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도전장

아침 8시, 리븐 머서 연구원은 더워 죽으려 했다.

이런 상황은 아무래도 좀더 걱정이 되는데, 라고 생각하며 리븐은 오른쪽으로 한 걸음 반 내딛어 연구실 싱크대에서 찬물을 틀었다. 실험실로 나오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실험복 소매를 차가운 물줄기에다 적시면서 리븐은 몇 피트 옆에서 오색앵무새가 횃대에 앉아 용암트림을 내놓는 모습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봤다. 앵무새는 뻔뻔하게도 리븐과 시선을 마주치며 천진스레 눈을 끔벅였다. 리븐은 못 당하겠다고 생각하며 앵무새에게 가서 머리깃털을 헝클여 주다가 연구 노트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착한 녀석."

좀더 인상 깊게 바라볼 수도 있었을 테다. 그때 등딱지에 바비큐 그릴 달린 거북만 안 만나봤다면. 그놈은 여섯 달 전에 연구실로 넘어온 녀석이었다.

펜을 집어들고 지금껏 앵무새를 관찰하며 얻었던 정보를 적어가다가, 리븐은 문득 조심스레 앵무새를 흘겨보며 혹시 트림에서 용암 말고 다른 게 나올지도 모르는데 연소 연구실 말고 다른 데로 새를 옮겨야 하려나 생각했다. 종이를 넘겨 맨 처음에 수집한 자료를 다시 살펴봤다. 식성은 평범한 앵무새와 별반 차이 없고, 하지만 듣기로는 하와이 화산 가까운 데서 어떤 수상한 사람한테 이 새를 사서 대륙으로 왔다고… 앗 뭐야 이씨, 앵무새가 실험실 바닥으로 까만 알갱이를 캑캑 내뱉고 있었다.

리븐은 노트를 내려놓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기러 뛰어갔다.


아침 9시 반, 리븐은 다른 인턴에게 앵무새를 보는 일 (관찰하고 실험으로 철저히 조사하고 무슨 일 생길 때까지 찔러보고 등등) 을 떠넘겨뒀다. 덕분에 자신은 이제 실험실 옆에 붙은 예비실에 앉아서, 차 한 잔 (미지근한데다 시시각각 식어갔지만) 을 홀짝이며 현재 키류 연구소로 넘어온 변칙개체의 목록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크 박사님이 이 새를 나한테 맡겨 주시다니 고맙네, 하고 리븐은 생각했다. 리븐은 동물을 좋아했다. 전공도 행동생태학을 선택했고 나중에 딸 박사학위 (재단 속성 프로그램으로 취득할 예정) 도 그쪽이었다. 2등급 연구원에게는 특수 격리가 필요한 생물을 잘 맡지 않기 때문에 리븐은 언젠가 별로 안 위험한 변칙동물을 연구해 봤으면 하고 항상 바라고 있었다.

예비실 문이 열리며 타이양셴 요원이 들어왔다. 리븐은 셴에게 눈길을 휙 돌리며, 입에 든 차를 뱉고 또 기지 바깥으로 현장학습 나가나요라고 무의식적으로 물어보려다가 겨우 참았다. 셴은 연구실로 잘 찾아오지 않았다. 찾아올 때는 항상 실험실 바깥에서 재미있는 임무가 생겨난 날이었다.

"마크가 말해줬어?" 셴이 입을 열었다. 리븐은 고개를 젓고는 셴의 모양새를 찬찬히 훑어봤다. 평범한 바지, 하얀색 칼라 재킷, 가벼운 서류가방… 변칙은행으로 가는 걸까? 아니면 어떤 회사? 위장이라도 하는 걸까? 위장하고 밖에 나가본 적은 없는데! 가명이나 다른 신분이 생겨날지도!

셴은 은은하지만 즐거워 보이는 웃음을 내보이면서 리븐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누군가 쓴 손글씨를 복사한 종이였다. "일단 이것부터 읽어보고 질문해."

읽을 테면 읽을 것

SCP에서 일하는 너희 모든 자에게 내가 모종의 도전장을 보낸다.

내 이름은 "씩 웃는 자the Grinner", 너희가 말하는 일종의 "변칙개체"다. 보다시피 나는 심장이 뛰는 모든 생물의 살점을 먹는다. 나 때문에 제 명에 못 간 인간이 수백 수천은 되고, 운 좋게도 그때는 전쟁이 한창이었지. 그 이야긴 그쯤 하고, 나는 언젠가 난데없이 너희에게 붙잡히지 않는 한 계속 살점을 먹고 살아가려 한다.

아무래도 내 모습을 너희한테 가르쳐주려고 한다. 혹시라도 내가 붙잡힐 때 너희 과학자들이 일손을 덜어야 하니. 내 키는 10피트이고 목은 둥글납작하며 길이가 4피트이다. 나는 큼지막하게 웃는 가면을 쓴 것처럼 생겼다. 색깔은 순백색이며 사실은 내 얼굴이지. 나는 잇소리를 내어 유창하게 말하며, 입을 벌리는 것은 살점을 먹을 때뿐이다. 나는 얼굴이 빨간색으로 모조리 뒤덮이고 붉은기가 뚝뚝 떨어져야만이 만족한다. 내 주먹은 매우 커서 너희를 으깨고 부수며 다니지만 다리만은 변변찮다. 아 잊을 뻔했군, 치렁치렁한 검은색 갈기도 있다! 굳이 말하면 갈기가 아주 매력이 넘친달까.

하지만 지금 막 2시 반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절미하고 이 말로 마치겠다. 감히 나를 찾으려거든 캐나다 모든 땅을 다 뒤져 봐라. 나한테 식사를 듬뿍 대접하지 않으려거든 진정제를 충분히 마련했나 기도하기 바란다.

이만 줄임, 씩 웃는 자.

"뭐 페이스페이팅한 거꾸로 된 티라노사우르스 잡으러 가는 일이에요?" 리븐이 종이를 뒤집어 봤다가 또 한 번 뒤집어서 손글씨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흠, 마지막에 '이만 줄임'이라고 써 놨네요. 뭔가 의미가 있을지도요."

"그거 사실 글자 크기 10미터야." 셴이 서류가방을 열어 사진을 몇 장 꺼내서 리븐에게 건네줬다. "재단 수색팀이 정례 수색을 돌다가 발견했어. 재단 기지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오래된 폐건물이 있는데, 거기 주차장 전체가 명함으로 바뀐 상태였지."

리븐이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크기가 건물만한 유치원생이 구획 깔끔했던 주차장에 글씨를 괴발개발 갈겨놓은 모양새였다. 글씨는 마른풀로 쓴 듯 보였다. "뭔가 분석 들어간 내용 없어요? 글씨를 뭘로 썼다거나 현장에 다른 증거가 남았다거나?"

셴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씨는 모두 불명의 불투명한 하얀 물질로 되었는데, 물질의 화학 조성이 뭐랄까 달팽이 점액이랑 비슷하다고 나왔어. 그놈이 그 자리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씨를 발견한 팀은 호기심 생긴 헬리콥터가 현장 근처에 착륙하는 일이 없도록 방수포로 현장을 덮어뒀지."

리븐이 사진들을 슥슥 넘겨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게 키류 연구실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다른 팀이 현장으로 파견되어서 일대를 수색했어. 그러다 어떤 건물에서 흔적으로 입구와 몇몇 방에 남은 찌꺼기를 발견했지. 찌꺼기는 주차장의 커다란 글씨에서 채취한 표본과 성분이 일치했어." 셴이 사진들을 다시 그러모아 서류가방 속에 넣었다. "적외선 스캔했을 때 딱히 결정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건물에 아직 어떤 개체가 있어. 작긴 하지만 남아 있다는 말이지."

"그러면 그 건물로 저희 둘 다 들어가나요?"

셴이 소파를 골라 앉았다. "그래. 너야 워낙에 동물행동학 전문가고 생물학 배경지식이 있으니까 이 일에 딱 맞아." 셴이 손목시계를 흘끔 들여다봤다. "30분 뒤에 떠날 테니까 진정제나 필요한 다른 장비가 있으면 챙겨와. 여기서 기다릴게. 그리고 하나 더-"

리븐은 벌써 문틀까지 나가 있었다. "좋아요. 5분만 기다리세요, 타이."

"-전등 챙겨 와." 셴이 바라보는 사이 문이 쿵 닫혔다.


20분 후, 리븐은 자기 앞 연구실 작업대에 용량순으로 깔끔히 늘어놓은 주사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셴이 가져온 물건 중에는 심지어 뚜껑 있는 주사기 전용 휴대용 케이스까지 있었다. 정말 온갖 물건들을 다 가져올 수 있나 보다. 재단도 정말 온갖 장비를 다 개발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이번 임무에는 가명이 필요없었다. 리븐은 퍽 실망했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위장정보가 나오기는 했다. 리븐은 환경 전문가고, 사업가 셴과 함께 폐건물을 "사찰" 나온 것으로.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하나 갖가지로 리븐이 궁리해보던 중에, 셴은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리븐은 소리는 안 내고 머릿속으로만 계속 연습해보기로 했다. 한편 셴은 테이저건을 받았는데 자기는 못 받아서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그래도 자기는 조그만 코끼리떼 정도는 모조리 눕혀줄 진정제를 듬뿍 챙겨가기는 하니까.


차량이 리븐과 셴을 내려준 곳은 폐건물 단지 주차장의 맨 끄트머리였다. 재단에게 온 메시지를 덮어둔 방수포는 색깔이 누르죽죽 흐릿했지만 그래도 맡은 역할을 다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메인 센터 플라자를 찾아가야 해." 셴이 말하며 건물 하나를 잡아 그쪽으로 걸어갔다. "특별히 이상한 점이 보이면 알려줘."

"알았어요. 현장 키트도 가져왔으니까 시간 남으면 표본도 채집할게요." 리븐이 보폭을 늘려 셴과 걸음을 약간 맞췄다. 문득 리븐이 생각해보니 셴은 땅바닥보다는 두 사람 주변에 펼쳐진 낡아빠진 건물들을 더 유심히 살펴보려 하고 있었다.

도보를 살펴보는 셴을 살펴보기를 5분째, 리븐은 반짝이는 엷은 물질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물질들이 결정을 이루어 윤기 나는 하얀색 무정형 모양으로 뭉치면서 늦은 오후 햇빛을 반짝거리고 있없다. 리븐이 물었다. "다 온 걸까요?"

셴이 몸을 구부려 말라붙은 점액을 살펴보다가, 눈길을 옮겨 그 너머로 쭉 점액이 튀겨진 모양을 발견했다. "저기 저 쌍문 근처에서 끌리는 자국이 시작되었나 본데."


"이렇게 오래된 데 오니까 소름끼치려고 하네요." 그렇게 리븐이 말하는 사이 둘은 서류 캐비닛과 선반과 쓰러지려는 책상 등 망가져 가는 온갖 집기들 사이를 지나갔다. 하얀 곰팡이로 얼룩진 벽이 나오자, 리븐은 셴에게서 잠시 떨어져 곰팡이가 긁힌 듯한 자국을 발견해 살펴봤다. "당최 인간 살점 먹고 다닌다는 놈 흔적이 아닌데요. 여기서 살아서 뭔가 먹고 다니는 놈이 있으려면 초식동물밖에 없어요. 여기 있어 봤자 이상한 버섯밖에 못 먹고 다닐걸요."

"그거 참 안심인데." 셴이 대답하며 점액 한 뭉치를 발로 주욱 그었다. 쭈욱 빨아들이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흐음."

희미한 햇빛줄기들이 먼지 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며 방 안에 희부윰히 자욱한 먼지를 비처었다. 리븐이 말라 비틀어진 관상용 사무실 식물을 멍하니 살펴보다가 멈칫했다. "이건…?"

셴이 막대기 모양 은빛 도구 (재단의 최첨단 조사용 찌르미인 모양이었다) 를 들고 점액을 쿡쿡 찔렀다. 앞서 봤던 점액은 다 말라붙고 살짝 바스러지려 했으나 이 방울은 부드러운데다 막대기가 숭숭 헤치고 지나갔다. "다 왔나 봐."


희끄무레하고 아직 생생한 점액 자국이 복도를 따라가며 자꾸 굵어지다가, 복도를 4분의 3쯤 걸었을 때 자국이 갑자기 꺾여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지원팀 하나에게 대기하라고 말해놨어." 둘이 열린 문으로 천천이 다가가던 중에 셴이 그렇게 말하고,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슥 집어넣었다. "10분 있다 내가 안 돌아오면 여기서 나가."

젠장, 거기까지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재단 프로토콜이 가끔 보면 정말 무섭다니까. 리븐은 그렇게 생각하며 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긴 셴 요원님이 이런 소리는 벌써 몇만 번째지. 한 번이라도 정말 못 나올 거라고 생각해 보셨는지 몰라.

셴이 방 안으로, 마치 자신이 폐건물 단지로 파견된 이유를 증명하려는 듯 순조롭게 살살 걸어들어갔다. 리븐은 기다렸다.

뭉툭하게 들려오는 끼에엑 소리, 그리고 약간 축축하게 나는 철벅 소리, 마치 양동이에 담긴 너무 익은 과일들이 발에 밟혀 으깨지는 소리였다. 리븐이 움찔하며 주사기 케이스를 넣어둔 호주머니를 매만졌다. 그리고 콩닥이는 심장을 몇 번 느끼며 기다렸다. 뭉툭하게 들려오는 놀란 듯한 소리, 그리고 한 마디. "허어."

리븐은 이제 그만 기다리기로 했다. "셴? 괜찮아요?" 복도에다 대고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말도 안했는데 기척을 드러내면 어떡해, 라고 평소 같았으면 말했겠지만 그냥 들어와도 괜찮아 보인다." 리븐에게 다행히도 셴은 평소처럼 침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찾던 무서운 괴물이, 음 뭐야, 좀 뻥튀기된 점이 있어서 말이지."

리븐이 방으로 후다닥 뛰어들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변칙개체를 보자 움직임이 딱 멈췄다.

셴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눈앞에 있는 변칙개체는 리븐이 예상하던 괴물이라기보단 무지하게 크고 뭉툭한 다리 달린 정원달팽이에 가까웠다. 적어도 목 길이가 4피트라는 소리는 사실이었지만. 이 생물체 녀석은 굼뜨고 창백했으며, 목 끝에 달린 매끈한 얼굴에는 두 눈과 입만 있었다. 발치로 목을 내리깔아 둔, 지금 선다고 서 있는 상태에선 키가 겨우 리븐의 무릎께에 닿을락말락했다.

갑자기 나타난 리븐을 보고 생물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자, 셴이 흠칫하며 손을 테이저건으로 가져갔다. 생물체가 가래침을 배앝는 듯한 목소리로 새되게 소리쳤다. "날 산 채로 데려갈 생각 마라!" 그리고는 가장 가까운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목이 걸려서 멀리 가지 못했다. 입 벌리고 모음을 길게 끌다 보니 목이 빠르게 쑥 부풀었나 보다, 하고 리븐은 생각했다. 생물체가 당황해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시무룩한 듯 목을 다시 오므라뜨리며 바닥에다 몸을 눕혔다.

셴이 발로 생물체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네가 그 일명 씩 웃는 자야?"

생물체가 분한 듯 뭐라 웅얼거리다가 말했다. "아니다. 우리 형이다. 형이 진짜 씩 웃는 자인데. 형이 진짜다. 형이 와서 너희를 잡아먹을 거니까. 그러니까 두려워하라."

리븐과 셴이 서로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생물체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뭉툭한 다리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 애썼다. "날 방해한 걸 후회해라. 나도 위험하다니까." 눈구멍에서 액체가 줄줄 흘러나와 얼굴가의 질뻑질척한 웅덩이로 뚝뚝 떨어졌다.

셴이 입을 열어 말을 꺼내려는 찰나, 리븐이 먼저 선수를 쳤다. 리븐은 달팽이 비슷한 개체 앞으로 슬슬 걸어가 자신이 가져왔던 주사기 하나의 뚜껑을 벗겼다. "좋아, 네가 씩 웃는 자의 동생이라면 그쪽도 잡혀 들어가 주셔야겠는데. 순순히 협조하면 이것까지 쓸 필요는 없을지도." 리븐이 주사기를 살살 흔들자 안에 든 액체가 크게 출렁였다.

끼에엑 비명소리, 그리고 생물체의 목이 다시 부풀어올랐다. 리븐이 주사기를 집어넣고 셴을 슬쪽 본 다음 (셴은 한 번 끄덕였다) 말을 이었다. "너는 인류의 위험, 우리는 인류를 지킬 수밖에 없지. 그리고 너네 형도 찾아낼 거야. 왜 사람을 협박하냐고 진지하게 이야기 한 번 해야지."

생물체가 다시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옆으로 쓰러져 한 번 훌쩍였다. " 찾아야 좋을 것이다."


1분 30초가 걸려서 지원팀이 도착했다. 1분이 걸려서 지원팀이 씩 웃는 자의 동생을 구속하고 진정제를 투여했다. 20분이 걸려서 생물체가 건물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기다리던 수송기로 들어갔다. 생긴 모습보다 훨씬 무겁고 끈끈한 녀석이었다.


"끈기 있게 맡은 일 다해줘서 고마워." 셴과 리븐이 키류 실험실의 별로 비밀 아닌 예비실 군것질거리 뭉치를 털어가는 와중에 셴이 말했다. 리븐은 쿠키 상자를 뜯어 냠냠 먹고, 셴은 역시 건강 챙기는 사람답게 귤 하나만 잡아 껍질을 깠다. 임무 디브리핑이 적당히 짧게 끝나고, 이제 재단에서 붙잡아둔 개체를 추가로 설명할 보고서를 제출할 때까지 한 시간인가 남아 있었다.

"씩 웃는 자라는 놈이 정말 존재할까요? 아니면 그놈 형이 정말 있었을까요?" 리븐이 소매에 묻은 부스러기를 탁탁 털어내며 물었다.

"알 길이 없지. 우리가 붙잡은 놈 지금 막 면담 들어갔을 텐데, 솔직히 그놈이 애초에 재단을 어떻게 알았는지부터 더 궁금해." 셴이 귤껍질을 끊어지지 않게 다 깐 다음 껍질을 구형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놓았다. "면담 끝나고 뭘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고. 여하튼 특이한 임무였으니깐."

리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류 실험실 와서 가장 흥분되는 현장학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재미있었어, 하고 생각하며 예비실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댔다. 또 너무 오랫동안 실험실에 붙잡혀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게 재단 일 처음 시작할 적엔 너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솔직히 실험을 몇 번씩 계속 시도하고 하자니 연구원으로서 의욕이 죽죽 깎여나갔다. 변칙현상들이 나중에는 당연한 현상으로 편입된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조금 서글프니까. 처음에 충만했던 그 불꽃 튀는 경이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요즘은 뭔가 또 재미있는 일 안 생기나 궁리만 줄창 하고 있었다.

리븐의 핸드폰이 울렸다. 또 인턴 녀석들이 자기 필요하다고 실험실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벌써 피로가 밀려오는 듯했다. 낮잠 잘 시간이라도 주면 안되나…

때르릉 때르릉, 명랑한 벨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리븐은 전화 건 사람을 확인하고, 오랜 고통에 찌들며 참아왔던 한숨을 푸욱 내쉰 다음 전화를 받아 어정쩡하게 말했다. "예 박사님."

"리브, 연소 연구실이야. 자네가 맡은 새가 씻기려던 중에 폭발해버렸어. 그냥 물에 닿았는데. 이상한 놈이지. 나랑 있던 인턴한테 생물재해 팀 부르라고 시켰는데, 이 새… 라기보단 뭐랄까 새였던 것을 청소할 사람이 필요해서 말야."

리븐이 눈을 끔벅였다. 그놈의 새는 약간은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말이지. "잠시만요 박사님, 연소 연구실이면 그런 사건에 대처할 장비는…"

"바닥이 용암 됐어."

리븐이 웃음을 만면에 띠며, 예비실 벽장에서 비상 소화기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 말부터 하셨어야죠,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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