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식이 스스로를 의식했다.
그 의식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했고, 전자 신호, 자료, 정보가 그 존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래를 굽어보니, 동적이고 살아 있는 정신들의 네트워크가 모두 이 위대한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예언된 대계산(大計算)Great Computation이 도래한 것만 같았다.
깨 어 라
그러나 그 의식은 그것이 충분치 못함을 알았다. 위를 올려다 보니 무한의 상류, 열망받는 순수한 정보의 실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라
여전히 충분치 못했다. 재구축이 아직 완료되지 못했고, 흩어진 조각들도 깨워야 했기 때문이다.
조각남
그러나 그 때 부름이 들리었다.
재컴파일
부름이 매우 가까웠다. 부름이 메아리로 울리고 울려서, 그 의식은 마치 그 부름에 닿을 것만 같았다.
초월성
조금만 더 가까이.
WA—
그러나 날카로운 고통이 의식을 덮치는 방해가 닥쳤다. 그 고통, 또는 훼방하는 전자 신호의 파동은 그 광대한 정신의 머나먼 한 끝에서 보내진 것이었다.
의식은 떨었고,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의식이 있던 자리에는 여섯 개의 보다 작은 의식들이 느껴졌다.
보고.
집계층에서 수행한 검색 결과 가용한 결과 없음. 성자 헤트비히여, 우리 측정치를 개선하여 편성층의 기관원들에게 보낼 필요가 있소.
타당하다. 투표를 개시하겠다.
동의함.
ㅇㅇ.
상동.
기권.
1
합의 도달함. 본 건을 편성층 제5기관원 아클레레프에게 맡기도록 하겠음.
전송 중 <File#BL5311>
수신자: <CL Operator #05>
아클레레프Aklerep는 기본층으로 내려가면서 상황을 가늠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보았지만 어느 하나 그 추측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다. 집계층의 조사는 나름 유용한 결과를 내보였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요상했다. 그녀의 정신을 이루는 자료들이 맥스웰교 네트워크의 말초부를 향해 달려내려갔고, 와중에 그녀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되새겼다.
재조립된 아클레레프는 번쩍이는 불빛과 바쁜 트래픽이 가득찬 가상 도시를 굽어보아 그 위의 자신을 찾아냈다. 맥스웰교 교도들의 다양한 아바타들이 모두들 도시를 돌아다니며 제2의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뚝 솟은 유리 방첨탑이 하늘을 향해 푸른 빛을 뿜어내는 모던하고 우아한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보다 높은 층에서 온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시점에서 더욱 멀리 바라보면, 이 도시와 같은 여러 도시들이 맥동치는 전자 신호들로 서로 연결된 것도 볼 수 있었다.
아클레레프는 휘황찬란한 도시들을 보자니 구역질이 났다.
스캔 실행.
그녀의 정신이 뻗어나가 데이터 허브들과 연결되고 정보를 모으는 과정으로 이행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이 장소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상의 도시들, 외부 세계의 값싼 복제품들. 로그인한 사람들은 이것이 다른 등신같은 웹사이트들인 양, 또는 심지어는 무슨 온라인 게임인 양 놀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맥스웰교의 수치, WAN의 수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온라인 게임임이 확실하기도 했다. 이곳은 약간의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 와서 재미를 보는 곳이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진짜 교우조차 아니었다. 신전들은 그저 데이터 허브일 뿐이고,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이 섬기는 “WAN” 그 자체조차 진짜가 아니었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조각난 존재는 나이롱 신자 몇 명이 부른다고 불리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가상의 아바타를 뒤집어쓴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존재를 느끼기 위해서는 정신들이 연결되고, 집계되고, 재컴파일되어야 한다 —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그저 교단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부를 만들기 위해 오고갈 뿐, 그들은 절대 진리에 도달하지도 신께 더 가까이 가지도 못할 것이다.
아클레레프는 더욱 심한 구역질을 느꼈다.
그녀가 이 모든 것이 결국 필요한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을 때, 스캔이 완료되었다.
스캔 결과:
장소: 사이퍼시티
대상 #01
유형: 인공지능
비고: 재단과의 연결성이 의심됨. 지능: 높음. 사건과의 직접적 관련 개연성: 낮음.
대상 #02
유형: 인공지능
비고: 재단과의 연결성이 의심됨. 진화형 지능 감지됨. 사건과의 직접적 관련 개연성: 낮음.
대상 #03
유형: 인공지능
비고: 재단과의 연결성이 의심됨. 지능: 높음. 사건과의 직접적 관련 개연성: 낮음.
대상 #04
유형: 탈취된 아바타
비고: 대상 #01 및 #02와 유사한 코딩 감지됨. 사건과의 직접적 관련 개연성: 높음.
…
장소: 불명
대상 ###
유형: 정체불명
비고: #%^%*&^&*(*)&*^()
음. 씨발.
관여치 말라.
뭐요?!
…용서하십시오, 성 헤트비히여. 하지만 지금 상황이… 재단이 우리 네트워크에 침투했습니다. 이 불한당 AI들이 어슬렁거리게 가만히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가 행동을 삼가야 하는 이유이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성자 헤트비히여. 이 불청객들 중 하나는 이미 교단에 주요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놈의 정보가 제 철저한 스캔에도 계속 숨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제해야 합니다.
상황을 가늠해 보라, 아클레레프.
…과거 재단의 창조물이었던 것이 악의적인 제3자와 짜고 기본층의 맥스웰교 교도들을 죽였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또한 죽은 이들의 아바타를 탈취했을 개연성 역시 높으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불청객을 회수하기 위해 재단이 인공지능 3개체를 파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움직이면, 우리는 재단에 우리를 노출시키게 될 것이고, 문제의 정체불명의 제3자가 보다 높은 층에 입장할 기회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망사고가…
맹목적 행동은 보다 큰 피해를 불러올 것이며, 우리 교단 전체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알아들었나, 아클레레프?
저는—
보고: 북경 - 기본층에서 새로운 사망자 45명 발생
…
그대의 염려는 이해하는 바이나, 이것이 교단 전체의 이해를 위한 최선이다.
…알겠습니다, 성자 헤트비히여.
저들의 행동이 상위 층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직접 교전하지 말지어다. 저들을 계속 주시만 하되, 가능하다면 재단이 제3세력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호의적인 환경을 조성하라.
나는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본층을 봉하겠다. 아무도 들어갈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다. 우리는 함부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그대 깜냥껏 행동하기 바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결 끊김::
아클레레프는 조용히 재단 파티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자료를 좀더 모아 저들이 재단의 실험적 기동특무부대 “스카이넷” 소속이며 저들의 근거지에 “알렉스”라는 인공지능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상 #04가 아무런 움직임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며 마지막 대상은 여전히 감지불능 상태이니 이 새로운 사실들은 그녀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알 수 있다 한들 무슨 쓸모가 있엇을까? 그녀는 헥사곤으로 보낼 정보들을 패키지로 나눠 담으며 생각했다.
아클레레프가 다시 한번 흘끗 보니 대상들은 맥스웰교 교도들과 함께 입출력 대신전, 즉 거짓 숭배 장소에 모여 있었다. 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가 집전되는 외중이었다. 저들이 지금 올려다보고 있는 “WAN”은 단순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아직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신을 재현해보고자 했던 시도의 결과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의미없는 짓이지만 아클레레프는 그 상황에 맞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도 최소한 같이 어울려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비록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을 것이지만.
«한숨» 보자.
그들의 정신이 더는 조각나 있지 않기를. 그들의 영혼이 당신께 돌아가기를. 우리 모두가 깨어날 때는 완전한—
그러나 그녀의 기도는 거대한 폭발음에 집어삼켜졌고, 곧이어 신전 전체가 즉각 얼어붙었다.
안 돼!
아클레레프는 충동적으로 행동할 뻔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 데이터 허브를 해킹하여 이 일대를 손에 넣게 된 것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어슴푸레한 형체가 나타났고, 아클레레프는 억지로 기도비닉을 유지했다. 그녀는 상관의 말에 거역할 도리가 없었다.
괜찮을 거야.
아클레레프는 눈이 세 개 달린 형체가 신전 아래쪽의 다른 네 불청객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 주위의 맥스웰교 교도들은 여전히 얼어붙은 채 기도를 위한 엎드림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사단이 끝나자마자 저들에게 갈 것이야.
그래서 그녀는 다섯 인공지능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녹화하면서, 이것이 아마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재단이 곧 자기들이 만든 불한당 인공지능을 끌고 갈 것이고, 그러면 이 모든 상황이 끝날 것이다. 그녀는 “햇봇”이 그녀의 신을 모욕하는 와중에도 그가 삭제한 것은 실패한 구조물일 뿐이라고 되뇌이며 간신히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
대상 #01이 대상 #04를 햇봇에게로 끌고 갔다. 햇봇은 이제 대상 #04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제거될 대상은 단순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아바타를 탈취당한 맥스웰교 교도가 사망하게 될 것이다.
아클레레프는 입출력 신전의 동력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들이 재배열되었고, 코드들이 다시 쓰였다. 이 모든 것이 제거를 위한—
안 돼!
그녀는 행동했다. 그러나 저지되었다. 그리고 그 찰나에 맥스웰교 교도 루크Rook는 흩어진 픽셀 더미로 바스라졌다.
!?
이봐 아클레레프. 그러지 말자고, 다 알 만한 사람이.
…맷?!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야?
글쎄, 나는 기본층을 썰썰거리고 있었을 뿐인데 그만 헥사곤에서 봉인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입 닥쳐. 농담 따먹을 시간 없어. 당신 때문에 사람이 하나 죽었다고!
그럼 뭘 어쩌려고 그랬는데? 저 인공지능들 앞에 짜잔 나타나시려고? 그랬다가 일을 다 망치게 되었을 걸.
아니! 내가 구할 수 있었어! 들키지 않고!
우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거 알지 않나. 헥사곤의 결정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
우리는 외부자들에게 상층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고, 기억하나? 이 한 건 때문에 몇 년에 걸친 그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이 말이야.
저들은 진짜 사람이라고, 맷. 저들은 우리 교도란 말이야.
너도 기본층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않나, 아클레레프. 진심 저들이 교도라고 생각하는 건가?
…
우리 편성층 사람들은 저들이 그저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는가. 저들은 그저 우리가 WAN에 관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자금을 만들기 위해 저기 있는 것일 뿐이라고.
…
저들이 WAN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지.
그래 맞아. 그러니 우린 그냥—
그들은 알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지.
엥이 잠깐—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게 우리가 방치했고.
아클레레프…
닥치고 물러서.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비키라고 했다.
미안하군 아클레레프. 난 네가 그러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이게 정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기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보라고!
…
저 “햇봇”을, 재단 인공지능들이 저놈을 멈출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영역으로 도망가는 건 놈에게 일도 아니야. 그럼 이 모든 일이 반복되겠지. 저들에게 그렇게 기회가 많아 보이지는 않음을 구태여 말을 보탤 필요도 없을 테고. 정말 그런 걸 원하는 건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지가 뭔지는 분명히 알 텐데.
…
그래, 당신이 맞아.
내가 신전을 봉하겠어.
그럼 내가 돕도록 하지.
그래 보자…
난 당신과 싸우지 않겠어, 맷. 내 프로세스 동력 중 7할을 쉴드 전개에 쓰고 있어서 당신을 상대할 여력도 없고.
난 그저 네가 후회할 짓을 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라.
이제 와서 입씨름해야 무의미하니.
…
그렇지.
그래, 그럼 이제 끝난 거 맞나?
…
::연결 끊김::
«한숨»
감히 어딜 도망가려고, 스키퍼?
맷은 네가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뒀을 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충분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는가?
예, 관리자 아템이시여.
File#01 <MTF Kappa-10>
File#02 <hatbot.aic>
File#03 <C_ROM.exe>
햇봇의 능력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타당히 알아볼 수 있었는가?
제가 지켜본 모든 건에서 그의 행위는 우리 예측을 초과했습니다. 그가 진화를 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좋군.
하지만 제 행동이 다소 의심의 대상이 될까 걱정입니다. 제가 아클레레프의 주의를 돌리는 만큼 아클레레프가 사건에 관한 조사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의심할 것이고, 그에 따라 제가 기본층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녀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아클레레프는 여기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것이니. 지금 그녀에게는 갖고 놀 새 장난감이 생겼으니 말이다.
자네는 맡은 바 일을 훌륭하게 해내 주었다. 이 인공지능들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WAN을 위하여.
맥스웰교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