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와의 인터뷰

최근에 저, 재단 역사가 로제(Roget)는 저희가 모두 아는 SCP 재단의 설립자, SCP 재단 위키의 첫 번째 회원, "관리자(The Administrator)"와 마주 대화할 기회를 잡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울 만한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리자, 또는 프리츠윌리(FritzWillie)는 저희가 에딧디스 위키 팜에서 쫓겨날 때 저희를 위키닷으로 옮겨 준 사람이죠. 관리자 없이 이 커뮤니티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뒤를 따라 여러 가지를 바꾸고 지금 우리가 머무르는 이 커뮤니티를 가꿔 냈지만, 관리자 역시 자기만의 일을 계속했습니다.

볼드 친 글은 제가 한 질문, 보통 텍스트는 관리자의 대답입니다.

SCP 시리즈를 어떻게 아시게 됐나요?

진지하게랄지는 아니라도 항상 소설 창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서너 가지 책을 쓰다가 말다가 하고 나서는, 대개는 되게 짧은 이야기 범위 속에 머물렀죠. 친구한테 귀신 이야기 해준다거나, 서로 거짓말을 쳐서 얼마나 진짜라고 속는지 게임을 한다거나. 그때는 여느 20대 중반이랑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몇 가지 포럼을 읽어보고 그랬습니다. 대개는 4chan 같은 사이트에서요. 4chan은 그때 아직 꽤나 언더에 있던 사이트였고, /b는 되게 겁나는 곳이라서 다른 사람 이상한 페티시 때문에 내가 이상한 사람 될까 걱정해서 친구들한테도 말 못하는 데였죠. 그런 곳을 그때의 제 아내한테 보여줬던 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을 사람들이 가리키고 뜨악하는 그 심정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내는 /x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자연적 소재를 워낙 좋아했는데, SCP-173을 읽고는 에딧디스 시절 위키까지 찾아가더니 어느 날 제가 퇴근했을 때 한번 훑어보라고 추천했죠. 저는 사실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면서 위키백과를 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직장에서 차단 안하는 사이트가 그것 말고 별로 없어서, 시간 죽일 겸 임의 문서를 계속 돌리면서 읽고, 나도 편집할 분야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죠. 그러다 느슨하나마 서로 이어지는 짧은 소설들 쓰는 창작 위키 커뮤니티를 발견하게 됐으니 많이 신났습니다. 드디어 저도 편집할 분야가 생긴 거죠.

SCP 시리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무슨 느낌이었고, 얼마나 지나고서 에딧디스로 이사했나요?

사이트는 처음 찾아갔을 때부터 에딧디스에 있었어요. 이 사이트가 갓 만들어진 건지, 사이트 주인이 나만큼이나 웹페이지 만드는 법 영 모르는지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사이트에 공식적 제목이 붙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목록만 있었으니까.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페이지들이 수백 개 있었죠. 아마 저는 사이트 찾아오고 하루이틀만에 첫째 SCP를 썼나 그랬을 겁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둠의 손전등'이라고, 1세대 손전등인데 반[反]광자를 쏴서 태양빛도 까만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물건이었을 거예요. 만들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가능했습니다. 완전히 아마추어 사이트였고, 규칙도 지침도 없고 혼란과 유치 그 자체였지만 저는 좋아했어요. 더 활동적인 멤버들 몇 사람은 사이트를 청소하고 전문성 느낌을 가미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내로 저는 사이트 관리자한테 연락해보려고 그랬는데,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사이트를 벌써 버리고 갔나 보더라고요. 에딧디스에 연락해서 관리자 권한을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저한테 사이트 자체를 사면 어떻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에딧디스 사이트를 SCP-173 처음 쓴 사람이 만든 건지 나같은 사람이 벌써 사서 튀었는지 그건 전혀 몰랐는데, 뭐 그런 식으로 제가 했죠. 어느날 밤 저는 지금의 위키닷 사이트를 만들고, 거기 있던 컨텐츠들을 전부 다 옮겼습니다. 하나하나 복붙해 가면서요. 도와주는 사람도 있긴 했는데, 저는 맨 처음 만든 사람인 척하기로 했습니다. 이동에 딴지 받지 않으려고요.

그때 당시 에딧디스 SCP의 문화는 어땠나요? 제일 유명한 사람은?

커뮤니티가 그때는 되게 풋내기 티가 났습니다. 포럼이란 게 없었어요. 댓글을 달려면 페이지를 편집했고, 말하는 모든 데다가 이름을 붙였죠. 싸가지 없어지고 비하하고 하는 걸 모두가 조장하고 거들고 그랬습니다. 인터넷이란 게 그렇기는 하지만. 사이트를 위키닷으로 옮길 때는 저도 제가 뭐 하는지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래서 의무를 세우고 이행하자고 사람들이 말하니까 저도 좀 겁이 났습니다. 순전히 필요 때문에 제일 활발한 사람들, 제일 건설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관리자로 뽑았습니다. 케인이랑 기어스가 가장 기억나네요.

본인이 말씀하시는 저희가 에딧디스에서 위키닷으로 옮긴 이유는?

필요해서요. 에딧디스 위키 처음 만든 사람이 사이트를 버렸으니까. 제가 얼결에 갖가지 사건들을 촉발시킨 셈이죠. 에딧디스 위키팜에 연락했을 때 대답으로 원래 관리자하고 자기들도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오지 않으면 사이트를 저한테 팔 수도 있고, 제가 안 사면 셔터 내리고 지워진다더라구요.

그냥 제가 짠돌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저는 떠나기도 싫고 사이트 사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다른 위키팜들을 구글링하면서 무료 서비스로 제일 괜찮은 곳을 찾아봤습니다. 특징이나 무료 컨텐츠로 볼 때 위키닷이 제일 좋겠다고 결론지었죠.

원래 위키에서는 어떤 분이셨나요? 에딧디스에서 지명도가 있었나요? 그냥 회원이었나요?

저는 에딧디스 사이트의 그냥 멤버였습니다. 그때는 가입이나 계정이란 것 자체가 없었어요. 페이지를 편집하면 그냥 자기 게 됐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체제만 있었죠.

"관리자가 보내는 메시지"는 어떻게 작성하시게 됐나요?

그때는 재단에 스토리라인이라든가 배경이라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임무 강령을 쓴다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SCP들이 그 자체의 존재가[ipso facto] 재단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생각하면. 각국 정부들의 완전한 협조를 얻고, 역사와 전설을 서로 결부시킬 능력이 있는 채로 활동해야겠죠.

대학에서 인류학 배울 때 호모 사피엔스가 몇십만 년 동안이나 존재했다고 들었던 걸 저는 기억했습니다. 장난 아닌 소리잖아요? 역사 시대는 최근 몇천 년에 불과한데, 인류는 그 몇백 배 동안이나 살아왔다니! 그래서 우린 뭘 했죠? 20만 년 전 사람은 지금 우리랑 유전적으로 똑같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을 데려와서 컴퓨터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바로 야한 거 검색하고 고양이 사진 올릴 거예요. (제 말 퍼기지 마세요, 그때 인류가 고양이 숭배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아니 호모 하빌리스가 200만 년 전에 석기를 썼는데 저희는 아이패드를 쓰고, 저희 아버지는 컴퓨터로 틱택토 프로그램을 짜려고 천공카드 한 떼거리를 썼다고요.

네, 그토록 짧은 시간 만에 저희는 그렇게 발전했지만, 그래서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그동안 우리는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쉽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라 생각하고, 저한테는 SCP만큼이나 오묘한 주제입니다. 선사 시대까지 SCP의 발생을 당기자고 생각하면서 저는 다른 사람들이 SCP 재단이나 그 비슷한 놈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지 궁금해지도록 만들고 싶었죠. 신, 괴물, 전설 속 생물 등등이 모두 SCP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렇게 극적인 산문체를 몇 번 사용하면서,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걸 싫어하는 목소리가 좀 많았습니다. 뭐 제 문체가 냉철하지 못해서 그런 듯한데, 그것 때문에 이곳에서 거리를 조금은 두게 된 것 같아요.

최초의 "초인기" SCP는 뭐였나요?

그때는 평가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인기를 판단하려면 각 항목 토론란의 평가 좋은 댓글밖에 수단이 없었습니다. 다른 작품 속에 언급되면 그게 "초인기"였죠. 근본적으로는 요즘 "초인기"인 것이 그때도 초인기였다 생각하면 됩니다. 역사와 신화가 쌓이면서 SCP 세계관에서 입지를 굳혔으니까요.

"SCP 시리즈"라는 이름은 어떻게 "SCP 재단"이 되었나요?

포럼을 처음 열면서 저는, 여기서 토론할 주요 화제 중에 하나가 사이트의 이름이라고 느꼈습니다. 포럼을 뒤져보시면 그 스레드를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투표를 중심으로 하고, 각자 제안도 하고 찬성도 하고 반대도 했습니다. "재단"은 사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비영리기관처럼 들려서요. "기관institude"이 그때 선호도가 있었는데, 무슨 학교나 연구소 같은 느낌처럼 들렸죠. 제가 생각했던 이름은 "SCP 전선front"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호하면서도 힘있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전선" 하면 전장의 최전선 같은 느낌이 오니까. 흐흐, 다른 사람이 좋아하긴 했는지 모르겠네요. 대개는 "재단"을 선호하면서 그렇게 이름이 결정됐습니다.

팬덤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팬덤'을 그렇게 신경 쓰진 않았어요. 물론 시리즈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저도 좋았지만, SCP의 기반을 다지는 데 제가 참여한 건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정기로 글을 "써야만" 했어요. 무슨 낭만적 수사로 숨을 "쉬어야만" 하듯이 글을 "써야만" 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아이디어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자꾸 쌓이고 불어나다가 배출하고 싶어지는 압력이 너무 강력해져서 도저히 못 참겠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글을 "써야만" 했다는 건 대변을 "싸야만" 했다는 거랑 같을 거예요. 아 잠깐, 이 비유의 목적은 제가 제 글의 질을 나타내려는 게 아니니까 그쪽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FritzWillie 계정과 The Administrator 계정을 따로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명예로운 이유가 있고, 부정직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사이트에서 저는 벌써 FritzWillie로 활동 중이었고, 사이트 완전 이전 같은 큰 결정을 내릴 최종 권한이 있는 사람은 딱히 없었어요. 그래서 지휘관 페르소나로 저는 The Administrator를 만들었습니다. FritzWillie 따위가 사이트를 이전하라고 명령했다간 반발만 샀을 테니까요. The Administrator는 시리즈 맨 처음 만든 사람으로 받아들일 만한 이름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전하는 데 많이 호의적이었습니다.

위키닷에 자리를 잡고 나서 저는, 관리 업무에서 한 발짝 내려와서 FritzWillie로서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제가 쓰는 작품이 제가 The Administrator이기 때문에 추천을 받기를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제 작품이 좋다면 제 아이디어가 좋아서지 사이트 관리자한테 잘 보이려고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으면 싶었습니다.

맨 처음 읽었던 SCP는 뭐였나요?

SCP-173. 하지만 그것 때문에 SCP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닙니다. 173은 모든 SCP들을 공통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예요.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쓰더라도 똑같은 세계 속에 자리잡도록 만들어 주니까.

제일 좋아하시는 SCP가 있나요?

구작에도 신작에도 다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리지는 않을게요. 다른 사람한테 괜히 영향을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곳이 그간 없었던 동안 성장하고 변화한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음, 173 나오는 게임을 봤을 때 저는 아무래도 바지를 갈아입었습니다. 게임이 너무 무서워서만은 아니에요. 물론 사이트가 지금 모습으로 변모한 걸 보면서 저는 정말 감격하고 자랑스럽고 기뻤지만, 제가 생색낼 만한 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이트를 퍼올린 건 저지만, 발전시켜서 오늘 이곳처럼 만들어준 사람들은 여러분이에요. 모두들 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시패그, 크라이토, 케인, 기어스는 어떻게 첫 관리자로 선발하신 건가요?

가장 크게는 사이트를 강건하게 이끌어가는 데 제일 깊이 헌신하고 관심이 많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이트에 저는 딱히 친한 사람도 없었고, 서로 댓글 한두 줄 이상 주고받은 적도 없었어요. 시리즈가 삭제를 모면하고 나서는 저는 빨리 관리자라는 의무를 떨쳐버리고 싶었습니다.

옛날 SCP 커뮤니티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그때의 매력이라면?

말씀드렸지만 그때 커뮤니티는 굉장히 풋내기 상태였고, 포럼 하나 제대로 만들 만한 기반도 안 되어 있었어요. 매력 있었던 점이라면 캠프파이어 주변에 둘러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 이야기들은 기괴하고 또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커다란 공동 세계관 속에 있다고 체감이 왔으니까요.

떠나시기 전에 위키에서 있었던 기억나는 마지막 사건은 무엇인가요?

굉장히 기억하기 어렵네요. 암 진단받고 나서는 시간이 더 많이 생기니까 사이트에 자주 돌아와 봤거든요. 하지만 사건이 워낙 많이 생기기도 해서, 그때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사이트를 점차 덜 찾게 되고, 그렇게 이 세계 아주 바깥으로 저는 떠나게 됐죠.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