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은 자신을 비추는 강렬한 광원에 눈을 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완전히 고정된 상태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눈동자를 돌려 확인해보니, 이곳은 수술실이었다.
괴인은 이 위치까지 제 발로 온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괴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이곳에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었다.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오늘같이 온 몸이 꽁꽁 묶여 있는 날도 가끔이지만 있었고,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실험 준비는 완벽한가?"
"예."
"들어가지."
괴인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친절해 보이는 목소리지만, 아주 낯선 목소리였다.
"드디어 만났군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얼
마나 많은 수고를 들였는지."
마스터는 밝게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섬뜩하여 괴인은 웃을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괴인의 몸 곳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주삿자국과 흉터가 남아있었다. 몸 곳곳이 변색되었고, 그 많던 털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목을 통해 연결된 삽관으로 행하는 미약한 호흡만이 괴인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괴인은 맨 정신으로 마스터가 행하는 실험들을 결코 감당할 수 없었다. 수 없이 많이 기절했고, 그럴 때마다 마스터는 괴인을 깨웠다. 마스터의 모든 실험은 정확히 괴인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루어졌다.
유병춘은 그런 괴인의 모습을 보며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마스터에게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섭식행위만으로 아무런 이상 반응 없이 타 유기체의 유전 정보를 습득하고 적용할 수 있다…실로 기적적인 일입니다. 안타까운 건 반드시 섭식이라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인데, 해당 변칙적 작용의 기전은 표본이 하나밖에 없는 이상 밝혀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마스터는 유병춘의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한히 반복해 보지. 결과를 얻을 때까지."
"이미 대상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실험을 진행했다가는 죽을 겁니다."
마스터는 대꾸 없이 수술실을 떠났다. 평소와 다른 쌀쌀맞은 태도였지만, 유병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런 태도는 마스터가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즉 기분이 좋을 때에나 보이는 것이었다.
유병춘은 홀로 남은 괴인의 링거를 교체하며 한숨을 쉬었다. 처음 봤을 때는 위압감이 느껴졌던 거대한 덩치의 괴인은 지금 너무나 나약해 보였다.
"미안합니다."
마스터가 수술실에 복귀한 것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마스터는 품 안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뭡니까?"
마스터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한 손에 자그마한 살점을 꺼내들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불사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본질에 가장 가까운 존재의 세포다. 그 자체로도 가공하기가 매우 까다롭기에 연구를 미루고 있었는데, 이걸 먹여 재생과 적응의 변칙성을 얻게 된다면, 두 가지 연구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마스터는 살점을 괴인의 목구멍에 집어넣었다. 정상적인 소화과정을 가지기만 한다면, 괴인은 섭취한 유기체의 육체적 특성을 모방한다.
"하루 뒤에 오지. 특이사항이 생긴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살점을 먹은 뒤, 괴인은 더 이상 기절하지 않았다. 여전히 죽을 만큼 아팠지만, 쓰러지지 않았고 상처는 금방 아물었다. 마스터가 자신에게 몇 번째 실험을 하고 있는지,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똑똑하게 인식이 되었다. 여전히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괴인은 자신이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소화 방식의 변화입니다. 매우 활동적이고, 무기물의 능력까지 소화한다는 점에서 무궁무진한 발전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스터는 괴인의 다리 부분에 전기 충격을 가하며 유병춘의 보고를 들었다.
"끄으으…끄으으…"
괴인은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탈출의 의지는 이미 잃은 채였다. 마스터는 그런 괴인의 풀린 동공을 무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가족들도 변칙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안타깝네."
마스터는 안타깝다는 듯 벌어진 상처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괴인의 풀렸던 눈이 떠졌다.
"딸…내 딸…"
마스터는 그 반응에 전에 볼 수 없는 커다란 웃음을 보였다.
"뇌세포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본래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니…당신이란 존재는 정말 변칙 그 자체로군. 반대로 섭취한 개체의 지성은 대상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역시 확실히 증명되었어. 완벽한 결과야."
괴인은 끊임없이 웃으며 이해하지 못할 말을 지껄여대는 마스터에게 두려움을 느꼈지만,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은 그 공포를 넘어섰다. 처음으로 구속구가 세차게 흔들렸다.
"마, 마스터. 위험합니다."
"괜찮네."
"딸, 딸은…살려 주세요…나…우리 가족 보고시퍼요."
마스터는 싱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의사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럼요. 아직 살아있고, 살려 드려야지요. 반드시 오래 오래 살게 해 드릴게요. 제 말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다행.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괴인은 순수했다.
"감정의 동요를 겪으니 근력이 급상승하더군. 해당 변칙성도 집중적으로 탐구해볼 필요가 있겠어."
"저, 마스터. 대상의 가족은 변칙성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실험체 본인도 40세가 넘어서야 변칙성이 발현되었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실험체를 놓아줄 수는 없지."
"……."
"게다가 실험체는 이미 용량 초과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변칙성이 발현되자마자 엄선된 것들만 먹였다면 신을 넘어서는 지고한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개체 하나가 거듭하는 진화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더군."
"그러면…?"
"일단 태아로 실험을 해 보지."
유병춘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6개월이 흘렀다. 유병춘은 괴인의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에서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었었다.
수정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착상 이후가 문제였다. 괴인의 살점을 먹은 뒤 얻은 불멸성이 문제였다.
괴인의 각각의 정자는 불멸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세포분열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열 자체를 하지 않거나, 과하게 분열한 뒤 사멸하지 않아 산모의 생명에 중대한 위협을 주고는 했다.
유병춘은 이 문제를 해결할 몇가지 방법이 생각났지만, 차마 직접 행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유병춘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수정만이 착상에 성공했다. 인위적인 변칙성 조정으로 불멸성이 아주 옅어진 개체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임신 3개월째에 산모가 죽어버렸다. 태아는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유병춘은 마스터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는 실패라는 결과에도 덤덤한 태도였다.
"괜찮네. 신의 육체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실험체 하나 만으로도 삼대천 생활건강은 들인 돈의 몇백배는 손쉽게 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돈이 중요한게 아니지 않나. 이제 이 프로젝트에서는 손을 떼게."
"그러면…이 태아는…"
"폐기처분하게."
"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한 건 임자이지 않나? 감정을 개입하지 말게. 이런 일에 감정을 개입하다간 결국 버티지 못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하수도를 향해, 태아 가 흘러들어갔다.