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속에 내 영혼은 봉인되었네

조나단 퍼시Johnathan Percy 병장 부모님 귀하,

아드님께서 8월 12일(월) 순직하셨음을 애석한 마음을 담아 통지드립니다. 순직 당시 수행하던 임무가 민감한 정보에 해당하고 또 저희로서 함부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종합적 상황이 존재하는 관계로 자세한 사항은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아드님께서 신념에 따라 목숨을 바치셨다는 점은 확실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보상 및 장례 절차에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첨부문서에 기재한 담당자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스피어크로스 프라이빗 솔루션SpearCross Private Solutions 이사 토머스 매케인Thomas McCain

내 장례식은 불투명 관을 써서 치렀다는군. 그럴 만도 하지. 템플턴Templeton은 그런 일이야 사적 문제고 또 아주 훌륭하다고 했어. 우리 가족은 내가 세상을 떠났대도 너무 놀라지는 않았을 거야. 사실 우리끼리 얘긴데, 적어도 내가 죽은 덕에 뭔가 얻는 게 생겨서 꽤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솔직히 살아 있었을 때도 내가 별로 기분이 기뻐지는 녀석은 아니었거든.

아이구 그 표정 보시게. 왜 내가 과거형으로 말하는지 궁금할 테지. 아직도 살아 있는데 말야. 숨쉬고 먹고 말하고 싸고 오만 지랄 다 하는데. 뭐 사실이기는 해. 내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워서 그럴 뿐이지. 이런, 너무 횡설수설했나. 앞에 사람이 있으면 곧잘 그래. 분명히 질문거리가 많을 거야. 여기 사람들은 보통 그러니까.

어떻게 노출되셨냐고? 그런 질문은 좀 색다른데. 여기 사람들은 대개 보고서를 읽어보고 바로 핵심만 파고들거든. 자네가 좀 의심이 많은 성격인가 보다, 그러니까 이번에 자네가 여기로 왔을지도. 솔직히 뭔가 극적인 사정이랄 것도 없는데. 일단 나는 업무 중에 죽었어. 에어컨이 머리 위로 떨어졌거든. 내 시체는 석방 서류에 의거해서 영안실로 갔는데, 마침 워낙에 흔해빠진 사인을 보유한 시체를 찾는다길래 선택당했지. 자, 원래 보고서에는 447은 애초에 시체에다가 실험하면 안된다고 그랬겠지만, 그거 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소리야. 아냐, 사실 몰래 실험 다 해. 그리고 난 그 실험에 자원당한 녀석이었지.

실험 결과, 뭐 이렇게 됐어. 5분 동안 그 속에 들어갔더니 살아났더라고, 아주 건강하게. 아하, 자네 지금 갑자기 뭐 하는지 알겠다, 파일을 뒤져보려 하겠지. 뭐야 그거, 정신 감정서? 에이 거기 써진 소리 좀 적당히 알아서 걸러들어. 아니 나 뭐 이상해진 점 없어, 다른 피험자들도 그렇고. 447는 죽은 사람 살려주는 변칙개체야. 그것밖에 없어. 무슨 좀비, 돌연변이, 그런 원숭이 손 같은 스토리 없다니까.

뭐 굳이 내가 자네랑 달라진 점이라면, 그리고 내가 이 창문 뒤에 갇히고 자네가 바깥에 있는 이유라면, 나는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봤다는 거야. 빛 속으로 들어가서 어떤 터널을 쭉 뚫고 나왔지. 아무것도 없었어. 야 이거 말로는 설명하기 불충분하네, 말이란 것도 실체가 있고 역사가 있다 보니. 보통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 캄캄하고 텅 빈 공간이라든가 아무 특징도 안 보이는 하얀 평원 같은 거 생각하잖아. 그 한복판에서 길을 잃는, 아무것도 없음 속에 갇힌 걸 상상하겠지.

아니, 텅 빈 공간도 하얀 평원도 없어. 어디에 갇힐 수라도 있는 자신조차도 없어. 그냥 멈춰버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야. 재단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을, 그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 누구 희망처럼 극적인 사건도 없고 그냥 다 없어. 재단이 뭘 하든 아니면 누가 있든 아무 상관이 없어. 재단이 보존한다는 경의도, 또 괴물들, 살리고 죽은 목숨들, 영웅스런 행동, 잔혹한 짓거리, 계시, 진일보, 창의적 발상, 광기에 잠식된 영혼도. 인류를 위한 모든 게 다 그래. 모래밭에 그린 그림 같아. 아무 의미 없어.

그래서 쟤네들이 모르도록 하는 거야. 재단은 맨날 세상에서 중요한 건 과학, 이성, 명백한 사실, 그런 것들인 척해. 헛소리야. 세상에서 중요한 건 믿음이야. 제일 지쳐 빠진 연구진이라 그래도 뭔가를 믿어야지 우리가… 너희가 하는 일을 이어나갈 수 있어. 믿는 건 이성일 수도 있고, 과학적 방법론, 공동선, 아님 신일 수도 있지.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가 아는 걸 깨닫는… 뭐 그랬을 때 재단이 산산조각나겠다고 쟤네들은 본 거지. 그래서 우리를 입 다물려서 숨겨놓고 바깥에는 우리가 괴물이라고 설파하는 거야. 보통은 자기들 스스로 그런 소리를 잘도 믿지. 그런데 가끔씩은 섬뜩해져. 이상한 생각이 들거든. 우리가 뭔가 놓친 건 아닐까? 분명히 저것 말고 뭐가 또 따로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자네 같은 사람을 보내는 거야.

이건 자네 앞에 왔던 사람들이랑 O5들한테도 했던 이야긴데 말이야. 이제 좀 기뻐해도 돼. 더 이상 아무것도 무서워할 게 없어. 뭐뭐가 무서워서 한밤중에도 잠을 설치고, 무슨무슨 공포를 간신히 격리해서 잠시라도 틈바구니 보였다간 쉽사리 압도당할 것 같다고? 그냥 다 풀어주고 내비둬. 물론 세상이 불타고 사람이 죽겠지만 그것밖에 더 있겠어. 어차피 다 똑같아, 다 겪는 거 좀 빨리 겪는 거지. 적어도 잠은 잘 올 테잖아, 잠깐 동안이라도.

또 말할 거 있냐고? 아니, 딱히 없는데. 끝이야 그럼? 아깝네. 뭐, 그럼 이제 중요한 일 좀 하러 가. 보고서 쓰고 스킵 격리하고 세계를 지켜야지. 수고 많이 해, 바쁘게 살면 나쁘진 않지. 아,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공 하나만 갖다주면 안돼? 아님 동전 몇 개라도? 와, 카드 덱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여기서 지내면 가끔씩 진짜 따분하다니까.

경과 보고서 SCP-447-1-A

SCP-447-1 개체들은 여전히 재단과 그 목적에게 극도로 불온한 경향을 표출하며, 더불어 이전에 관찰된 바처럼 허무주의적 정서를 표시하고 있다. SCP-447-1 개체들의 발언은 대상들의 발화에 내재하는 교묘한 밈 성질을 감안하여 추후 통지 시까지 신뢰불가능한 자료로 취급한다. O5 사령부의 의지에 따라 SCP-447의 진정한 성질을 계속해서 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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