 많이 달랐다. 보고서의 내용과 달리, 일본의 것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왕벚나무조차 아니었다.

"이거 산벚나무잖아?"

나는 방호복을 벗어 꽃을 한 송이를 떼어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확실히 일본산이 아닌, 한국산의 산벚나무의 꽃과 더 닮아 있었다. 신입도 곧 나를 따라 들어왔다.

"산벚나무라고요? 우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 눈에는 산벚이나 왕벚이나 똑같은데!"

"글쎄, 산벚나무라서 산벚나무라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산벚나무라서 산벚나무라는 걸 알아봤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군. 서로 통하는 게 있다고 해야 하나. 아, 넌 방호복 벗지 마라. 위험해."

"어휴, 걱정 마요. 벗으래도 안 벗습니다. 뭐 여튼, SCP-143을 일본의 그 칼 만드는 분들한테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가져온 걸까요?"

"으음. 사실, 완전히 산벚나무인 건 아냐. 반은 일본에서 가져온 그 왕벚나무 맞아. 이 미친놈들, 다른 변칙개체랑 교배했나 본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던걸요??"

"그래. 승인받지 않은 실험이란 거야. 뭔가 이상하다 했지. 아무리 위험해도 그렇지, 그냥 나무 기르는 땅에, 뭐? 4등급 이상의 인원만 출입 가능?"

나는 변칙성을 가지는 한국산 산벚나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분명 몇 가지 있었던 것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와우. 허구한 날 땅이나 파면서 지낼 줄 알았는데, 이런 흥미진진한 일에 휘말리다니. 무슨 목적일까요?"

"글쎄다. 꽃잎만 쓰려니 힘들어서 목재도 쓰고 싶었나 보지. 일단 더 살펴볼까?"

"그냥 꽃 한 송이만 챙겨가서 유전자 살펴보면 답 나올 텐데, 뭘 그리 고민하세요. 그냥 온 김에 좀 놀다가 갑시다! 이번 봄에는 바빠서 꽃구경도 못 갔는걸요."

신입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나를 남겨둔 채 실실 웃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수많은 벚나무가 '반짝이는' 이 곳 풍경은 꿈속에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나도 조금은 설레긴 했다.

"그러고 보니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서요? 한 번 잡아볼까?"

아무리 방호복을 입었다지만, 신입은 겁도 없이 나무를 흔들며 내가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었다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벚꽃잎이 소용돌이치며 떨어졌다. 그 나이 먹고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벚꽃잎을 힘겹게 잡으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이런 위험한 나무를 평범한 벚꽃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은 나에게 더 큰 신뢰를 심어주었다.

"잠깐. 평범한 벚꽃이라고?"

나는 다시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나는 곧 아주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야, 신입!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 그만 놀고 나무들 좀 살펴봐. 내가 들은…, 아니, 내 추측이 맞다면, 틀림없이 꽃은 다 지고 열매와 잎만 있는 나무가 한 그루쯤은 있을 거다. 2평방키로면 별로 넓지도 않잖아. 자, 출발!"


아니나 다를까, 열매가 맺힌 나무가 있었다. 아직 성숙하지 않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남의 아기가 아무리 울어봐야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SCP-143은 여느 벚나무와 마찬가지로 아주 강한 유전적 자가불화합성을 가졌고, 매우 튼튼해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아 수정될 때까지 꽃이 지지 않았다. 아마도, 열매를 다룰 수 없던 일본인들은 한 가지 유전형의 143만 남기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으리라. 유전적 자가불화합성을 가진 식물이 하나의 유전자형만 남게 된다면 자손을 남길 방법은 영양생식 뿐, 결국 지금처럼 꺾꽂이만으로 개체를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교배한 종이 변칙 개체일거라 단정 지은 나도 성급했지만, 제12구역의 과학자는 일본에서 가져온 칼나무 꽃에 평범한 산벚나무의 꽃가루를 묻혀준 것은 분명했다. 다행히 1세대에서 칼나무 열매의 형질이 발현되지 않아 무사했겠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된 2세대의 열매가 성숙한다면, 일본인들이 겪었던, 우리는 알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로 제12구역 이사관에게 다시 한 번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으며, 해당 실험을 중단하라는 나의 요청은 '그런 실험을 진행한 적은 없다'라는 답변으로 묵살당했다. O5 평의회에 보고했으나, 그들은 증거불충분을 내세우며 승인받지 않은 실험이 진행된 적이 없다고 통보했다. 비공식 실험이었지만 지시를 받고 진행된 실험이었던 것이다.


나흘 후, 식물형 개체에 대한 새로운 문서가 추가되었다는 알림이 도착했다. SCP-143에 대한 내용이었다.

문서 143-A: 오늘 143에 의해 3명의 직원을 잃었습니다. 직원들은 전날 떨어진 꽃잎을 모으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흩어진 꽃잎들이 직원들을 감쌌습니다. 바람은 하루종일 계속 불었습니다. 청소팀을 내려보내려 했지만 그때 바람은 멈추지 않았고 이상한 꽃잎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수일 내에 그치면, 수거를 보내야 합니다.

"꽃잎을 모으고 있었긴 개뿔. 열매 따러 들어갔다가 갈렸겠지."

씁쓸했다.

세상이 바뀌었고, 농부는 더 이상 천대받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여전히 세상에는 농부를 천대하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라 해도, 재단 역시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의 일부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런 관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농부가 어째서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이러한 고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농부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것은 농부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무시당할 것이 뻔한 제안을 상부에 제출한다.

…따라서, 변칙성 식물 육종에 대한 모든 권한은 농생명과학 및 농업 종사자만이 가지도록 제한할 것을 건의합니다.
수신자: O5 평의회
발신자: 제103-Γ01기지 이사관 하사드 H. K.

내 책상 한편에는 거의 다 익은 버찌 한 움큼이 기묘하게 빛나며 내가 방금 읽은 보고서의 내용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4년 뒤, 재단은 결국 칼나무의 육종을 포기했다. 기존의 SCP-143 격리구역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고 일본에서 새롭게 입수한 표본으로 새로운 칼나무 숲을 만들었다.

하지만 재단은 여전히 나의 제안을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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