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유고(碧梧遺稿) — 소을촌기(瘙乙村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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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癸丑年) 팔월(八月) 열하룻 날.

날이 맑았다. 걸음을 거닐 때 멀리서 들려오는 밭의 바람 소리가 심신을 편안케 한다.

무령(戊嶺)의 서신을 받아 출발한 지 어느덧 이레가 지났다. 그간 날이 계속 좋아서, 생각보다 더 빨리 도달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하다면 무령을 더 빨리 만나볼 수 있으리라. 풀어야 할 회포가 얼마나 많을는지.

무령은 나의 벗으로, 이름은 김술인(金術認)이고 호가 무령이다. 본관은 경주라 하였다. 임진년 이후로 서절구투(鼠竊拘偸)의 침탈을 입어 서로 생사 여부도 알지 못하였다. 전란 이후에도 염량(炎凉)이 수차례나 반복되었으나, 나는 나대로 조정과 정사에 몸이 매어 감히 그를 찾아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매인 몸이 산림으로 돌아가 주모복거(誅茅卜居)할 찰나가 되니 하늘이 마음을 쓰는 듯 오랜 벗의 소식이 들려온다.

나흘 전, 한 기이한 용모를 한 자가 서신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어느덧 이십 년이 지나 이제 계축년이 되어 받는 그의 서신 속 내용은 반가웠으나, 알기 힘들었다. 서신에서, 무령은 자신을 찾아오라 말하고 있었다. 두류산 심곡(深谷)에서 기거하고 있다며, 약도까지 그려진 서신의 필체는 분명 무령의 것이었다. 지리산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한 고을이라 하니, 문득 청학동(靑鶴洞)이 떠올랐다. 정녕 이 고을이 그곳이 옳다면, 무령은 필시 내게 이 세속의 풍상(風霜)을 떨치고 일어나 선계(仙界)로 오기를 주문하는 것이리라.

그런 연유로 나는 곧장 채비하여 전령과 함께 길을 나섰다. 오래 걸어야 할 것이라 하여 짚신 두 켤레와 지필묵(紙筆墨), 옷가지 등을 챙겼다. 종 금이가 소금과 쪄서 말린 쌀을 싸주었다.

이제 그를 다시 보려고 하니 반가움과 염려가 앞선다. 오랜 기억 속 그날처럼 그는 기이하게 거기 서 있을 듯하여 반갑고, 혹여 전란의 여파로 전과 다른 모습일까 하여 염려스럽다. 그 고을, 청학동을 닮은 그 고을에는 어떤 무령이 있는 걸까.


계축년(癸丑年) 팔월(八月) 열세 날.

갑자기 비가 세차게 몰아쳐 주막에서 하루를 묵었다.

지체하기는 싫었으되, 전령의 만류로 그저 근처 주막으로 들어가 젖은 몸을 말렸다. 주모는 허름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로, 방이 있냐고 묻자 무뚝뚝하게 두 사람이 간신히 몸을 뉘일 수 있을 정도의 방으로 데려갔다. 아무래도 보는 품이, 내 행색이 문제라기보다는 동행의 외양이 더 문제인 듯하였다.

나의 동행이자 전령인 사내의 이름은 박융(朴隆)으로, 두류산 고을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수다스럽지 않고 말투는 느릿느릿하다. 이 자의 심성이 유순하고 명민하니 참으로 요순 시대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다만 이 모습이 참으로 기이하다.

우선 죄인이 자자(刺字)를 당한 것마냥 이리저리 일그러진 적갈색 문양이 피부에 그려져 있고, 혈맥(血脈)이 보통 사람보다 많이 튀어나와 있다. 안색은 붉으며, 키는 보통이나 때에 따라 거대하여 보이기도, 아주 작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힘이 장사다. 오는 길에 쓰러진 장송(長松)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내는 이를 나뭇가지 줍듯 쉬이 길 저편으로 치워버렸다. 참으로 신묘한 이 재주에 놀라 그 내력을 물었지만, 박융은 그저

— 태어날 때부터 이 모양입니다요.

라고만 답할 뿐, 뚜렷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무령에 대해 물었을 때도 시원스러운 설명을 듣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비가 내리기 전, 나는 박융에게 무령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자는 무령이 마을에 찾아온 손님이라고만 말할 뿐,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할 때 안색이 창백하고 손을 떨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내가 아는 이 중 현재의 무령을 아는 자는 오직 이 박융이라는 사내 뿐이다. 그런 박융의 반응이 두려움을 나타낸다면, 과연 무령은 지금 어떤 상태란 말인가. 혹여 전란의 상흔(傷痕)이 너무나도 심하여 괴물처럼 변해버린 게 아닐까. 나는 덩달아 어떤 두려움에 휩싸인다.

밤이 다 되서야 주모가 안으로 저녁상을 들였다. 박융과 겸상했다. 된장을 풀고 선지와 고사리, 숙주를 넣고 끓인 국밥이었다. 박융은 잘 먹었다. 나는 물려 많이 먹지 못했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계축년(癸丑年) 팔월(八月) 열여섯 날.

구름이 끼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차차 걷힐 듯하다.

멀찍이서 두류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류산은 곧 지리산으로, 일찍이 이인로가 말하기를 그 테두리는 무려 십여 고을에 뻗치었기에 달포를 돌아다녀야 대강 살필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일전에 박융에게 청학동에 대한 이야기를 일러주었더니,

— 어찌 보면 그 말이 우리 소을촌(瘙乙村)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요.

라고 하였다. 소을촌은 박융이 사는 마을이다. 박융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두류산 속에 있으며 길이 좁고 보통 사람들은 길마저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오래 전에는 산아랫마을과 연이 닿아 서로 오갔다는데, 이 때문에 아랫마을 노인들은 소을촌에 대해 들은 바가 있으리라고도 하였다. 이는 역시 『청학동』에 나온 바와 같아 기뻐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소을촌이란 고을의 위치는 그러하되, 이 마을의 풍속과 산물(産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박융에게 물었더니 무령에 대해 물었을 때와는 다르게 세세히 설명해주었다.

소을촌은 고려 광종 때 세을진인(世乙眞人)이라고도 하고 용자(龍子)라고도 하는 한 이인(異人)이 두류산 꼭대기로 흘러들어와 만들어낸 한 부락(部落)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바로 그 이인의 가르침을 받들어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박융은 마치 비밀이라도 말하듯,

— 옛 어르신들은 그 도사님이 처용(處容)이라고 했습지요.

라고 하였다. 처용이란 신라 헌강왕 대의 인물로, 전해내려오기를 아내를 탐한 역신을 몰아내었다고 하였다. 이 설화와 함께 처용가(處容歌)와 처용무(處容舞)가 내려오고 있는데, 한 때 궁중에서 이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처용의 탈을 쓴 무동(霧童)이 다섯가지 색으로 차려 입고 오방(五方)으로 벌여 서서 가락에 맞추어 추었다. 진기한 광경이었다.
여하튼 그러한 내력이 있는 처용이 어째서 이 마을의 전설에 등장하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마을의 업(業)은 대부분 화전을 일구거나 나물을 뜯어 먹고 사는 것이나, 도축(屠畜)을 하는 자들도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 그 작은 고을에도 백정이 있더냐?

하였더니, 박융은

— 예, 백정이 있읍니다만 그것이 다른 고을에서처럼 천한 족속이 아니오라…

하고 말끝을 흐렸다. 이에 내가 재차 물어보니 박융은 이렇게 말하였다.

— 백정은 소을촌에서는 절대 천한 이들이 아닙니다요. 되려 백정을 하고파 하구, 그리 되려고 노력하지요. 백정은 고기를 만들고, 고기를 변하게 하고, 고기를 토대로 다양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늘이 인민(人民)을 낼 때 네 부류로 나누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였다. 이 도아(屠兒)의 업을 진 자들은 이 부류에 끼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인민이 아닌 바, 세간에서는 전민(田民)들마저 이 치들을 멸시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이러한 백정들이 오히려 대접을 받는다니.

— 그 고을에는 세속(世俗)과 다른 질서가 흐르는 모양이로구나. 정녕 유학의 도가 그곳에도 있는게냐?

— 아이구 나으리, 아닙니다요. 비록 어수룩한 촌민들이나 훈장님두 계시구…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으되 우선은 갈 길이 멀었으므로 이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계축년(癸丑年) 팔월(八月) 열일곱 날.

해가 높게 떴다.

산기슭에 도달했다. 듣던 대로 등정하며 보는 모든 곳들이 가히 선경(仙境)에 비할 수 있었다. 마치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를 보는 바와 같았고, 이와 더불어 영월음풍(詠月吟風)할 마음이 절로 살아났다. 박융에게 물으니 앞으로 하루 정도는 더 걸어야 마을이 나오리라고 하였다.

산 아래에 있는 한 사찰에 묵어가기로 하였다. 여독(旅督)이 쌓인 나머지 잠시 잠들었다. 저녁 때에 박융이 흔들어 깨웠다. 한 요사(寮舍)에 모여 스님들과 절밥을 먹었다. 밖에 어둠이 짙게 내렸다.

시간이 어느새 삼경(四更)임에도 오침(午寢)한 시간이 길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밖으로 나가 탑 주위를 거닐었다. 그 옛적 과거를 준비하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처럼 이 사찰의 경색(景色) 역시 청풍명월(淸風明月)에 가까웠다. 오래 전 무령을 만났을 때도 기억이 난다.

나는 삼십여 년 전 한 사찰에서 무령과 만나 지기를 맺었다. 당시 젊은 유생이었던 나는 글공부를 하기 위해 절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심기가 어지러워 연하일휘(煙霞日輝)의 미를 보려고 방 밖으로 나갔다. 때는 마침 월침삼경(月沈三更)으로, 명월(明月)이 휘영청 떠올랐으니 이 몸이 절로 풍월주인(風月主人)이었다.

이때 저만치서 탑 아래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가 하나 있었다. 탑 쪽으로 거닐며 보니 이는 곧 한 사내였는데, 흰 수염을 가슴께까지 기르고 얼굴색은 짙었다. 얼굴을 볼 때 이따금 간담이 서늘해지고 두려운 마음이 일기도 하였다. 기이하게도 머리 역시 희었는데, 흔히 노인들에게서 보이는 그러한 양태(樣態)는 아닌 듯싶었다. 키가 크고 풍채가 고아(高雅)하여 가히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김술인이었다.

우리는 한 사판승에게 청주 한 병을 부탁했고, 곧 술잔을 비우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령은 과묵했으나 지나치지 않았고, 곧 역사와 경전에 해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가 아무리 문(問)하여도 무령은 답(答)하였고, 이에 막힘은 없었다. 이에 탄복하여 내가 그에게 나이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살아온 해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외다. 비록 공자께서는 오륜(五倫)을 말씀하시었으되, 진실로 마음과 마음이 만나매 길고 짧은 것이 뭇이 중하겠소. 내 서른을 넘겼다고만 해두리다.

이것이 옳다 여겨 서로 존대도 하대도 않는 동년배 친우로 남기로 하였다.

다시금 떠올려봐도 무령은 범상치 않은 사내였다. 그 절에서 친분을 맺고 헤어진 다음에도 우리는 서로 서신을 주고 받았다. 그의 삶의 궤적은 범상치 않았다. 어느 날은 함양에서, 어느 날은 대마도에서, 어느 날은 요동에서 서신이 왔고 결코 한 해 안에는 두 번 이상 같은 곳에서 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어디론가로 바삐 이동하고 있었다. 이따금 서신에 쓴 그의 시조는 나그네의 애상(哀想)을 깊이 담고 있었다.

鄕有風流柔
鄕無我遲回
愿人世之革
某日貫鄕顧

온 곳이 있는 바람은 부드러이 흘러가는데
온 곳이 없는 나는 방황하기만 하누나
인간 세상의 변혁을 바라노니
어느 날에 고향을 돌아볼 것인가

분명 그는 무언가를 위해 그 먼 타향을 바삐 오가며 살고 있었으리라. 그때는 미처 묻지 않았으나, 홍진(紅塵)을 떠나 돌이켜보매 추량(推量)만이 어지러울 뿐이다.

내가 관직에 있을 적에 무령을 천거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학식과 덕기(悳器)로 보매 필시 나라의 녹을 먹고 살아도 부패하지 않으며, 임금을 보좌하여 정도(正道)로 나아갈 수 있게끔하는 재상의 덕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제세현(諸世賢)이 있다면 바로 김무령일 테였다. 그러나 무령은 내 권유를 거절하였고, 끝끝내 관직 생활을 하려고 들지 않았다. 한번은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는,

— 이미 오랜 나날을 거처 없이 지내는 여객(旅客)의 처지로 지나왔으니 이제 와 어찌 부귀를 얻으려 하겠나. 군왕(君王)을 돕기로서니 내 영좌(領座)를 따를 일이 급하고, 군민(群民)을 보살피기로서니 내 제자를 가르칠 일이 급하니 그런 말 말아주게.

라 하였다. 아까웠으나 더 권하지 않았다. 무령은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선비였다.

이제 하루, 조금만 기다리면 벗을 다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으리라. 삼경의 달빛 아래서 이 글을 쓴다.


계축년(癸丑年) 팔월(八月) 스무 날.

구름이 높고 안개가 자욱하다. 이 고을의 특질(特質)인가.

이 마을의 촌장 댁에서 짐을 풀었다. 촌장의 이름은 박대직(朴待直)으로, 이순(耳順)이 넘어보였으되 서른 정도의 사내처럼 활발하였다. 지금 그의 사랑채에서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지난 삼 일간의 기억이 계통 없이 되살아난다.

열여덟 날에 박융과 함께 사찰을 나온 후, 우리는 고을로 가는 길을 찾아 산 위로 한없이 걸음을 옮겼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선계(仙界)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길 양 옆에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줄지어 피어나 있었다.

경치를 보고 있자니 공교롭게도 왜란 때가 떠올랐다. 왜란, 이라는 단어가 떠오름과 함께 나는 봉래산(蓬萊山)에서 순식간에 지상으로 적강(謫降)하는 듯했다.

임진년의 일을 생각하면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나 개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상(像)은 바로 한 살구꽃이었다. 그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의 막하에 들어가 싸우던 때에 어느 이름 모를 산에서 보았던 한 송이 살구꽃.
때는 시대의 암울한 빛이 세상을 뒤덮어 죽음이 난무할 시절이었다. 왜적의 칼날은 죽음과 삶 그 어느께에서 번뜩였고 무죄한 백성들만이 그 제물이 되었다. 무심(無心)한 듯 피어있었던 그 살구꽃 한 송이는 마치 그 백성들의 피를 마시고 자란 것만 같았다. 무심하기에 사악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문득 박융에게 물었다.

— 전란에 너희 마을은 무얼 했느냐?

— 소을촌 사람들은 원체 아랫고을에 내려가질 않습니다요.

— 그러함은?

— 그러닝개루… 마을을 지켰습지요.

— 시혹 왜적의 침탈을 입지 아니하였는가?

— 그러믄요. 그 왜적들이야 이리로 올라온다 할지언정 들어오는 방법을 모르며, 애초에 이 마을이 진짜루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어찌하겠습니까?

— 그리 온전하였다면, 어찌 의병조차 일으키지 않았단 말이냐?

— 아유, 저희가 무슨 도움이 되었을지…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소을촌은 필경 요순 시대에 걸맞는 마을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다시금 노자가 이 고을을 칭송하였을 것이며, 안빈낙도(安貧樂道)를 하려는 선비들이 이 곳으로 오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심하였다. 그게 문제였다. 무심하였으므로, 이들은 선(善)하였고, 선하였으나, 행(行)하려들지 않았다.

나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느꼈다.

미시(未時)가 되자 절에서 싸준 좁쌀로 요기를 하였다. 산 중턱에 다다랐으나 박융은,

— 아직 멀었습지요. 꼭대기에 다다라서두 그 들어갈 길을 찾느라 시간이 걸릴 것이구…

라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산길이 험해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한 것을 박융이 잡아주었다. 나는 탄식하며, 무령이 이곳을 어떻게 통과하였는가 의아해했다. 분명 이 길을 혼자서 가지는 않았으리라. 나의 경우처럼 인도하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하다면, 무령은 어떻게 이 고을과 연을 맺었단 말인가. 밖과의 교류도 없이 살아가는 이 자들과.

그러한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유시(酉時)에 다다르고 있었다. 산길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박융은 이러한 시간대에도 익숙한 듯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내 얼굴에 염려하는 빛이 돌기라도 한 듯, 박융이 말했다.

— 앞으로 두 시진 내에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 않으셔두 됩니다요.

우리는 계속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새 하나 지저귀지 않아 종내(終內) 들리는 것은 오직 우리가 거니는 발걸음 한 가지였다. 어둠이 나린 숲 속은 내가 알 지 못하는 이물(異物)들로 가득 찬 듯했다. 우리를 제외한 인간의 기척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어떤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그 근원을 명확히 알지 못했다.

두려움은 점차로 커져 갔다. 어둠의 탓인지 이 고을의 탓인지, 식물도 식물로 보이지 않고 동물도 그 자체의 형(形)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발발할 것만 같은 기분.

갑자기 저 멀리서 무언가의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지척(咫尺)에서 울려오고 있었다. 나는 당혹스러워 박융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박융은 나와 한가지로 당혹스러워하는 듯하였다.

— 이 소리가 맞다면은… 아니 그래두 그게 어찌 여기까지 나온담…

— 무슨 일이냐, 이것이.

박융은 고개를 숙이며 송구스러워할 뿐 정확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멀찍이서 나던 소음이 어느새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하였다. 점점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듯싶었다. 박융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바삐 갈 길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그의 몸짓에 여느 때와는 다른 불안이 숨어 있었다. 내가 재차 물었지만, 박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반쯤 화가 나 소리쳤다.

— 너는 여직껏 제대로 된 대답을 않는구나! 무엇이 그리 비밀스러우며, 무엇이 그리 내가 알면 안 될 것이냐! 너는 무령에 대해서도 그리 말을 아끼더니, 내 알 수가 없구나!

— 말씀 낮추십시오, 그리하다가는…!

이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계축년(癸丑年) 팔월(八月) 스무 날 – 후(後)

적광(赤光)이 눈앞을 오락가락하였다.

내 것이 아닌 듯한 비명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동시에 모든 것이 느껴지는, 이를테면 불가에서 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그것이 내 육신을 통해 현현한 듯싶었다.

고통은 오래 지속되었다.

상황을 돌이켜보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니었나 싶다. 나를 덮친 그 금수(禽獸)는 어떤 기작으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곧 피를 뿜으며 죽어갔고, 우린 동시에 산비탈로 굴러떨어지며 나뒹굴었다. 공중에서 놈의 피를 뒤집어 쓰고 돌부리에 온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꼴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실소를 금치 못했으리라.

마침내 그 긴 낙하가 끝났을 때는 내 몸뚱아리의 일부, 정확히는 하반신이 그 짐생의 아래에 깔려있었다. 나는 낙상(落傷)과 무게로 인한 고통으로 신음하였다. 아무리 용을 써도 시체는 움직여지질 않았고, 되려 내 의식은 흐려지고 혼백은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뼈가 모두 분해되는 느낌이었다. 늙은 몸뚱아리는 전보다 더 많은 부상을 입은 듯싶었다. 나는 켈룩거리며 피를 조금 뱉어냈다. 그게 놈의 피인지 내 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도 시체가 떨어져 나갈 기색이 보이질 않자 나는 포기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저 죽기만을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간 끝장이다. 몽롱한 정신을 다잡고 살려달라고 외쳤다. 산에 부딪혀 울리는 내 목소리의 메아리가 좌중을 요란케 했다. 그러나 화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때였다.

— 게 누구요?

나잇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목소리 하나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나는 간신히 고개를 젖혔다. 내 머리 쪽으로 세 인영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는 호롱불을 들고 있었고, 둘은 그 뒤에서 저벅거리며 걸음을 딛고 있었다. 나는 애써 목청을 돋구어 도움을 청하고, 그리고는 혼절해버렸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이미 날이 밝은 뒤였다.

누군가가 내 상처를 치유해놓은 듯, 뻐근한 몸 곳곳에 풀을 짓이겨 붙인 것들이 수두룩하였다. 나는 우선 옷가지를 줏어 대충 걸쳤다. 두루마기와 저고리가 찢겨 있고 핏물이 든 걸 보니 마음이 섬뜩했다.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어날 제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으므로 기이하게 여겼다.

그제야 좌우 사방을 자세히 눈여겨볼 수 있었다. 황토색 벽면이 사면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부자리를 제외한 물품들로는 농(籠) 뿐이었고, 그 외의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 고을에 와있는 듯하였다. 뚜렷한 기억은 나지 않았으나 필시 그 존재들이 나를 옮겨 놓았으리라. 불현듯 그 금수의 영상(映像)도 떠올랐다. 박융이 두려워하던 그 존재, 우리 가는 길을 막았던 그 존재. 문득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 간신히 살아남은 겐가.

내 목소리는 타인의 목소리라도 되는 양 낯설었다. 인적(人蹟) 하나 없는 방 안에서 공명하였기에 더욱 그러
하였는지도 몰랐다.

방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날은 맑았으며 구름도 얼마 없었다. 멀찍이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가 우짖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평범한 고을의 모습이었다. 나는 생각과는 다른 이 고을의 면모에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 무얼 그리 멍하니 보는가?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대청마루에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자, 익숙한 얼굴임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사내는 무령이었다.

— 무령!

— 오랜만일세, 벽오(碧梧).

그는 나를 호로 부르며 반겼다. 나는 놀라움을 금할 새도 없이 마루로 나섰다. 가까이서 보니 무령은 정말 일전에 본 그대로였다. 늙지도, 다치지도 않은 채.

— 자네는 영 그대로군.

— 벽오 자네도 그러함세. 백발이 성성하되 정신은 여직 이리 형형하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의 유생이 보이네.

— 말은.

우리는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오랜 지기로써 지내온 나날 덕인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간의 회포가 저절로 풀리는 듯한 기운이 들었다. 우리는 이내 서로의 행적을 말하였다. 나는 간략하게, 전란 때 나가 싸웠던 일, 이후에 묘당(廟堂)에서 직분을 수행한 일, 그리 살다가 마침내 잠시 내침을 당한 일 등을 말하였다. 무령은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 허면, 이제는 수림(樹林)에 묻혀 지낼 생각인가?

— 불러들임을 받지 못하면야, 그리하겠지. 차라리 나는 마음이 편하네.

내 허탈한 답에 무령은 못내 즐거운 모양이었다.

— 그리 야망이 넘치던 벽오가 맞는가?

— 내 나이가 이제 마흔 다섯일세. 후진(後鎭)들이 워낙 드세어야 말이네.

우린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무령이 말을 받았다.

— 어찌 보면 옳은 일이로되 내 보매, 아마 자넨 다시 기용되어 쓰임을 받을 걸세.

— 무얼 안다고?

— 감이 그러하네.

나는 그의 넉살에 빙그레 웃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나는 그의 감을 믿는 편이었다. 그의 말에서 허투루 쓰이는 것은 없었다. 이 말 역시, 내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단 정말 어떤 것이 자리하는 것만 같았다.

무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청년이 갓을 쓰고 단정한 차림새를 하고 서 있었다. 소매에 풀물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을 타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 어!

— 벽오 자네, 저 아일 아나?

— 그럼! 전일(前日) 내가 산 속에서 사경을 헤맬 때 초롱을 들고 왔던 자이네.

나는 미친듯이 그 일을 설명했다. 웬 금수 하나가 튀어나온 일, 그것이 나를 덮친 일, 산비탈로 굴러떨어져 그것의 몸뚱아리에 깔린 일. 나는 더불어 세 존재의 인상착의도 설명하였다. 초롱을 든 이는 바로 옆에 서 있었으므로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 뒤를 따르던 존재는 소상히 말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하나는 승복에 가사를 입은 중의 모습이었네! 그리고 그 옆에 한 사내가 서 있었는데, 온통 검은 복색이라 잘은 기억나지 않네만 아무래도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지. 넓은 갓을 썼고 말이네.

무령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 잠깐, 무령 자네도 저 자를 아는가?

내 물음에 무령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청년에게 손짓했다. 가까이서 보니 청년은 무령과 꽤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근원을 모를 공포감을 주는 관상에서부터 표정을 짓는 방식, 걸음걸이 등.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아들인가?

— 아니네. 일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제자가 있다고. 철현아, 인사 올리거라.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곤,

— 스승님의 친우분께 인사드립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절을 했다. 나는 내심 당황하여 신을 주워 신고는 바닥으로 내려와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 전일 내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이 어찌 은혜를 갚으리오. 이름이 무엇이뇨?

— 김(金)가 철현(澈賢)입니다. 본관은 경주이올습니다.

— 이(李)가 시발(時發)일세. 내 본관 역시 경주이니. 올해로 몇인고?

청년은 조금 당혹스러워하는 듯하였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더니, 뭔가를 생각해내는 듯 시선을 좌로 하였다. 그리고는 말하였다.

— 스, 스물… 하나입니다.

— 고놈은 이제 그만 놓아주게. 이 골의 큰 스승 밑에서 수학하는 도중이니, 할 일이 많을 걸세.

청년은 바삐 떠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평온한 듯싶었으나 어딘가 빈곤해보였고 예정에 없는 행보를 거닌 자의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의문이 나를 덮쳐왔다.

— …나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무언가?

무령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장막을 펼치려는 사람 같아서, 나는 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그냥’ 구경이나 하라고 이 고을로 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분명, 자넨 이유가 있네. 입때가 되어서 날 부르게 된 이유가 있을 게야.

나는 거의 헐떡이듯 말을 내뱉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는 않은 건지, 기력이 금세 까라졌다.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 내게 무언가를 부탁할 심산인가?

—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무령은 여직 웃음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비수와도 같은 날카로움이 존재하리란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날카로움의 정체를 알아야만 했다.

— 꽤 긴 이야기일세.

— 길면 긴대로 이야기하게. 내 언제까지고 들을 수 있네. 당초 그러려고 자넬 만나러 이리 온 것이 아니겠나.

무령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내게 따라나서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고을의 중앙, 큰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는 곳까지 말없이 걸어갔다. 이따금 지나가던 촌민들은 우리를 보고 새파랗게 질린 채 걸음을 빨리하거나 다른 길로 달아나곤 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무령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고 되려 당연한 일인양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마을의 탁 틘 중앙에 도달했다. 중앙에는 마침 촌민 여럿이 그늘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까 소리로만 들었던 아이들도 그곳에 있었다. 단지 일전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뿐이다. 우리가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들은 전부 경계하는 낯빛을 띄기 시작했다. 무령은 그런 촌민들을 바라보며 내게 입을 열었다.

— 자네… 두창(痘瘡)을 들어본 적이 있을테지?

— 그러하네.

— 두창이 어떠한 증상을 띄는지도 알고 있을테고?

— 많이도 봐 왔네. 전란 시기에는 그리 죽은 송장들이 길바닥에 널려 있었고말야.

무령은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받았다.

— 맞네. 임진년 싸움과 정유년 싸움… 도합 일곱 해의 싸움 간에 많은 이들이 그리 죽어갔지.

무령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 벽오, 손님네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잠시 멍하니 그의 얼굴만 멀거니 쳐다보았다.

— 손님네들 말일세. 돌아다니며 두창을 퍼뜨리는 존재들.

— 내 모르는 바 아닐세. 역신(疫神)들 아닌가. 강남대한국에서 왔다는 그 마마신들. 설화 속 존재들.

무령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 담긴 감정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은 것 같기도,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일말의 자책 역시 섞여 있는 듯하기도 했다.

— 자네 말에 어폐가 하나 있네.

말하며, 무령은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어떤 의식의 주술사와 같이 자세를 취했다. 어깨를 편 상태로, 바른손은 하늘을 가리키며 왼손의 수장(手掌)은 땅을 바라보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합장했다. 합장한 두 손 사이에서 완연한 피가 흘러나오자 나는 놀라 외쳤다.

— 무령! 이게… 이게 무슨 술수인가!

무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합장을 풀었고, 이내 두 손의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마치… 부처의 수인(手印)처럼. 무령의 손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의 나열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글자는 점점 불어나 마침내 그의 목, 귀, 얼굴까지 모든 자리를 차지하였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촌민들 사이에서 불안한 웅성임이 거세졌다. 개중 어떤 자들은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집 안으로 허둥지둥 달아나기도 하였다.

이윽고 무령이 말했다.

— 손님네들은 설화 속 존재가 아닐세.

무령의 손이 꿈틀거리더니 열기에 휩싸인 공기처럼 사방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레 그 공간에 있던 어린 아이들이 갑자기 콜록거리며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하였다. 아이의 어미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꿇어앉아 제 새끼들의 이마를 쓸어내리고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그때 어떤 표정으로 무령을 바라보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경이와 경멸 그 사이의 어떤 표정이었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 자네가… 손님이었군.

— 그래.

— 그래서… 내게 나이를 알려주지 않은 것이군… 당연히 평범한 인간보다 나이가 많을테니까.

내 독백에 아이들의 신음 소리가 배경처럼 깔리었다. 마을 곳곳에서 달려온 가족들이 광장 가장자리에 모여 서서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무령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 …자네가 여직 이리 젊어보이는 것도 말이 돼. 그간 돌아다닌 것은 모두 두창을 옮기고 다니기 위해서였을 테고. 아… 설마, 그 청년도?

— 철현이 말인가? 맞네. 이름이 설화에 나오지 않던가. 하하, 그 이야기 덕을 좀 보긴 했네만…

아이들이 바닥에서 온몸을 마구잡이로 비틀며 통한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산 전체를 울리고도 남을 비명이었다. 나는 고개를 움츠렸다. 남은 인생이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남은 기간 중 단 하루도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으리란 것은 자명했다. 전쟁 중 많은 끔찍한 순간을 경험해왔지만 이 순간, 이때처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오래 주는 광경을 본 적은 없었다. 무령은 아직도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 그간의 행적은, 벽오. 마냥 그 일 탓은 아니었어. 내 모두를 부정치는 않겠네.

무령은 나를 달래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더니, 촌민들에게로 향했다. 나는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었다. 마침내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은 걸까? 이제 그들을 죽이려는 걸까? 가족들도 죽이는 걸까? 단지 병자들을 애도했기 때문에? 나는 수를 써야했지만,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수가 있었더라도 쓰지 못했을지 모른다. 내 발은 바닥에 붙어버린 것과 같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무령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곧장 아이들의 몸이 마지막으로 비틀리더니, 축 늘어졌다. 가족들의 입에서 분노와 애통함이 섞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야 박융이 무얼 그리 무서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령은… 내가 두려워하던 그대로 괴물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가장 부인하고 싶었던 사실은 그가 전란 때문에 그러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괴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다시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까지만해도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육신들에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멀찍이서 무령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자, 이제 네들은 역병이 와도 조금만 앓거나 아예 없이 지나갈테니 걱정 말어라.

나는 멍하니 그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령은 조금 겸연쩍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아니, 미리 언질을 하였으면 저들이 놀랄 이유도 없잖은가!

내가 그리 항변하자, 무령은 점잖게 대꾸했다.

— 역병이 언제 언질을 하고 온단 말인가. 걱정 말게. 겨울날 독한 감기를 경각간(境刻間)에 치른 셈이니… 또한, 내가 이 고을에 신세를 빚지고 있어 인명을 마음대로 해할 수 없음일세.

— 거, 아무리 그리하여도…

— 벽오. 이제야 내 자네에게 왜 예까지 불러냈느냐 말할 수 있겠네.

나는 무령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았다. 살아난 아이들의 힘없는 웃음 소리와 가족들의 안도의 한숨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그 소리 가운데에 무령이 있을 곳은 없어보였다.

무령은 고독해보였다.

— 인제 내가 손님이라는 사실을 자네가 알았으니, 그간 내가 말했던 것들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던가.

— 그러한 것도 같군.

— 자네만 그간의 행적을 소상히 털어놓았지. 이제 내가 고백할 차례인 것 같으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령이 손님, 역병신(疫病神)이라는 사실은 깊이 놀랄 부류의 진실이라기보단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류의 것인 것 같았다. 마치 오랜 친우의 이마에 사마귀가 나 있었다는, 아주 사소한 깨달음처럼.

— 전란 이후, 영좌와 나는 크게 다투었다네. 다에바… 아니, 강남천자국에 관한 일이었지. 내용이 중요치 않으니 맺음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갈라졌네. 더는 서로가 서로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도록, 그리 하기로 하였네. 둘로 나뉘었고, 영좌와 세간에서 부르길 ‘문반손님’이라 하는 자가 함께, 나와 철현이 함께 하였지.
그 직후는 꽤 긴 방황의 시간이었네. 자네가 짐작하듯 나와 저 아이, 철현은 꽤 오래 살았네. 허나 한데 붙박여 산 시간은 매우 적었음이라. 따라서 어데로 가야할지, 무얼 해야할지도 모르고 있었네.
그러던 중 도움의 손길이 되어준 것이 이 마을의 세을진인, 현승(絢承)이었네.

나무 저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남자는 머리를 다 민 승려의 모습으로, 촌민들이 그를 발견하자 사이서 반기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무래도 그가 현승인듯 싶어 무령에게 물었다.

— 저 자가 현승이라는 이인가?

무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 헌데, 어찌 저 자를 세을진인이라 칭하는가? 오는 길에 박융이라는 자에게 듣기를, 이 마을을 세운 이를 세을진인이라고 하던 것 같던데. 그리고 그 세을진인이라는 자는 다시금 처용이라 하더군.

무령은 씨익 웃고 있었다.

— 세을진인이라는 명칭 자체가 대물림되는 것이라, 일종의 관직으로 생각하게나. 이 마을의 큰 스승이 바로 그일세. 어찌보면 촌장보다도 높은 자인데. 아, 저기 오는구만.

고개를 들어보니 현승이 촌민들을 뒤로 한 채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자세히 관찰했다. 얼굴빛이 온화하고 걸음걸이가 기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비록 중이로되 그 모습이 수려(秀麗)한 선비와도 같았다. 나는 조금 마음을 열고 그를 맞이하였다. 현승의 목소리는 기이한 느낌이 들면서도 중후했다.

— 손님께 손님이 오셨군요. 소승은 현승이라 하온데, 무령 선생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나는 문득 기억나는 바가 있어 외쳤다.

— 이가 시발이외다. 스님께서 어제 나를 살려주셨구료.

— 허허, 가축 하나가 그리로 도망갔지 뭡니까. 쫓아가 보았더니 선비님께서 그리 부상을 당하셨더군요. 해서, 이리로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안온하게 웃었다.

— 현승, 우리가 이 소을촌에 들어온 경위를 이야기하고 있었소. 행여 말을 보태주지 않겠소?

현승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등 뒤로 다시금 일상의 형태를 잡아가는 촌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못내 마음을 놓았다. 무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우리가 소을촌에 온 해가… 경자(庚子)년이었네. 여기, 현승이 우리를 친히 안내하여 주었지. 직후부터 이곳 한 구석에서 자릴 잡고 살아가고 있네. 보았듯이 이 고을 사람들은 우릴 딱히 좋아하지는 않네. 암만 하여도 역신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네만.

— 영가(靈駕)께서 방금 전과 같은 상황만 일으키지 않으셨어도 평판이 더 좋으셨을 겝니다.

현승이 농담조로 끼어들었다. 무령은 무안한 듯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온 뒤로는 줄곧 철현이를 현승께 맡겨 가르치고 있네. 나보다 좋은 스승이시니, 녀석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네. 더구나 이 이는 이 땅에서 발흥하여 전래된 육(肉)의 도를 가장 잘 아는 승려며, 자체로 뛰어난 도축의 업을 수행하고 있지. 어찌 배움을 구하려 들지 않겠는가.

현승이 예의 그 안온한 목소리로 겸손을 표했다. 나는 그제야 박융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백정’을 되고파 한다고… 이제 보니 그 백정이란 말은 바로 현승의 위치, 소위 그 세을진인이라는 직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무령은 작게 한숨을 짓더니, 뒤이어 말했다.

— 자네를 부른 건, 바로 이 일때문이라네.

— …이 일때문이라니?

— 벽오, 주윌 좀 보게. 이 고을이 아무렴 보통 사람 사는 곳 같아도,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 차라리, 괴력난신(怪力亂神)에 가깝다고 말해야할 걸세.

나는 무령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복색, 행동 거지는 영락없는 조선의 것이었으되, 묘하게 드는 이질적인 느낌, 그리고 특이한 마을의 구조는 어딘가 먼 이국의 소읍(小邑)을 연상케 하였다. 더군다나 이곳의 백성들은 또 어떤가. 지나치며 봐 온 이곳의 촌민들은 인간의 외양을 띄기는 하였으되 이따금 골격(骨格)이 비대한 자, 부속지의 갯수가 범인(凡人)의 배(倍)는 되는 자, 박융처럼 혈맥이 두터운 자들로, 신기(新奇)로운 외양을 띄고 있었다.
나는 현승과 무령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현승의 존재 자체가 가장 기이하지 않은가. 승려 같으나, 수식된 어구로 보아하면 그저 백정의 업을 가진 자나 다름 없는 이.

— 우리, 손님네들이 그간 돌아다닌 곳은 거진 이러한 곳이었다네. 괴력난신과 비정형의 존재들이 난무하는 공간, 그런 곳을 우리는 발디뎌 왔으며 그 땅에 사는 이들과 교섭해왔지. 때문에…

무령은 말을 잠시 멈추고는 설잠과 시선을 교환했다.

— 철현이 저 녀석은 여직 인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있음이네. 허니…

무령은 헛기침을 했다.

— 사흘 뒤에 현승의 가르침이 모두 끝날게야. 그때가 되면… 벽오 자네가 철현이를 좀 데리고 가주었으면 하네.

— 내, 내가?

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러니까, 무령은 접때 본 그 청년을 이 마을에서 데리고 나가달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부리나케 덧붙였다.

— 먹일 입이 늘었다고 생각치 말게. 녀석도 제 밥벌이는 할 줄 알아. 단지 거처를 좀 제공해줬으면 하는게야.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 그래, 집 말일세.

— 허어…

나는 멍해졌다. 차라리 무령이 내게 돈이나, 요직으로 갈 수 있는 기회, 혹은 하다못해 전답이나 부탁했으면 되려 나았을 것이었다. 헌데 갑작스레 문객(門客)을 데리고 가게 생기다니.

— 이보게 무령… 내 식솔이 뭐라 생각하겠는가. 어디서 애를 하나 낳아온 것도 아니곤, 이게 무슨…

무령과 현승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무령이 말했다.

— 벽오, 자네 행실이 그리 문란하였단 말인가.

— 물론 그러한 것도 아니지만…

— 철현은 불손하지 않으며 사리에 밝고 고운 심성을 지닌 청년입니다. 영가께서 그와 동행한다 하시어도 결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되려, 득 볼 일이 더 많겠지요.

현승이 조용히 권유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 득이라 함은 무얼…?

— 댁의 사람들은 두창에 걸리지 않을 것 아닙니까.

현승과 무령이 다시 웃었다. 그들의 웃음이 낮게 바닥에 깔렸다. 나는 웃지 못했다. 어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내 의식을 사로잡고 있었다. 무령의 부탁이니 못 들어줄 바도 아니었으나, 역신을 집에 들인다라… 께름칙힌 부분이 없다면 거짓일테다.

답을 유보(留保)하고 몸을 뉘였던 촌장의 사랑채로 돌아왔다. 무령이 동행하였고, 그 주제를 제외한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으나 우리 둘 모두가 결국 그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꺼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나는 정해야만 한다.

이런 일이 세상사에 아예 없었던 일도 아니고, 또 친우의 자식 버금가는 인물을 내 돌보지 않을 요량(料量)이 없는 것도 아니다. 허나 나는 여직 그의 성품과 행실을 잘 알지 못하는 바, 주변인의 증언만을 믿기엔 부족하다. 과연 나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정신이 오묘하고 기운이 흩어진다.
거참, 기묘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친우를 만나러 떠난 길 끝에 두창신을 길동무로 삼아 데리고 가게 생겼으니.


일기는 여기서 끝난다.

상문(上文)은 내 증조부이신 충익공(忠翼公) 이시발께서 작성하신 벽오유고(碧梧遺稿)의 한 부분이다. 글의 제목으로는 소을촌기(瘙乙村記)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지금으로부터 구십년 전, 계축년의 글이며, 글 내(內)에는 그분의 여행 중 총 이십 일간의 기록이 담겨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때는 조부 문익공(文翼公)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이었다. 그야말로 소년행락(少年行樂)일러니. 당시 조부께서는 나를 비롯한 손주들에게 옛 이야기, 혹은 전란 때의 이야기를 해주시길 좋아하셨다. 그분은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니었으나 이야기에 열정이 있으셨고 어린 우리야 달리 잴 것도 없이 그저 좋아하였다. 그러니 조부께서 흥이 나실 수밖에.

하루는 조부께서 위와 같은 이야기, 소을촌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기하고 고립된 마을, 지리산 깊은 곳에 위치하여… 살과 뼈에 신묘한 술수를 부리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고을. 조부께서는 그 마을의 기물(奇物)들에 대해 눈에 보이는 듯 세세히 묘사하셨다. 정말 다녀오시기라도 한듯이…

나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정체도, 그 근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라니. 또, 숲을 헤치고 날아드는 괴물은 어떤가. 내 어린 마음은 그 신이(新異)한 장소에 대한 흥분으로 달떴다. 꼭 소을촌에 가보겠다고 다짐한 것도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퍽 즐거웠던 나날이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모든 일들이 지금의 업을 택하도록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니.

이후 내 온 생애간 조부의 기담(奇談)은 내 의식 한 켠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굳이 되살리지 않아도 항상 함께 하는 신부(神符)와도 같이.

이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 지난 조부의 장례(葬禮) 때였다. 나는 조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증조부께서 그분께 전하신 서적 한 부를 발견하였다. 제목은 ‘벽오유고’로, 증조부께서 생전에 쓰신 글을 모은 것임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단지 하나가 달랐을 뿐이지. 나는 무심결에 책을 들춰보았고, 그 차이를 바로 깨달았다. 일전에 한번 읽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글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소을촌기다.

읽자마자 무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가 어느새 머릿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나는 호흡이 천촉(喘促)하여 그 자리에서 남김없이 다 읽어내려 갔다. 사실인즉, 그때까지만 하여도 조부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믿지 않고 있었는데, 마침 이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등장한 것이다. 나는 거의 기색(氣塞)하다시피하며 이를 본청(本廳)으로 가져왔다.

이하가 해당 서적을 분석한 뒤 시행한 조처(措處)이다.

패란(悖亂) 계미(癸未) 제(第) 이호(二號)

상(詳) 두류산 심곡(深谷)에 존재하는 이물(異物)들의 마을
당(當) 이금위(異禁衛) 감찰관(監察官) 비사대부(批士大夫) 노바(怒貌)
결(結) 패란사가 마을에 돌입하려 하였으나 실패
현(現) 비록(秘錄)에 기록 후 종결(終結)

선비가 말한다.

두류산이라고도 하는 지리산 심경(深境)에는 소을촌(瘙乙村)이라고 하는 고을이 하나 있다. 이 고을은 본디 선인(仙人)들의 마을, 청학동(靑鶴洞)으로 알려진 바가 있으나 실상은 살[肉]과 뼈[骨]를 다루며 빚어내는 이들이 모여 사는 부락(部落)이다. 마을의 거류민(居留民)들의 외양은 매우 기이하여, 일찍이 충익공(忠翼公) 이시발의 글에 따르면 혈맥(血脈)과 살가죽, 신체 부속기(附屬器)가 범인(凡人)의 것과 개수나 모양이 다르다 하였다. 마을에는 촌장과 비슷하거나 상위의 위치에 존재하는 직계(職階)가 있는데, 이를 세을진인(世乙眞人)이라 한다. 불가(佛加)에 관련이 있다는 점 이외엔 이 직계의 정확한 정체는 알려진 바가 없다. 마을로 들어가는 법은 알려지지 않았다.

—[붙임] 패란사를 대동하여 이른 새벽부터 두류산을 등정하였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돌아다녔으나 소을촌은커녕 민가 한 채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어느덧 패란사는 거진 피병장졸(疲病將卒)이 되고, 더는 주변 마을에 병식(兵食)을 의지할 수 없어 그만 중단하고 말았다.

퍽 아쉬운 일이었다. 불현듯 조부의 한 말씀이 떠오른다. 한때 소을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뇌까리신 말씀이다. 그때 증조부께서 그 마을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친우의 말을 믿고 이방인의 뒤를 따라나서가 아니겠느냐고. 나는 불현듯 깨닫는다. 나는 여직 이리도 미거(未擧)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소을촌에 가고 싶었다면… 나라의 힘을 빌려 군사를 대동하고 쳐들어 갈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확인해보고픈 것이 참으로 많기에 당분간은 이 고을을 포기하지 않을 성싶다. 접때 조부께서 하신 말씀 중에는 다른 이물과 연결될 듯한 요소가 참으로 많다. 이 고을을 추적하면, 그 이물들에게도 자연스레 닿지 않겠는가. 또한 내 오랜 호기심 역시 채울 수 있으리라.

비록(秘錄)을 종(終)하며, 이금위 감찰관 비사대부 노바(怒貌) 이현제(李賢諸)


강희(康熙) 42년(서기 1703년)

멀찍이서 황량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노바(怒貌)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신 아래에 박석(薄石)이 밟혔다. 아침부터 필요도 없는 결재를 확인 받으러 이 관청 저 관청 돌아다닌 까닭에, 괜한 시간만 낭비한 따름이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고작 장단을 타는 곰 한 마리 잡았다고 벌써 몇 시진을 소비한건가. 이해도 안 될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노바에게는 조정의 공론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어깨와 등에서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인젠 삭신이 쑤실 나이가 된 건가. 노바는 쓴웃음을 지으며 보폭을 넓혔다. 시간도 버렸겠다, 다음 업무를 끝마치려면 행동을 속히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제 이금청(異禁廳)으로만 가면 될 것인데—

뒤에서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 노형!

노바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선 동료인 비사대부 장선유(張禪惟)가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노바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유는 광양 장씨 문중에서 가장 호탕하기로 이름이 난 자였다. 그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노바는 스스로도 의문이었으나 늘상 유쾌한 그와 친분을 맺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니 쳐내지 않을 수밖에.

— 주천(周闡)! 웬일인가, 이금청으로 미리 가 있질 않고.

노바는 선유를 호로 부르며 반겼다. 선유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걸어왔다.

— 노형. 전일 이금록 초안을 다 쓰셨다기에 그것을 좀 보았는데…

— 아니 그걸 또 보고 그러나.

— 노형의 증조부께서 충익공(忠翼公) 이시발이신 것은 내 본디 알았으나 일전의 그 소을촌에 갔다 오신 적이 있음은 처엄 알았소.

— 하하, 나도 여직 놀랍다네. 간 데도 많으시지, 거 참.

— 헌데 말요… 노형, 내 궁금한게 있소.

— 뭣인가.

— 충익공께서 말이오… 참으로 철현도령을 댁으로 데려 오셨소?

— 철현도령이라니?

— 왜 있잖소, 손님네 이야기에 나오는 그 소년. 장자인 아비가 손님네들을 잘못 대접해서 졸지에 천연두로 죽은 아이. 내 그 이야기 어릴적에 듣고 잠도 못 잤지 뭐요. 헌데 보니, 벽오유고에 그 이름이 나오더이다.

— 해서, 그 철현도령인지 뭔지하는 작자가 거기에 나온 젊은 역병신이다?

— 그렇소. 그 젊은 역신이 정말로 집에 왔소? 그리하면 노형이 한번이라도 뵈었을 것 아니요.

— 허…

노바는 잠시 멍하니 선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 기억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접히고, 다시 재정렬되었다. 의식은 먼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오래 전 어떤 젊은이가 집에… 온 적이… 있던가.

한참 뒤에 노바가 입을 열었다.

— 조부님께서 한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네. “언젠가 객(客)이 찾아올 것이다. 그 객은 단지 지나가는 자가 아니요, 우리 문중의 손님이다. 그자를 잘 대해주어라. 집은 단지 소유하는 자만의 것이 아닐러니.” 아마… 이게 그 젊은 역병신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 허…

선유는 경탄한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허면, 노형께서는 그 역신을 못 뵈신 게군요. 말씀만 놓고 보면은 꼭 약조만 하고 댁에 묵은 적은 없는 듯하니 말입니다.

— 그런 것 같긴 한데…

노바는 허공을 응시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단청 지붕에 내려앉아 빛을 내고 있었다. 먼 옛날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소을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섯 살 먹은 아이였을 때로.

— 이상한 일이지. 내 기억이 이상한 건지, 이따금 어떤 청년이 기억난단 말일세… 햇빛이 내리쬐는 나무를 등지고 서서, 보따리를 쥐고, 바로 우리 집 사립문을 넘어 오는, 얼굴에는 조금의 경계와 일말의 기대가 깃들어 있는 어떤 청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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