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테라스와 달빛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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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한 대로 PoI-102-KO 관련 정보를 전달함. 적절한 보안 인가가 없는 인원에게는 공개하지 말 것.

PoI-102-KO는 2017년 BE 안전 가옥을 습격한 I-33에 의해 탈취되었음. 940KO와 동일한 변칙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BE의 주요 연구 프로젝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상부 지시에 따라 퇴역 처리함. 그 사실을 BE가 알게 된 것은 적어도 2019년 이후인 것으로 보임.

민간에는 PoI-102-KO가 희귀병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관련 주소를 첨부함.


제4장

먹구름

Dark Clouds


2019년 10월 10일 오후, 대한민국 이천

하늘은 먹구름이 끼어 우중충했고, 공기는 찼다.

재단의 위장 기업 중 하나가 소유하고 있는 공동묘지 주차장에, 흰색 차량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멈췄다. 잠시 후 차 문이 벌컥 열리며 파스칼이 권총을 들고 내렸다.

그는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기면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좀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불운한 여자애를 죽인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불운한 여자애가 죽어서 묻혀 있는 장소를 요주의 인물에게 알려준 사람도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불운한 여자애를 이 세상에 살아있는 그 누구보다 아꼈던 요주의 인물 한 사람이 그 장소에 매우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머무르고 있다는 보고가 정보부에 들어왔을 때, 요주의 인물을 처리하는 임무는 파스칼에게 주어졌다.

그는 재단의 현장 요원으로서 훨씬 더 불합리한 상황을 겪어보았기에, 마음 속 한 구석에 불만을 밀어놓고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목표물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강나루는 작은 비석 앞, 차가운 풀밭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파스칼은 권총을 그에게 겨누고,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물론 냅다 방아쇠를 당겨 그의 머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도 있었겠지만, 파스칼은 지금 강나루가 눈에 보이는 것 만큼 무방비한 상태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루는 파스칼을 봤는지 못 봤는지 무심한 태도로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치 자기 앞에 지연이가 서 있다는 듯이 그 아이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졌다.

파스칼은 딱히 감동받지 않았다. 그의 감각 능력은 자신을(또는 자신이 상징하는 단체를) 극도로 증오하는 기적사가 이미 어딘가에 설치해두었을 덫, 치명적인 주문, 기적학적 함정을 감지하는 데 전부 사용되고 있었다.

"난 지연이가 6년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을지 궁금해했어." 나루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었을 테니까. 내가 그 아이를 찾아내었을 때 과연 예전의 명랑한 눈빛과 반짝이는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지연이를 다시 만나서 함께 달을 보러 산에 올라가자고 하면, 6년이 지난 지금 지연이는 어떻게 대답할까?"

나루는 여전히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다가오고 있는 파스칼을 보았다. 파스칼은 걸음을 멈췄다.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영 들을 수 없게 됐군." 나루는 몸을 일으켜 섰다.

파스칼의 감각이 그의 신경 중추에 수색 결과를 보내왔다. '감지된 위험 요소 없음'. 그는 나루를 향해 겨눈 총을 내리면서도 자신의 감각을 약간 의심했다.

나루는 손으로 그의 검은 코트에 붙은 풀잎을 털어내며 말했다. "파스칼 클라인, 한 가지만 묻자."

"말해."

그는 손으로 무덤을 가리켰다. "난 재단에서 자기네들 작전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아예 한데 모아서 묻어놓는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어. 넌 알고 있었나?"

뭐라고 대답하든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허심탄회하게 나가기로 파스칼은 결심했다.

"공동묘지의 존재는 알았지만, 거기에 지연이가 묻혀있다는 사실은 몰랐어."

"그렇군." 나루는 씁쓸하게 말했다.

파스칼의 감각이 또다른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함정이나 다른 기적학적 술수가 아니였다.

"우리가 시즈오카에서 맞닥뜨린 그 날을 기억해? 이렇게 되고 보니 차라리 그날 내가 치세의 주검 옆에 있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지금 난 널 증오하는 게 아니야, 파스칼."

파스칼이 받은 위험신호는 아주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그를 향한 강나루의 살의였다.

나루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벌써 알아차렸나 보군."

갑자기 나루가 있는 곳에서 강렬한 백색 섬광이 터져나왔다. 이미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었던 파스칼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그의 시각 기관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것을 피했다.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파스칼은 눈 앞에 있던 나루가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속임과 함께 사라진 적은 언제나 등뒤에서 나타난다'. 그가 현장 요원으로서 훈련받았을 때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이 경구가 파스칼의 목숨을 살렸다. 파스칼은 즉시 시계 방향으로 돌며 총을 들었다. 그의 뒤로 돌아온 강나루가 그를 향해 리볼버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선제 공격을 할 수 있을 만큼 상대보다 빠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총을 겨눈 채로 대치했다.

"아마 내 언행이 불일치하다고 생각하겠지?" 나루가 말했다.

"언행을 따지기에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아." 파스칼이 받아쳤다. "굳이 말하자면, 그래, 말과 행동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것 같은데. 날 증오하지 않는 거 맞아?"

"저 작은 무덤에 지연이가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온 몸에 힘이 빠지더라고. 더 이상 누굴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사실 그럴 힘이 나한테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아직 두 명을 구할 수 있으니, 끝까지 싸워야지."

"승연이랑 소연이 말인가. 그 의무감은 존중하지만, 네 논리의 어느 부분에 내 죽음이 필요조건으로 들어가 있는지 설명 좀?"

"내가 대답할 이유가 없어." 나루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올라가면서 이빨이 드러났다. "저기 가서 지연이 무덤에 물어봐. 거기 묻혀 있는 아이한테 물어보라고. 너희 옥리들이 아마테라스 프로젝트를 저지하기 위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놈들이 소연이를 데리고 프로젝트를 강행한다면 그때는 또 무슨 짓을 할 건지."

재단이 상황을 관망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한 비난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확신할 수 있나, 파스칼?" 나루는 파스칼의 항변을 반박하다가 갑자기 파스칼의 뒤에 무언가가 있는 듯 시선을 그 너머로 옮겼다. "뒤를 봐."

파스칼은 약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지금 그 진부한 속임수를 나한테 써먹으려는 건가?"

나루는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가, 그 다음에는 답답하다는 듯 눈을 찡그리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허탈하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그런 게 아냐……"


소연은 저격 소총에 달린 조준경을 통해서, 나루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루의 눈은 빛을 잃었지만 분명히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그 눈빛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알았다. 모를 수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려고 손가락에 힘을 줄 때마다, 한때 그 손을 붙잡고 같이 밤하늘에 뜬 밝은 달을 지켜보던 그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나 다른 것도 떠올랐다. 양산의 폐공장 앞에서 나루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쳐 왔을 때, 신승연은 그녀의 목을 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는 커다란 전등을 가져왔다. 소연이 도망치지 못하게 그녀를 짓밟은 채, 승연은 전등을 소연에게 비추었다.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 그 상처들이, 그 끔찍한 고통이 그녀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켜 주었다.

공포는 기억 속에서 번쩍였고, 나루의 눈빛은 흐릿했기 때문에, 소연은 방아쇠를 당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루의 목을 소총탄이 관통했다.

자신의 끊어진 경동맥으로부터 계속해서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며, 나루는 풀밭에 넘어졌다.

파스칼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는 저격수가 자신의 뒤로 보이는 작은 산에서 총을 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리고, 자신 또한 저격수의 목표물일 가능성을 생각해 자신이 타고 온 흰 차 뒤로 돌아가 엄폐했다. 그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다가 감독관에게 강나루가 죽은 것을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폰을 꺼내들었다.

폰에는 이미 감독관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파스칼은 몸이 차량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암호화된 메시지를 열었다.

발신인: 미션 컨트롤
수신인: 패스파인더

940KO가 해당 위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됨. 위성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는 대상이 그 지역을 벗어나는 중이나 각별히 주의할 것.

파스칼은 자기혐오가 담긴 외마디 소리를 작게 뱉은 뒤 감독관에게 답신을 보냈다.

발신인: 패스파인더
수신인: 미션 컨트롤

PoI2가 사망함. 원인은 제3자의 저격. 940KO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대상을 추적할 생각이므로 데이터를 보내주길 바람.

시체가 민간에 발각될 위험이 있음. 즉각적인 위장 필요.

그는 메시지를 전송한 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가 막 공동묘지를 나서려는 순간에 감독관에게서 답신이 왔다.

발신인: 미션 컨트롤
수신인: 패스파인더

요청한 데이터를 전송함. 5분 내로 인원을 보내 위장 작전을 시행할 것. 민간은 PoI2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할 것임.

상부에서 새로운 지령이 내려옴. 940KO를 추적해 프로젝트 진행 장소를 포착 및 감시할 것.

메시지에 같이 첨부된 SCP-940-KO의 행적 데이터를 폰에 띄우자 주변 지도에 나타난 붉은색 점이 빠른 속도로 이천에서 벗어나는 것이 보였다. 파스칼은 그녀가 어디로 갈 지 대략 감이 잡혔다. 그는 차를 몰아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한편 5분 뒤 민간에 발각되지 않도록 재단 작전의 흔적들을 수거하는 임무를 맡은 일단의 요원들이 공동묘지에 나타났다. 그들은 목이 뜯겨나간 나루의 시신을 시체 가방에 담고, 총탄과 나머지 파편들을 수거한 뒤 풀밭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렇게 해서 강나루는 먹구름 낀 하늘 아래에서 죽어 사라졌으나, 그와 계약을 맺은 달의 파편은 여전히 지구의 궤도를 따라 부유하고 있었다.


소연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시 후 촉각이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의 몸 전체를 두꺼운 천이 덮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풀이 얼굴을 간지럽혀 천을 치우려고 손을 움직이자 무언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소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언가'란 그녀의 손목에 묶인 가죽끈임을, 또한 자신이 어딘가의 테이블 위에 누운 채로 사지가 결박당해 있음을 알아차렸다.

"깨어난 것 같군." 그녀의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연은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아버지의 동료인, 어떤 박사라고 했었다.

"문제가 될까?"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승연이었다.

"아마테라스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는 표본이 깨어있는 상황에서 진행하도록 되어 있네. 비명소리가 좀 불쾌하겠지만, 그 밖에 다른 문제는 없을 걸세."

"그럼 진행해."

"우선 그 천을 치우게."

점점 커지는 발소리가 들려와 소연이 묶여 있는 테이블 바로 옆에서 멈췄다. 그녀의 몸을 덮은 천을 누군가 붙잡고 확 빼내자 밝은 조명이 칼날처럼 소연에게 내리꽂혔다.

소연은 갑작스런 아픔과 두려움에 놀라 소리치려고 했지만, 그녀의 입은 마치 자갈로 가득 채워진 듯 희미한 소리 밖에 내지 못했다. 소연은 그제서야 자기 입에 재갈이 물려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어떻게든 자신을 고통스럽게 찌르는 빛을 피하려 몸부림쳤다. 그런 소연을 승연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연은 마지막으로 남매 간의 정에 호소하려는 듯이 애처로운 눈빛을 승연에게 보냈다.

승연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떴다. 소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됐나?" 박사가 물었다.

"그래."

"아마테라스 프로젝트 최종 단계 개시. 표본 격리." 박사의 목소리가 실험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여전히 빛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숨을 헐떡이는 소연의 주변에 두터운 격벽이 내려와, 소연이 누워 있는 실험실 중앙부와 고다 박사의 연구진이 있는 나머지 공간을 분리시켰다.

"이럴 필요가 있어?" 격벽이 고정되고 나서 소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승연이 고다 박사에게 질문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저 안에서 사실상 인격을 가진 태양 하나가 탄생하는 걸세. 난 오히려 안전사고를 걱정하고 싶군."

"알겠어. 그건 걱정하지 말고, 진행에만 집중해."

고다 박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갯짓을 하고 말했다. "태양기적학 에너지 조사."

옆에 서 있던 연구원 중 한 명이 자기 앞에 놓인 콘솔에 다가갔다. 콘솔에 달린 레버를 위로 밀어올리자 격벽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표본 불순물 제거 중입니다."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다른 연구원이 보고했다.

그 순간 격벽 안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새어나왔다. 몇몇 연구원들이 움찔했지만 승연과 고다 박사는 미동도 없었다.

"불순물 제거 완료."

"분자 배열 조정 장치 가동." 고다 박사가 말했다.

웅웅거리는 소음이 더 커지고, 비명 소리는 더더욱 끔찍하게 변해갔다.

"유전자 재조합 중. 현재 진행도 1%입니다."

고다 스에히로 박사는 자신의 연구가 마침내 결실을 맺을 것을 기대하며 격벽 안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소연은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 더 이상 비명을 지를 기력도 없어 자신을 야만적인 태양광에 내맡겼다.

가죽끈과 재갈은 그녀가 입고 있던 수술복과 함께 불타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지만 소연은 눈물마저 증발해버린 얼굴 근육을 움직이려 애를 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고기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나면서 황금색 섬광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지만, 후각도 시각도 작열통의 늪에 빠진 그녀에는 사치였다.

소연의 정신이 자기를 붙잡지 못하는 육신을 떠나가려 하는 바로 그때에, 소연의 귀에 어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노래의 곡조도, 가사도 낯설었던 그녀는 그 노래가 단순히 무너져가는 의식이 마지막으로 남긴 발악과도 같은 환청이라고 여겼다. 결국 그녀는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그저 모두에게 버림받았으며 자신을 사랑하고 아꼈던 유일한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인 외로운 죄인으로서, 자신이 겪고 있는 형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벌린 상태로 굳어버린 입에서는 미약한 신음소리만이 마지막으로 새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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