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담은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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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분주한 술집.

틀림없이 우리처럼,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도저히 못 해 먹겠는 인간들이 많을 것이다.
벌써 23시인데 손님은 늘기만 한다.
우리처럼 마시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좀 눈에 띄나, 생각했지만 일반적인 샐러리맨이 남자 둘이서 마셔 대고 있는 어디서나 보는 풍경 같은 걸 신경 쓸 일은 없겠지, 하고 입 밖에 내는 일 없이 혼자 납득했다.

“야, 우리 피아노 학원 다녔을 때, 같은 나이대 애 중에 피아노 엄청 잘 치는 애 있었던 거 기억하냐?”

꽤 취기가 올랐는지, 붉은 얼굴로 과거를 보고 있는 듯한 눈을 하며 친구가 얘기했다.

분명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긴 흑발인 게 예뻤고, 활발했고, 두세 번 연습하면 거의 완벽하게 칠 수 있었던 재능 넘치는 아이. 항상 즐겁게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연주하고 있었던 아이였다. 단신 부임으로 여기까지 와 갖고는, 일본에서도 배우고 있었던 피아노를 그만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쪽에 와서까지 학원을 다니던 아이였다. 연주나 얼굴은 셀 수 있을 정도로밖에 들은 적이 없으나, 그 아름다운 아이는 좀체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있었지. ……아마 우리가 일곱 살 때 만났던 애 아냐? 귀엽고 다정하고, 그런 피아노 치는 애였지. 생각해 보면 우리 밴드에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말이야. 걔가 연주하는 격정적 곡조의 소리도 한번 들어 보고 싶었네.”

나와 얘는 옛날부터 친했다. 유년기에 피아노 학원에서 만나서부터 계속 학교 생활을 같이 해 왔다. 연탄 연주를 한 적도 있따. 지금은 말이 잘 맞는 술친구 중 하나이면서, 또 소중한 재즈 밴드의 멤버이기도 하다. 나는 테너 색소폰, 얘는 트롬본.

“너한텐 말 안 했는데, 걔 죽었대. 차에 치여 갖고. 비 오는 날에.”
“……그랬구나. 그 큰 콩쿠르 하나 이래로 얼굴을 영 안 봤으니까, 급이 달라서 다른 학원으로 본격적으로 연습하러 간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했지. 지금은 피아니스트 돼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 근데 넌 왜 그걸 아냐?”

“엄마가 그때 일본 연주회에 불려 나갔었거든. 걔 엄마도 우리 엄마랑 같은 피아니스트였어. 연주회에서 가끔씩 만났다는 거 같아. 그래서, 일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요전 번에 들었지. 역시 좀 충격이었지.”
“그거야 충격이겠네. 그렇게 죽기엔 너무 아까웠는데.”

잠시 침묵.

캉, 하고 온더록스로 주문했던 위스키에 담긴 얼음이 소리를 낸다.
그게 신호가 된 듯마냥 내 옆자리의 남자는 담배를 피운다.

“나 뭐냐, 걔 일본 돌아갔을 때부터 걔랑 펜팔을 좀 했었어. 일본어는 잘 모르지만.”
“뭐야 그거, 하는 의미 있긴 해? 걔도 영어 모르잖아.”
나는 펜팔을 안 했어서 좀 질투가 났다.
“아니, 우리 엄마는 좀 일본어 알기도 하고, 저쪽 엄마도 영어 잘 하니까, 번역해 달라고 해서 펜팔 했었던 거야. 그것도 1년밖에 안 했지만.”
“그렇구만.”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거 담배 한번 잘 피네, 하고 생각했다. 여기 와서는 2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한 갑이 동 났다.
주머니에서 새 걸 꺼내서 다시 피기 시작한다.

“그 편지 — 뭐 결국 다섯 장밖에 없긴 한데, 항상 날씨가 써져 있었어. 저쪽에는 사계절이라는 게 있으니까 신선했지. 항상 사진이 들어 있었는데, 겨울 설경이나 사람 붐비는 여름 축제나. 다양한 사진을 보내 줬지. 근데 가장 마지막 사진에 있잖아, 계절은 잘 모르겠지만 예쁘게 생긴 노을하고 비행운이 찍혀 있는 사진이 있었단 말이야. 그거랑 같이 들어 있던 수첩을 엄마가 번역을 해 줬는데, 그래도 나한테는 잘 뜻을 몰랐던 게 있었어. 아니 의미 자체는 아는데 심경을 잘 모르겠다 하나, 뭐라 하지 이걸, 뭐 그런 거.”

“뭐야, 일단 말해 봐.”
“‘비행운 위를 걸어갈 수 있으면 다들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다들 비행운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 것 뿐이야’랬지.”
“……뭐야 그거.”
“그치, 모르겠지?”

안주 삼아 먹던 견과류가 바닥을 보였다. 나는 단 게 먹고 싶어서 무언가 초코 계열 디저트는 없는지 점원에게 물었다. 어째 가토 쇼콜라라는 게 있는 거 같아서, 기뻐하며 그걸 주문했다.

“너 단 거 진짜 좋아하네. 위스키에 안주로 초코를 어떻게 먹냐.”
“그럼 너는 담배 안주로 술 어떻게 먹냐.”

그게 그렇게 되네, 하고 말하며 서로 웃는다. 서로 빈정거려도 웃을 수 있는 관계가 굉장히 편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데 어쩌면, 일본에선 화장이 주류라서 그걸 보고 그거를 쓴 게 아닌가 생각했지.”
“화장하고 비행운하고 뭔 상관이냐.”
“내가 피는 담배 연기 보고 뭔 생각 안 들어?”

그가 자주 피우는 내추럴 아메리칸 스피릿을 들이마시고는, 내뱉는다.

“연기는 위로 가지. 말하자면 하늘로 간다는 거야. 걔는 화장할 때의 연기를 본 걸 거야. 그 위에 비행운이 있었던 거겠지. 그래서 그런 거를 생각한 게 아닐까, 하고.”
“과연…….”
“순수했던 거겠지. 아니, 우리한테도 틀림없이 그런 때는 있었을 거야.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어져 버렸겠지만.”
“그렇지.”

가토 쇼콜라도 위스키도 없어졌다. 지금은 날짜가 바뀌려나 안 바뀌려나, 하는 정도의 시간이다.
평소와 같았으면 해산을 했겠지만, 얘기하던 내용 탓인가 영 엉덩이가 떼어지지 않았다.
연기를 내뿜으며 친구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는 거는 알지만 말이야.”
“뭔데?”
“순수하고, 세상이 빛나 보이는 감수성 좋은 시기, 라고 해야 되나. 장래에 희망을 갖고 꿈을 볼 수 있었던 때.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살 수 있던 때라는 게 있었잖아.”

“시간이 무한하다고 느꼈던 때, 그런 거?”
“그런 거지. 현실이 아니라 꿈을 볼 수 있었던 때. 그런 시기에 걔는 비행운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란 말이야.”
“그렇지.”
“그건, 우리처럼 사회나 머시기에 잡혀 갖고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거라고 생각을 해.”
“뭔 소리야?”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어떤 관점에서는 행복이 아닌가, 하는 거지.”

조금 씁쓸한 얼굴로, 남자가 미소 짓는다.

비가 오는 날도 날이 밝은 날도, 웃을 수 있었던 시대에 걔는 비행운 너머로 간 거야. 그건 틀림없이 행복한 일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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