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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눈살을 찌푸린 구름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물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며 슬픈 소리를 낸다.

"파스텔의 빛으로 비가 내린다면 좋을 텐데."

한 남자가 창가 밑의 바닥에서 다리를 살짝 구부린 채로 앉아 흥얼거렸다. 남자는 이어폰을 꽂은 채였지만, 선의 끝에 연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노래도 흘러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파치 신비로운 노랫소리라도 들리는 듯 남자는 눈을 감고 양손을 휘적였다.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도, 지휘를 하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일하세요, 일."

정장을 입은 흑발의 여자가 남자에게 투덜댔다. 자신은 막 일을 마친 것인지 외투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방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와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한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아름다움과 신비에 취한 남자와는 달리 대외적인 업무를 도맡아 했다. 가난하고 재능도 없는 예술가. 그것이 남자가 지닌 타이틀이었건만,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뛰어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신비로움과 꿈의 영역. 남자는 무대에서 이를 풀어내어 관객의 행복을 자극했다. 그 능력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잉여스럽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억울해지는 여자였다.

"세상이 설탕으로 색칠되고 있어."
"아, 거 진짜…"

여자는 남자 방향으로 성큼 다가가 이어폰을 휙 가로챘다. 남자가 눈을 슬쩍 떴다. 온갖 종이가 가득한 탁자가 방의 중앙에, 다양한 악기가 벽걸이에, 신비스런 잡동사니가 찬장에 가득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는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페일, 같이 듣자."
"아무것도 안 들린다니까요."

페일이 아무 것도 연결되지 않은 이어폰을 흘끗 쳐다봤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세간에선 그걸 망상이라 합니다."
"꿈을 꾼다고들 하지."

페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필요 없는 것이로군요."
"넌 역시 낭만이 부족해."
"당신이 지나친 낭만주의자일 뿐입니다."

페일이 그리 말하자 남자가 툴툴대며 페일에게 손을 뻗었다. 페일은 한숨을 쉬며 남자의 팔을 끌어당겨 일으켰다. 밤하늘의 향기가 페일의 코끝을 스쳤다.

"오늘 일은?"
"레벤트 하우스에서 공연입니다. 해당 문서 검토해주시면 됩니다."

정리해놨으니 읽고 도장이나 찍으십시오. 페일은 그렇게 말하며 종이 몇을 뷔아트에게 주었다.

"거기 별로라니까…"
"뷔아트의 공연이라고 주최자가 멋대로 흥분해서 장소를 바꾼 듯 합니다."

뷔아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 뭐 그리 마음대로래? 차라리 취소를…"
"금액도 함께 바꿨네요."
"…어느 정도로?"

페일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대로 행동하는 남자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뷔아트는 서류를 슬쩍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페일이 책상 위 서류를 탁탁 쳐 가지런히 정리하였으며, 뷔아트가 멍하니 들고 있는 서류 또한 홱하니 가져갔다.

"퇴근합니다. 무대 준비하시구요."
"어… 어."

아직 떨떠름한 뷔아트의 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페일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중간한 높이의 굽을 가진 구두를 신으려 하자, 뷔아트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불현듯 페일에게 물었다.

"페일."
"네."
"지금 행복해?"

잠시 침묵. 뷔아트는 시선을 페일에게 돌리지 않아, 그녀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글쎄요."

그리고 문이 닫혔다. 뷔아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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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륵.

투명한 얼음이 들어 있는 투명한 글래스에 투명한 술이 담긴다.

"들어봐, 제피…"

보라색 조명이 아름답게 빛나는 한 바의 안. 와인 글래스를 턱 하니 내려놓는 뷔아트의 앞에서 한 바텐더가 잔을 열심히 닦고 있다. 바텐더는 친절히 대꾸했다.

"잔 살살 내려놓으십쇼."
"불친절한데. 아무튼 들어봐…"

제피는 하얀 타올과 잔을 내려놓고 뷔아트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또 이 취객이 무슨 어린이같은 주정을 부릴까 궁금한 마음이었다. 뷔아트는 취기가 살짝 올라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엄청 큰 기회가 왔어."
"어느 정도로 말이죠?"
"으음… 수만 명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정도니까… 파란색은 되지 않을까?"
"좋은 기회네요. 잡으시죠."

제피가 칵테일 하나를 빠르게 만들어 뷔아트의 앞에 내려놓았다.

"파스텔 레인입니다. 푸른 기회가 왔다 하니 서비스 한 번 해 드리죠."
"오… 소금쟁이가 무슨 일로? 공짜야?"
"4% 할인가로 모시겠습니다."
"그 정도면 강매잖아…"

뷔아트는 그리 대꾸하면서도 칵테일을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빠르게 목을 넘어갔지만, 청량감과 달콤함이 혀에 살짝 감돌았다. '맛있네…' 뷔아트가 그리 중얼거렸다. '맛있어…'

"그리고 차가운 소리가 들려."
"빗소리인가요?"

뷔아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물은 아니야. 눈 위를 밟는 소리. 우산 위로 눈이 쌓이는 소리. 나무에 쌓인 눈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
"겨울의 소리로군요."
"동시에 외로운 소리가 들려."
"어떤?"

뷔아트는 가슴이 아프다는 듯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가 슬피 우는 소리. 누군가 떠나가는 소리. 사슬과 재갈의 소리."
"그것 참 무섭네요."

제피가 눈을 천천히 감고 손끝의 감각에 의존해 컵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이제는 완전히 깨끗해져 물방울보다 투명한 컵이었지만 말이다. 뷔아트의 슬픈 시선이 컵에 이르렀다. 컵의 건너편에서 움직이는 제피의 옷이 굴절되어 시야에 잡힌다.

"하지만 할 거야."
"그러시겠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테니까."

뷔아트는 결연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바 테이블의 위에 풀썩 엎어졌다.

"이젠 한계… 졸려…"
"취객으로 신고하기 전에 나가십쇼."
"너무해애…"

제피가 휘청이는 뷔아트를 부축하여 문 밖으로 내보내고, 페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두를 신고도 굉장한 균형감각으로 달려오는 여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피가 잠시 감탄하는 동안 페일이 뷔아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깔끔한 솜씨였다. '이 민폐스러운 놈아!' 제피는 둘에게 손을 흔들고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촌스럽게 네온사인으로 '제피로'라고 반짝이는 간판이 보였다. 제피는 문을 열고 들어와, 바 테이블의 뒤에 선 후 다시 컵을 닦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히 행복해진다면, 유토피아는 실존했을 겁니다…"

제피는 헛된 희망을 품는 남자에게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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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과도 같은 사람들의 박수소리. 솜사탕처럼 달콤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뷔아트는 소리와 소리에 둘러싸여 행복을 만끽한다. 그리고 일정한 딱딱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약한 고통.

"…트! 뷔아트! 일어나라구요!"

페일이 손가락을 튕기며 반대쪽 손으로 뺨을 살짝 치고 있었다.

"…지금 몇 시?"
"무대 시작하기 30분 전이요."
"딱 맞춰서 일어났네."
"제가 깨운 거죠. 저 없었으면 계속 잤을 텐데."

뷔아트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무대의 준비는 한 시간쯤 전에 이미 마쳤다. 뷔아트는 온갖 장난감처럼 생긴 물건들이 가득 담긴 상자를 질질 끌었다. 페일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밀대 하나를 가져와 상자를 그 위에 올렸다. 뷔아트가 눈웃음으로 감사를 표했다.

"좋은 소리야. 사람들의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 기대감의 소리."
"전 들리지 않아요."
"실제로 들리는 게 아니니까."
"세간에선 그걸…"
"그래, 망상이라 부를지도 모르지."

행복 또한 그렇고 말입니다. 페일은 뷔아트의 답변에 나오려는 목소리를 씹어삼켰다. 뷔아트는 그런 페일의 마음을 모르는지 방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뷔아트는 밀대를 끌고 무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들 기대하고 계신…' 진행자의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갖고…' 걸음을 옮길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뷔아트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무대 위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엣!? 어… 이런! 뷔아트님께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일찍 나오셨네요!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공연 잘 즐겨주세요 여러분!"

진행자는 능숙하게도 상황을 넘기고 뷔아트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며 무대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뷔아트는 상자 속에서 페인트가 든 통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뭔가를 찾는 듯, 주머니를 뒤적거려 라이터 하나를 꺼내 페인트 통의 내부에 불을 붙였다. 순간적으로 통에서 형형색색의 빛이 허공으로 분출됐다. 무지개가 시작되는 지점처럼 다양한 색이 허공으로 치솟는 모습은 과연 아름다웠다. 관객은 환호성을 내뱉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며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이 가지는 감정은 단 한 가지였다. 경이로움. 그들은 뷔아트가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경이에 감탄하고 있었다.

뷔아트는 손끝을 휘저었다. 사람들의 심장 박동 소리, 뷔아트가 발을 굴러 내는 소리, 무대의 장치에서 나는 잡음이 어디선가 나오는 악기 소리에 어우러져 모두에게 들리기 시작했다.

"저만 듣는 소리인데, 오늘만큼은 모두가 들었으면 좋겠네요."

모두가 눈을 감았다.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꿈과도 같은 형태의, 잠깐의 약한 자극에도 쉽게 깨어질 연약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어, 영원히 놓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파스텔 빛깔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연한 분홍색, 하늘색, 주황색. 그 안에서 모두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다. 감정을 드러냄에 거부감이 없는 유년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비는 추적이거나 끈적이지 않고, 산뜻하고 시원한 느낌만을 주었다. 세상이 아름답게 색칠되고 있었다. 비는 솜사탕 맛이 났으며, 세상은 그림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행복을 만끽했다. 스테이지에 들어올 때만 해도 뷔아트에 대해 의심하던 사람조차 행복에 취했다.

귀엽고 작은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과 유니콘도, 실제 동물인 토끼와 고양이도 함께했다. 덥거나 춥지도 않았으며, 모두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오르골 소리에 취했다. 아무도 배고프지 않았고, 졸리지도 않았다. 돈에 시달리지도 않았으며, 일을 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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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뷔아트가 손뼉을 치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아직 황홀한 감정에선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무런 박수도, 환호성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뷔아트의 귀엔 그 모든 것이 선명히 들렸다. 여전히 미소를 입가에서 지우지 못하는 관객들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바깥으로 내보내졌다. 뷔아트는 관객의 미소를 머리에 새기며 대기실로 돌아왔다.

미소…

그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

뷔아트는 예술가였다. 모두에게 행복을 전하고자 하는 예술가. 모두가 웃는 세상을 바라는 어린이같은 사람이었으며, 이를 위해 더 성장하고자 한 사업가였다. 뷔아트는 페일을 바라봤다.

"… 네가 겨울이었구나."
"또 제가 모르는 소리로군요."
"너도 들을 수 있었어."
"그리고 행복해지라구요?"

페일은 코웃음을 쳤다. 화살표가 원의 중앙을 가리키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부대원들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래.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으니까. 너도 예외는 아니야."
"제가 바라는 행복이 아니에요. 아니, 그건 행복도 아니죠."
"모두가 웃음을 잃지 않는 세상임에도?"
"그래서라구요."

페일이 손에 들린 리모컨의 버튼 하나를 눌렀다. 누군가 갱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영상. 영상을 찍는 사람은 피해자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움직이지 않는다. 애초에, 구타를 당하는 사람도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뷔아트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저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을까. 뷔아트가 추구하는 행복에서 동떨어진 모습에 그는 귀가 아팠다.

"망상에서 벗어나고, 현실을 직시하세요."

페일이 뷔아트의 양 손을 잡았다. 뷔아트가 페일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양 팔이 묶인 채로 눈을 강제로 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보세요.' 페일이 말했다. 뷔아트가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 영상 속 피해자는, 웃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듯이.

뷔아트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미소를 잃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고통을 느껴도, 슬픔을 느껴도, 분노를 느껴도 행복밖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구요."

'당신을 만난 사람들은, 행복이란 틀에 갇혀 불행하게 되었어요.' 페일은 그리 말했다. 뷔아트는 입을 달싹이는 페일의 표정을 보고자 하였으나, 역시 시선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행복에, 자신이 초래한 불행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페일. 장난 치는 거지? 이번에도 날 놀리려는 거지?"
"저번에 저 보고 행복하냐 물으셨나요?"
"…"
"네, 전 지금 참 행복하네요. 당신의 착각을 지울 수 있어서."

페일은 방을 나섰다. 뷔아트는 여전히 페일을 볼 수 없었다.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사실 뷔아트는, 페일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행복을 바라던 예술가 하나가, 조용한 방에서 불행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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