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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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거리는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웨스턴 바 안을 가득 매웠다. 대문에 달린 '남쪽의 트롤 바'라고 적힌 팻말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잔뜩 흔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땅딸막한 사내였는데, 그는 가게 안을 살피더니 베리어의 정중앙 자리에 앉았다. 알싸한 와인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듯하였다. 바 안은 이 동네의 유일한 술을 파는 가게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만큼이나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의자와 테이블은 낡아 삐걱거리기 일쑤였고, 조명 두 개 정도는 꺼져서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부의 공간이 넓지도, 그렇다고 바텐더에게 큰 매력이 있지도 않아 사내는 허풍 꾼들에게 속아 넘어갔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내는 몸을 돌려 바 내부를 둘러보았다. 칵테일의 재료들과 잔으로 가득 찬 두 개의 중앙 선반이 가운데에 붙어있는 보랏빛 네온 사인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바 안에는 사내 이외의 손님이라곤 아무도 없었으며, 텅 빈 테이블들이 이 장소의 인지도와 질을 대변하는듯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는 구석진 골목에 위치해 있었고, 그 골목은 수많은 거래와 주먹다툼이 숨 쉬듯 일어나는 곳이었다. 사내는 경찰들 마저도 꺼려 하는 이런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한 주인은 간도 참 크다고 생각하며 바텐더를 불러 맨해튼 한 잔을 주문했다.

곧이어 바텐더가 체리가 담긴 통을 찾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오시는 분이시지요?" 바텐더는 온화한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람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넓게 벌어진 어깨는 평범한 크기의 머리가 작아 보이게 하였고, 고급 져 보이는 옷은 근육들을 감추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바텐더는 사내에게 맨해튼을 내주며 미소 지어 보였다. "오는 길에 지치셨을 텐데 편안히 있으시죠."

"괜찮네." 사내는 두 손을 들어 거부한다는 의사를 더욱 확실히 하였다. 겉모습과는 다른 말투가 인상적이라고 바텐더는 생각했다.

사내는 비록 칵테일의 여왕이라 칭송받는 맨해튼을 주문하였지만 잔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입에 가까이 하여 목구멍으로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는듯하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바텐더가 말했다.

"아닐세. 그저 잠시 멍 때리고 있었을 뿐이네." 사내는 바텐더에게 잔을 들어 보였으나 마시지는 않은 채 내려놨다.

그 후로 십분 정도가 지났을 때 바텐더는 칵테일에는 입도 대지 않고서 그저 불안해하기만 하는 사내에게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뭔가 말할 게 있으신 건가요?" 아무리 기다려도 사내가 말이 없자 바텐더는 닦던 잔을 내려놓고 사내를 향해 눈을 껌뻑였다. 그제서야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오랜 친구와 술을 마시다 들은 얘기인데, " 사내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와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바텐더에게 내밀며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사내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원래의 삐쩍 마른 얼굴보다도 더 흉측한 몰골이었다. "당신이 내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하더군." 바텐더는 사내가 내려놓은 동전 세장을 잠시간 응시하더니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사내와 눈을 맞추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바텐더와 사내 가운데 무겁고도 오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바텐더는 피식하며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투로 빈정거렸다.

"도대체 어떤 말을 듣고 오셨길래 십 원 두 장을 내미셨을까요?"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당신과 대화하면 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말." 사내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바텐더가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오늘 손님은 당신이 마지막인듯하네요." 바텐더는 문을 걸어 잠그고 팻말을 'Close'로 바꾸며 말했다. 이제 바 안에는 사내와 바텐더만이 남았다.


바텐더는 눈처럼 새하얗고 두꺼운 초 두 개를 가져왔다. 사내는 바텐더가 초에 불을 키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았고, 은은한 불빛이 촛농을 한두 방울 정도 흐르게 만들고 나서야 바텐더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거죠?" 촛불이 화르륵 소릴 내었다.

사내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게, 얼마 안 된 일인데 말이오. 최근에 그 일이 터졌잖소? 그 스피릿 관련해 가지고" 사내가 마지막 말을 속삭이듯 작게 말하자 바텐더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웨인 엘 서거시 말씀하시는 건가-"

"쉿!" 사내가 주위를 살피며 황급히 말했다. 바텐더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려고 하였으나 입을 닫고 고개만을 끄덕였다. 사내는 그제야 안심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거 둘러싸고 암살이니 뭐니 서거 시가 불쌍하니 그런 말이 있었잖아. 그런데 그 일로 해를 본건 나 같은 직속 부하들이거든. 서거 시가 죽고 나서 델이나 에번 같은 놈들이 우릴 조지려고 쫓아다니고, 돈은 없고, 그렇다고 우릴 도와주는 사람들도 없는 판에 우리가 어떻게 했겠어? 에반이야 우리들보다도 빚 징수에 더 신경을 쏟을 테니 괜찮다 쳐도 델은 뭐,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 문제, 그럼 우리들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자살?" 바텐더가 말하자 사내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살은 아니고, 대부분 투항하거나 동료를 팔았지. 하지만 나랑 내 친구들은 그런 비열한 족속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우린 작은 사업을 시작했지. 사업이라 하기도 뭐한 게, 사실 그냥 도둑질이나 강도 짓이었어. 물론 놈들한테 걸려서 사지가 찢어발겨지고 싶지는 않았으니 매번 방식이나 복장을 바꿔가면서 했지. 그래도 돈은 잘 벌리더군. 나흘에 한 번꼴로 털다 보니 우리의 한창때처럼 때깔 나는 옷도 입고, 맛있는 밥도 먹으면서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한 기분이었어." 사내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그런 기분이었지."

"어느 날 밤이었어. 거실에서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군. 스피릿 놈들인 줄 알고 기겁해서 침대 밑에 숨어있었는데, 그 사이에 누가 내 돈들을 몽땅 들고 튄 거야. 그 도둑놈이 집에서 나가자마자 냅다 다른 동료들이 사는 집으로 달려갔더니 다른 놈들도 똑같이 당했다더군. 덕분에 우린 스피릿 놈들한테 안 걸리려고 나흘에 한 번씩만 하려던 짓을 그 주에만 세 번 가까이했어. 매번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지. 짭새들은 문제가 아니었어. 짭새들은 여기서 무슨 일이 있건 신경도 안 쓸 테니 말이야. 문제는 우리가 털던 곳에 스피릿 놈이 앉아서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였어. 걸리는 그 순간 우린 죽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뭐, 그래도 다행히 걸리지는 않았어."

"어쨌건 그렇게 다시 돈도 모으고 그럭저럭 살만 해졌을 때 그 일이 터진 거야. 동료 중 한 명이 스피릿에 잡혀갔어. 몇몇은 구출해 내자는 말을 하더군. 하지만 대부분이 그에 반대했고, 잡혀간 친구는 결국 다신 볼 수 없었어. 그리고 며칠 뒤에 누가 또 잡혀갔어. 며칠 뒤에는 다른 놈이, 그 며칠 뒤에는 또 다른 놈이 잡혀가자 우린 내부에 배신자가 있음을 확신했지. 그래서 나는 베리라는 친구 하날 데리고서 다른 연놈들 뒤를 캐기 시작했어. 뭐, 베리 그 자식은 스피릿 쪽에 진 빚 때문인지 성격이 조금 오락가락하곤 했지만 그래도 다른 동료들 중에서는 그나마 믿을만한 놈이었거든. 어쨌든 제인, 기욤, 테드, 딘 그렇게 하나하나 뒤를 캐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베리가 나에게 몰래 찾아오더군."

"베리는 조쉬가 의심스럽다 했어. 매일 밤마다 어딘가로 우리들 몰래 어딘가로 나간다는 거야. 걸려들었구나 싶어서 조쉬 그 자식을 조질 계획을 짜기 시작했지. 그놈이 다음날 새벽에 돌아왔을 때 총으로 머리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거야. 간단했지만 그럴듯해 보이지 않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베리는 동료들 옆에서 애들을 지키기로 했고 내가 직접 조쉬의 모가지를 따버릴 생각이었어. 가끔씩 보면 영화 같은 데서 사람을 쏠 때 무슨 굉장한 긴장감이 드는 듯이 표현하던데 그거 다 개소리야. 조쉬를 죽이는 건 간단했어. 걔가 집으로 돌아올 때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기만 했으면 됐거든." 사내는 한숨을 한차례 푹 쉬더니 떨리는 손으로 잔을 잡아 맨해튼을 한 모금 마셨다.

"계속하지" 사내는 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조쉬의 시체를 땅에 파묻을 생각이었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라 생각했거든. 구덩이가 내 허리 높이 정도까지 올만큼 파내려 가자 갑자기 손전등 불이 날 향해서 탁 켜졌어. 곧이어 딘의 비명이 들려오더군. 베리 그 개자식이 손전등으로 날 비추고 있던 거야. 친구들을 전부 데리고 와서 날 차갑게 쳐다보고 있었다고. 바로 감이 오더군. 난 뒤통수 맞은 거였어. 나는 그 자식에게 얼마 처먹었냐며 베리에게 달려들었어. 그랬더니 그놈이 곧바로 날 향해 총을 쐈지. 젠장할 어깨에 맞긴 했다만 더럽게 아프더군. 난 뒤를 기약하며 욕지거릴 내뱉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도망치려고 했는데 바로 옆에서 발길질이 날라왔어. 내가 쓰러지자마자 개자식들이 날 마구 밟아대기 시작하더군. 그리고 난 그 가운데서 날 향해 웃고 있는 베리의 면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지. 심지어 그 새끼가 쓰러진 날 보고 뭐라 했는지 알아?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살려는 주겠다는 거야. 그 개자식이." 사내는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결국 난 모든 일을 뒤집어 쓴 채로 버려졌지. 여기서 문제. 내가 그때 어떻게 했을것같나?"

"글쎄요, 복수하셨나요?" 바텐더가 말했다.

"당연하지." 입꼬리만 씩 올라간 사내의 얼굴은 썩 보기 좋지는 않았다. 사내가 바텐더에게 얼굴을 가까이하자 바텐더가 움찔하며 약간 뒤로 물러났다. "난 스피릿 놈들, 델한테 찾아갔어. 별로 찾기 어렵지도 않더군. 그냥 술집에서부터 그놈의 오른팔을 따라다녔더니 바로 찾을 수 있었거든. 난 델한테 무릎을 꿇고 말했어. 내가 서거 시 잔당들의 위치를 안다고, 난 어찌 되던 상관없으니 그 자식들을 죽여달라고. 그러자 델이 ㅡ


ㅡ 그러자 델은 폭소하였다. 눈앞의 사내가 작은 개미만도 못해 보였는지 어이가 없었는지의 여부는 사내로써는 알 길이 없었다. 델은 사내가 우습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델이 사내의 머리를 툭툭 치고 쓰다듬으며 "오 친구여." 와 같은 말들을 내뱉자 사내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곧 델의 부하들이 다가와 사내를 일으켜 세워 양 팔을 포박하였고, 그제서야 비로소 델의 입이 열렸다.

"도와달라고?" 사내는 델의 의문형에 벙찐듯 쳐다보았다. 델이 말을 이었다. "도움 좋지. 원래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도움 좋다 이 말이야.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군." 델은 사내의 뺨을 잡아당기며 비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널 도와서 내가 얻는 이익에는 뭐가 있지? 친구, 세상은 이익관계에 따라 움직여. 쉽게 말해 돈에 따라 움직인다는 거지. 그런데 너는 내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뭔갈 요구를 하고 있어.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 뭐, 목숨이나 애들 움직이는데 드는 돈이야 껌 값인데 나는 손해를 보고 그냥 넘어갈 위인은 안되거든. 안 그래?"

사내가 떨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 그럼 내가 뭘 하면 되지?"

"글쎄, 난 모르겠군. 넘치는 게 노동력이라. 자네는 아는가?" 사내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는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델은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더니 방금까지도 앉아있었던 책상으로 다가가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검은색 권총 한 정이었다. "정 모르겠으면ㅡ자, 받아ㅡ직접 하면 되지 않나?"


사내는 코트 안에서 검은 권총 한 정을 꺼내 바텐더의 앞에 내려놓았다. 사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이 총으로 그 자식들을 찾아갔어. 내가 누굴 어떻게 죽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네. 그저 겁에 질린 비명소리만 기억할 뿐.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는 웃고 있었어. 하나같이 나에게 빌었고, 나는 그들의 머릴 밟고서 총을 쐈제꼈어. 그렇게 나는 성공적으로 복수를 끝낼 수 있었지. 뭐, 굳이 흠을 하나 찾자면 짭새들이 날 쫓고 있다는 것 정도?"

잠깐 동안 바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끝이라네." 사내는 손을 저으며 말을 끝마쳤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그러자 바텐더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이미 모든 문제가 일단락된 것 같은데요. 굳이 제게 이미 끝이 난 문제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가 있나요? 아니 그전에, 그 이야기 확실하게 끝난 건 맞나요?"

사내는 아무런 말없이 테이블 위의 권총을 코트 속에 집어넣었다. 바텐더는 그의 손이 꽤나 강렬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내와 바텐더에게 만은 수십 시간과 같은 몇 초간의 정적이 이어진 뒤에야 사내가 마른 세수를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아무것도 아닐세."

곧이어 바텐더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절 찾아올 이유가 없었겠지요. 만약 손님께서 계속 말씀하시지 않고자 하신다면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사내는 눈을 감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바텐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알았네, 알았어." 사내는 포기했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미간을 짚었다. 깊은 한숨이 몇 차례 터지는 그 사이에도 꽤나 긴 시간이 흘러갔으나 바텐더는 더 이상 사내를 압박하지 않기로 하였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사내가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내가.. 몇 주 전에 잠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았던 게 이 일에 관한 거라네. 그날까지도 난 복수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도취해 흥에 겨워있었어. 그러던 도중 하나 의문이 생기더군. 무언가의 찝찝함은 계속 남아있는 채였거든. 그러다가 침대에 누웠을 때 그제서야 번뜩하고 생각난 거야. 누가 우리들의 돈을 훔쳤는가. 에반은 우리의 존재조차도 모르는듯싶었고, 그렇다고 베리의 짓이라기 엔 그 자식의 돈도 털렸거든."

"사실은 이런 게 아닐까. 사실 우리들 사이에 배신자는 없었던 거야. 딘, 베리, 기욤, 제인, 조쉬 모두들 다 서로를 의심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배신을 한 적은 없는 거지. 그렇다면 베리는 왜 내 뒤통수를 갈겼을까? 나는 처음에 베리 자식이 델 쪽에서 빚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했어. 아님 최소한의 금전적 거래가 둘 사이에서 이루어 졌을것이라고 확신했지. 그런데 그놈이 돈을 받았다면 어짜피 죽여야 하는 나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고 살려뒀을까? 이런 논리를 따르게 되면 베리는 배신자가 아닌게 되는거지. 그렇다면 빚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중간에 나와 내 동료들의 돈이 전부 도둑맞았던 적이 있었지. 사실 그 도둑이 베리이고, 베리는 훔친 돈으로 은행 빚을 갚았다고 하면 들어맞지 않나? 게다가 누가 돈을 훔쳐갔는지에 대한것 까지도 설명이 가능해지지."

"그렇다면 동료들의 죽음은 무엇이지? 그래, 우리는 돈이 전부 털린 뒤로 과감한 행동을 취했어. 스피릿이나 짭새들의 추적 따윈 무시하고서 단기간에 많은 곳을 강도질했지. 그러니 덜미를 잡힐 수밖에. 델이 부하들을 보내 내 동료들을 죽인 거야. 그렇다면 델이 내게 총을 건네며 직접 처리하라고 한 말에 대해 설명이 돼. 내가 헛다리 짚은 데에 그놈은 수고를 던 셈이 되는거니까. 그렇다면 베리 개자식은 왜 날 조졌을까. 간단하게도 내가 배신자라 생각했기에 조쉬를 이용해서 날 조진 거야. 하지만 베리는 날 죽이지 못했어. 그 덕분에 나는 살아서 나갔고, 델에게 찾아가 남은 연놈들의 대갈빡에 구멍을 뚫어버린 거야." 사내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도 안 되지요." 바텐더가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건들이 성립되는 시나리오이기도 하지. 결국에 델만 우릴 죽일 수고를 덜게 된 거고. 그리고 이제 나는 이 젠장맞게 잘 맞아 떨어지는 시나리오 덕에 밤마다 동료들이 꿈에 나와 나를 물고 할퀴고 뜯고 하는 꿈에 잠을 설친다네. 항상 나를 배신자라 부르며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거야. 난 잠에 드는 것마저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네. 젠장."

"그게 손님의 문제군요. 손님이 저를 찾으신 이유일 테고요." 바텐더는 빈 잔을 들어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날 도와줄 수 있겠나?" 사내가 초조한 눈빛으로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손님께서 꾸는 꿈까지는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만, 저로서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할듯싶군요."

"꿈이라도, 꿈이라도 어떻게든 해주게. 나는 일주일 넘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단 말일세." 사내가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자 잔이 공중으로 약간 튀어 올랐다. 바텐더는 그 튀어 오른 잔을 잠시 응시하더니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사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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