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색 파장의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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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까는 광대
눈을 떴다. 시간은 아홉시 삼십분. 내 안에 비극이 살아숨쉰다.

《 純粹와의 舞蹈 》

나는 종종 저 새하얀 눈밭 위를 거닐곤 했다.

새하얀 눈밭에 새겨지는 검은 발자국에 아이들은 더욱 신나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나는 그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붓질 한번에 담겨있는 세상. 언뜻 보면 가벼운 그 붓질 안에는 그 무엇보다 무거운 심상과 추상적 현실이 담겨있다. 한땀 한땀, 그려지는 아이들과 그려지는 눈밭. 불필요한 피상체들은 내 세상에 없다. 오직 순수만이 담겨야한다.

캔버스와 물감, 캔버스 위에 잔뜩 칠해진 흰색 물감은 우리의 동심과 같이 새하얗게 남아있기를. 아, 순수함이여 우리의 곁에 남아 이 하늘 아래 미천한 피조물들을 축복하소서.

스윽, 붓이 세상을 만드는 소리. 우리의 심상은 언제나 아름답단다 작은 꼬마야.

스윽, 붓이 세상을 만드는 소리. 진정한 새하얀 것들을 저 새하얀 눈밭 위에 그리자니 캔버스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마라, 캔버스에 묻은 내 때와 의지들은 그 무엇보다로 붉고 영롱하게 불타오르니.

곧, 나는 다시한번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는 순간을 즐기고자 캔버스 너머를 바라봤다.

하지만 없다. 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도 거대한 행복감에 몸서리쳤다.

《 담배 》

담배에 붙은 불은 새빨갛다. 내 열정이 담배를 태워가며 점점 희미해져간다.

내가 입에 문 필터까지 불씨가 도달하기 까지 앞으로 5분, 저 양복쟁이들이 빠를까 내 열정이 빠를까?

연기를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이 짙은 연기는 담배 연기일까 아님 내 입김일까? 잘 모르겠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살다보면 가끔은 중요하지 않은걸 무시할 필요가 있다.

달린다.

세상이 담긴 캠버스를 내 가방에 조심히 쑤셔넣고 달린다.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검은 파장으로 나를 휘감으려한다.

달린다. 단 한번의 붓질을 위해 달린다.

나는야 새하얀 예술가라네, 검은 양복의 마수가 내 목을 조르려 쫓아오지만 나는 어둠보다 빠르고 빛보다는 느리다네.

달린다. 내 앞에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있다.

나는 내 뒤를 쫓는 검은색들을 피해 저 낡고 더러운 건물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 無彩色의 波長 》

숨을 멈춘다.

입꼬리가 아려온다. 고통이 나의 원초적인 감정과 춤을 춘다. 입가에 스멀스멀 기어올라온 이것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걸음 하나에 담긴 행복감이 하나의 파장이 되어 건물 안을 헤집는다.

여러명의 발소리, 개중 하나는 나의 것. 하나의 흰 파장과 다섯의 검은 파장. 참으로 소란스럽구나.

파장의 공명. 검은 파장과 흰 파장이 공명하며 길을 밝힌다.

하나, 둘, 내 주위를 둘러싸는 흑빛의 파장들.

저 검은 파장들은 결국 나를 한곳으로 몰아 내 세상을 찢어버리겠지, 흰 것들은 모조리 찢어버리겠지, 나를 찢어버리겠지.

계단에 차분히 앉아 어둠 속을 관음하던 것들이 무채색의 공명에 힘입어 잔뜩 일어난다. 이 먼지낀 공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모두의 호흡을 틀어막으리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어떤 계단이든 끝이 존재하는법.

바쁘게 뜀박질하는 소리가 흰 파장의 결말이여선 안된다. 이대로라면 흰 파장은 검은 공명에게 오염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공명을 뼈저리게 느껴봤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이번에는 달라야만 한다. 반드시 달라야만 한다.

이번에는 다른 파장을 일으키자. 이왕이면 색다르게 적색으로.

잠시간의 고민. 적색 파장이 어떤 공명을 야기할까, 내 흑색일까 아니면 백색일까. 나는 정답을 안다.

나는 정말로 정답을 안다.

《 共鳴을 讚美하라 》

단단한 두개골, 더 단단한 돌덩이. 머리를 찍자 터져나오는 뇌수.

검은 파장도 머리에는 적색이 흐르는구나.

시야가 바닥으로 추락한 그놈이 비명지른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시 돌덩이를 들어올렸다. 시끄러운 흑색 소음.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제 멎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의 추상. 다른 흑색 파장들은 숨죽인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흑색들은 스스로가 죽인 숨을 한움쿰 쥐고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저 문 뒤의 저 살덩이, 손에 들린 그 조그마한 흉기만을 믿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가. 나는 이미 총성을 보았고, 어차피 결과의 오랏줄에 목매달린 흑색들은 적색을 토할것인데.

우스운 놈은 천장을 보지 않는다. 우습게도 공포에 질린 탁한 눈빛, 천장에서 낙엽이 추락했다.

바닥에 떨어진 단풍은 벌써 가을이 왔는지 붉게 물들었고, 차가운 가을 바람에 오들오들 떠는 우스운 놈의 손끝을 기꺼이 짓밟아주었다.

하나, 둘, 셋.

둘의 심상—두개의 살코기, 두개의 파장, 두개의 흉기, 반절의 공포. 아무래도 공포의 총량은 불변인가 보다.

한놈의 머리에 놓인 보랏빛 지평선. 옛날 사람들은 배가 지평선을 넘어서면 저 아래로 추락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다른 한놈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떨어지는 배, 난파된 배에는 선장이 타고있다. 그렇다면 선장의 사인은 무엇인가? 아마도 익사 아니면 추락사겠지. 사실은 둘다였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중요한게 아니다.

다른 한놈의 눈망울에 맺힌 피눈물. 패닉에 물든 심박수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붉은색을 곳곳에 잔뜩 흩뿌리려 한다. 이왕이면 하트가 좋겠다.

심박수는 하트 두근거리는 가슴에, 놀란 새가슴 찢어지는 비명에. 두근두근, 긴장의 최후는 아름다운 불꽃놀이 축제일지어다.

입꼬리가 아려온다. 고통이 나의 원초적인 감정과 춤을 춘다.

하는 환희의 폭발음, 오늘 밤의 폭죽은 적빛이구나! 흰 세상은 흰색 남더라도 내 도화지는 붉은색을 갈망한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이젠 하나남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지않은 아이의 머리카락 보인다. 벽넘어 저곳에 보인다.

삐에로는 언제나 웃고있는게 좋아. 하지만 광대가 될 바에는 차라리 울고있겠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선은 저기 튀어나온 머리카락과 견주어도 손색없고.

추상이 이리저리 흩날리며 피날레를 장식하려한다. 신나는 팡파레, 손을 뻗어 미세하게 진동하는 그 머리채를 낚아채는데,

문제는 그게 우스운 놈의 시체였다는거지. 이미 식은 육신의 머리채는 너무나도 차갑다는거지.

뒤에서 울리는 검은 파장의 발소리. 늦었나? 이번에는 알것같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늦었구나. 똑딱거리는 내 심장 소리에 눈감을 시간조차도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정답은 오답이였다.

결국 뒤에서 마지막 총성이 울려퍼ㅈ


어느 겨울날 오후, 낡은 건물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궤도는 직선, 백색의 뇌수가 바닥에 흩뿌려진다.

눈을 감지도 못했다. 시간은 십 칠시 오십 일분. 내 안의 비극은 어디로 갔을까.


발생 일자: 20██/██/██

장소: 경기도 상흥시

설명: 20██년, 재단에 구류되어있었던 요주의 단체 "Are We Cool Yet" 소속 변칙 예술가 최██가 [편집됨] 사건 과정에서 탈출했다. 그 뒤 [편집됨] 사건이 종결된지 약 2개월 후, 경기도 상흥시 부근에서 최 씨의 것과 동일한 특질을 나타내는 변칙 공예품이 다수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 총 6명의 재단 인원들이 투입되었으며, 이후 최 씨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3명의 민간인들을 납치한 뒤였다.

투입 인원들은 직후 도주하는 최 씨를 추격하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최 씨는 폐쇄된 고층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이에 투입 인원들 또한 해당 건물로 진입했으나, 건물의 구조 탓에 최 씨를 찾는데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현장에 있었던 인원 5명중 총 1명의 인원이 사망하고 3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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